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 정호승 우화소설 (양장)

산산조각 : 정호승 우화소설 (양장)

$16.00
Description
“더 아름답게 피어나라고 지금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란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정호승의 문학세계가 낳은 걸작
날카로운 성찰과 시적 감성, 동화적 상상력이 빚은 맑고 아름다운 이야기
1972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호승 시인이 올해(2022년)로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시인의 문학 여정에 있어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이 해에 신작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을 펴냈다. 『산산조각』은 시에 천착하는 중에도 동시와 동화, 에세이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간 시인의 이력과 문학관이 집대성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의 압축된 묘사 이면에 숨겨진 서사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재탄생시키고 ‘우화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아, 보다 친근한 이야기로 인간의 삶이 지닌 깊은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우화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을 때 시가 소설로 재탄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연과 사물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우화소설의 그릇에 담을 때 보다 자유스러운 창작의 상상력과 구성력이 주어졌다.
_「작가의 말」에서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주인공은 망자(亡者)가 입는 수의, 못생긴 불상, 참나무, 걸레, 숫돌, 오래된 해우소(절간의 화장실)의 받침돌 등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연으로 나서기 힘든 하찮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태생이 그랬듯 보잘것없는 생을 살아간다. ‘나는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스스로도 왜 자신이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이 의문과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야말로 이 책에 담은 17편의 작품이 한결같이 붙들고 있는 화두다. 그리고 각 작품들의 말미에 이르러 찾아오는 깨달음과 감동은 날선 칼날처럼 가슴을 할퀸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듯, ‘나’ 역시 분명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서 이 세상에 왔으며 존재하고 있기에 살아가야 할 이유 또한 명백한 것이다.
갖가지 현실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과,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는 청춘들에게 『산산조각』은 지금의 나 자신과 내가 머물러 있는 삶을 보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선물한다. 그렇게 발견한 내 존재의 가치를 향한 깨달음은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크나큰 힘이 될 것이다.
저자

정호승

1950년경남하동에서태어나대구에서성장했다.경희대국문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1972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동시「석굴암을오르는영희」가,1973년대한일보신춘문예에시「첨성대」가,1982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위령제」가당선돼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반시(反詩)’동인으로활동했다.시집으로『슬픔이기쁨에게』,『서울의예수』,『새벽편지』,『별들은따뜻하다』,『사랑하다가...

목차

작가의말_내존재의가치를찾아서

어떤수의
룸비니부처님
참나무이야기
플라타너스
바람과새
걸레
숫돌
첨성대
아라연꽃
한알의밀
추기경의손
선암사해우소
진실
네모난수박
흰이마기러기
낙산사동종
하동송림장승

해설_순명과자유의인생론/홍용희

출판사 서평

“삶은내존재의가치와의미를찾아떠나는여행”
현실의도화지위에그린우화의세계

석가모니가태어난고향이라는전설이전해지는네팔룸비니의한조각가에의해부처의고행을모티브로한조각상이만들어진다.이작은기념품불상은순례객들의눈길을끌지못하다가한국인중년남성에의해한국으로향한다.중년남성은조그만부처조각상을책상에올려놓고심란할때마다말을걸고또조각상의말에귀를기울인다.안타깝게도남자의삶은평탄하지않다.이미오랜시간고통을겪었건만또다른고통이이어진다.삶이망가질대로망가져버린남자의절망앞에서부처조각상이말한다.“산산조각이나면산산조각을얻은것이고,산산조각이나면산산조각으로살아가면”된다고.도저히어찌해볼수없을만큼나락으로떨어진상황에서도삶은무한한가치를지닌다는가르침이다.한낱기념품에불과했던불상이남자와교유하고그를진심으로염려하면서진짜‘룸비니부처님’으로거듭났다.
누구나한번쯤은미미한사물에자신의행운을걸어본경험이있을것이다.그런행위를굳이미신이라고깎아내리지는말자.힘든시기와중요한순간에어떤물건이나동식물에기대고픈심정은태곳적부터이어진인간의본성아니던가.
정호승시인의신작우화소설집『산산조각』에등장하는화자와주인공은동식물과사물이다.어느것하나인간을대변할수없을것같은미물이지만,그것들은엄연히이세상에실재하고,심지어우리의일상깊숙이들어와있다.마음이울적한날방구석의구겨진걸레를보면서나의신세를투영해본적있지않은가.정호승시인은우리가쉽게접할수있는미미한존재들이현재의그모습에이른궤적을추적함으로써실재하는현실위에우화의세계를짓는다.그리고그들이지나왔을법한시간과경험,깨달음을통해인간의삶이지닌속성의깊은곳을들여다본다.그다지눈여겨보지않았고관심도두지않았던존재들이지나온만만치않은여정은분명문학적장치가만들어낸허구이지만,일상의사건과화법으로세심하게직조한덕분에나의이야기로읽힌다.지금그자리에있는것들이삶을대하는태도와자세에서의연함을배운다.

