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싱어송라이터 (반양장)

조선의 싱어송라이터 (반양장)

$19.80
Description
고전시가가 없었다면 케이팝도 없다
우리 기억 속 고전시가는 영 낯설고 불편한 존재였다. 한자와 옛한글로 쓰인 텍스트는 아무리 읽고 되뇌어도 도무지 해석되지 않았다. 여기에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난맥상까지 곁들어지면 그야말로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 저자는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인다. 고전시가는 원래 시(詩)와 가(歌)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노래였다는 얘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향가, 고려가요, 한시, 시조, 판소리 같은 고전시가는 모두 노래였다. 그런데 근대의 지식 체계는 문학과 음악을 강제로 분리했고, 그 덕분에 고전시가는 음률을 잃어버렸다. 우리 기억 속 고전시가가 그처럼 어려웠던 이유는 악보를 잃어버린 반쪽짜리 노랫말에 밑줄을 쳐가며 분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를 생각해보자. 노랫말은 그저 리듬을 따라 흥얼거리면 그만이다. 그 누구도 노랫말을 이해하거나 외우기 위해 악보를 없애고 텍스트만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고전시가가 따분하고 고루하다는 생각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편견이다. 우리는 고전시가의 진면목, 완전체 모습을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보를 잃어버린 고전시가와 우리 사이에 놓인 간극은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걸까? 웬걸, 저자는 이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고전시가는 이미 오늘날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시가에 내재한 정서와 미학은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오늘날 대중문화로 찬란하게 꽃을 피워 올린다. 문화의 연속성, 유전자-문화 공진화성(Gene-Culture Coevolution)은 고전시가와 대중가요를 둘러싼 담론에서도 이견의 여지 없이 유효하다. 저자는 고전시가가 없었다면 케이팝도 없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우리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고전시가를 깨워 함께 즐기면 될 일이다.
저자는 잃어버린 악보를 대체할 방편으로 스토리텔링에 주목한다. 어차피 수백 년 전 사람들의 내밀한 일상과 속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는 허풍선이나 거짓말쟁이가 되어도 좋다. 작품의 의도를 거스르거나 공인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온갖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잠시, 저자가 꾸며 놓은 유쾌하고 발칙한 고전시가 세계관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저자

이미경

다섯살,삼촌네만화방에서글을깨쳤다.1969년겨울,폐업직전만화방한구석에서시작된문자와의인연은오늘까지단하루도끊이지않았다.38년간‘노래를읽고,시를부른다’는파격적인방식으로학생들의고전시가‘멀미증’을치유하는강사로일해왔다.가톨릭대학교교육대학원독서교육석사과정을마쳤으며,같은대학원에서리터러시분야박사과정중이다.

목차

작가의말/006

1부사랑과이별과그리움을노래하다
떠나가는남자,이별하는여자/012
_작자미상〈서경별곡〉·심수봉〈남자는배여자는항구〉
별리와그리움의시학/028
_정지상〈송인〉·김민기〈친구〉
보통의사랑과보통의이별/046
_김명원〈별리〉·윤종신〈좋니〉
그대에게내마음을고이띄워보냅니다/062
_홍랑〈묏버들가려꺾어〉·아이유〈밤편지〉
탑그림자드리운봄밤의연극무대/082
_김부용〈부용상사곡〉·김윤아〈야상곡〉
떠나간아내가사무치게그리운시간/106
_김정희〈도망시〉·임재범〈내가견뎌온날들〉
고독에도품격이있다/124
_작자미상〈노처녀가〉·최성수〈위스키온더록〉
소리에그리움을얹다/136
_이화중선〈추월만정〉·나훈아〈홍시〉

2부메마른땅에노래가단비처럼내리면
자기안의생동력으로관습을거스르다/152
_황진이〈동짓달기나긴밤을〉·이효리〈미스코리아〉
이루어질수없는사랑을어찌할까/170
_정철〈사미인곡〉·안예은〈상사화〉
비루하고궁상맞은일상에물들때/190
_박인로〈누항사〉·장기하와얼굴들〈싸구려커피〉
내작품의제단에나를바치다/204
_허난설헌〈곡자〉·김광석〈일어나〉
얼음이얼었다,봄은언제쯤/220
_김창협〈착빙행〉·한강〈12월이야기〉
서민문화의예인,대중문화의딴따라/236
_이정보〈임으란회양금성〉·박진영〈날떠나지마〉
흔들리는게어디버들뿐이랴/256
_작자미상〈천안삼거리〉·인순이〈실버들〉
광대와영웅이건네는위로/274
_신재효〈광대가〉·임영웅〈모래알갱이〉

