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런 말 안 써요 - 창비청소년시선 49

우리 그런 말 안 써요 - 창비청소년시선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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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늘 완성되지 못한 시는 내일 다시”
오늘의 의미와 내일의 기대 사이에서
부지런히 꿈틀대는 지금 여기 청소년들의 담백한 선언
이 시집은 2015년 「현대시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기발한 발상과 탁월한 언어 감각이 어우러진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 온 권창섭 시인의 첫 청소년시집이다. ‘예고생’들의 생활과 ‘시 창작실’ 안의 1년치 풍경을 감각적이면서도 진솔한 언어로 그려 냄으로써, 여전히 불안하고 고단한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내밀한 목소리를 개성 있게 담아내었다.
한때 ‘시인 선생님’으로서 시를 가르치며 청소년들과 함께했던 시인의 경험이 오롯이 담긴 시편들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웃음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웃음을 주고, 슬픔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게 하는”(배수연, 「발문」) 따뜻하고 편안한 시집이다. 고3 첫날, 담임교사 흉내를 내며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드는 친구의 모습을 담은 서시(「3월」)를 시작으로 스무 살을 앞두기까지 청소년의 심경이 학교생활 및 열두 달의 변화에 맞추어 담겼다. 청소년기의 막바지, 성인이 될 때까지 보내야 할 시간의 성질을 직감하고 있으나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앞길을 헤쳐 나가는 청소년의 심리가 섬세히 표현되었다.
청소년들의 생활 감각과 일상 정서를 쉽고 단순한 언어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여 청소년들의 생각과 마음을 철학적 사유까지 끌어올리는 힘이 느껴지는 시집이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청소년시의 가능성을 한 걸음 확장한 이 시집은 ‘창비청소년시선’의 마흔아홉 번째 권이다.
저자

권창섭

저자:권창섭
시쓰는사람들곁에오래있다보니,자신역시시쓰는사람이되었다고말하는시인.2015년부터작품활동을시작하였고,2021년에시집『고양이게스트하우스한국어』를냈다.시쓰는사람들곁에오래있고싶어,시를가르치는사람이되었다.2019년에한예술고등학교에서시수업을시작하였고,2023년에학생들과마지막인사를나누었다.

목차

3월

제1부매일시쓰는사람
진로상담
다신안볼친구만나기
11월
12월
매일시쓰는사람
1월
낭.독.회.
이해더하기오해는친해
2월
다시,3월
모의고사
YesandNo
우리그런말안써요

제2부수업은담에들어도되잖아
4월
퇴고연습
지각왕
우산잔디가거울에보이는것보다가까이있음
5월
6월
ENFPa.k.a.꽃밭
ISTJa.k.a.자갈밭
급식시간
같이투자
손민수금지
7월
아침이밝았습니다고개를들어주세요
꿈틀!
밍밍밍
쎄쎄쎄
너자꾸그러면차단할거야
8월

제3부조금더흩어지는방향으로
개학전날
9반귀신
9월
금정역

쓸모없는선물
죽을사람손잡기
타임캡슐
10월
마니또
어른들의일
814만5060분의1
토요일
일요일
죽은강아지밥주기

제4부스무살되는게넘어려워서
한번더,11월
한번더,12월
맥시멀리스트
한번더,1월
자기소개
파일명:2월29일
한번더,2월

인용출처
발문|배수연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우리그런말안써요”
솔직하게,생생하게,섬세하게포착해낸청소년의모습
이책에는예술고등학교문예창작과에다니는청소년의일년열두달이시간의흐름을따라가며생생하게그려져있다.그래서인지청소년들이“기억의증표”(「5월」)로삼으려고스스로촬영한,그들만의다큐멘터리를보는듯하다.수능을대비한공부를하거나취업을준비하는청소년들과는사뭇다른이들의일상을따라가다보면천연덕스럽고엉뚱하면서도재치넘치는모습에슬며시웃음이나기도하고가슴이뭉클해지기도한다.가끔은이유도없이마음이복잡해지고,공연히“기분이좀그래서”(「지각왕」)우울한감정이찾아오기도하는청소년들의심리를헤아리면서시인은그렇듯“특수한사적경험이발생하면바로시로옮겨야죠”(「아침이밝았습니다고개를들어주세요」)라고말하며아이들의내면안에도사린‘시인의마음’을일깨운다.

