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호사카 유지, 조명하를 기억하며 기록하다
일본 황족, 구니요시를 척살한 24세 조선 청년, 조명하 의사
일본 황족, 구니요시를 척살한 24세 조선 청년, 조명하 의사
“나는 삼한(三韓)의 원수를 갚았노라. 아무 할 말은 없다.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하리라.”
조명하 의사는 1928년 5월 14일, 24세라는 젊은 나이로 타이완 타이중에서 당시의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자 육군대장이며 일본 왕족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를 처단했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는, 이봉창이 1932년 1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투척하는 의거로 이어졌고,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에서 열린 히로히토의 생일 축하행사에서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이어졌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중국국민당 장제스가 김구 선생이 이끈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동맹국으로 인정해 이후 임정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장제스가 참여한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미·영·중의 합의사항이 되어 일제 패망 후 한국이 독립했다. 즉, 대한민국 독립으로 이어지는 일본 왕족을 표적으로 삼은 의거의 본격적인 시작이 조명하 의사의 의거였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 대상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는 왕족을 개편한다는 명분하에 1875년 새로 창설된 궁가(宮家) 구니노미야 가문을 이어받은 인물이다. 그는 현재의 일왕 나루히토(德仁=재위 : 2019.5.~)까지 이어지는 혈통의 시작인 소코(崇光) 일왕(1334~1398)의 16대손이다. 1945년 8월 15일의 패망 전까지 일본인들에게는 ‘신의 후예’인 일왕과 그의 일족들이 일본을 통치한다는 일본의 ‘국체(國體 : 고쿠타이)’를 지키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민족적 사명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일왕과 왕족이라는 존재는 일본에 있어서는 단순한 왕가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근본이자 본질이었다. 즉, 의거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그 가치를 논할 때 조명하 의사의 의거는 안중근 의사,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와 동격으로 ‘4대 의거’로 뽑힌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는 일본의 기만적인 식민지 통치에 대한 항거였고 일본을 비롯해 타이완이나 조선에서 군사적 신으로 피지배 민족 위에 군림하는 일본 황족의 한 사람을 척살함으로 인해 피지배 민족을 각성시키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졌다.
이 자료집은 현재까지 발표된 조명하 의사와 그가 척살한 구니노미야, 타이완의 신으로 불린 구니노미야의 작은 아버지 요시히사 친왕과 관련된 글 중 중요한 것을 선정해서 모았다.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하리라.”
조명하 의사는 1928년 5월 14일, 24세라는 젊은 나이로 타이완 타이중에서 당시의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자 육군대장이며 일본 왕족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를 처단했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는, 이봉창이 1932년 1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투척하는 의거로 이어졌고,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에서 열린 히로히토의 생일 축하행사에서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이어졌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중국국민당 장제스가 김구 선생이 이끈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동맹국으로 인정해 이후 임정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장제스가 참여한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이 미·영·중의 합의사항이 되어 일제 패망 후 한국이 독립했다. 즉, 대한민국 독립으로 이어지는 일본 왕족을 표적으로 삼은 의거의 본격적인 시작이 조명하 의사의 의거였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 대상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는 왕족을 개편한다는 명분하에 1875년 새로 창설된 궁가(宮家) 구니노미야 가문을 이어받은 인물이다. 그는 현재의 일왕 나루히토(德仁=재위 : 2019.5.~)까지 이어지는 혈통의 시작인 소코(崇光) 일왕(1334~1398)의 16대손이다. 1945년 8월 15일의 패망 전까지 일본인들에게는 ‘신의 후예’인 일왕과 그의 일족들이 일본을 통치한다는 일본의 ‘국체(國體 : 고쿠타이)’를 지키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민족적 사명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일왕과 왕족이라는 존재는 일본에 있어서는 단순한 왕가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근본이자 본질이었다. 즉, 의거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그 가치를 논할 때 조명하 의사의 의거는 안중근 의사,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와 동격으로 ‘4대 의거’로 뽑힌다.
조명하 의사의 의거는 일본의 기만적인 식민지 통치에 대한 항거였고 일본을 비롯해 타이완이나 조선에서 군사적 신으로 피지배 민족 위에 군림하는 일본 황족의 한 사람을 척살함으로 인해 피지배 민족을 각성시키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졌다.
이 자료집은 현재까지 발표된 조명하 의사와 그가 척살한 구니노미야, 타이완의 신으로 불린 구니노미야의 작은 아버지 요시히사 친왕과 관련된 글 중 중요한 것을 선정해서 모았다.
조명하 의사 자료집 1 (양장본 Hardcover)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