참고자료/295

출판사 서평

고전시가와현대대중가요의매혹적인앙상블
고려가요〈서경별곡〉속여성화자는최선을다해사내를붙들고,기어이떠나는사내와사공을향해“네아내가바람난지몰라서(…)떠나는배에얹었느냐사공아”하며악담을퍼붓는다.저자는이여성화자를우리가배워온전통적여성상,즉운명앞에순응하고체념하는여성의모습과다르다고해석한다.나아가전문직여성화자는이별앞에깊이슬퍼하다가결국에다시일상을살아내고새로운사랑을찾을거라고장담한다.떠나는남자를객관화하며이별의주체로나서는여성상은심수봉의〈남자는배여자는항구〉에서되살아난다.사랑하는사람이라면누구나이별앞에서처연하고비루해진다.하지만그녀는슬픔을딛고일어나이별의주체로나선다.“눈앞의바다를핑계로”이별하려는남자에게,여자는“뱃고동소리도울리지”말라고냉정하게경고한다.은유적인표현을벗겨내고보면,떠날거면구구절절변명하지말고닥치라는뜻이다.심수봉식냉소속에는체념이아닌각성이있다.현실을직시하지만,그에굴복하지않는다.
신윤복의〈월하정인〉에쓰여있는표제시의두번째행“兩人心事兩人知(양인심사양인지,두사람마음은두사람만알지)”는조선중기문신김명원의칠언절구한시〈별리〉의한구절과일치한다.신윤복은왜김명원의시구를자신의그림에써넣었을까?저자에따르면,신윤복은인간은사랑의감정앞에솔직해져야하며,이를숨기거나억압할수없다고믿었다.이때문에신윤복의그림에는성적욕망에대한관음증적시선과남녀간의사랑을노골적으로묘사한장면이자주등장한다.이화풍의정점에선작품이〈월하정인〉이다.신윤복이보기에양반들은도덕과체면을앞세우며사람들의행위와감정까지구속하려했다.그러면서정작자기네들은뒤에서기생들과노닥거렸다.신윤복은그런양반들을신랄하게풍자한다.하지만김명인은〈별리〉에서양반으로서는드물게사랑의감정을솔직하게내보였다.양반이라는외피를벗고보통의인간으로서자기자신을드러낸것이다.신윤복은그〈별리〉를자기그림에넣음으로써우리네보통의정서가얼마나소중하고위대한지를상징적으로보여준것이다.
김명원캐릭터는현대대중가요의윤종신과겹친다.윤종신은슬픔의정서가희석되지않는선에서자질구레한일상의소회를늘어놓으며,그게우리네현실속이별이야기라고말한다.더불어윤종신은오늘날남성일반의평균치에수렴하는민낯을적나라하게보여준다.이별앞에서고상한척덤덤한척폼잡지않고,오히려질척대고휘청거린다.그게밉지않은이유는우리자화상이기때문이다.사랑과이별앞에선보통사람들의속내를이토록적나라하게들여다볼기회는흔치않다.
조선중후기문신이정보는고위관료를두루거친사대부다.그런데이지체높은양반이“밋붓터끗까지죠굠도뷘틈업시,찬찬굽의나게휘휘감겨주야장상듸트러져감겨잇셔”하며남녀가사랑을나누는행위를연상케하는사설시조를천연덕스럽게읊는다.사설시조는조선후기사회변화에맞물려발화한서민문화의한갈래다.이정보는고리타분한양반문화에서벗어나스스로조선후기르네상스의마중물이된다.저자는이정보가눈부시게탈피한이유를그이안에잠자고있던예인기질에서찾는다.예인을오늘날대중문화언어로바꾸자면‘딴따라’이다.딴따라하면박진영을빼놓을수없다.박진영은저속하고퇴폐적이라는이유로금기시되던농밀한사랑의언어를노래와춤으로스스럼없이보여준다.박진영은예술을고상하게포장하여극소수사람들만향유하던시대가저물고,더많은사람이자유롭게생산자이자소비자로서활약하는대중문화의시대가열렸음을알린신호탄이다.이정보와박진영은우리에게묻는다.“당신은지금,얼마나자유롭게노래하고있는가.”
이밖에도《조선의싱어송라이터》에서홍랑이꺾어보낸묏버들은아이유가띄워보낸반딧불로되살아나고,황진이의당당한에로티시즘은이효리가그계보를이어받고,달팽이집처럼자그마한초가집에서사는〈누항사〉의몰락양반은발바닥이쩍쩍달라붙는비닐장판깔린좁은방에사는〈싸구려커피〉의백수청년으로환생하고,판소리를예술적차원으로끌어올린신재효와트로트를대중가요의주요장르로끌어올린임영웅은시대를뛰어넘은광대이자영웅으로등극한다.

고전시가의르네상스를꿈꾸다
저자는적지않은분량의이책곳곳에서쉴새없이이야기보따리를풀어놓는다.폭죽처럼터지는상상력은때로는난데없고어지럽게보이지만,사실매우일관된하나의목적성을지닌다.바로고전시가에대한기존해석의틀을비틀고전복하기이다.예컨대정지상의한시〈송인〉의진짜주인공은비운의도시서경이고,김민기는고등학생때지은〈친구〉가사회상과맞물려공명하기를바라며앨범《김민기》에의도적으로삽입했고,김부용은18년이라는오랜세월을스스로꾸민무대에올라메소드연기를펼쳤고,민요〈천안삼거리〉는원형부재를본질적인특징으로장착한작품이고,인순이는안티오리지널리티전사로거듭난다.
이러한글쓰기전략은저자가입시학원에서고전문학강사로지내면서느낀문제의식에서비롯되었다.앞서확인했듯이,오늘날고전시가는반쪽으로나뉘고박제되어박물관에진열되었다.치열한대학입시교육현장에서는박제된유물의해설서를들이밀며한자도빠짐없이외우라고강요한다.고전시가를가르칠수록고전시가의진면목과멀어지는아이러니한상황에서저자는고전시가의르네상스를간절히꿈꿨을것이다.저자가이책곳곳에서보여준파격적상상력이그고민의결과물이다.저자는수백수천년시공간을오가며고전시가와현대의대중가요를해체하고재구성하고접붙인다.놀랍게도저자의스토리텔링을거친고전시가는본디모습이훼손되지않으며오히려무척이나풍성하고다채롭고사랑스럽게변모한다.케이팝의생동력과확장성이어디에서시작되었는지확연하게드러나는순간이다.
한편,저자는존중할만한기존해석의틀은받아들이되,고전시가를다룬기존책에서사용하던고색창연한표현법을따르지않는다.그대신교육현장에서갈고닦은생생한언어로대체한다.덕분에이책은후천적고전문학기피증후군에시달리는일반인과학생들을위한치유서로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