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종합 평가 지침서

화병 종합 평가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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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광화문에 살았던 지난 십여 년의 생활 동안 출근하는 나를 반긴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1인시위를 하기 위해 경찰청과 청와대를 찾는 시위자 분들이었다. 의료사고를 당한 사람, 임금을 체불당한 사람, 사기를 당한 사람. 사연은 가지각색이지만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여기라도 나와서 소리를 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다는 이들의 마음만은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를 그렇게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만 참고 지나가면 사라지는 것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라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감정은 그렇게 쉽게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참고 마음에 쌓아 둘수록 이 감정은 더 큰 비수가 되어 내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우리는 이런 마음의 현상을 ‘화병’이라 부르고 살아왔다.
화병이 대중에게 아주 흔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화병에 대한 정의는 진단기준은 그렇게 명확하지 못하다. 서양 학문에 뿌리를 둔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필자와 개발진이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이미 잘 약속된 진단기준을 측정하는 검사를 개발하던 역할에서 정확히 언어화되지 않는 현상을 언어화하여 검사 문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마치 인간이 처음 달 탐사를 시작했을 때와 같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제 갓 세상에 선보인 이 화병 검사는 결코 화병에 대한 논쟁을 일단락시킬 수 있는 최종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화병이라는 신비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질환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한방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에게서조차 단일한 개념이 아닌 화병이란 현상에 대해 수용 가능한 정도의 합의점을 이끌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이 검사이다. 이 검사는 화병이라는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개발된 쓸만한 도구 중 하나이다. 이 도구를 이용할 많은 창의적인 임상연구자들의 손에서 화병의 비밀은 조금씩 그 속내를 드러낼 것이다.
저자들은 가능한 많은 개발 과정을 이 지침서에 담고자 하였다. 개발의 작은 고민조차도 사용자들과 공유하여, 이를 통해 건강한 비판과 대안 제시를 받고자 하기 때문이다. 검사 해석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많은 개척의 여지가 남아 있다.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성과가 누적될수록 이 책의 개정판은 더욱 풍성한 정보를 담게 될 것이다. 많은 분들이 이 검사도구를 통해 화병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기를 희망한다.

쌍문동에서 저자 일동
저자

최승원,김지수,박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