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미래를다시읽다
동학과문학,그사이에서한국인문학의새로운길을열다
지금우리에게필요한것은새로운사상을발명하는일이아니라,오래된사상을새로운시대의언어로다시읽어내는일인지도모른다.기후위기와인공지능,민주주의의흔들림과생명의위기가한꺼번에밀려오는오늘복합위기의시대에,우리는문명을다시생각할수있는사유의토대를절실히찾고있다.이책은바로그물음에중요한대답을제안하는책이다.
이책은새로운동학이론을제시하는책이아니다.오히려오랫동안서로다른영역으로여겨졌던동학과한국문학,사상과문화운동,학문과삶을하나의흐름으로연결했다는데있다.저자는동학을연구의대상이아니라한국사회의정신사를읽는하나의방법으로삼고,문학을작품해설의대상이아니라시대의전환을감지하고미래를상상하는공간으로바라본다.그결과이책은동학연구와문학연구,개벽학과문화사연구를자연스럽게이어주는보기드문인문학적성과로자리한다.무엇보다이책은한국인문학이자기언어를회복하는가능성을보여준다.그동안한국문학은주로서구의이론과개념을통해해석되어왔다.물론그러한연구는많은성과를남겼지만,우리문학을우리사상의전통속에서읽으려는시도는상대적으로드물었다.저자는동학의개벽사상을하나의해석원리로제시함으로써한국문학을바라보는또하나의길을연다.그것은과거로돌아가자는제안이아니라,우리안에축적된사유의자원을통해미래를다시상상하자는제안이다.
이책의출발점은학문적호기심만이아니다.평생서양문학을연구하고민중문화예술운동에참여해온저자는정년이후자신의집안에남아있던동학의흔적을타고올라가동학공부를시작했다.동학에참여했다는이유로고향을떠나야했던조상의이야기,사라진고향마을의기억,그리고늦은나이에시작한동학순례는저자에게하나의근원적질문을던졌다.“무엇이우리선조들을동학으로이끌었는가.”이물음은곧“오늘우리는어디에서왔으며,어디로가야하는가”라는문명사적질문으로확장된다.
제1부「동학과개벽」은이책의사상적토대를이룬다.저자는개벽을종교적종말론이나이상사회에대한막연한희망으로보지않는다.개벽은인간과사회,문명과세계관이근본적으로새로워지는전환의원리이다.수운과해월의사상,김지하의생명사상,백낙청의변혁적중도론,민주주의와인권의문제를가로지르며저자는개벽이오늘의세계를해석하는강력한사유의언어가될수있음을보여준다.기후위기,전쟁과혐오,민주주의의위기,인공지능이초래하는진실의혼란속에서동학은더이상과거의민족종교가아니라미래문명을상상하게하는사상적자원으로되살아난다.
제2부「동학과한국문학」은이책의독창성이가장선명하게드러나는대목이다.저자는한국문학을동학이라는렌즈로다시읽는다.신동엽,김지하,백무산,안삼환,박승민,조선남등의작품속에서그는개벽의상상력과생명평화의정신을발견한다.문학은현실을비추는거울에그치지않는다.문학은아직오지않은세계를먼저감각하고,시대의전환을예감하며,새로운삶의가능성을열어젖히는힘이다.이책은한국문학의깊은저류에생명,평화,민중,공동체,개벽의사유가흐르고있음을설득력있게보여준다.
이점에서이책은기존문학평론의관행에도중요한질문을던진다.한국문학은오랫동안서구이론의언어로해석되어왔다.그러나저자는한국문학내부에이미독자적인사유의원천이존재한다고본다.동학은그중요한근원가운데하나이다.동학의눈으로한국문학을다시읽는다는것은단순히작품해석의틀을하나더하는일이아니다.그것은한국문학이어떤정신사적토대위에서형성되어왔는지,그리고오늘의문명위기속에서문학이어떤역할을할수있는지를새롭게묻는일이다.
제3부「1920년대의천도교개벽문화운동」은동학의외연을종교사에서문화사로확장한다.저자는『개벽』잡지와방정환,김기전,이돈화,차상찬등의활동을통해1920년대천도교문화운동이단순한종교운동이아니라새로운인간과사회를만들려는근대문화혁명프로젝트였음을밝힌다.어린이운동,출판운동,언어운동,여성운동,민중문화운동은모두개벽의이상과연결되어있었다.이책은동학이한국근대문화형성의중요한동력이었으며,그유산이1970~80년대민중문화운동과오늘의생명평화운동으로이어질수있음을보여준다.
제4부「나의동학공부와동학순례」는이책에생생한현장성과인간적깊이를더한다.권정생의『한티재하늘』에대한독해,보은민회의역사적의미,전봉준장군후손문제,예천과예산답사기등은동학이경전과사료속에만존재하는것이아님을보여준다.동학은사람과마을,기억과풍경,역사와삶속에살아있다.저자는책상위의동학이아니라현장에서만나는동학,사람들의삶속에서이어지는동학을찾는다.이대목에서이책은학문적연구를넘어한사람의늦은공부와귀향의기록이된다.
이책을관통하는저자의새로운문제의식은“비평은개벽을향한실천”이라는믿음이다.저자에게문학을읽고글을쓰는일은단순한해석행위가아니다.그것은더자유로운삶,더평등한사회,더따뜻한공동체를향한실천이다.작품을평가하기보다작품이품고있는생명과평화,민중과공동체,개벽의가능성을읽어내는것,절망의시대에도희망의근거를포기하지않는것,그것이이책이보여주는비평의윤리이다.
따라서이책은일반적인동학연구서와도다르고,통상적인문학평론집과도다르다.철학이나교리,역사해설에머물지않고문학과예술,문화운동이라는살아있는현장을통해동학사상의현재성을입증한다.또한개별작품의미학적분석에만갇히지않고,문학을시대정신과문명전환의문제로확장한다.수운과해월,의암의사상은신동엽과김지하,백무산과백낙청의언어속에서다시살아나며,동학은과거의유산이아니라지금도생성중인문화적전통으로제시된다.
오늘우리는거대한전환의시대를살고있다.기후위기와생명위기,민주주의의후퇴,전쟁과혐오의확산,인공지능이불러온지식과진실의혼란은기존문명의한계를드러내고있다.이런시대에『개벽사상과한국문학』은묻는다.우리는정말새로운사상만을찾아야하는가.혹은이미우리안에있었으나잊어버린사유의원천을다시배워야하는것은아닌가.
이책은동학을설명하는책이아니다.동학의눈으로한국문학을다시읽고,한국문학을통해개벽사상의현재적의미를새롭게묻는책이다.동학연구자에게는문학이라는새로운지평을,문학연구자에게는동학이라는새로운해석의틀을,일반독자에게는오늘의혼돈속에서오래된미래를다시생각하게하는깊은통찰을제공한다.
이책을읽는일은단순히동학과한국문학에관한지식을얻는일이아니다.그것은한국사상의가능성을다시묻고,문학의역할을다시생각하며,문명전환의시대에우리가어떤언어와상상력으로미래를열어갈것인지를함께고민하는일이다.저자의늦은동학공부는그래서한개인의귀향에그치지않는다.그것은개벽을향한한국인문학의또하나의귀향이며,동시에아직오지않은미래를향한조용하지만힘있는초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