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 둔 말

숨겨 둔 말

$11.00
Description
“넌 혼자가 아니야”

센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모르는 척하는 모습 뒤에
감춰진 괴물들의 속사정
등단 이후 시와 동시를 함께 쓰며 청소년시까지 창작 영역을 넓힌 김현서 시인의 두 번째 청소년시집 「숨겨 둔 말」이 출간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소년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려 담아낸 첫 청소년시집 「탐정동아리 사건일지」(창비교육, 2019)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청소년시집이다. 이 시집은 그때보다 한 단계 성숙하긴 했으나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인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시인은 따돌림과 학교 폭력, 가족 간의 소외와 소통 부재, 불우한 가정 환경, 사회 구조와의 부조화 등 불안과 혼돈의 시기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불안정한 감정과 막막한 일상을 섬세한 눈으로 살핀다. 시인은 이 시집을 두고 “각자의 공간에 유폐된 고통을 끌어안고 끙끙거리는 아이들에게 부디 이 시집이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내민 따뜻한 손이 되어 주길 바란다.”(시인의 말)라고 적었다. 시인의 바람대로 이 시집이 꿈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불확실한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시집은 ‘창비청소년시선’의 마흔두 번째 권이다.
저자

김현서

앞뜰에는늙은대추나무와황매화가있고,뒤뜰에는빨간딸기가올망졸망자라던강원도작은마을에서태어나초등학교3학년때경기도로이사했다.아기때의기억은아름답지만학창시절은조금달랐다.어느날은배가고팠고어느날은잠깐웃었고어느날은왈칵눈물을쏟기도했다.그시절의눈물과웃음그리고좌충우돌서울살이를자양분삼아글을쓰고있다.
1996년시전문지『현대시사상』신인문학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고,2007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동시가당선되어동시도함께쓰고있다.펴낸책으로동시집『수탉몬다의여행』,청소년시집『탐정동아리사건일지』,시집『나는커서』,『코르셋을입은거울』,동화『우주로날아라,누리호!』(공저)등이있다.

목차

제1부당한거갚아준거래
장난이라고
화가날때
아,몰라몰라
두고보자,이연주
저녁이깊어간다
나는정말문제아일까?
무뚝뚝한규율아저씨
타자를대하는방식
ZOOM
그냥
욕받이
뿌리의힘

제2부왜이렇게늦게왔어?
바빠서
우리가족
소원풀이
빨간딱지
도랑에빠진바퀴
좌절의말맛
숨겨둔말
가로등
알람소리
옥탑방
라이더알바
주술관계에밑줄긋기
악몽,꺼져줄래?

제3부쫄면어때?
비밀
목련나무
내자리
쫄면어때?
수능일
고양이싸움
믹서기
애매한인생
불안
이달의식단표
뻥식이가다가온다
불치병

제4부난혼자가아니야
따봉충
ZONE
유리창

허세많은늑대
혼자가아니야
시작
백일홍
달빛맛집
팝콘
PCR
첫사랑1

출판사 서평

해설
김현서시인은종잡을수없고혼란스러운마음이폭력의형태로표출되는위태로운순간에주목한다.지갑을털고폭력을행사하며연주를괴롭히는민진이,보복이두려워당하기만하다가경찰에민진이를신고한연주,예서가싫지않으면서도같이욕하지않으면따돌림을당할까봐욕을퍼붓는호신이.자신의불안과허기를어찌해야할지몰라악다구니로치닫는아이들은자기안의낯선괴물에당황하여서로에게괴물이되어간다.
-오연경(문학평론가)

