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비추는 운명 (해방 전 임화 시의 문명 비평적 애도)

눈물이 비추는 운명 (해방 전 임화 시의 문명 비평적 애도)

$15.97
Description
상실된 너를 내 안에 살리는 슬픔의 시,
집단도 개인도 아닌 새 문명의 형상화
이 책은 슬픔을 수동적 감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 변화의 가능성으로 표현하는 한국시 특유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중세와 근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명의 사유를 제시하며, 한국 근대문학이 서구 근대의 모방이자 미달이라는 통념을 극복한다. 이처럼 다각적이면서도 문제적인 작업은 임화의 일제 강점기 시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해방 이전의 시인 임화에 관한 단순한 연구서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이 되고자 한다. 한국문학 연구가 학문적으로 얼마만큼 보편적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자 한다. 한국시에 담긴 독창적 성취의 재조명, 기존 문명에의 비판과 새로운 문명에의 모색, 서구 중심적 사유의 극복에 관심 있는 독자는 이 책을 통해서 유의미한 통찰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홍승진

시는사유를개념화하는언어와개념적사유로부터벗어나는예술사이의길항이라고생각한다.새로운사유를창조하는데관심이있으며,언어예술이그역할을할수있다고믿는다.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공부하였으며같은대학원에서석사학위와박사학위를받았다.
계간『다시개벽』편집위원,서울대학교기초교육원강사,서울대학교인문학연구원선임연구원등으로일하고있으며임화연구회연구기획위원,사단법인방정환연구소학술이사,신동엽학회연구이사등을맡고있다.저서로는『천상과지상사이의형상─김종삼시의내재적신성』,『가장자리에서지금을─하종오리얼리즘의서정과서사』,『김종삼정집』(공편),『세계는왜한국에주목하는가』(공저),『우리는어디로가야하는가』(공저)등이있다.

목차

제1장서론
제1절임화시의일곱빛깔
제2절새로운문명을품은애도의형상

제2장민족과세계사이의그치지않는애도
제1절민요시:감정에서인간으로,민족에서문명비평으로
제2절다다이즘과서간체시:공권력을넘는인간성의애도

제3장운명체의바다위에눈물로맞닿는애도
제1절수필론과변증론:사상의주체화와다양성의형상화
제2절계절시와메타시:획일성을벗어난생성긍정의운명애
제3절현해탄연작:운명공동체의애도를통한주체적문명의모색
보론/시집『현해탄』구성방식의남은문제들

제4장페시미즘아래서삶을긍정하는애도
제1절신세대론:죽고싶다는비명속의살고싶다는외침
제2절찬가연작:찬미할것을잃은삶마저찬미하기

제5장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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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수동적한(恨)의정서가아닌역동적애도의태도

이책은‘어째서임화의해방이전작품대부분은상실된무언가를슬퍼하는가?’라는물음에서출발한다.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서기장까지맡으며사회주의문학을적극옹호하였던임화의이력과상반되게도,그의시만큼은당시의많은사회주의문학처럼진취적인전망과선명한이데올로기를선전·선동하는측면보다도죽거나떠나간사람을슬퍼하는측면이두드러진다는점은우리의통념과어긋나기때문이다.
이때지그문트프로이트를비판적으로전유한자크데리다와주디스버틀러의애도개념은그물음을풀수있는유효한시각이된다.프로이트가말하는성공적인애도는상실된대상에게향하는사랑을회수하여다른대상에게로돌리는작업이지만,데리다와버틀러가말하는진정한애도는상실된타자의대체불가능한타자성,즉단독성(singularity)을자아안에보존함으로써자아를재구축하는작업이다.카프시인들의많은작품은희생된동지나가족이나연인등을시적화자의사회주의적이념과동일시하고그이념의고취를위한소재로환원시킨반면에,임화의시는상실된인간들이특정한이념으로환원되지않는지점을표현한다.
이처럼이책은마르크시즘이라는단일한기준을중심으로임화의문학전반을파악하던기존연구관점과달리,임화의시세계가그출발지점부터해방직전까지일관되게도식적ㆍ교조적마르크시즘을벗어나있다고해석한다.
카프시의가장뛰어난성과로손꼽히는1920년대후반임화의‘서간체시’는상실된타자를고정적이데올로기로환원할수없는단독적타자로서시적자아안에보존하고기억한다.서간체시는지금까지보통‘단편서사시’로규정되던작품들을새롭게개념화한용어라할수있다.단편서사시라는용어는사회주의이념의대중화수단이라는측면을강조한다.딱딱한이념을짧은이야기(서사)로쉽게전달하여대중에게공감시킨다는것이다.반면서간체시라는용어는편지(서간)의발신자만도아니고수신자만도아니라발신자와수신자가함께들어있는유일무이한기억을강조한다.이는상실된타자를주체와동일시하지않지않으며주체성안에타자성을보존하고기억하는애도와상통한다.
이책은임화의시세계가민요시창작에서출발하였다는점에주목하며,임화의시에나타나는애도의특성이김소월등의한국민요시와거기에나타나는애도의미학적전통을계승한것이라고해석한다.한국문화의고유한특징은‘한(恨)’의정서이며그것이민요시에서잘나타난다는것은널리알려진통념이다.그러나‘한’의정서는한국민족문화의본질을수동적이고비관적인것으로규정하기위하여일본학자들이고안해내었다는식민주의적함의를띤다.그러나김소월의민요시부터임화의서간체시에이르는한국시의미학은수동적‘한’의정서가아니라주체성안에타자성을보존하고기억하는역동적애도의태도임을이책은밝힌것이다.

