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 - 창비청소년시선 41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 - 창비청소년시선 41

$10.00
Description
초록을 더 진한 초록이게
노랑을 더 빛나는 노랑이게 해 주기를
있는 그대로 서로를 보듬어 주는 마음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는 불안과 고민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시편들이 가슴속에 촉촉이 스며들어 위로의 말을 전하는 다정다감한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청소년들의 불안정한 일상과 복잡한 심리를 “빗방울처럼 투명한 눈”(시인의 말)으로 찬찬히 살펴보고 헤아리는 시인의 세심한 마음이 담겨 있다. 청소년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꿈을 잃은 채 마음을 납작하게 눌러 버리는 공부와 모든 걸 점수로 바꿔 버리는 서열 경쟁에 시달리며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내 속에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개성이나 소질은 아예 무시해 버리고 단지 숫자(성적)만으로 나의 가치를 매기곤 한다. “참았던 걸 다 쏟아 내” 버리듯 “고래고래/노래를 부르면/입에서 고래가 튀어나올 것”(「우리 둘이」)도 같은데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은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을 수밖에 없다. 시인은 그 “마음을 들어 주려는 예쁜 귀”(해설)로 갈등과 방황 속에서 헤매는 청소년들의 답답하고 아픈 ‘속(마음)’을 귀 기울여 듣는다. “수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을 묻고 보여” 주는 이 시집은 “연한 심장에 귀를 기울이는 예쁜 책”(해설)이다. 시집을 다 읽고 나면 ‘나’와 가족과 친구와 이웃 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반짝, 피어날 것이다. 이 시집은 김준현 시인의 첫 청소년시집이자 ‘창비청소년시선’의 마흔한 번째 권이다.

저자

김준현

연필이종이와만나서내는소리,비닐우산에떨어지는빗소리,시베리아숲속의모닥불소리를느슨하고아름다운연대라고믿으며글쓰기작업을한다.마음이어두울때는‘새문서’를누른다음희고얇은세상을마주하며힘을얻는다.2013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었고,2015년『창비어린이』동시부문신인문학상,2017년문학동네동시문학상대상,2020년『현대시』평론부문신인추천작품상을수상했다.시집『흰글씨로쓰는것』,동시집『나는법』,『토마토기준』을냈다.

목차

제1부지구의누군가를사랑하게되어서
넓이를구하는공식
노랑
우리둘이
내속엔
인공위성의마음
내생각
난너의그런점이좋아
RHnull
나를깎는너
뒤따라오는말
단물
가까운사이
장거리통화

제2부책의옆면처럼서로를오래읽은흔적처럼
사랑한다고
터질때
바른애들만
가슴에두번,배에한번,등에한번
사랑받는일
비누는점점
AI-1
AI-2
AI-3
AI-4
AI-5
내안에둘이나
툭,툭
얼마나먼줄
흑백사진
꽃잎과뿌리의장거리통화를엿들었다
조용히자라요
지퍼
비가왔으면좋겠다
업데이트
윤동주일차원
나의어느면이든

제3부민들레가민들레끼리텔레파시를주고받듯이
서커스
이꽃길걷기
저꽃길걷기
약이듣는것들
열대의아이
턱밑에ㄷ심기

ㅇㅇ
화가난손가락
투명인간이되고싶다
오디션
야구선수가꿈이었는데이젠아냐
지구본독재자
겨울왕국국민들
나무의지
살아보겠다는말
벽돌깨기게임1
벽돌깨기게임2

공벌레의일기
후드티
초록색-녹색신호
ㅁ위에서
바람개비정원

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수채화처럼
세상이연해질때까지
비가왔으면좋겠다

피아노를치듯
툭,톡
비가왔으면좋겠다

길고양이에게물을주고
초록을더진한초록이게
노랑을더빛나는노랑이게해주기를

사람들이
저마다알록달록한우산을날개처럼펴고
웅덩이를건널때는띄어쓰기하듯이
새처럼톡,톡건너면좋겠다

(중략)

비가그치고나서
세상이더맑고분명해보인다면
좋겠다,좋겠다
―비가왔으면좋겠다부분(52~53쪽)

마음의넓이와깊이를재는‘마음의수학’

