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 홀로 먼 길을 가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 홀로 먼 길을 가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13.80
Description
세상의 끝, 삶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고독과 소박함과 가난의 기쁨…
그 십여 년의 진솔한 기록
1996년 함민복 시인은 강화도의 마니산을 찾았다가 그곳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갯벌에 뻗은 수백 갈래의 물길이 바다의 뿌리를 이루고 있었다. 부초처럼 떠돌던 그의 영혼과 육신이 쉬어갈 만한 곳이었다. 이후 시인은 ‘섬사람’으로 살면서 텃밭을 가꾸고 어선을 타고 동네의 잡일을 돕고 글을 쓰고 시를 썼다. 하나라도 더 취하려고 부단히 달려가는 자본주의의 트랙에서 벗어나 느리고 가난하게 살았다.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는 바람결에 떠돌던 씨앗이 흙에 뿌리내리고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 시인이 강화도라는 밭의 양분을 빨아들이며 삶을 더욱 깊이 체험했던 십여 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 매사에 무심해 보이는 섬사람들의 일상은 단순하고 평화롭다. 늘 같은 듯하면서도 서서히 변화하는 자연의 소박한 경이로움은 큰 가르침을 준다. 산과 땅과 바다와 사람에 많은 것을 기대어 살아가는 ‘원시적인’ 삶 속에서 시인은 결핍과 상실과 고독이 축복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삶이란 섬으로 태어나 홀로 먼 길을 가는 것임을, 그 고단함과 외로움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임을 되새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삶의 방향성을 다시 잡아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함민복 시인이 담아낸 진솔한 언어들은 현대 문명이 주는 달콤함과 북적거림에 익숙해 있는 동안 상실했던 ‘나’와 삶의 의미를 다시 만나는 마음의 공간을 터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직접 선별해 심어놓은 아름다운 시편들은 무언가로부터 뒤처지고 있다는 조급함과 분주함에 여유를 선물할 것이다.
저자

함민복

자본과욕망의시대에저만치동떨어져살아가는전업시인.개인의소외와자본주의의폭력성을특유의감성적문체로써내려간시로호평받은그는,인간미와진솔함이살아있는에세이로도널리사랑받고있다.

1962년충북중원군노은면에서태어났다.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졸업하고경북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4년간근무하다서울예전문예창작과에입학했다.그리고2학년때인1988년[세계의문학]에「성선설」등을발표하며등단했다.1990년첫시집『우울氏의一日』을펴냈다.그의시집『우울氏의一日』에서는의사소통부재의현실에서「잡념」의밀폐된공간속에은거하고있는현대인의소외된삶의모습을그려내고있다.1993년발표한『자본주의의약속』에서는자본주의의물결속에소외되어가는개인의모습을통해자본주의의폭력성을이야기하면서도서정성을잃지않고있다.

서울달동네와친구방을전전하며떠돌다96년,우연히놀러왔던마니산이너무좋아보증금없이월세10만원짜리폐가를빌려둥지를틀었다는그는"방두개에거실도있고텃밭도있으니나는중산층"이라고말한다.그는없는게많다.돈도없고,집도없고,아내도없고,자식도없다.그런데도그에게서느껴지는여유와편안함이있다.한기자가"가난에대해열등감을느낀적은없느냐"고물었을때그는부스스한머리칼에구부정한어깨를가진그는부드럽지만단호한어조로이렇게말했다."가난하다는게결국은부족하다는거고,부족하다는건뭔가원한다는건데,난사실원하는게별로없어요.혼자사니까별필요한것도없고.이집도언제비워줘야할지모르지만빈집이수두룩한데뭐.자본주의적삶이란돈만큼확장된다는것을처절하게체험했지만굳이,확장안시켜도된다고생각해요.늘'이만하면됐다'고생각해요."(동아일보허문명기자기사인용)

2005년10년만에네번째시집『말랑말랑한힘』을출간하여제24회'김수영문학상'을수상하였다.이시집은그의강화도생활의온전한시적보고서인셈이다.함민복시인은이제강화도동막리사람들과한통속이다.강화도사람이되어지내는동안함민복의시는욕망으로가득한도시에서이리저리부딪치며살아가는우리에게부드럽고말랑말랑한강화도개펄의힘을전해준다.하지만정작시인은지금도조용히마음의길을닦고있다.

