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 사라지는 것들

[POD]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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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상실의 그림자

프랑스에서 어학을 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가족의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겪은 상실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제일 큰 슬픔이자 고통이었다. 내 의지대로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삶의 가치관이 산산이 부서짐과 동시에 인간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은 삶의 의지마저 짓밟았다. 아무리 외면해도 슬픔, 무력감, 분노가 수시로 치솟았고 대체 이 삶을 왜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되묻게 되었다. 그저 열심히 살아온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헛되게 느껴졌다.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남아있는 가족들 곁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슬픔을 극복하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동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더 해주지 못한 후회와 과거의 기억에서 허우적거렸다. 동생이 잠들어 있는 곳에 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자꾸만 드러나는 슬픔을 보이기 싫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땅에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 반, 미완의 학업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 반과 함께 프랑스를 다시 가야 하나 고민할 무렵, 거짓말처럼 동생을 꿈에서 만났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투명한 바다가 펼쳐져 있는 해변을 동생과 걸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색색의 꽃이 피어 있는 숲길에서 사탕처럼 아주 달콤한 공기를 마시며 함께 한바탕 웃었다.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무렵에 동생은 나에게 그동안 예뻐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베개가 다 젖도록 엉엉 울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저 먼 훗날, 다시 동생을 만날 때 누나가 이렇게 열심히 살다 왔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직도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기 위해, 나는 그동안 외면해 왔던 크고 작은 나의 고통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예고 없이 찾아와 내 삶의 일부를 마비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든 고통은 틈만 나면 나를 계속 어둠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기 때문이었다. 부단히 애를 써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멱살을 잡고 끌어올려 보자는 오기 섞인 마음이 커졌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그런 과정에서 쓰게 됐다. 일상의 깨진 조각들을 들추어내어 나의 결함을 인정하기 위해, 한 번씩 덮치는 무력감을 떨쳐내기 위해, 결코 직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그리고 마음껏 슬퍼하고 추모하기 위해.

이 글들이 조금이나마 나와 같은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부족한 나를 늘 기다려주며 지지해 주는 사랑하는 가족과 하늘에서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 순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저자

최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