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다시묻는순간,세계를보는시선도달라진다
종교를연구한다는것은오늘의세계를연구하는일이다
현대사회에서종교는역설적인위치에놓여있다.세속화와과학기술의발전으로종교의영향력이약화될것이라는전망이오랫동안이어졌지만,현실의종교는사라지지않았다.오히려정치와경제,문화와미디어,정체성과공동체,생태와기술의문제속에서이전과는다른모습으로출현하고있다.문제는우리가여전히종교를신과교리,경전과제도,개인의내면적믿음을중심으로이해하는것에익숙하다는점이다.
『종교학자의서재』는바로이지점에서출발한다.이책이보여주는현대종교학의핵심적인변화는‘종교란무엇인가’라는질문에서‘종교는어떻게만들어지고경험되며작동하는가’라는질문으로의이동이다.종교는무엇을믿느냐의문제만이아니다.무엇을먹고,어떤사물을만지고,어떤이미지를바라보고,어떻게몸을움직이고,타자와어떤관계를맺는가에도종교가스며있다.영화와카메라는보이지않는영적세계를가시화하고,자본주의의노동윤리에도종교적심성이작동하며,오래된샤머니즘은디지털미디어를만나새로운형태로재구성된다.이책이일상·몸·물질·감각·미디어·폭력·경제·생태까지종교학의시야안으로끌어들이는이유다.
따라서오늘날종교학을한다는것은종교라는한정된영역을연구하는것만을의미하지않는다.종교라는창을통해인간이세계에의미를부여하고,관계를형성하고,권력을정당화하며,삶의질서를만들어가는방식을연구하는일이다.
종교학과종교계가함께마주한질문
연구대상이넓어진만큼종교학의고민도깊어졌다.종교를보편적으로정의할수있는가?서구그리스도교를암묵적인표준으로삼아온종교개념은여전히유효한가?서로다른종교를비교하는일은가능한가?한때종교학의대표적방법론이었던종교현상학은폐기되어야하는가?연구자는종교인의자기이해를존중하는데머물러야하는가,아니면그배후의권력과이해관계까지비판적으로분석해야하는가?
이책에담긴13편의글은이러한질문에하나의정답을내놓지않는다.오히려종교학이자신의개념과방법론자체를연구대상으로삼아성찰하고있음을보여준다.믿음에서실천으로,정신에서몸과물질로,텍스트에서감각과미디어로,인간중심에서인간과비인간의관계로연구의무게중심이이동한다.동시에비교종교학과종교현상학의한계를비판하면서도그것들을간단히폐기하지않고무엇을계승하고어떻게재구성할것인지를묻는다.
이러한질문은종교계에도그대로돌아온다.종교는자신의정체성을교리와경전,제도의보존만으로지켜낼수있는가?기술문명과미디어환경의급변,자본주의와불평등,생태위기와공동체의해체속에서종교는실제로무엇을하고있는가?종교가주장하는가치와현실에서수행하는사회적기능은일치하는가?전통은변하지않는원형인가,아니면시대와의만남속에서끊임없이재구성되어야하는가?이책은종교를외부에서분석하는책이면서동시에오늘의종교가자기자신을비추어볼수있는비판적거울이된다.
13권의책을함께읽으며만들어진‘살아있는종교학’
이책의특별한점은내용만큼이나만들어진과정에있다.한국종교문화연구소가2017년부터매월진행해온‘책한권프로젝트’에서연구자들이함께읽고토론한외국종교학연구서가운데13권을선정했다.각분야의연구자가책의저자와학문적배경,핵심주장과논쟁점,학계의평가를소개하고그것이오늘의한국종교학에던지는질문을짚었다.소개된책가운데상당수가아직우리말로번역되지않았다는점에서도의미가크다.
여기서중요한것은단순한‘해외명저소개’가아니라는사실이다.한연구자가한권의책을읽고요약한것이아니라,읽기와발표,질문과토론이라는공동의학술과정을거친뒤다시글로정리되었다.그러므로이책에는원저자의목소리만있는것이아니다.책을소개하는한국연구자의해석과평가,동료연구자들과의문제의식,그리고한국의종교현실과종교학을향한질문이겹쳐있다.‘서재’라는제목이어울리는이유도여기에있다.이서재는완성된지식을보관하는공간이라기보다책과책,연구자와연구자,세계종교학과한국종교학이서로만나대화하는공간이다.
