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 소녀 (전혜진 소설집)

아틀란티스 소녀 (전혜진 소설집)

$14.80
Description
“다양한 여성들의 빛나는 서사”
한국 페미니즘 SF의 기수, 전혜진이 그리는 보드라운 퇴보와 멸망!
무례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전복시키는 우아한 다정함!
세계 최다 발행 SF 잡지 《科幻世界》 글로벌 공모전 수상작가 전혜진의 첫 SF 소설집!

수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책을 쓴다.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20년 동안 기다려 왔으나 아무도 써주지 않은” 책들을 전혜진 작가는 근래 왕성하게 발표해 왔다. 한반도 전체가 거대한 ‘노 키즈 존’임을 통렬히 비판한 장편소설 《280일: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구픽, 2019)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임산부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가 하면, 30년간 읽어온 한국 SF 순정만화를 재조명한 에세이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구픽, 2020)를 발표하며 놓쳐서는 안 될 순정 SF 만화들을 기록했다.

그뿐인가, 옛 귀신 이야기들 속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성, 귀신이 되다》(현암사, 2021)와 불가능한 꿈을 실현한 29명의 여성 수학자 이야기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지상의 책, 2021)를 연달아 내놓았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여성 과학자들을 다룬 《우리 반 마리 퀴리》(리틀씨앤톡, 2020), 《우리 반 에이다》(리틀씨앤톡, 2021)까지 발표했다.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오롯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오롯함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소설집을 먼저 읽은 박문영 작가는 그 원동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얼떨떨할 정도로 성실하고 충만한 열두 편의 단편을 읽고 나면, 손발에 근력이 생기는 것 같다. 있는 힘을 다해 싸우려는 마음, 의로운 마음.” 그 싸움은 때로 〈불법 개조 가이노이드 성기 절단 사건〉에서처럼 과격해지기도 하지만, “작가가 ‘화를 내며 감정적으로 썼다고’ 불평할 일은 없을 듯하다. 이 단편은 어떻게 봐도 충분히 ‘이성적으로 자제’한 결과물이니까. 당대 사회의 의식과 가치관에 전면적인 질문을 해본다는 면에서 SF의 혁명성과 전복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 소설은 그 예시로 아무 흠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작가가 그리는 이 세계는 보드라운 퇴보와 멸망을 향해 간다. 그리고 그 세계를 전복하는 데 전혜진은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은 2007년 전혜진 작가가 《월하의 동사무소》로 데뷔한 이후, 첫 소설집 《홍등의 골목》(온우주, 2013) 수록작을 포함해 14년간 작가가 집필한 50여 편의 중단편 소설을 모두 검토하여 선별해 엮은 첫 ‘SF’ 소설집이다. ‘SF’를 강조하는 이유는, 작가가 근래 발표한 각종 픽션과 논픽션의 끝이자 시작에, 여기 모은 소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혜진은 무례하고 폭력적인 세상에서 현실을 철저히 파헤치고, 과거를 돌아보며 그 계보를 찾아 왔다. 그리고 현실에 머물지 않고 과감히 이를 전복하는 이야기들을 써 왔다. 그 이야기들이 SF인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여기 모은 전혜진의 SF들은 그 우아한 투쟁의 기록이자, 또 잘 벼른 칼날이다. 불합리한 성차별과 인습의 탯줄을 기어이 끊을.
저자

전혜진

소설가.대학에서수학과기계공학,컴퓨터과학을전공했다.주로SF를쓰지만호러,판타지,여기에만화/웹툰과에세이까지다양한장르에서부지런히활동하고있다.2007년,소설《월하의동사무소》로데뷔한후《감겨진눈아래에》,《텅빈거품》,《SF김승옥》등여러앤솔러지에단편을수록해왔고,장편《280일:누가임신을아름답다했던가》를썼다.
불가능한꿈을실현한29명의여성수학자이야기《우리가수학을사랑한이유》,한국SF순정만화를재조명하는에세이《순정만화에서SF의계보를찾다》,옛귀신이야기들속여성들의삶을들여다보는《여성,귀신이되다》도발표했다.어린이와청소년을위한책에도관심을가져《우리반마리퀴리》,《우리반에이다》를쓰기도했다.

