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순천향대학교 아산학연구소는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통해 아산의 정체성과 정신적 유산을 재조명하고자 기획한 「아산인물총서」의 네 번째 결실로 『잠야 박지계의 삶과 도학사상』을 발간했다.
이번에 출간된 저서는 아산 인산서원의 배향 인물이자 조선 중기 지성사의 한 축을 형성한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 1573~1635) 선생의 삶과 학문 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연구 성과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정묘호란 등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박지계 선생은 관념적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실천적 도학을 일관되게 추구한 산림(山林) 학자로 평가된다.
박지계 선생은 일찍이 서울을 떠나 아산 신창과 남양 일대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당시 성리학적 기반이 두텁지 않았던 아산과 내포 지역은 선생의 강학 활동을 계기로 다수의 문인과 제자를 배출하며 유학적 학문 풍토가 정착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본서는 이러한 지역적 맥락 속에서 선생이 이룩한 학문적 성취와 그 정신적 유산이 오늘날 갖는 의미를 성찰하고자 한다.
책에 수록된 연구들은 박지계 선생의 학문이 주자학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이를 교조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구시(求是)’의 정신에 입각해 전개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선생은 율곡 학파나 퇴계 학파의 이론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격물(格物)과 인심·도심(人心道心)을 둘러싼 논의에서 독자적인 견해를 제시하였다. 특히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엄격히 구분하면서도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주재적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도덕적 실천의 주체성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사색과 궁구를 중시하는 격물치지의 공부론을 통해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로 나아가는 실천적 학문 체계를 정립하였다.
아울러 본서는 박지계 선생이 일관되게 견지한 ‘본실(本實)’의 정신에도 주목한다. 인조의 생부 정원군 추숭을 둘러싼 논쟁에서 선생은 당시 사림의 주류 의견에 맞서며 비판을 감수했으나, 이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이름은 반드시 실제에 근거해야 한다’는 신념과 왕실의 예법 또한 인간 보편의 천륜인 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확고한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본서는 현실에 뿌리를 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박지계 선생의 진면목을 재조명한다.
이와 함께 선생 사후 130여 년이 지나 문집이 간행되기까지의 과정과, 척연과 학연으로 결속된 ‘잠야문파’의 형성과 계승 양상도 면밀히 분석한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화담학의 학풍까지 수렴하며 독자적인 학문 공동체를 형성했던 잠야문파의 사례는 조선 지성사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 성과로 평가된다.
이번에 출간된 저서는 아산 인산서원의 배향 인물이자 조선 중기 지성사의 한 축을 형성한 잠야(潛冶) 박지계(朴知誡, 1573~1635) 선생의 삶과 학문 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연구 성과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정묘호란 등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박지계 선생은 관념적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실천적 도학을 일관되게 추구한 산림(山林) 학자로 평가된다.
박지계 선생은 일찍이 서울을 떠나 아산 신창과 남양 일대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당시 성리학적 기반이 두텁지 않았던 아산과 내포 지역은 선생의 강학 활동을 계기로 다수의 문인과 제자를 배출하며 유학적 학문 풍토가 정착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본서는 이러한 지역적 맥락 속에서 선생이 이룩한 학문적 성취와 그 정신적 유산이 오늘날 갖는 의미를 성찰하고자 한다.
책에 수록된 연구들은 박지계 선생의 학문이 주자학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이를 교조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구시(求是)’의 정신에 입각해 전개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선생은 율곡 학파나 퇴계 학파의 이론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격물(格物)과 인심·도심(人心道心)을 둘러싼 논의에서 독자적인 견해를 제시하였다. 특히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엄격히 구분하면서도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주재적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도덕적 실천의 주체성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사색과 궁구를 중시하는 격물치지의 공부론을 통해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로 나아가는 실천적 학문 체계를 정립하였다.
아울러 본서는 박지계 선생이 일관되게 견지한 ‘본실(本實)’의 정신에도 주목한다. 인조의 생부 정원군 추숭을 둘러싼 논쟁에서 선생은 당시 사림의 주류 의견에 맞서며 비판을 감수했으나, 이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이름은 반드시 실제에 근거해야 한다’는 신념과 왕실의 예법 또한 인간 보편의 천륜인 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확고한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본서는 현실에 뿌리를 둔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박지계 선생의 진면목을 재조명한다.
이와 함께 선생 사후 130여 년이 지나 문집이 간행되기까지의 과정과, 척연과 학연으로 결속된 ‘잠야문파’의 형성과 계승 양상도 면밀히 분석한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화담학의 학풍까지 수렴하며 독자적인 학문 공동체를 형성했던 잠야문파의 사례는 조선 지성사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 성과로 평가된다.
잠야 박지계의 삶과 도학사상
$2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