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호랑이가 온다 - 창비청소년시선 40

이제 호랑이가 온다 - 창비청소년시선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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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남호섭 시인의 첫 청소년시집

과거와 현재, 경계를 넘어 오래 남을 시
남호섭 시인의 첫 청소년시집 「이제 호랑이가 온다」가 출간되었다. 동시집 「벌에 쏘였다」(창비, 2012) 이후 10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청소년시집이라곤 하지만 꼭 청소년만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청소년 화자가 등장하는 일도 드물고, 시인 자신이 화자로 나서기도 한다. 시인이 “하고 싶은 내 얘기를 학생들과 나눈다는 심정으로 그저 썼을 뿐, 나에게는 ‘동시’와 ‘시’의 경계가 없었다.”(시인의 말)라고 말했듯이 이 시집도 마찬가지로 ‘시’와 ‘청소년시’의 경계도 없고 뚜렷한 대상도 없다. 어린이가 읽어도 좋고 어른이 읽어도 좋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한 시집이다. 「이제 호랑이가 온다」는 ‘창비청소년시선’의 마흔 번째 권이다.

저자

남호섭

저자:남호섭
진짜학교에다니기싫었는데학교를다녔고,학교를벗어나지못해선생까지했다.그래서다행히도학교다니기싫고공부하기싫은아이들심정을이해하는선생이되었다.한발더나아가,학생과선생이‘사랑
과자발성’으로만나지금여기서행복할수있는대안교육운동에작은힘이나마보탰다.그리고학교에서다못한말은시로옮겼다.초등학생부터중고등학생까지두루읽을수있는시를쓰고자했다.
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에서공부했고,그동안동시집『타임캡슐속의필통』,『놀아요선생님』,『벌에쏘였다』등을펴냈다.제1회서덕출문학상,오늘의동시문학상등을받았다.

목차

제1부봄날의경고
백두대간
첫나들이폭포
봄날의경고
탑밑에사는할배
후쿠시마에남겨진동물들
멸종
늑대가돌아오면
망명1
망명2
풍년새우
지붕1
지붕2
지붕3

제2부이번시즌은망했다
이번시즌은망했다
이번생은망했다
낮은문
목욕탕에서
숟가락
도라지꽃
폭풍전야
사랑
돌고돈다
기다립니다
세사람
독사보다무서운
봄숲
먼길

제3부세개의이름
기차표
지갑
라과디아판사
윤이상의요강
화가
간디
호랑이시식회
신문
백발노인강우규
덕유산호랑이
우종수약전
세개의이름
김형률


제4부나는느리다
어느교장선생훈화말씀
전설1
전설2
안아주었다

시인1
시인2
시인3
보길초등학교돌담
망덕포구
첫사랑1
첫사랑2
나는느리다
벌레처럼

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과거와현재,나와우리를연결하는징검다리시

시와동시의경계를넘나드는색다른소재와독특한발성으로동시의영역을넓히며새로운동시를꾸준히선보여온남호섭시인의청소년시집『이제호랑이가온다』가출간되었다.아이들의‘세상구경’이야기를담은동시집『벌에쏘였다』(창비,2012)이후10년만에펴내는시집이다.시인은이시집에서삶의지혜를깨우쳐주는자연의순리,과거와현재의삶이만나는역사적사건과인물이야기,그리고산청간디학교에서아이들과함께했던추억등‘눈으로읽고귀로들은’다채로운이야기를일상의평이한언어가실린감성적인목소리로들려준다.따뜻한서정속에서“단호한단어나빛나는문장대신오밀조밀혀를내미는이야기들”(송선미,해설)이오래도록가슴속에여울진다.