시인은“사람은/세상에서넓이구하기가가장어려운도형”(넓이를구하는공식)이라고말한다.그렇다면잴수없는사람의마음은어떻게헤아릴수있을까.시인은“마음의수학”(고명재,해설)으로“하루에도수십번/늘어났다줄어들었다하는”(넓이를구하는공식)마음의‘넓이’와‘깊이’를구하려고한다.‘마음의수학’에는공식도정답도풀이도없다.다만골똘히사람을생각하는사랑만이담뿍담겨있다.“누가누군지도알수없을만큼”(가까운사이)포옹하는사랑의온기로정성을다하여마음의넓이와깊이를재다보면어느새“어둠속에서견뎌온”“나도모르는마음”이“세상밖으로드러”(노랑)나면서“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받는일)속삭이는다정한목소리가귀를울린다.“사랑해라고써놓은바람개비”가“나를완전히다른세상으로보내버릴바람”(바람개비정원)속에서돌고돈다.

직사각형의넓이는가로×세로
삼각형의넓이는밑변×높이÷2

그렇다면나의넓이는어떻게구해야할까

사람은
세상에서넓이구하기가가장어려운도형이야
좀더크면
나의넓이를구하는공식을알게될까

누구에게도하지못한말을곱한다음
너와마음을나누면
알수있을까
하루에도수십번
늘어났다줄어들었다하는
나의넓이를
―넓이를구하는공식전문(10쪽)

‘너의속’을들어주는예쁜귀

흔히청소년기는인생에서가장빛나는순간이라고말한다.하지만현실은그렇지않다.우리청소년들은학교라는울타리안에서꿈을잃은채마음을납작하게눌러버리는공부와모든걸점수로바꿔버리는서열경쟁에시달리며고단한삶을살아간다.“수많은검은머리카락속에있는/흰머리카락한가닥”처럼“뭐든특별한데가있어야지”(오디션)선택받을수있는세상이다.내속에는많은것들이있는데,개성이나소질은아예무시해버리고단지숫자(성적)만으로나의가치를매기곤한다.“참았던걸다쏟아내”버리듯“고래고래/노래를부르면/입에서고래가튀어나올것”(우리둘이)도같은데무엇하나뜻대로되지않고마음대로움직이지도않는현실에서청소년들은하고싶은말을꾹꾹눌러담을수밖에없다.시인은그“마음을들어주려는예쁜귀”(해설)로갈등과방황속에서헤매는청소년들의답답하고아픈‘속(마음)’을귀기울여듣는다.

청진기로너의속을듣는다

깊은여름밤여치울음을듣는기분으로
유리깨지는소리를듣는기분으로
장마철빗소리를듣는기분으로
쿵쾅쿵쾅윗집발소리를듣는기분으로
잔소리를듣는기분으로
드럼비트를듣는기분으로

너의가장깊은곳에서
한어린아이가훌쩍,훌쩍눈물을참는소리가났다
―가슴에두번,배에한번,등에한번부분(31쪽)

‘나’의모든면을사랑할거야

우리가살아가는세상은다양한면(面)으로이루어져있다.무한한가능성이열려있는청소년들의삶이야더말할나위없다.우리의삶에는하나만의정답이없고,저마다다채롭게빛나는것이다.그리고주사위놀이처럼어떤면이나올지예측할수없는미래에는기대와희망이움트기마련이다.살아가다보면“못될수도있”고“못할수도있”고“못날수도있”고“못생길수도있지”(못)만,그것이잘못도아니고실패도아니다.그러니너무조급해하지말라고,비록“남들보다앞서가지도못하고/겨우한걸음이전부”일지라도있는그대로“내모든면을사랑”(나의어느면이든)하자고시인은말한다.“힘든점부족한점”을“하나도안버리고낑낑온힘을다해걸어가”마침내“날개를활짝펴고”힘차게날아오르는청소년들에게“넌정말멋진점투성이야”(난너의그런점이좋아)라고응원을보낸다.

사람들이내게원하는면은6
나를세상에던져놓고는6이나오길기대한다

1이나온다면혼자
친구도없이멍하니하늘을바라보는나를
사랑할사람이있을까
예전에는그렇게생각했는데

남들보다앞서가지도못하고
겨우한걸음이전부지만
내모든면을사랑하기로마음먹은순간부터는
사람들이함부로나를굴려도괜찮았다
6이나와도,4가나와도,2가나와도
때로혼자여도좋았다
―나의어느면이든전문(58쪽)