시를쓰기시작한이유는

숨기고싶은게많아서가아니라

말을고르는데시간이오래걸리는사람이어서

시를그만두려는이유는

말을고르는데지치고힘들어서가아니라

숨기고싶은게많은사람이되어서

-「자기소개」전문(152쪽)

그러면서도시인은또래들과조금다른꿈을꾸는이들의모습에서우리곁에있는평범한청소년들의모습을찾아낸다.일찍이진로를정했지만자신보다더뛰어난재능을보이는친구에게은근한시샘을보내고(「같이투자」),부모님의성적핀잔에너스레를떨며넘기는(「모의고사」)이들의모습에서등급과점수에일희일비하다가도부모님이나친구들앞에서는짐짓씩씩한척웃으며처신하는여느청소년들의면모를볼수있다.생경한신조어를들먹이며자신들의모습을단정짓는시선을향해“우리/그런말안써요.”라고또렷하게이야기할줄아는(「우리그런말안써요」)보편적인청소년의모습이입체적으로형상화되었다.

독특한표현이주는색다른언어적재미
그리고,그무엇보다먼저알려주고픈시를짓는마음
권창섭시인은전작『고양이게스트하우스한국어』에서그랬듯이시집에서도기발하고개성강한언어감각을유감없이발휘한다.발음이유사한언어의연결과변용,동일한어구의반복과변주등일상의언어를다양한형태로활용하는표현법과치밀하게짜인문장들이단연돋보인다.이를테면“이대가려면”“이대로만쭉가라고”(「진로상담」),“이해더하기오해는친해”(「이해더하기오해는친해」),“다리셋,세개의점,세사람으로”에서“다리Set!세계의점,새사람으로”(「다시,3월」),“사유가부족하다못해삼유”(「꿈틀!」)등에서보듯시인은언어의폭을넓혀새로운의미를끌어내는언어유희의재미를한껏보여준다.

8,가만히두면
눈사람귀여운듯
8,옆으로눕히면
무한대∞끝없이이어지도록
8,가운데사선을그으면
백분율%하나둘셋줄을서는
-「8월」부분(96쪽)

그런가하면시인의시작법과시창작론도엿볼수도있다.물론일정한틀이나규격에얽매이기보다는사고가자유분방한‘예비시인’인청소년들로서는“이렇게쓰면안돼/이런건시가아니야”라는말만듣다보면“예술이뭔지보다/예술이아닌게뭔지를알아가는게/예술에대해알아가는지름길일까”회의가들기도하고,“시가무엇인지알지도못하고/무엇이시가아닌지만알다가”(「꿈틀!」)졸업해버리는건아닌지불안하다.그러다가도시낭독회에서친구가자기이름을한자한자끊어읽는순간,“네가읽은네이름은/내가부르는네이름과다르고/선생님이부르는네이름과도다르고/칠판에적혀있는네이름과도”다르다는것을음미하면서“잠시이곳이/교실이아닌것처럼느껴”(「낭.독.회.」)지는마법같은순간을경험하기도하면서“꽁꽁묶인말들을풀고/꽁꽁언마음들은녹여”(「쎄쎄쎄」)가며시를써나간다.