집단중심도개인중심도아닌제3문명의형상화

더욱놀라운점은임화의시에나타나는애도가한국시의독특한미학뿐만아니라세계사적문명론과도연결되어있다는이책의주장이다.사적인감정이나행위쯤으로간주되기쉬운애도의시적표현이기존문명의한계를비판하고새문명을모색하는‘문명비평’과연결된다는것이다.애도가문명비평과연관되는까닭은세계문학사에관한임화의독특한시각에서비롯한다.
임화는문학에서인간을형상화하는방식이문명사의흐름에따라변화한다고보았다.예를들어중세는집단중심의문명이었으므로,중세문학은개성이희박하며집단으로환원되는인간을형상화한다.조선시대의양반사대부문학이나서구중세의기사도문학등에서인간이개성적이지않고계급이나계층등의집단적성격으로표현되는까닭은그때문이다.반면개인중심의문명인근대아래서,문학은집단성을상실한파편적개인으로인간을형상화한다.이는근대문학에서인간의개성이두드러지지만그개성이사회와상호작용하지못하고시대현실에무력하게압도되는것과통한다.그러나임화가생각하기에중세는개성없는집단성만이있고근대는집단성없는개성만있다는한계가있다.근대의개인중심이라는한계를극복하기위하여집단성중심의문명으로회귀하려는흐름은제국주의파시즘의파국을낳았다.임화는자신이목격한일제강점과1·2차세계대전을중세-근대-파시즘으로이어진서구문명사전체의파산으로진단하며,집단중심(중세와파시즘)으로도개인중심(근대)으로도돌아가지않는제3의문명을모색하였다.
집단적인간을형상화하는것이중세문명아래의문학이고개인적인간을형상화하는것이근대문명을압축하는문학이라면,임화의시에서애도하는인간을형상화하는것은제3의새문명을드러내는문학이된다.애도하는인간은너와나를동일시하지않되나의나다움안에너의너다움을살리는인간이기때문이다.저자는임화의시를연구한뒤로그의독특한사유덕분에동학(천도교)의인내천(人乃天)사상을더특별히주목할수있었다고「머리말」에서밝힌다.임화가천도교를긍정적으로평가한적은없지만,개체[人]와전체[天]를대등관계로바라보는동학사상은곧임화문학에나타난한국적(주체적)문명론과통하기때문이다.

‘서구콤플렉스’를넘는한국현대시

임화의시에서애도하는인간을새문명의형상으로제시하였다는해석은지금까지그의문학과한국‘근대’문학에덧씌워진통념을탈피한다.국문학자고(故)김윤식교수는한국근대의시인과작가들이현해탄건너의일본에들어온서구근대를무비판적으로동경하고추종하였다고전제하였으며,이를‘현해탄콤플렉스’라는개념으로통칭하였다.한국‘근대’문학은서구-일본의근대성에도달하고싶어한‘미달태’였다는것이다.그것을가장대표적사례로는임화의문학이지목된다.현해탄콤플렉스라는말자체가임화의첫시집제목인『현해탄』에어느정도근거한것이기때문이다.임화가당시아나키즘문인에게유행한다다이즘스타일의시를남긴것,그뒤로곧장마르크시즘에뛰어든것,한국근대문학사의시작을서구근대문학의‘이식’으로서술한것등은현해탄콤플렉스의증거로여겨졌다.김윤식의시각은이후로도지금까지영향을미쳐,한국‘근대’문학이형성되어온과정이나지향해야할바의모델을서구적근대성에두는관습이굳어져왔다.
그러나제국주의와세계대전등의역사를서구문명전체의파산으로진단하며중세도근대도아닌제3의문명을모색한임화의시각은현해탄콤플렉스에부합하는것이아니라오히려현해탄콤플렉스의틀자체에대항한다.이처럼현해탄콤플렉스의대표사례로간주되던임화의문학을오히려현해탄콤플렉스의가장극명한반대사례로재해석한지점은이책의독창성을드러낸다.이점을뚜렷하게보여주는장면은,현해탄콤플렉스라는명칭의유래가되기도하였던임화의시집『현해탄』을새롭게해석한대목이다.이시집을섬세하게들여다보면,처서구-일본의근대문명을동경하여현해탄을건넜던조선민족은그근대문명이한낱허영일뿐이었다는환멸을느낀다고형상화된다.조선민족은그과정에서상실된조선민족의문화적전통을애도함으로써,역사를주체적으로창조해나갔던힘을기억하고보존한다.애도를통해기억되고보존되는민족적잠재력은서구근대문명의허영을변화시켜새로운문명을생성할가능성으로제시되는것이『현해탄』시편의본모습이다.
조선민족의기억속에잠재해있는문명창조의가능성을임화의시는‘운명’으로사유한다.운명을긍정하는임화의사유는끊임없는변화와생성자체를긍정하는사유로서,그가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몽테뉴와파스칼과괴테를거쳐니체로이어지는독특한변증론의흐름을재구성한것이기도하다.임화가그들의사유를치열하게재해석하여새로운변증론을이끌어낸까닭은헤겔에서마르크스로이어지는목적론적변증법의한계를극복하기위해서였다.이는임화가현해탄콤플렉스에사로잡혀서마르크시즘의틀을넘어서지못하였다는기존논의에정면으로맞선다.임화의시는모든변화를단하나의목적에귀결시키는것이아니라,아무런목적없이도끊임없이변화하고생성하는삶그자체를긍정한다.일제말기로접어들수록모든희망과가치가점차사라져가는상황속에서도희망과가치를생성하고자애쓰다가좌절한사람들을애도함으로써,임화의시는특정한목적없이도끊임없이역동하는삶의힘자체를아름다운운명으로서찬미한다.생명력이상실되고훼손된인간들을애도함으로써그생명력을보존하고기억하는것은새로운문명창조의가능성이될수있다는것,바로그것이『눈물이비추는운명』이라는책제목에담긴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