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만나는 주련 (양장)

사찰에서 만나는 주련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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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또 하나의 방편, 주련
주련(柱聯)은 영련(楹聯)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주(柱)와 영(楹)은 기둥을 나타낸다. 그리고 연(聯)은 ‘연이어’라는 표현으로 판자에 글을 써서 새김을 하여 걸어 놓은 것을 말한다. 이러한 주련의 내용은 건물의 주제에 맞게 그 내용을 시로 나타내어 찬탄하여 더욱더 그 의미를 고양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주련은 훈계나 격려 또는 경책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주련의 바탕이 되는 판자의 아래로는 연잎이나 연꽃, 당초(唐草) 문양 등을 새겨 장식하여 주련의 문장이 경직된 문구라면 이를 좀 더 완화하고, 흥부(興賦)하는 문구라면 더욱더 이를 북돋우기도 한다.

주련도 엄연히 삼보에 대비하여 본다면 법보에 해당한다. 주련의 내용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인용하거나 삼보를 찬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주련은 그 전각에 따라서 봉안된 주존(主尊)을 찬탄하는 내용을 경전에서 인용하거나 아니면 시문을 지어 탄백(歎白)하는 내용으로 대개 이루어져 있으나, 오늘날 사찰의 주련은 찬탄이나 경책 등이 주류다. 세월의 흐름 따라 한자의 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에게는 그냥 곁눈질하듯 지나가기에 그 기능을 상실한 지가 이미 오래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뭐든지 사랑받지 못하면 관심에서 멀어지고 먼 산 쳐다보듯이 도외시되기 마련이다.

주련도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의 방편이기에 이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포교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압축되어 담긴 성보

법상 스님은 사찰에 무심히 걸려 있는 주련을 찾아 직접 발로 전국의 사찰을 순례하고 사진을 기록으로 났다. 문학연대 출간에 앞서 자비를 들여 비매품으로 [사찰에서 만나는 주련]을 출간한 바 있다. 하지만 양껏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주련의 내용을 많은 불자들이 알아가기를 바라는 지극한 마음에서 다시 한번 정식 출간을 결정하였고, 이번에는 대중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주련]의 참뜻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오랫동안 [주련]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어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주련]의 참뜻을 알기가 쉽지 않다. 특히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한자 교육에서 자유로운 만큼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한자로 구성된 주련의 내용을 알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사찰에서 만나는 주련]은 한자를 알지 못하는 젊은층의 대중들에게도 유익한 포교의 수단이 될 것이다.

본래 부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경을 비롯해 많은 조사들이 전하는 말씀을 가져와 주련으로 삼지만, 그 뿌리가 어디인지 모른다. 법상 스님은 [사찰에서 만나는 주련]을 통해 불과 몇 줄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주련의 출처와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설명하였다.

[주련]을 처음 접하는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국내에 나와 있는 [주련]에 관련한 제대로 된 도서가 없는 현실에서 보면 이번 법상 스님의 [사찰에서 만나는 주련]이 부처님께서 전하는 법의 정수를 공부하는 데 초석이 되어 줄 것이다.


주련 책을 마치며

참 오랫동안 사원에서 흔히 만나는 주련(柱聯)의 해설서를 쓰고자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방곡곡의 사원을 순례하면서 자료를 수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따라 얻어지는 것도 많았다. 순례(巡禮)의 기쁨과 더불어 자신도 모르게 시나브로 익어지는 공부가 그것이다. 이러한 기쁨이 없었다면 아마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옛사람이 전하기를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하였다. 사진만 찍고, 글만 쓴다고 하여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치 수트라[Sutra]처럼 하나하나 엮어서 세상에 나오지 아니하면 자신만의 공부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삼계의 길잡이시며 사생의 자부이신 부처님의 말씀을

형상(形像)으로 나타내면 불상(佛像)이 되고
책으로 엮으면 경(經)이 되고
그림으로 그리면 벽화가 되고
노래로 찬탄하면 찬불가(讚佛歌) 되고
시(詩)로 나타내면 탄백(歎白)이 되고
집을 지어서 불상을 봉안하면 대웅전(大雄殿)이 되고
널빤지 따위에 적거나 새겨서 걸면 주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련도 엄연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수단이지 사원의 건물을 장엄하고자 하는 용도는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가 주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련의 내용이 틀리거나 혹은 주련을 걸음에 있어서 순서가 뒤바뀐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잘못 걸린 주련이나 글자가 틀리거나 한 주련이 너무나 많아서 그것들이 참으로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나는 이것을 바로 잡음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올바르게 된 것은 마땅히 선양하여 포교하기 위해서 아픈 손가락의 통증을 무릅쓰고 이 책을 집필하였다.
저자

지홍법상

경남김해정암사주지스님.2021년부터현재까지법보신문에「사찰에서만나는주련」을연재하며필진으로참여하고있다.

출판사 서평

주련책을마치며

참오랫동안사원에서흔히만나는주련(柱聯)의해설서를쓰고자자료를수집하였다.그러나이는쉬운일이아니었다.방방곡곡의사원을순례하면서자료를수집해야했기때문이다.그러나이에따라얻어지는것도많았다.순례(巡禮)의기쁨과더불어자신도모르게시나브로익어지는공부가그것이다.이러한기쁨이없었다면아마이책은세상에나오지못하였을것이다.

옛사람이전하기를구슬이서말이라도꿰어야보배라하였다.사진만찍고,글만쓴다고하여서끝나는게아니라마치수트라[Sutra]처럼하나하나엮어서세상에나오지아니하면자신만의공부에빠지기십상이기때문이다.삼계의길잡이시며사생의자부이신부처님의말씀을

형상(形像)으로나타내면불상(佛像)이되고
책으로엮으면경(經)이되고
그림으로그리면벽화가되고
노래로찬탄하면찬불가(讚佛歌)되고
시(詩)로나타내면탄백(歎白)이되고
집을지어서불상을봉안하면대웅전(大雄殿)이되고
널빤지따위에적거나새겨서걸면주련이되는것이다.

그러므로주련도엄연하게부처님의가르침을전하는수단이지사원의건물을장엄하고자하는용도는아니다.우리가여기서눈여겨보아야할것은[부처님의가르침을전하는수단가운데하나가주련]이라는것이다.그러므로주련의내용이틀리거나혹은주련을걸음에있어서순서가뒤바뀐다면이는분명잘못된것이다.그러나아쉽게도잘못걸린주련이나글자가틀리거나한주련이너무나많아서그것들이참으로가슴을아프게하였다.나는이것을바로잡음에있어서조금이라도힘을보태고,올바르게된것은마땅히선양하여포교하기위해서아픈손가락의통증을무릅쓰고이책을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