출판사책소개
나좀내버려두세요
청소년은미래의주인공으로서무한한가능성을지닌존재이다.청소년들의삶은기성세대의잣대에휘둘리거나사회적관습에억눌려서는안된다.“세상엔답이없는문제도있고정답이라고믿었던게정답이아닐수도있”(「소원풀이」)는만큼자유로운삶을누려야할권리가있다.하지만오늘의청소년들은인생에서가장빛나는시기를정해진틀에갇혀꿈틀거리며따분하게살아간다.기성의질서와규율에억압된세계에던져진청소년들의처지는시인이비유한대로‘도마위에놓인생선’과다를바없다.시인은“떨어져나간자신의살점을바라”보며“마지막남은힘을모아/야들야들팔딱”대면서“나좀내버려두라고몸부림”(「무뚝뚝한규율아저씨」)치는청소년들의간절한몸짓에함께아파하며그저한때의방황으로치부하는그순간의고통에한걸음다가간다.누구나거치는사춘기일뿐,지나고나면별것아닌“한때라고생각하는매순간”을청소년들이“안간힘을다해”(「뿌리의힘」)살아간다는것을보통의어른들은모른다.

등나무야
나를철사처럼친친휘감고올라가서본
하늘엔뭐가보이니?

네가내목을조르며
보라색등꽃을피우는동안

겨드랑이를타고자꾸식은땀이흘러
다리가후들거리고숨이막혀

네가내몸에남겨놓은흉터에는
이제새가날아오지않고
햇빛이들지않아

등나무야
나를움켜쥔
징그러운덩굴손을조금만풀어줄래?

맑고파란바람이느껴지게
흰구름같은꽃을피울수있게
나한테서조금만떨어져줄래?
-「목련나무」전문

폭력은폭력일뿐,장난이아니야
흔히‘질풍노도의시기’로불리는청소년기에는예민한감수성과불안정한정서가단순히“확밟아주고싶은충동”(「저녁이깊어간다」)에그치지않고공격적인행동이나폭력의형태로나타나기도한다.시인은날로심각해지는따돌림,괴롭힘,물리적폭력등의학교폭력에특히주목한다.“기괴한일진놀이에빠져”(「ZONE」)자기가“애들한테당한거분풀이”(「두고보자,이연주」)하듯폭력을휘두르는아이,“보복에대한두려움때문에누구한테도털어놓지못”(「장난이라고」)하고무기력하게당하기만하는아이,잘못인줄알면서도“같이어울려욕을하지않으면/다음욕받이가자기가될까봐”두려워“하고싶지않은데도/습관처럼욕을퍼붓는”(「욕받이」)아이.이들은각각가해자,피해자,동조자로분류될것이나시인은이들을똑같이폭력의희생자로여기며저마다폭력이남긴상처로고통스러워하는청소년들의마음을헤아린다.시인의말대로“폭력은어떤형태로든상처를남긴다.”(시인의말).


사자가가젤을세워놓고으르렁거리는걸
대화라고생각하니?


임팔라를잡아먹은악어의눈물이
반성이라고생각하니?

아,몰라몰라

그럼넌
개구리가뱀을보고웃는게
반가움이라고생각하니?
-「아,몰라몰라」전문

허울만남은안식처
따돌림이나괴롭힘같은학교폭력에시달리는청소년들에게가정은더할나위없는마음의안식처이다.하지만고단한학교생활만큼이나가정환경도가족과의관계도우울하기짝이없다.“집안에들어오면각자자기방으로들어가문을띡잠가버”(「우리가족」)리고아무런교감도나누지않는다.부모님은“바빠서내가담배를피우든염색을하든가출을하든관심없다(「바빠서」).이렇듯서로의무관심속에서가족이라는관계는허울에지나지않는다.게다가아빠의사업이망한뒤“빨간딱지가쏟아내는냉기로집안은살얼음판”(「빨간딱지」)이고,집나간“엄마의삶에서나는뭘까?”(「도랑에빠진바퀴」)생각해보면쓸쓸하고곤혹스럽기만하다.그러나마냥주저앉을수만은없다.답답한현실에서“나를구하러오는사람은아무도없다”는것을알기에외로움과슬픔을참고서“보고싶지않은풍경들”과“나를아프게만드는풍경들”(「라이더알바」)을하나씩지워나가다보면언젠가는“상큼한오월같은”(「풋」)아늑한세상이활짝열릴지도모른다.

