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가갸거겨를 배우다 (양장)

새들의 가갸거겨를 배우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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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모성의 영성을 빚어내는 손
고진하 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다는 사실부터 꼽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공통점은 두 존재가 모두 시인에게는 자연스럽거나 진실한 생명체의 특징을 구현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시각 작용을 집중적으로 활용하는 관찰의 시인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마음의 눈’을 강조하는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시인이기도 하다. 마음의 눈으로 그는 외부의 형상을 내부의 진실로 이끌어가는 시적 상상력과 주제 의식을 구현해 온 셈이다. 이런 상상력과 주제 의식을 나는 그의 두 번째 시집 해설의 제목으로 삼아 “견성(見性)의 시학”이라고 일컬은 바 있기도 하다.

시집의 서두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난 촉감의 신[Epaphus]처럼 흙 주무르기를 좋아한다네” 라고 밝힌 고진하 시인의 고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 고백이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포함한 인간과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서 펼쳐 보인 ‘견성의 시학’과 조금 다른 시쓰기의 방법론을 제시해주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거인의 어깨와 난쟁이

흙 주무르기를 좋아하는 손 이번 시집의 강력한 주제로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마음과 몸의 경계일 수도 있다. 책을 읽고 말씀을 전하고 시를 쓰는 인간에게 가장 집중적으로 사용되는 도구는 생각이나 마음일 것이다. 고진하 시인의 시쓰기가 꾸준하게 ‘견성의 시학’을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생각이나 마음은 가장 소중하며 유용한 시쓰기의 밑천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생각이나 마음이 덫이 되거나 올무로 작용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바로 그럴 때 다음과 같은 해결책이 떠오르는 법이기도 하다.

-이경호 평론가

숱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도
그 꼬리 어디서도
시(詩) 한 잎 발아하는 일은 드물지
그래서
자르고 또 잘라도
거듭 돋아나는
도마뱀 꼬리 같은 생각의 손에
괭이 한 자루 쥐어 주고
봄볕 아른거리는 텃밭으로 내몰았지
너 구슬땀 좀 흘려봐
네 괭이질에 토막토막 잘린 채
꿈틀대는 지렁이들과 입맞춰 봐
네 눈에 보이잖는 땅 속
미생물들과 으밀아밀 통화해 봐
생각의 폭풍이 좀 잦아들 거야
눈에 보이는 것밖에 볼 줄 모르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야
텃밭 가 파릇파릇 새순이 돋는
꾸지뽕나무의 말없는 말씀이야
- 「꾸지뽕나무의 말씀」 전문
저자

고진하

저자:고진하

강원영월에서태어나1987년『세계의문학』으로데뷔했다.숭실대학교문예창작과겸임교수를역임했으며,시집『지금남은자들의골짜기엔』,『프란체스코의새들』,『명랑의둘레』,『야생의위로』등다수와산문집『신들의나라,인간의땅:우파니샤드기행』,『조금불편하지만제법행복합니다』,『야생초마음』등이있다.김달진문학상,영랑시문학상,박인환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5

제1부
새벽성전-13
고독이사랑을통과하면-14
황혼-16
영원의빛깔-18
새들의가갸거겨를배우다-20
변화의간이역-22
20그램의무심-25
현자(賢者)양파-26
방죽위의성찬-28
비단풀-30
부고한닢툭,-32
낭보-34
직지사꽃무릇-36
올빼미학교-38
만물의자궁,진흙이여-40
꾸지뽕나무의말씀-42
수묵화-43

제2부
야생수업-47
칼칼한왕붓문장-48
불편당-50
좁쌀영감-52
가을걷이-54
반계리은행나무-55
터미네이터수박-58
똥장군-60
구멍수에대하여-62
침묵의봄을견딜수없어-64
토종씨앗이왔어-66
아버지의워낭소리-68
잰걸음의봄날-70
오래된별의청춘-72
분재농원-74
느티나무신방-76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난촉감의신[Epaphus]처럼
흙주무르기를좋아한다네.
꿈도밥도사랑도,느린내
시의보폭도궁극에는흙으로수렴되는것.
세상은“대지에서그시적인영혼을떼어버린”(헨리베스톤)
인간들로진동한동붐비지만
야생의흙길을맨발로걸으며
흙에서나고자라는식물들과깊이사귀는동안
시적감흥과지혜의희색(喜色)이넘쳐흐르는순간도있네.
흙이여,시여,고맙다.

2023년10월
원주명봉산자락에서
고진하

추천사

거인의어깨와난쟁이

흙주무르기를좋아하는손이번시집의강력한주제로떠오르는것은어쩌면마음과몸의경계일수도있다.책을읽고말씀을전하고시를쓰는인간에게가장집중적으로사용되는도구는생각이나마음일것이다.고진하시인의시쓰기가꾸준하게‘견성의시학’을추구해왔다는점에서생각이나마음은가장소중하며유용한시쓰기의밑천이될수밖에없다.그런데바로그런생각이나마음이덫이되거나올무로작용할수도있는법이다.그리고바로그럴때다음과같은해결책이떠오르는법이기도하다.
-이경호(평론가)

책속에서

숱한생각이꼬리에꼬리를물어도
그꼬리어디서도
시(詩)한잎발아하는일은드물지
그래서
자르고또잘라도
거듭돋아나는
도마뱀꼬리같은생각의손에
괭이한자루쥐어주고
봄볕아른거리는텃밭으로내몰았지
너구슬땀좀흘려봐
네괭이질에토막토막잘린채
꿈틀대는지렁이들과입맞춰봐
네눈에보이잖는땅속
미생물들과으밀아밀통화해봐
생각의폭풍이좀잦아들거야
눈에보이는것밖에볼줄모르는
사람의소리가아니야
텃밭가파릇파릇새순이돋는
꾸지뽕나무의말없는말씀이야
---「꾸지뽕나무의말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