곰한마리가
지리산을탈출했다

사람들마을에둘러싸여
섬처럼갇혀있던
지리산

끊어진
산길을잇고
고속도로를가로질러

곰한마리가
백두산으로뻗은
길을찾았다

오소리너구리담비
멧돼지도가고

호랑이가온다
그길을따라
―?백두대간?전문(10쪽)


자연과교감하는느림의삶

전통서정에바탕을둔남호섭의시는따뜻하고편안하다.어린아이와같은맑은눈으로세상을바라보는시인의눈길은다사롭고,자연을노래하는숨결은“산마루에서/햇살쏟아지”는봄날“골짝이부풀고/폭포가터”(?첫나들이폭포?)지듯생동하는기운으로활기차다.시인은언제나“새로시작되는이야기”(?봄숲?)를부드러운목소리로나긋나긋들려주며자연의아름다움에깃든삶의오묘한이치를일깨운다.“지붕없이/사는새들”과“지붕없이/못사는사람들”이“지붕아래/같이”(?지붕2?)사는모습에서자연과사람이더불어살아가는공존의즐거움을느끼고,“느릿느릿/꽃피는봄길”을걸으며“팔랑팔랑나비뒤로/작은꽃들웃는”모습도눈여겨보고“쉬엄쉬엄가/대지의조용한목소리”(?나는느리다?)에귀를기울여보며‘느림의삶’을누리기도한다.

나뭇가지마다
새로시작되는이야기

한편한편
눈으로읽다가
한편한편
귀로듣다가

푸드덕,
이야기밖으로
날아가는멧비둘기
―?봄숲?전문(46쪽)

환경과생태,자연의회복

시인의노래는비단자연의아름다움을경탄하는것에그치지않는다.자연을찬미하는한편으로환경문제의심각성을인지하고환경오염과기후위기로날로황폐해져가는지구의미래를걱정하고,“사람은동물에게/값을매기고//값이높은순서대로/동물은멸종”(?멸종?)하는실상을우려한다.시인은“날이흐리고비가올때는짐승떼처럼운다”(?탑밑에사는할배?)는밀양의고압송전탑과일본의“후쿠시마핵발전소가폭발하고”난뒤“가까스로살아남은개와고양이들만”“핵먼지뒤집어쓴동네를지키고”(?후쿠시마에남겨진동물들?)있는처참한장면을보여주면서생태계파괴로인한미래에대한불안을상징적으로형상화한다.

탑이섰다
높이는백미터
76만5천볼트전기가흘러가는탑이섰다
(그밑에서는형광등을들고서있기만해도불이켜진다)
밀양할배할매들이십년을싸웠지만마을마다고압송전탑이섰다

(…)

탑은날마다운다
날이흐리고비가올때는짐승떼처럼운다
―?탑밑에사는할배?부분(14쪽)

그런가하면유기농법으로농사를짓는제자의입을빌려“우리도지구한테는벌레같은존재”(?벌레처럼?)와다름없음을일깨우고,대자연의질서를무너뜨리는자본주의의탐욕과물질문명의무분별한횡포앞에죽어가는지구의모습을똑바로보게한다.그리고“뒤란에옮겨심은도라지”가“봄가뭄에/물몇번준것뿐인데”때가되면“보라는보라대로/하양은하양대로//제빛깔그대로”(?도라지꽃?)피어나듯이자연의이치에따라순리대로살아가는것이삶의터전을온전히보존하는일임을잊지않는다.

선생님,파종을하고날마다밭에가서하루가다르게자라는옥수수보며뿌듯했습니다드디어옥수수가태풍을이겨내고수염이마르기시작했습니다농사꾼으로첫수확이에요가끔가다꿈틀거리는벌레가있을수도있습니다살아있는유기농인증마크라고생각해주세요우리도지구한테는벌레같은존재아니겠습니까?

왜아니겠니한울아!
네가보내준옥수수
꼭꼭씹어먹고있다
한마리벌레처럼
―?벌레처럼?전문(98쪽)

과거에서현재로걸어오는역사의인물들

시집3부에서는다양한역사인물을만날수있다.‘덕유산호랑이’로불렸던의병대장문태서(?덕유산호랑이?),조선총독사이토마코토를죽이려고폭탄을던졌던강우규(?백발노인강우규?),베를린올림픽마라톤경기에서세계신기록으로금메달을딴손기정(?기차표?),현대음악의5대거장으로꼽히는윤이상(?윤이상의요강?),담뱃갑은박지에그림을그렸던이중섭(?화가?)등‘거기-과거’의인물에게숨과살을불어넣어‘지금-여기’로불러낸다.이어서‘지리산할아버지’우종수(?우종수약전?),‘이남이,하나코,렁훈’이라는세개의이름으로고단한삶을살다간일본군위안부이남이할머니(?세개의이름?),‘사람답게살고싶다’며원폭피해자2세라는사실을처음으로세상에알린김형률(?김형률?),창원지방법원소년부천종호판사(?지갑?)의사연도들려준다.

