제1장 ‘꿈꾸던 그림’에서는 산행 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젊은이의 죽음과 그 드러난 ‘맨발’을 보며 사업 실패 후 약을 삼키셨던 아버지의 쓸쓸했던 맨발과 삶의 굴곡을 애틋하게 그리는 「맨발」,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고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소진되어 재로 남은 어머니의 삶과 그 사랑을 뒤늦게 깨달으며 흘리는 회한의 눈물을 담아낸 「그루터기」 등을 만날 수 있다.
제2장 ‘내가 머무는 곳’에서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다룬 영화 〈스틸 앨리스〉를 보고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와 노년의 문턱에 선 자신을 돌아보며 기억의 사라짐보다 ‘남아 있는 삶’의 용기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기억은 사라져도」, 지하철 무임승차와 백발의 염색 포기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노년의 풍경을 통해 겉모습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은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은 「덜 익은 노인의 입장」 등을 읽을 수 있다.
제3장 ‘바람의 딸’에서는 제주 김영갑갤러리를 찾아 루게릭병 투병 중에도 오직 사진에 온 생을 바쳤던 고 김영갑 작가의 예술혼을 마주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잠자던 글쓰기의 열정을 다시 깨우는 감동적인 순례기 「사진에 순교하다」, 반세기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통해 만난 소꿉친구들과 영화 〈소풍〉을 관람하며 인생의 황혼길에서 ‘세상소풍’을 아름답고 의연하게 마무리하는 삶의 태도를 나누려는 「오늘도 소풍처럼」 등이 실렸다.
제4장 ‘이별에 대한 예의’에서는 김선주 작가의 책을 읽으며 사랑과 이별의 순간에도 서로를 향한 존중과 예의를 지키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지키는 길임을 깨닫고 지나온 인연들과의 이별을 의연하게 소화하는 기록인 「이별에 대한 예의」, 최고와 최선만을 좇기보다 묵묵히 ‘차선’을 선택하며 살아온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완벽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소중한 내 삶의 방식을 따뜻하게 다독이는 글인 「차선을 위해」 등이 담겨 있다.
제5장 ‘사랑에 전부를 걸어보세요’에서는 남이섬 여행 속에서 탄 쭤잉의 글귀(“사랑에 전부를 걸어보세요”)를 마주하고 늘 소심하고 한 발 물러서서 구경꾼처럼 살았던 지난 날을 반성하며 비로소 삶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사랑에 전부를 걸어보세요」, 제주바다에서 거친 숨을 내쉬며 물질하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통해 벅찬 삶의 무게를 견뎌내며 자신만의 일상적 숨구멍을 찾아가는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생명의 호흡을 그려낸 「숨비소리」 등 읽을 만한 수필이다.
책 속에서
…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에 끌려 책을 만났다. 이제나저제나 귀 얇은 내가 눈까지 멀어 고른 책은 읽을수록 선택에 미소를 짓게 한다.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예의, 안 되면 염치만은 차리자’라는 신조의 글들은 내가 예상하던 감성적인 글이 아니라 언론, 정치, 경제, 분단, 여성, 결혼, 교육, 노년과 연결된 방대한 스케일의 책이다.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살고자 한 김선주 작가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슬프지만 인정하고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서먹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주춤주춤 다가간다.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 인생에서 많지 않았던 그 뜨거운 사랑의 순간들을 잿빛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우리는 이별을 맞아야 하고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모든 사랑했던 순간에 대한 예의고 또한 이별의 예의다.”
---「이별에 대한 예의」 중에서
… 젊은 날 육상 단거리 선수였던 아버지는 길고 긴 마라톤을 견디지 못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만 경주마처럼 옆을 보지 않았고 볼 줄도 몰랐다. 잘 나갈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빛이 났지만,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현실의 굴곡에 쉽게 무너졌다. 3대 독자로 외롭게 성장한 아버지의 배경에 남에게 보이는 기대와 희망이 남달리 남았는지도 모른다.
가족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으로 밀어붙이던 일은 부도와 빚보증까지 겹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법 없이 살 양반’은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한 움큼의 약을 삼켰다. 그때 왜 어머니가 아닌 나에게 연락을 취하셨을까.
위세척을 한 뒤 병실로 옮겨진 아버지 모습은 천진무구한 어린아이 얼굴을 닮아 있었다. 얇은 담요 바깥으로 아버지의 맨발이 보였다. 그때까지 아버지의 발을 본 적이 없었던 듯 그 맨발이 새삼스러웠다. 빈틈없이 가지런하게 붙어 있는 다섯 개의 발가락은 하얗고 깨끗했다. 내 발보다 예쁘다고 생각하며 담요를 살포시 덮어주었다.
---「맨발」 중에서
… 사진은 제주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고백처럼 느껴졌다. 벽 한 면에 파노라마 형태로 찍힌 바다 사진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제주의 사계〉는 같은 장소에서 변화하는 풍경을 다른 색감으로 표현했다. 한순간에 나타난 풍광이 아니라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뎌낸 작가에게 자연이 준 선물처럼 느껴졌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메고 오름으로 달려갔다는 그의 열정과 혼이 사진 안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밖으로 나오니 마당에는 들꽃과 들풀이 무성하다. 작가는 질병과 싸우면서도 손수 몸을 움직여 운동장을 야외 전시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씩 웃으며 자신만의 정원이라고 하는 말에 울컥해졌다.
---「사진에 순교하다」 중에서
… 그러고 보니 무엇엔가 나의 전부를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소심한 성격 탓에 주어진 것에 안주하며 피하려고만 했지요. 매사에 목을 길게 늘어뜨리며 자리 지키기에 아등바등하느라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도 못했습니다.
사랑에 송두리째 걸어본 적도 없습니다. 늘 한 발 떨어져 구경꾼처럼 바라보며 뛰어들지 못했지요. 이유야 많겠지만, 사랑에 무지했던 게 첫째 이유가 아닐지 생각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자신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던, 젊음의 불확실한 시절이었지요.
우거진 숲에는 비를 맞아 물기를 머금고 생기가 도는 비비추, 엉겅퀴, 민들레, 붓꽃이 소담스럽게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식물이 동물에 비해 대담하다고 하지요. 자기가 사랑하는 꽃을 찾아가 대신 잠자리를 같이 해줄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사는, 꽃이란 다름 아닌 식물의 성기라고 합니다. 그 꽃을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의 코 밑에 바치는 것이라지요.
---「사랑에 전부를 걸어보세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