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노릇

누나 노릇

$14.80
Description
한국의 단편 환상문학, 그 빛나는 성취!
신비하고 경이롭고 으스스하고 돌아버린 이야기들
환상을 꼭 짜내 단편집 하나, 또 하나
중단편이라는 형식은 장편과는 달리 짧은 흐름 속에 이야기를 농축해야만 한다. 날로 씹어먹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짧은 서사를 만들기 위해 꼭 짜내서 농축한 이야기가 가지는 맛이란 또 특별한 법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데에는 18년 동안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온 환상문학 웹진 거울과 그 단편선들의 힘도 있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여기, 신비하고 경이롭고 으스스하고 돌아버린 이야기들을 꼭꼭 눌러서 농축된 단편들을 빚어냈다. 독자 여러분은 지금까지 거울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거울이 걸어갈 길을 이 중단편선으로 함께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환상의 거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보시길.
저자

이나경

단편〈다수파〉가2016년독자우수단편최우수작으로선정되며거울필진에합류했다.앤솔로지《공공연한고양이》,《꼬리가없는하얀요호설화》등에참여했다.

목차

에일-르의마지막손님_해도연ㆍ7
할로윈이든핼러윈이든_남세오ㆍ45
박평수가술법을익히다_김인정ㆍ65
소년a의신발장_홍지운ㆍ97
누나노릇_이나경ㆍ127
산사로9-4번지에어서오세요_지현상ㆍ147
늦봄어느날_구한나리ㆍ173
냉동육_손지상ㆍ199
비극의주인공_유이립ㆍ227
천국의문을두드리며_홍청강ㆍ257
모계유전_김수륜ㆍ319