1919년9월2일해질무렵서울역광장에서폭탄이터진다새로부임해오는조선총독사이토마코토를환영나온총독부관리들군사령관헌병대장그리고이완용백작이흙바닥에납작납작엎어진다생쥐들처럼구멍을찾아헤맨다간신히살아남은사이토는겁에질린눈알만떼굴떼굴굴린다말들이날뛰고육군소장이쓰러지고경찰서장이피를흘리고구경꾼들이혼을빼고흩어지는사이로유유히빠져나오는오직한사람흰머리에흰수염하얀두루마기가잘어울리던그사람
―?백발노인강우규?전문(61쪽)

사실에기반하여인물을조명하는남호섭의시는간단명료하다.더러는생략하기도한다.사건을극적으로각색하거나이야기를덧붙여부연설명하지않으며,사사로운감정도얹지않는다.그저사실그대로무심한듯담담하고냉정하게기록할뿐이다.이를테면“고앙증맞은요강뚜껑을열고/쫄쫄쫄볼일을보던꼬마”가왜“영영집에돌아오지못했”는지,왜“윤이상이란이름을쓸수없어‘도천테마공원’이라고했는”(?윤이상의요강?)지말하지않는다.일제를찬양하던신문이“사죄하는말한마디없어도아직껏잘팔리고있”(?신문?)는까닭에대해서도침묵한다.이야기속의여백을채우고역사적진실을캐내는것은온전히독자의몫이다.시인은독자스스로과거의현장으로거슬러올라가이면에숨은역사의모순을깨닫게한다.

프랑스는2차세계대전때독일에4년간점령당했다해방되자마자독일편에섰던민족반역자수만명을감옥에보내고수천명을사형에처했다그리고독일점령아래서15일이상발행한신문을모조리폐간시켰다‘언론인은도덕의상징이기때문에첫심판대에올려가차없이처단해야한다’드골대통령이말했다

우리나라는35년동안일본에점령당했다그러나민족반역자로처벌된사람은아무도없다‘일본군입대는조선인의의무다황국신민이된사람으로그누가감격치아니하며그누가감사치아니하랴’라는사설을썼던신문도멀쩡했다사죄하는말한마디없어도아직껏잘팔리고있다
―?신문?전문(60쪽)

경계를넘어서,오래남을시

남호섭시인은1992년제1회황금도깨비상을수상하며동시작가로등단한뒤세권의동시집을펴내는동안시와동시의경계를허물고동시의수준을한단계높이끌어올렸다는평가를받는다.이번에선보이는『이제호랑이가온다』는청소년시집이다.청소년시집이라곤하지만꼭청소년만대상으로하지는않는다.청소년화자가등장하는일도드물고,시인자신이화자로나서기도한다.시인이“하고싶은내얘기를학생들과나눈다는심정으로그저썼을뿐,나에게는‘동시’와‘시’의경계가없었다.”(시인의말)라고말했듯이이시집도마찬가지로‘시’와‘청소년시’의경계도없고뚜렷한대상도없다.어린이가읽어도좋고어른이읽어도좋다.시를사랑하는사람이라면누구든쉽게다가갈수있는편안한시집이다.하얀종이에“적힌말(시)은오래남아적은사람(시인)을기억”(송선미,해설)할것이다.

지리산불일폭포뛰어내릴때
어린물방울형제는몰랐다

앞으로열번백번
더뛰어내려

천번만번
흩어졌다다시뭉쳐도

되돌아올수없는
먼길이시작됐다는것을
―?먼길?전문(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