“시와소설을함께품은이야기”
우화소설에담은깨달음의서사

정호승시인은일찍이『항아리』,『연인』등의‘어른이읽는동화’를펴냈다.시의특징인압축된언어와회화성에가려진서사를소설적형태로구현하고자한실험과노력의결과물이었다.그러나동심에바탕을두는‘동화’는삶의의미를보다다양하게확산하고천착하는데일정한한계를지닐수밖에없었다.‘소설’의형식을빌릴수도있겠지만,오랜세월시를업으로삼아온시인으로서는선뜻엄두가나지않는작업이었다.

우화는창작의범위가넓고자유스럽다.그어떤소재나주제에도구속되지않는다.인격화한동식물이나사물을주인공으로등장시켜인간의다양한삶을드러내는문학적장르로서부족함이없다.
_「작가의말」에서

시에함축된서사를‘이야기’로옮기고자한시인의고민과노력은이번에펴낸신작우화소설집『산산조각』으로결실을맺었다.짐작하건대,시인이택한‘우화소설’은시와소설사이의어느지점에서건져올린형식이자수단이아닐까.물론‘우화소설’이라는장르가전인미답의영역은아니다.다만『산산조각』에부여한‘우화소설’이라는장르는시를이야기로형상화하고자한정호승시인이고심하여찾아낸연결고리이기에그의미가새롭다.

“인생을완성하기위해선삶의여정을완주해야해”
삶이무엇이냐고묻는이에게건네주어야할책

살아가는일이란원래이렇게힘든것인가,고통과고난은평생우리를따라다니는가,라는의문이점점깊어지는때다.힘든시간을위로하는수많은말들이떠돌지만그어느것도쉽게와닿지않는다.삶의속성이란매우복잡하고가변적이어서정석이없고답도없다.그래도우리가그나마위안으로삼을만한것이있다면힘겨운과정과단계를지나온누군가의의연한삶일것이다.
「숫돌」의칼갈이‘숫돌’은아버지에게서아들에게대물림되었다.평생쇠를이겨내고칼날을날카롭게벼려왔다는자부심을갖고살아왔다.하지만어느날군데군데패고홀쭉해진자신의몸을발견하고더이상칼갈기를거부한다.「걸레」의‘걸레’는주인남자의팬티였다가해어져서걸레로전락했다.청결하지못한남자의앞뒤를가릴때도불만이었지만,걸레가되고난뒤에는더더욱서러운시간이이어진다.하지만숫돌과걸레는긴세월을견딘벼루와행주의전언에마음을고쳐먹는다.그전언이란‘스스로의가치를발견하고주어진소임을다하는것이곧생을완성하는길’이라는것이다.
「참나무이야기」의참나무와「선암사해우소」의바윗돌은어떤가?참나무는대웅전의대들보나목불(木佛)이되겠다는꿈을키웠다.바윗돌은차밭의싱그러운환경속에서안락하게지냈다.하지만둘은전혀뜻하지않은처지에처한다.참나무는장작이되고,바윗돌은더러운변소의기둥을받치는신세가된다.꿈꾸던미래와안락함을빼앗긴둘은낙담하지않을수없다.하지만그들은묵묵히견디는가운데삶의더욱높은경지에다다른다.자신의본분을다함으로써완전함에이르고자하는이의삶에어찌행복과평화가깃들지않겠는가.
스스로의운명을선택할수없는미물들에게서무엇을얻을수있냐고?생각해보면,그것들은우리의현실을구성하는선명한실체들이다.길가의가로수와건물의주춧돌과주방의행주와방을훔치는걸레와때가되면하늘을가로지르는철새들은제각각의시간에충실하며이세상을떠받치고있다.『산산조각』의주인공들은어느것하나세속의성공과영화를누리지못하지만,그래도기어이삶을살아내어다음에찾아올것을기다리겠다는단단한생의의지를내보인다.수많은과정을거쳐거기그모습으로있는의연한존재앞에서어찌비장함을느끼지않을수있겠는가.
세상의많은것들이인간의욕망을자극하는방향으로작동하고있다.자극된욕망은만족을멀리하게만들고그에따라행복역시점점멀어진다.『산산조각』의작품들속에등장하는화자들은나의존재가치를깨닫고주어진역할에순명하는자세가어떻게우리의삶을고양시키고행복과평화에이르게하는지자신의삶을통해말해준다.『산산조각』이‘우화’라는틀을넘어심오한구도의길로우리를인도하는이유다.
삶이무엇인지,왜고난을견디고살아야하는지이유를알고싶다면,이책을펼치라.당신이이세상에올때부터본래갖고있었던신성함을일깨우는시간을맞이할것이다.