출판사 서평

신비하고경이롭고으스스하고돌아버린이야기들

내가어릴적에는‘통신판매’책이라는게있었다.전화로주문해서사는세계문학전집같은것들.글자읽기만즐겨하고친구도없으며밖에나가서놀지도않는자녀를둔가여운부모들(예를들자면우리부모님)은전화로책을왕창몽창주문해서아이들을얌전히방에앉혀둘수있었다.
처음거울중단편선을만났을때,그것은‘통신판매’책이었다.하지만어릴때주문했던것과는조금다른형태의통신판매서적이었다.조금만인쇄하고,조금만판매했다.거울은인터넷구석에깊숙하게박힌이야기들의창고같아서,그이야기들을감히널리흩뿌릴수없다는것처럼조심스럽게판매되었다.인터넷주문도요즘네이버페이처럼매양아무때나주문할수있는게아니라,일정한시간이지나면어려운절차와문의를거쳐서도달할수있었다.분명인터넷공간안에있지만,인터넷공간이주는편의성은거의없고익명성만극대화되어있는책이었다.그어려운고생을거쳐손에넣은거울중단편선은그만큼귀했다.그리고그안에는정말로서점에흔히팔리는소설에서는찾아볼수없는신비하고귀한이야기들이있었다.SF,판타지,혹은어딘가경계에서있는문학들.
그게그냥상업성이라고는0이라서그렇게된거라는걸알게된건거울에독자우수단편선정으로합류하고나서였다.그토록조심스러운통신판매서적이된이유는,1년동안올라온작품중에무엇을고를지작가에게출판허락을구하고,편집하고디자인하고찍어내는모든작업을작가들이품앗이로나눠서진행하고있었기때문이었다.2003년부터2016년까지갈수록북디자인과편집이발전해가는과정을보고있자면,역시우물을파는목마른자야말로진심그자체라는걸잘알수있다.우물을파는목마른자의한사람으로서,들어오자마자곧바로인력투입이된나자신도거울의한꼭지를벌써9년동안맡고있다.
거울이한사람이라면벌써중학생이라는농담을작가들과한게엊그제같은데,이젠선거권을가진만18세다.거울이자라는만큼작가들도쑥쑥자랐고,덕분에거울을둘러싸고있는계(界)도쑥쑥자라서벌써3년째거울의중단편선은비밀스러운통신판매서적대신ISBN을달고명실상부한‘책’으로팔리고있다.올해거울중단편선이언제나오는지학교전산실에서수시로확인하던슬픔의세월은이제안녕.알라딘·Yes24·인터파크·교보문고그외전국의서점에서얼마든지내돈주고살수있다.이제는큰노력을들이지않고이이야기의보고에쉽게접근할수있는분들이부럽기도하지만,노력을들여야만이귀한이야기들이널리퍼질수있던시기는또얼마나서러운시기였던지.이아름다운이야기들이시스템의날개를달고더멀리나아갈수있다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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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거울중단편선은볼륨부터가어마어마하다.두권으로출간된건비평선과함께출간되었던2014년《B평》,《그림자용》이후론처음인듯하다.사실2014년에는한권이비평집이었으니,소설만으로두권을채운건처음인셈이다.좋은작가들이거울에새로이많이합류해주었기때문이기도하지만,무엇보다도거울이다루는소설의영역이더넓어졌기때문이기도하다.
첫번째권《끝내비명은》흔히환상문학웹진거울을생각할때사람들이먼저떠올리는거울의(혹은거울출신의)유명작가들,곽재식·김보영·김주영·김이환·배명훈·임태운·정세랑·정소연등을떠올리게하는작품들이다.바로‘과학소설’이주축이되는단편선이다.
거울출신의유명작가라고소개하기가민망스럽게도이번중단편선역시어마어마한창작력의‘재식갑’은소설을실었다.시스템안에서살아가는인간들의지질한군상과‘그럼에도’그사이를비집고들어가는협상력,그사이를중개하는기술을다뤄온곽재식작가는이번소설〈그대를향한사랑은무한이상〉에서도평범한사람들이세상의에러에대처하는방식을사랑스럽게그려냈다.
은림작가의〈을지청계사〉는사라지고있는을지로금속골목을배경으로‘무엇’을만드는울림이깊은이야기다.거울의빛나는신인이경희작가의〈다층구조로감싸인입체적거래의위험성에대하여〉는SF팬들의가슴을뛰게할사이버펑크적배경속에서인간의욕망과시스템을연결짓는흥미로운사고실험을전개한다.공포소설작가로더잘알려진엄길윤작가의〈여긴영웅들이없는곳이아닙니다〉는SF와공포양쪽에발을걸치고있는좀비장르를통해21세기형좀비트래지디를구현해낸다.
김주영작가의〈끝내비명은〉은‘휴대폰중독’인현대인들이라면누구나소름끼쳐할만한서사를제시한다.윤여경작가의〈라스트아담〉은로저젤라즈니를연상시키는유토피아와디스토피아중간에위치한결말이흥미롭다.클레이븐작가의〈마지막러다이트〉는맥락을알수없는불안끝의반전이흥미로운작품이다.정대영작가의〈만코마는별들중에〉는이중단편선의유일한중편으로,인간이라는종의욕망과꿈을선연하게그려내는서사속에서광막한우주를구체적으로묘사한솜씨까지돋보이는아름다운수작이다.
