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질의 사랑

어떤 물질의 사랑

$13.74
저자

천선란

1993년인천에서태어나안양예고문예창작과를졸업했고,단국대학교문예창작과에서석사과정을수료했다.동식물이주류가되고인간이비주류가되는지구를꿈꾼다.작가적상상력이무엇인지에대해늘고민했지만,언제나지구의마지막을생각했고우주어딘가에서일어나는일들을꿈꿨다.어느날문득그런일들을소설로옮겨놔야겠다고생각했다.대부분의시간늘상상하고,늘무언가를쓰고있다.2019년9월...

목차

01_사막으로_7
02_너를위해서_37
03_레시_43
04_어떤물질의사랑_89
05_그림자놀이_155
06_두하나_199
07_검은색의가면을쓴새_259
08_마지막드라이브_293

작가의말_331

출판사 서평

지울수없는흑백타투같은,2의세계

사변이경계를지워버리고모든장르가서로화기애애하게구느라바쁜요즘,글세계에서작가의색깔을첫모습과주종목으로나누는것만큼위험한일은없다.천선란작가는2020년제4회한국과학문학상에서대상을받았다.한국과학문학상은과학소설,그러니까SF소설에주는상이다.알다시피작가를알기위해그런사실에너무집중하면틀이생긴다.좋은이야기를찾아다니는사람에게틀은아마도도움보다는해를더많이줄것이다.피해를받지않으려면?지금당장책을열고읽으면된다.

하지만조금더미적거리고싶은사람이있다면….

*

목차에서이작품집에실린8개의글제목을잠시들여다보면적어도세개의작품에서하나의숫자를떠올릴수있다.<두하나>는말할필요가없을테고,<너를위해서>는‘나’와‘너’를상정한다.그리고<그림자놀이>.그림자가생기려면광원을가로막는사물이있어야한다.광원만으론그림자를만들수없다.광원이세계라면사물과그림자는그세계안에있는‘존재’들이다.사물과그림자는한쌍이어야한다.따라서숫자는2다.

이작품집에서는수많은2를찾아볼수있다.단편집이대개그렇지않으냐고묻는다면,천만에.이책에서2는구조와직결되어있다.<그림자놀이>는한때과거를함께했으나물리적으로,정신적으로상당한거리가생겨버린2인의얘기다.한사람은억지로가까워지려노력하지않고,다른한사람은마음만먹으면가까워질수있는힘을갖고태어났다.둘중한사람은인위적으로‘감정과공감’을절개해버리지만,현실속의통증클리닉이그러듯,고통그자체만사라졌을뿐원인은남아본질적인문제는사라지지않는다.우리는주인공‘이라’가애써외면하려는노력을보고,그게곧지울수없다는반증임을안다.그리고아마도,작가가작품의정서와세밀하게조각한어휘의부조를제손으로배신하지않는다면,우리는<그림자놀이>의끝에도달한들가슴의답답함이눈녹듯사라지지는않으리라는것을안다.

그2는<너를위해서>에서갑자기혈육과생명의의미(또는역설,또는잔인함)를툭던지고는<레시>와표제작<어떤물질의사랑>을낳는다.두작품은태생부터‘바깥’에있는존재를이야기하고,그바깥을강조하기위해‘안쪽의상황’을촘촘하게보여주고,‘엄마’와엄마가사랑하는존재를이야기한다.이두글을모두읽으면‘기시감’이라는단어가모락모락떠오를것이다.<레시>는토성의위성인엔셀라두스가주무대고<어떤물질의사랑>에서는지구가그런무대에해당한다.하지만글이막바지를향하면서,<레시>의엔셀라두스는엄마인승혜에의해결국인간이사는곳과같으면서그와동시에다른‘지구’로확장된다.<어떤물질의사랑>은이야기의끝에서새로운2가탄생하면서,지구가뒤에남고저먼바깥이안쪽으로활짝열린다.

그렇게<그림자놀이>와<레시>와<어떤물질의사랑>은(심지어목차순서를봐도)바짝달라붙어서구조적인다중우주를이룬다.다중우주란크게같고은근히다른우주의모음을가리킨다.세작품모두관계와외면,이해와오해에관해얘기한다.그2곱하기2속에서낯선자와익숙한세계가서로거리를좁히지않으려안간힘을쓰면서춤을추고있다.세작품은구조가비슷하고등장인물이겪는고통과치료의양상까지흡사하다.하지만셋을나란히겹쳐놓고대차대조표를만들어보는순간,세개의우주가,꽤무겁고힘겹게다중우주를형성하고있음을발견할수있을것이다.