『길들은다일가친척이다』는포털사이트Daum에5개월간연재한글에다틈틈이지면에발표했던글들을묶었다.과거를추억하나그에얽매이지않고,안빈낙도하는듯하나세상을향한따뜻한마음과날선눈초리를잃지않는글들은온라인에서깊은사랑을받았다.

『미안한마음』은산골짝출신인함민복시인이10여년세월강화도갯바람을맞으며강화사람들과함께부대껴살며보고느낀바를표제처럼정말‘미안한마음’으로담은이야기다.장가를갔으면싶은노모의모정을읽을수있는글,때론한잔술을거절하고파스한장척붙이고‘이제안아프다’위안하며쓴글묶음이다.그러하기에함민복시인의문학적모태가되고있는이야기가숨겨져있다.

그밖에시집으로『우울씨의일일』,『자본주의의약속』,『모든경계에는꽃이핀다』,『말랑말랑한힘』,『눈물을자르는눈꺼풀처럼』,동시집『바닷물,에고짜다』,『노래는최선을다해곡선이다』,산문집『눈물은왜짠가』,『미안한마음』,『길들은다일가친척이다』등이있다.오늘의젊은예술가상,김수영문학상,박용래문학상,애지문학상,윤동주문학대상을수상하였다.

목차

저자의말_내마음을떠난마음들그,그리운섬들

하나.바람을만나니파도가높아진다
흔들린다
텃밭
늦가을바닷가마을의하루
달이쓴‘물때달력’벽에걸고
배가웃었다
섬에서보내는편지
입짧은병어속작은밴댕이
밤길

둘.추억을데리고눈이내렸다
스피커가다르다
그샘물줄기는지금도솟고싶을까?
추억속의라디오
뱃멀미
내인생의축구
스테인리스스틸이남박
첫눈

셋.통증도희망이다
긍정적인밥
사람들이내게준희망
고향에돌아가리라

죄와선물
그리운사진한장
어머니의소품
절밥
벚꽃이피면마음도따라핀다

넷.읽던책을접고집을나선다
봄비
봄산책
봄삽화한장
꽃비
고라니
석양주
《자산어보》를읽고
수작거는봄
시계
파스한장

다섯.물컹물컹한말씀
나마자기
술자리에서의충고
정말모로가도서울만가면되는걸까?
폭력냄새나는말들
‘해안선순환도로’라는말을생각하며
먼지의제왕
고욤나무아래서
그냥내버려둬옥수수들이다알아서일어나
팔무리
항아리
내가만난마을혹은도시에관한기록들

출판사 서평

과거와현재의경계를허문시간여행자의아름다운이야기
함민복시인에게는으레‘강화시인’이라는수식어가따른다.그의많은글들이강화도를노래하기때문이다.실제그의삶도강화에뿌리를내리고있다.1996년이래벌써25년째강화도에살면서‘토박이’가되었다.이책은처음강화도에도착하여그곳에뿌리를내렸던십년의기록을담은수필집《미안한마음》(2006)을개정한것이다.여기에새에세이를덧붙이고감성어린사진을게재하는등새로운옷을입혀새롭게출간했다.15년이라는만만치않은시간의간극을넘어여전한감동을선사하는글과차츰변화해가는현대의공간이인간의삶에어떤영향을미치는지를간파한비평이어우러져더욱큰울림으로다가온다.
그의글을통해어렵지않게추측해낼수있는몇가지사실들이있다.궁벽한시골에서유년을보냈고,매우가난했으며,명문이공계고등학교를졸업하고들어간안정되고좋은직장도그를붙잡아둘수없었다는점등이다.서른다섯나이에겨우겨우강화도동막리에터를잡았지만,그의삶은별반달라진것이없었다.섬이곳저곳을해찰거리며돌아다니는시골소년으로살았고,여전히가난했으며,시를써서밥벌이를한다고는하지만사실상‘무직’이었다.
이책에담긴수필은크게두부분으로나뉜다.하나는강화도를배경으로한현재의이야기이고,다른하나는충청도어디쯤으로짐작되는산골마을에서보낸유년기다.그런데이두부분의경계가전혀느껴지지않는다.의도했든의도하지않았든자본주의문명과거리를둔채살았기에유년과성년,과거와현재사이에경계가놓일수없었나보다.아무것에도얽매이지않는그의의식은,그래서시공간을자유자재로넘나드는시간여행자처럼추억과현실을동시에품을수있었을것이다.무엇보다도자신에게주어진것들에서애틋함을발견하고감사할줄아는따뜻한마음이지나온모든길들을아름답게수놓았기때문일것이다.