현대종교학의‘확장’과‘자기비판’을한권에담다
이책의가장두드러진학문적성과는현대종교학의두흐름,곧연구대상의확장과방법론의자기비판을동시에보여준다는점이다.
그레이엄하비는먹고사랑하고다른생명과관계맺는일상의차원에서종교를다시발견한다.린웨이핑과캐롤라인워커바이넘의연구는신상과영매,성체와성유물같은물질을단순한상징이아니라종교적힘이현존하고작용하는대상으로바라보게한다.비르기트마이어는영화와미디어가종교를전달하는수단에그치지않고종교적현실자체를구성할수있음을보여준다.모리스블로크는의례와폭력의구조를탐구하고,즈나멘스키는샤머니즘자체만큼그것을바라보는서구의시선이역사적으로변화해왔음을추적한다.
후반부로갈수록질문은종교학자체를향한다.비교는여전히가능한가,‘순수한선(禪)’이라는관념은어떻게만들어졌는가,종교적노동윤리는자본주의와어떤관계를맺는가,자연과사회·주체와객체라는근대의이분법을넘어설수있는가를묻는다.그리고비판종교학,비교신화학,종교현상학의재검토를통해종교학이무엇을어떻게연구해야하는지다시질문한다.
따라서이책에실린13편의글은서로떨어진13개의서평이아니다.그것들을관통하는하나의흐름이있다.종교를낯설게보고,종교를바라보던학문의시선마저다시낯설게보는것이다.이것이야말로『종교학자의서재』가보여주는현대종교학의중요한성취다.
종교학계에는지도를,종교계에는거울을
한국종교학계에서이책의가치는세계종교학의주요연구성과를한국어지식장안으로가져온다는데서시작한다.물질종교,감각과미디어,비판종교학,비교의재구성,다원적존재론등현대종교학의중요한흐름을각각의대표적저작을통해접할수있다.전공자와대학원생에게는연구주제와방법론을탐색할수있는유용한입문서이자연구안내서가될수있다.특히번역되지않은연구서의논점과학술사적위치까지파악할수있다는것은상당한장점이다.이책은세계종교학의새로운문제의식과한국종교학을잇는하나의지적가교다.
종교계에는다른의미에서중요하다.학문적시선으로자신의전통을바라본다는것은때로불편한경험일수있다.그러나바로그거리에서새로운자기이해가시작된다.종교의전통과의례,권위와공동체,미디어활용과사회적실천을당연한것으로받아들이지않고“왜그러한가”,“누구에게어떤영향을미치는가”,“오늘날에도같은방식이어야하는가”를물을수있기때문이다.종교학의비판은종교의가치를부정하기위한것이아니라종교가현실속에서실제로무엇이되고있는지를더정확하게이해하기위한작업이될수있다.
이책을읽는법-13권이아니라13개의질문으로
이책은처음부터끝까지순서대로읽어야하는책은아니다.독자는자신의관심에서출발해도좋다.일상의종교가궁금하다면음식과관계에서시작하고,이미지와감각에관심이있다면영화와물질종교에서시작할수있다.의례와폭력,샤머니즘과늑대인간을따라가도좋고,선불교와자본주의,라투르의존재양식에서출발해도좋다.종교학자체에관심이있다면마지막의비판종교학·비교신화학·종교현상학논쟁부터읽는것도좋은방법이다.
그러나한편을읽고나면다른편으로건너가보기를권한다.물질종교를읽은뒤미디어를,샤머니즘을읽은뒤비교종교학을,자본주의를읽은뒤비판종교학을읽으면서로다른연구가뜻밖의자리에서연결되는것을발견할수있다.이책이펼쳐보이는것은결국13권의책이아니라종교를통해인간과세계를읽는13가지시선이기때문이다.
그렇게읽다보면마지막에는처음과다른질문앞에서게된다.종교란과연무엇인가.그리고우리는왜종교를연구하는가.이책이주는가장중요한성과는그질문에하나의답을제공하는데있지않다.종교에대한익숙한답을흔들어새로운질문을가능하게하는것,그리고그질문을통해인간과사회와세계를다시보게하는것.바로그곳에오늘날종교학을공부하고,종교를성찰해야하는이유와이책의현재적가치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