목차

01_나와세빈이와흰토끼인형_7
02_우주멀미와함께살아가는법_25
03_교환및반품은7일간가능합니다_61
04_레디메이드옵티미스트_91
05_옴팔로스_125
06_바이센테니얼비블리오필_143
07_불법개조가이노이드성기절단사건_183
08_아틀란티스소녀_197
09_탯줄의유예_243
10_언인스톨_261
11_죽은사람의관위에열여섯사람_303
12_파촉,삼만리_327

작가의말_361

출판사 서평

우리에게너무하는세상에서

〈세상은우리에게너무하다〉는윌리엄워즈워스의짧은시다.시의제목이자첫구절인‘TheWorldIsTooMuchwithUs’는보통이렇게번역된다.

‘세상은우리에게너무하다.’

사람들이잘택하지않는직역과의역도있다.

‘세상은우리에게너무많다.’
‘세상은우리에게벅차다.’
‘우리는속세에과하게파묻혀있다.’

갖가지맥락의문장들을모아보면어쩐지〈레디플레이어원〉의세계가떠오른다.과거가현재를뒤덮은,더는뭘만들어낼필요가없는곳말이다.힘도마음도조화도잃어무엇에도감동하지못하는인류를씁쓸히바라보는워즈워스,1770년생영국시인이느낀괴리에는묘하게도SF적인순간이있다.

*

전혜진이그리는세상도“보드라운퇴보와멸망”(〈레디메이드옵티미스트〉)이가득하다.그곳도이곳처럼‘완만한종말’(〈파촉,삼만리〉)을향해간다.“우아하고고상한척하지만결국은과거의문화를답습하는데만열을올리는사람들의도시”(〈바이센테니얼비블리오필〉)에서는할일이없다.아늑한공회전속에서생활은인공지능이,취향은알고리즘이구획해주기때문이다.하지만소설속이들은이곳에서의아함을느낀다.

‘여전히악취가나는데?’
‘이전과똑같이징그럽고혹독하지않아?’
‘아니,계속이렇게지내려고?’

물음은적의로이어진다.이감정은정당한분노이니까.인재와재해,차별과학대.기술이발달한근미래에도어지러운일은반복된다.허망한죽음이연이어나오는그의이야기들은인간의심신이사실얼마나덧없고허약한지내내일깨워준다.동시에소설속죽음이비극에그치지않는이유는이세계의죽음이종료를뜻하지않기때문이다.생물학적삶은끝나도의식은다시흐른다.탈신체가자연스러운여기서는마인드업로딩기술이주요하게등장한다.등장인물들이생각하고움직여야할시간도사건이후다.살지도죽지도않은채어딘가에끼인존재들은비극,희극,부조리극을자유롭게오간다.임종을엄숙하게다루는방식을벗어난서사엔체념대신활기가돈다.

열두편의이야기는크고작은사건을통과하며막힘없이나아간다.정체구간도우회로도없다.작가가소설외에도만화를오래다뤄왔기때문일까.컷이이어지듯전개가선명해상황을인지하는데어려움이따르지않는다.배경은탄탄하고아이디어는알맞다.장면들은짜임새있고대화에는생기와위트가흐른다.이야기는곧장속도를내며쾌적하게항해한다.튼튼한틀을갖춘각각의단편은작가가말하려는바를온전히담아낸다.여기자리한이들은언뜻의기소침해보이지만실은“의지가강하고,심지가굳고,다른사람이자기인생을좌지우지하는것을두고보지못하는”(〈언인스톨〉),그래서어쩔도리없이툴툴대며사건에휘말릴수밖에없는존재들이다.있는힘을다해싸우려는마음,의로운마음,“더많이알고싶고읽고싶고느끼고싶은그마음”(바이센테니얼비블리오필〉)이그들안에꿈틀대기때문이다.