‘공’이뒤집히면‘운’이되듯이

시인은세련된언어감각으로말을자유자재로가지고노는말놀이솜씨가뛰어나다.이시집에서도시각과청각을자극하는언어유희가돋보인다.“공은뒤집히면운이됩니다”(벽돌깨기게임2),“나는ㅁ위에있으면남이된다”(ㅁ위에서)처럼시각적인형태로나타나기도하고,“힘든점부족한점그냥●이놈의점점점무거운점을/짊어지고다니는무당벌레”(난너의그런점이좋아),“잘지내는줄/행복한줄/곧올줄/줄줄/흐르는눈물두줄”(얼마나먼줄),“이곳을힘주어말하면이꽃이되듯이”(조용히자라요),“이약이/이야기/다듣나보다”(약이듣는것들)처럼소리가같은단어나구(句)를절묘하게연결하여말맛을더한다.“턱밑에/ㄷ을심어놓”(턱밑에ㄷ심기)으면‘털’이되고,“의자에서삐죽나온나사가빠지면”“살고싶다는의지”(나무의지)가되고,“검은말도흰말도아니어도/좋은말이라고/앞으로는그런말을하겠다”(내안에둘이나)는다짐속에서는말(馬)과말(言)이함께어울려시를읽는재미를더한다.

네도아니고
응도아니고

ㅇㅇ
이라는대답은
동그랗게뜬두눈이다,아니
한숨쉬는콧구멍이다,아니
데굴데굴굴러오는
구슬두개다

뭐든물어보면
대답대신언제나
ㅇㅇ

손가락으로톡톡두드려보는
사춘기
―ㅇㅇ전문(69쪽)

우리는같은향기가나

“사람이자꾸날카로워지는게싫다”(나를깎는너)고말하는시인은끊임없이사랑을이야기한다.마음속에“좋은말을입력하면좋은말만하고좋은생각을한다”(AI-4)고,“가슴에두번,배에한번,등에한번”,때로는수십번수백번귀를기울여“너의가장깊은곳”(가슴에두번,배에한번,등에한번)에서숨쉬는마음을듣는다.몸은떨어져있어도“민들레가민들레끼리텔레파시를주고받듯이”(이꽃길걷기)사랑의마음은언제나물흐르듯이어진다.“피검사를안해도알수있”는우리는“그런사이”(RHnull)이다.“같은향기가나”는우리는그렇게“조약돌처럼매끈매끈해지”는마음으로“사랑받는기분을알아가”(비누는점점)면서살아간다.시인은수학공식처럼딱잘라말하지않는다.“수학과는다른방식으로사람의생각이나마음을묻고보여”주는이시집은“연한심장에귀를기울이는예쁜책”(해설)이다.시집을다읽고나면‘나’와가족과친구와이웃들을더많이사랑하고싶은마음이반짝,피어날것이다.

할머니손은라벤더
할아버지손도라벤더
엄마손도라벤더
아빠손도라벤더
동생손도라벤더
내손도라벤더

손잡을일별로없어도
두손에라벤더꽃을키우는사람들
우리는같은향기가나

일어나서쓰다듬고밖에나갔다와서쓰다듬고
밥먹기전에쓰다듬고잠들기전에쓰다듬고
일기를쓰다다듬어서일기읽는눈이
조약돌처럼매끈매끈해지게
언제나모두가쓰다듬어주는
비누는점점
사랑받는기분을알아가고있을까
―비누는점점전문(34쪽)


○책속에서

P.12고래고래
노래를부르면
입에서고래가튀어나올것같아

바닷속에서숨을참았던고래가펑!
분수처럼숨소리가하늘높이솟구치는기분
등대를세우는기분

참았던걸다쏟아내버려!

정민이가굽은내등을지느러미로쓰다듬어주더라
노래보다그게훨씬좋았어

정민이랑나랑
둘이서세상끝까지헤엄치는돌고래처럼
우우우우우우우우우리둘이
노래가되었어
―우리둘이전문

P.48흑백은어쩌면모든색이다빠져나간뒤에도남아있으려는마음
오랜시간바닥생활을하던그림자의영역
흰머리가나고
책의옆면처럼서로를오래읽은흔적처럼바랜다해도
이세상에남으려는마음
―흑백사진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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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시인의시집은연한심장에귀를기울이는예쁜책이다.그래서읽고나면더많이사랑하고싶고더많이질문하고싶고더용감하게‘사랑한다’고쓰고싶어진다.계속해서곰인형의배를엄지손가락으로누르며“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귀를채우듯,마음을듣고또듣는아름다운책이다.-고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