그렇게‘미니3부작’을감상했다면이제조금은숨을돌리고,가슴을활짝펴도된다.<두하나>는금세알아챌수있는은유와선명하기그지없는서사가장점이지만,그선명함이작가고유의신선함까지도달했는지는의문이다.반면<검은색의가면을쓴새>는작가가독자에게조금더친절해보겠다고마음먹은듯,그리고작품내내호흡을조절하겠다고마음먹은듯소심하면서탄탄한완성도를보여주고있다.<마지막드라이브>는책의첫쪽부터글을꼭꼭씹으며달려온독자에게작가가살짝,아주살짝미소를짓는것처럼그리버겁지않은여운을남겨준다.<사막으로>는…내가편집자라면‘작가의말’자리에이글을넣었을것같다.그럴리는없겠지만만에하나단편집<어떤물질의사랑>이첫장을넘기기보다이글토막을먼저보는독자가있다면<사막으로>를가장나중에읽는것도나쁘지않은선택일것이다.

*

이작품집에는매끈하니누구나수집하고싶은조약돌이있는가하면,손을대는위치에따라다칠수도있는,한귀퉁이가살짝깨진기암도있다.유독그런기암에해당하는작품은<레시>와<그림자놀이>이다.천선란작가는,적어도이작품집안에서는,궁금증이나호기심으로독자를결말까지유인하지는않는다.그럼에도불구하고<레시>와<그림자놀이>에서끝마무리에쉽게고개를끄덕이기는어렵다.작가는할얘기를다했건만그끝은깨져있다.

그래도작가는다른힘으로(힘이라고표현할수밖에없다)묵묵하고끈기있게깨진부분을메꿔나간다.그힘은핍진에있고,고통과회피속에서도절대눈감지않는시선의날카로움에있다.그두가지는지울수없는흑백타투처럼읽는이의가슴에진하게남는다.

그게천선란작가의선택이다.그선택의결과외계인과바이러스와초능력등이클리셰처럼등장했다가투명하게사라지고이중삼중의은유로작동하진못했지만.글머리에서SF라는단어때문에틀부터세우지말라고전제했던이유다.

그리고아마,천선란작가가둘중하나만선택하지않고(또는희생하지않고)둘모두를능수능란하게구사할가능성역시,모순되게도그힘에있을터다.양손검을천번만번휘두르다보니어느새양손검뿐아니라두개의한손검까지능숙하게다루고마는작가가간혹있다.천선란이들고휘두른양손검의날끝에서,거기실린힘에서그가능성을본다.

-김창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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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사막에대해글을써보는건어떠니?
P.35어느곳이든네가나아가는곳이길이고,길은늘외롭단다.<사막으로>
P.60아프지마라,아프지마라…….우리엄마아프게하는거다사라져라.<레시>
P.62“한국며느리는식탁을엎어야한다는말이있어.대체로뭘못하게하거든.<레시>
P.88“만나서반가워요.당신을기다렸어요.”<레시>
P.91내인생의첫난제는내가여성이냐,남성이냐는거였다.<어떤물질의사랑>
P.97“사람들은가끔이유없이누군가를미워해.그냥상처주고싶어해.그러니까저사람이왜나에게상처를주려는지네가생각할필요없어.”<어떤물질의사랑>
P.98너는알에서태어나서배꼽이없어.엄마배에있던게아니니까.<어떤물질의사랑>
P.120네가자꾸눈길을끌었다는거,네가특별했기때문에그랬던거아니야.창피해서돌려말했는데그냥첫눈에반한거였어.혹시오해할까봐.<어떤물질의사랑>
P.135“결국,다시만날수있다는걸잊지말아야지.그걸잊으면슬퍼지는거야.”<어떤물질의사랑>
P.152“끊임없이사랑을해.꼭불타오르는사랑이아니어도돼.함께있을때편안한존재를만나.그사람이우주를가로질러서라도너를찾아올사랑이니까.”<어떤물질의사랑>
P.174“보고싶었어.수고했고,기다렸어.”<그림자놀이>
P.181모든대화는초능력이야.<그림자놀이>
P.188하필네가있던곳이우주여서나는하늘을바라볼때마다네생각을할수밖에없었고,내가숨쉬는모든곳이네아래에있었다.<그림자놀이>
P.250눈치보고자란딸들은가끔그래.짐이덜되기위해서자꾸자신의부피를줄여.몸짓도,소리도,존재감도.그렇다고쪼그라들었다는건아니야.<두하나>
P.328“행복하면인간은어떻게되나요?”
“미래를걱정하지않게되는것같아.적어도그순간에는그래.”<마지막드라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