밖에서만큰소리치는너구리

밖에서만활짝피는나팔꽃

밖에서만조잘거리는종달새

밖에서만폴짝폴짝뛰어다니는개구리

집안에들어오면각자자기방으로들어가문을띡잠가버린다
-「우리가족」전문

나는정말문제아일까?
시인은청소년들의내면에도사린불안한심리를있는그대로보여준다.“이유도모를화가불쑥불쑥치밀어오”(「화가날때」)르고,문제집을“확찢어버리고싶은충동”(「저녁이깊어간다」)과온갖“잡생각”(「주술관계에밑줄긋기」)과“엿같은기분”(「믹서기」)이속에서들끓는청소년들의감정은도무지갈피를잡기가어렵다.“아무때나바락바락소리치고싶어지는내가싫다”(「내자리」)가도“선생님이문제구나말하니나는또문제아가되는것같다”(「나는정말문제아일까?」)는자괴감에빠지기도한다.심지어는“창가에/오래앉아있으니/내몸에서도/따뜻한햇빛냄새가”(「불안」)나는것이오히려불안하다.세상은그렇게청소년들을무작정‘요주의인물’로만들어버린다.하지만시인은잠시숨을고르고어지러운마음을가라앉히며“불안에맞설돌멩이몇개를주워주머니속에넣어”(「주술관계에밑줄긋기」)두고서내일을꿈꾸며어두운바닥에서스스로를끌어올리는청소년들의‘느리고단단한시간’을믿는다.

마음이팍팍해질때
불안해진내일이
한판붙을태세로깐족깐족다가올때
학교고뭐고다때려치우고싶을때
그냥그럴때도있는거라고말해두자

속에서들끓고있는분노를
하품처럼쏟아내고싶을때
지금의방황에대해
누구의탓도하고싶지않을때
힘없이벽을내리치듯
그냥이라고하자
그냥한번해보자
-「그냥」부분

넌혼자가아니야
청소년들은늘불안에쫓기듯살아간다.종잡을수없이혼란스러운감정은“전지적작가시점이었다가일인칭관찰자시점이었다가일인칭주인공시점으로둔갑”하기도하고,“사지선다형이었다가오지선다형이었다가주관식이었다가”(「주술관계에밑줄긋기」)변덕스러운모습으로뒤죽박죽휘몰아친다.“천개의칼을가진세상에서버텨내려면천개이상의좌절을맛보아야한다”(「좌절의말맛」)는문장을읽을때면자칫“어둠에먹혀버릴지도모”를위태로운시간을“혼자서어둠을밀어내며견뎌야”(「가로등」)하는청소년들의모습이아프게다가온다.그모습을시인은외면하지않고서가만가만속삭인다.“넌혼자가아니야”,시인이이번시집의갈피마다‘숨겨둔말’이바로이것.갈등과고민의“암막커튼을젖히며/눈부신햇살을쏟아내는”(「혼자가아니야」)이다정한위로와격려의말이녹록지않은현실을부대끼며살아가는청소년들에게한줌희망의불빛이되어줄것이다.

암막커튼을젖히며
눈부신햇살을쏟아내는그말!

넌혼자가아니야
선생님의말이입안에서사탕처럼굴러다녀
세상에서가장달콤한사탕!
천개쯤있었으면좋겠어

(중략)

넌혼자가아니야
읊조릴때마다바닥에떨어진
종이쪼가리같은내몸이
나풀나풀날아올라

노랑나비흰나비이리날아오너라
넌혼자가아니야
창문을열고높은담장도폴짝뛰어넘어
창공으로날아올라

넌혼자가아니야
사방이확트인구름해먹에누워흔들흔들

밑도끝도없는배짱이생겨나는그말
나는혼자가아니었어!
-「혼자가아니야」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