불편한낱말은
얼른지워버리기
밑줄을치거나색을바꿔
오히려눈에띄게하지않기

지운자리는
오래비워두지않기
괄호로남겨두지않기
새로운낱말로얼른채워넣기

새로운낱말이찾아지지않는대도절대
울지말기
일단한숨푹자고일어나기
기지개를켜기

(중략)

더좋은시로만들려는마음이
더좋은날로만들려는마음과
닿게하기
더욱더닿게하기
-「퇴고연습」부분(55쪽)

짐짓쿨하게미래로나아가려는십대들이
무사히성장하길바라며보내는격려와위로
청소년으로서는마지막시기인고3.“나이를먹은것도안먹은것도아니고”,“고3이된것도안된것도아닌”어정쩡한상황에놓인청소년들은“오래살진않았지만/살만큼살았어”,“오래살진않았지만알수있어/내가그렇다면그런거지”(「2월」)라고짐짓호기롭게말하지만불확실한미래에대한두려움을애써감추려는불안한심리마저감출수는없다.일률적으로“가르쳐주는것보단/가르쳐주지않는것들이더궁금”하지만오로지“학업에충실해야”(「어른들의일」)하고,“들어야할말들을듣다가너무많은말을들어서”정작“내맘속말은하나도”(「한번더,12월」)못듣고만다.“전부다잘될테니걱정말라”는어른들의빤한응원과격려는오히려부담만가중시킬뿐,올해가“내인생가장짧은한해가될거”(「2월」)라면서열두달중가장짧은2월처럼‘인생의열아홉’도후딱왔다후딱지나갈것이라여긴다.

남의일을너무오래생각하면
나의일처럼느껴지듯이

나의일을너무오래내팽개치면
남의일처럼느껴지는데

오래돌아오지않는것들에대해
생각하기로했습니다

돌아오지않는것들에대해오래
생각하기로했습니다

사월이라그런것이라고선생님은
말해주었습니다만

어느달이든이럴수밖에없다고
생각했습니다우린

나의일과남의일이라는것은잘
구분되지않았습니다

남의일을오래내팽개치지말자고
나의일을오래생각하지말자고

다짐했습니다
-「4월」전문(52~53쪽)

이시집은“교실에쏟아진학생들이/교실에쏟아내던말들”을차곡차곡주워담아“뜨거운말들은약간식히고,차가운말들은약간덥혀서/날카로운말들은보다무디게,무딘말들은보다날카롭게갈고닦아서”(시인의말)꾹꾹눌러담은것이다.무엇보다아이들에게“내가있는교실에선‘죽고싶다’라는말과‘뛰어내리고싶다’라는말을절대쏟지말았으면한다는부탁이자명령을한적이있다”라는시인의말이뭉클하다.막막하고혼란스럽기만한청소년기를건너가는이아이들에게시인은“망친일들을오래담아두는것은건강하지못하다고/상처와흉터가꼭성장에도움이되는것은아니라고”(「파일명:2월29일」)다정하게말해준다.시인의바람대로청소년들이이시집을어딘가에서‘주워가기’를,그리하여“오늘완성되지못한시는내일다시”(「매일시쓰는사람」)써나가기를응원한다.

담배한대안피웠다
(스스로를칭찬함)

술은몇모금마셔봄
(부모님허락받고마심)

연애세달해봤고
(해본거같지도않음)

짝사랑도많이함
(몇번은들켰지만)

친구도그냥몇명
(근데친구란것의기준은뭐지?)

공부는그냥적당히했다
(잘한것도못한것도아닌)

시는제법많이썼고
(내가쓴것도시라부를수있다면)

일기는더많이썼다
(찢어버린낱장도많지만)

(중략)

교문밖을나선다
(다시들어올일없는)

눈온다
(그래서별로안춥다)

대학은가지않기로했다
(못간거아니냐해도할말은없다)

올해는그냥

열아홉살하기로했다
(스무살되는게넘어려워서)
-「한번더,2월」부분(156~158쪽)

저자의말

이책은
교실에쏟아진학생들이
교실에쏟아내던말들을생각하며썼다.
그러나그들이쏟은말들을그대로주워담은것은아니다.
뜨거운말들은약간식히고,차가운말들은약간덥혀서
날카로운말은보다무디게,무딘말들은보다날카롭게갈고닦아서
눌러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