책속에서

나는실은주머니가달린수의다.이세상에주머니가없는옷은없다.그렇지만수의에는주머니가없다.망자의옷이기에무엇을넣고갈주머니가필요하지않다.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빈손으로왔다가빈손으로가는게인생이기때문이다.
_「어떤수의」,11쪽

그러나나의주인김씨는달랐다.수의에주머니가필요없다는사실을인정하지않았다.그는어느날‘주머니달린수의를만들어드립니다’라는광고를하기시작했다.처음에는전시장도로쪽벽면에현수막을걸어놓거나전단지를만들어길거리에서직접나누어주기도하다가나중에는아예신문광고를내기도했다.
_「어떤수의」,12쪽

“그런데어르신,사랑은아낌없이주고가는게아닌가요?왜가져가시려고하시는지요?”
“아,그건,내가준사랑이아니라,내가받은사랑을가져가려는거야.사람은태어날때도사랑에의해서태어나지만,죽을때도가족들의사랑을받으면서죽어.그래서그사랑을내가가져가고싶은거야.특히나는내아내의사랑을가져가고싶어.그사람이나를사랑해주지않았다면내인생은빈껍데기에불과해.아내의사랑때문에그래도내가인간답게살았어.그런귀한사랑을어찌두고갈수있겠나.수의에주머니라도달아서거기에가득넣어가야지않겠나.”
_「어떤수의」,21쪽

“힘을내도소용없어요.하루하루산산조각이날뿐이에요.”
“허허…….산산조각이나면산산조각을얻은것이고,산산조각이나면산산조각으로살아가면되지무슨걱정이그리많은가.”
_「룸비니부처님」,46-47쪽

때때로나는부처님의고행상형상을한단순한모조품이아니라고행끝에진짜부처님이된느낌이들때가있다.그럴때마다비록순례기념품이지만룸비니에서부처님의형상으로태어났다는사실에대해깊이감사하지않을수없다.
_「룸비니부처님」,50쪽

다시태어난다는것은‘나무에게는죽음이없다’는사실을의미하는것이었다.어떠한고통을겪는다할지라도육체의형태만여러가지로달라질뿐나무라는영혼은죽지않는다는것이다.
그날그는벌목되는어른참나무의말씀을통해더욱큰꿈을갖게되었다.
_「참나무이야기」,56-57쪽

‘이제참회해야해.나는새들이날아와앉는걸늘싫어했어.새들은내가좋아서,좀편히쉬고싶어서찾아온건데새똥이내몸에떨어진다고새들을늘쫓아버렸어.여름에매미가내몸에붙어시끄럽게울어대는것도정말싫어했어.지금생각해보니다내잘못이야.나는목불이될꿈을꾸면서오만하기짝이없었어.겸손함을몰랐어.큰스님께서는늘자기를바로보라고말씀하셨는데,나는나를들여다본적이없어.목불이되고자했던것도,산사의대웅전대들보가되고자했던것도다나를바로보지못했기때문에그런헛된꿈을꾼거야.내가나를속인거야.’
_「참나무이야기」,66-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