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기재 박동량 임진일록
이 책은 기재(寄齋) 박동량(朴東亮, 1569~1635)이 임진왜란 발발 당시 검열이었다가 6월에 병조 좌랑이 되고 7월에 이조 좌랑이 되어 의주까지 왕을 호종하며 보고 듣고 겪은 바를 기록한 〈임진일록(壬辰日錄)〉을 번역한 것이다.
일록은 1592년 4월 13일부터 5월 29일까지 〈임진일록 1〉, 6월 1일부터 24일까지 〈임진일록 2〉로 나뉘어 일기 형태로 쓰였다. 그러나 5월에는 15일, 18일, 21일부터 26일까지, 28일 등이 빠지고, 6월에는 3일부터 5일까지, 22일, 25일부터 29일까지가 빠진 채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7월부터 8월까지 〈임진일록 3〉, 9월부터 12월까지 〈임진일록 4〉로 나뉘어 서술되어 있으나, 일기 형태가 아니라 기사별로 쓰여진 월록(月錄) 형태이다. 〈임진일록 4〉의 12월 일부에는 22일, 24일, 26일, 30일의 일록 형태가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
이 문헌은 이른바 호종실기라 하는 것인데, 왕을 호종하며 조정에 올려지는 각종 전황 보고와 그 보고에 대한 조정의 의론, 청병(請兵)에 관한 조정의 입장 등을 쓴 것으로 글쓴이의 의견이나 느낌은 거의 배제하고 서술한다. 하지만 〈임진일록〉에서는 임진왜란에 대응하는 조정의 모습과 관료들의 행적 등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글쓴이의 견해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재 박동량의 〈임진일록〉은 임진왜란 발생 초기 정국의 이해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임사관으로서의 기록으로 인하여 전쟁의 현장성이 크게 담보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또한 박동량의 시선에 의한 당대 관료들에 대한 포폄의식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일록은 1592년 4월 13일부터 5월 29일까지 〈임진일록 1〉, 6월 1일부터 24일까지 〈임진일록 2〉로 나뉘어 일기 형태로 쓰였다. 그러나 5월에는 15일, 18일, 21일부터 26일까지, 28일 등이 빠지고, 6월에는 3일부터 5일까지, 22일, 25일부터 29일까지가 빠진 채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7월부터 8월까지 〈임진일록 3〉, 9월부터 12월까지 〈임진일록 4〉로 나뉘어 서술되어 있으나, 일기 형태가 아니라 기사별로 쓰여진 월록(月錄) 형태이다. 〈임진일록 4〉의 12월 일부에는 22일, 24일, 26일, 30일의 일록 형태가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
이 문헌은 이른바 호종실기라 하는 것인데, 왕을 호종하며 조정에 올려지는 각종 전황 보고와 그 보고에 대한 조정의 의론, 청병(請兵)에 관한 조정의 입장 등을 쓴 것으로 글쓴이의 의견이나 느낌은 거의 배제하고 서술한다. 하지만 〈임진일록〉에서는 임진왜란에 대응하는 조정의 모습과 관료들의 행적 등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글쓴이의 견해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재 박동량의 〈임진일록〉은 임진왜란 발생 초기 정국의 이해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임사관으로서의 기록으로 인하여 전쟁의 현장성이 크게 담보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또한 박동량의 시선에 의한 당대 관료들에 대한 포폄의식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기재 박동량 임진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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