안개낀바다를표류하는배에게섬은가장든든한이정표였다
동막리에서어설픈어부노릇을하던시인은어느날주꾸미를잡으러배를타고바다로나갔다가안개속에서길을잃고만다.포구가어느쪽이냐는물음에배에탄네사람이각기다른방향을가리켰다.시인은짙은해무에둘러싸여두려움에사로잡히면서도이런생각을한다.‘내삶을좀앞선시간에서뒤돌아보면결국안개에갇혀있는것과같지않을까.’
길을잃은바다에서섬은든든한이정표역할을해준다.그에게도그런섬들이있었다.어머니가그랬고,오래전에잊어먹은자신을기억해주는친구가그랬고,마당의고욤나무가그랬고,때되면창문으로스며드는꽃향기가그랬고,시인을‘동네사람’으로받아들인섬사람들이그랬다.그가‘강화도의시인’이될수있었던것도바다에뿌리내린섬들이물길을내어주듯세상이라는망망대해의‘섬’이되어준사람들이있었기때문이다.인가가드문드문한섬마을의외로움을견디게한것은저멀리불빛아래에나의섬이있기때문이었고,시인또한누군가의섬으로존재할수있기때문이었다.
《섬이쓰고바다가그려주다》는사람이자연만큼아름다울수있다는희망을전한다.비록가난하고외롭고내일이보이지않을지라도‘나’는한여름더위보다뜨거운체온을가진,누군가에게온기를전할수있는존재임을이야기한다.때때로비루하게여겨지는우리의삶속에숨겨진숭고함을말한다.시인이강화도에서지내는동안‘섬이쓰고바다가그려준’아름다운동화의주인공은바로우리자신이다.

인간역시살아가는터전과환경의영향을받는하나의생물일뿐
새책작업에앞서시인은책에포함되기를바라며새원고를보내왔다.<입짧은병어속작은밴댕이>,<스테인리스스틸이남박>,<벚꽃이피면마음도따라핀다>,<시계>,<내가만난마을혹은도시에관한기록>등이다.시인은원전(原典)에서과거,현재를관통하는인간과자연의아름다운모습을그리면서도시대의변화에따라삶의원시성이차츰훼손되는양상을불안한시선으로바라보았다.개발의여파로자연의흐름이막히고그에따라삶의모습이변화하는현상이점점두터워지는현실을두려워했다.
이번에새롭게덧붙여진장문의에세이<내가만난마을혹은도시에관한기록>은1960년대부터2010년대를거치면서시인이머물렀던공간에대한소회를밝히고있다.공간의변화가우리의의식을어떻게바꾸어놓았고,그속에서차츰희미해지는것이무엇인지를시적감수성가득한비평으로아프게보여준다.말랑말랑한흙을고체화된아스팔트와시멘트가뒤덮고구불구불한골목이사라지고수직의벽들이솟아오르는가운데물컹물컹하던우리의감성역시점점딱딱해져가는세태를고발한다.
하지만여기에서도시인은희망을발견한다.문명의이기가반드시인간의삶을파편화시키는악한도구로활용되지만은않을것이고,‘중심’이사라진질서속에서우리개개인이모두중심이될것이며,각자가아름다운섬으로세상이라는바다위에서조화를이룰것이란희망이다.우리의선한마음이실재하는현상의공간에영향을끼쳐‘아름다운마을’을건설하리라는저자의바람은우리각자에내재해있는선함과아름다움이공명하기를바라는모두의바람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