실제집배원으로오래일해온김두흠작가의다정한노동소설〈당신의이름〉과여성의삶에관한중요한인사이트를담은소설을오래써온전혜진작가가인간재생산에관한얘기를담은〈은하철도의밤〉이소설의끄트머리에위치하면서‘환상’이‘현실의거울’이라는점을뚜렷하게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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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알려진거울의한쪽면이과학소설이라면,나머지한쪽면에는때로스산하고때로가슴을저미는환상소설이있다.흔히한국에서환상소설이라고하면《룬의아이들》,《드래곤라자》류의판타지소설이인식될때부터거울의작가들은토도로프의정의에따라분류될수있는초자연적·비일상적·환영적·광적인소설들을어마어마한양으로생산해냈다.이번중단편선의두번째권《누나노릇》은바로이물리적이치에닿지않는이야기들이얼마나독자의뇌리에강력한충격을줄수있는지보여주는이야기들로구성되어있다.
해도연작가의〈에일-르의마지막손님〉은소위‘나폴리탄괴담’에상황과서사를소설적으로부여하면서러브크래프트적섬뜩함까지고명으로끼얹은훌륭한한끼식사다.남세오작가의〈할로윈이든핼러윈이든〉은지난해거울중단편선의표제작〈살을섞다〉에서보여준것과같은불분명함에서오는불안한분위기를끌고나가는솜씨가압도적이다.김인정작가의〈박평수가술법을익히다〉는이단편선의유일한동양풍환상소설으로,오랫동안동양적서사를다뤄온작가답게역사적배경속에선개인이타락해하는과정을동양적이면서도뚜렷한이미지로구현해냈다.
홍지운작가의〈소년a의신발장〉은살인이라는그로테스크한주제와외계인,익명성,심지어는대상a라는철학적개념까지뒤섞인실험적소설이다.이나경작가의〈누나노릇〉은마치흡혈귀이야기로전개될것처럼하다가섬뜩하고속시원한마지막반전이짜릿하다.
지현상작가의〈산사로9-4번지에어서오세요〉는전형적인괴담의구조를소설화한점이흥미롭다.구한나리작가의〈늦봄어느날〉은여성사이의섬세한감정교류를매끄럽게다루는작가특유의문장력속에서날카롭게비져나오는가시들이선득하다.파격적인소재를거침없이꺼내오는손지상작가는〈냉동육〉에서도‘얼음땡’과그로테스크를연결지은신선한이야기를선보였다.
유이립작가의〈비극의주인공〉은공포소설에서흔히다루는주제인‘불쌍한여자’와원한의이야기를반전으로꼼꼼하게엮어냈다.홍청강작가의〈천국의문을두드리며〉는예수가전세계에서가장많다는사이비종교의천국,한국을근현대사와함께엮어낸상상력이돋보인다.마지막작품인〈모계유전〉은공포소설으로서의모든것을충실하게가지고있는작품으로,상상치도못한여성연대가드러나는반전이충격적이면서도깊은감동을남기는대단한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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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한해동안거울이얼마나발전했는지를지켜보는것은,한국의단편환상문학이얼마나발전했는지를지켜보는하나의척도가될수있을것이다.흔히문단문학의반대항으로서쓰이는소위‘장르문학’은몹시한국적인개념이다.
지난수십년간흔히그소설들은잘팔리는문학으로서‘문학성’(대체이건무엇일까요?문단문학을10년간전공했지만,여전히모를개념입니다.)을배제한문학으로여겨져왔다.그러므로장르문학을말할때는장편이먼저언급되었고,거울에서켜켜이쌓여가던단편장르문학들은논의의화제에도오르지못하곤했다.
하지만최근수많은단편장르문학들이아름답게모습을드러내는나날들을본다.중단편이라는형식은장편과는달리짧은흐름속에이야기를농축해야만한다.날로씹어먹는이야기도재미있지만짧은서사를만들기위해꼭짜내서농축한이야기가가지는맛이란또특별한법이다.이런이야기들이더많은목소리를낼수있게된데에는18년동안그자리를꿋꿋하게지켜온환상문학웹진거울과그단편선들의힘도있었다고믿는다.
그래서여기,신비하고경이롭고으스스하고돌아버린이야기들을21명의작가가꼭꼭눌러서농축된단편들을빚어냈다.게으름을부리느라올해도중단편선에글을못싣는바람에이훌륭한책에서문을쓸수있는영광을얻게되어오히려기쁘다.독자여러분은지금까지거울이걸어온길과앞으로거울이걸어갈길을이중단편선으로함께조망할수있을것이다.이제우리의얼굴을들여다보는환상의거울속으로걸어들어가보시길.

-이서영,〈환상문학웹진거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