*

첫수록작〈나와세빈이와흰토끼인형〉은짧은분량이지만단편들을아우르는질의가담겨있다.무겁지않은톤안에몸과의식,거기얽힌소유권에대한서늘한구절이숨어있기도하다.

〈우주멀미와함께살아가는법〉은무례하고폭력적인세상에서누군가의호명이얼마나귀중한일인지알려주는이야기다.이석증을앓는‘나’와의족을단‘그애’와의우정이조금씩움트는과정이세심하다.

〈교환및반품은7일간가능합니다〉를매운맛K-SF로부를수있을까.주인공이관문을통과하는동안맞닥뜨리는현실상은표독하다.작가는특유의또렷한필치로우리가발붙이고사는이곳을투명하게드러낸다.

감정을약물로조절하는사회는〈레디메이드옵티미스트〉에서도엿볼수있다.다른SF와마찬가지로이곳에도안오길바라는미래와오길바라는미래가조금씩섞여있다.신경계약물‘아타락시아’를사용하지않는인물들을통해인간에게고통이필요한지,필요하다면어느정도가적절한지다시금고민해보게된다.

〈옴팔로스〉의수신인은혈육하나이지만,사실은지금의두나가어린두나에게쓰는편지에가깝다.엄마에게받은정서적학대를거의스스로치유해내는중인두나를,아무도미워하지않으려애쓰는그를다독이지않을수없다.

〈바이센테니얼비블리오필〉에서윤현이내려야할판단은쉽지않다.어둡지도환하지도않은세상,풍요롭고앙상한여기서그는무엇을위해분투해야할까.윤현이만날이를궁금해하며소설을따라가다보면읽는다는행위에대한,생각하고방황하려는욕구에관한질문까지만나게된다.

〈불법개조가이노이드성기절단사건〉은동북아시아의한국여성작가가써서더욱강력한이야기다.작가가‘화를내며감정적으로썼다고’불평할일은없을듯하다.이단편은어떻게봐도충분히‘이성적으로자제’한결과물이니까.당대사회의의식과가치관에전면적인질문을해본다는면에서SF의혁명성과전복성을이야기할수있다면이소설은그예시로아무흠이없다.

표제작〈아틀란티스소녀〉는신과인간,자연과문명,반복과변주를다룬거대한영웅담이다.유구하고장대한신화아래짓이겨지기쉬운잔무늬들에대한애정이빛난다.다양한여성들이서사를이끄는이소설집에서,대모험을앞둔소녀들의갈등이인상깊다.

보편적으로병든사회는얼핏아무탈없이멀끔해보인다.〈탯줄의유예〉가그리는사회처럼.이곳의양육자들은아이를어디까지통제할수있는지묻지않는다.편의와안전을위해타인의심신을들여다보는일이당연해진세상이기때문이다.공평의뜻을묻던아이는소설이끝나는지점부터큰과제를안게된다.

수치와책임이낯선단어가되어가는곳에서〈언인스톨〉은시민으로서,어른으로서,사회구성원으로서성인의역할이무엇인지되새길수있는이야기이다.웃지못할재난에처한세상이너무친숙해곤혹스럽지만,결말에다다르면모든도약에는희생과포기가,계보와역사가있다는사실을통감할수있다.

〈죽은사람의관위에열여섯사람〉은도심에서원폭이터지며시작하는이야기다.이곳엔수술전의식을업로드해둔사람열여섯이등장한다.큰사건을작게,작은사건을크게만들며대칭을일부러거꾸러트린매력이돋보인다.

〈파촉,삼만리〉는〈옴팔로스〉와같은서간체소설이다.청두의너에게쓰는편지는애틋하고따스하다.궤도엘리베이터와달과풍등이밝힌밤하늘은고결한선의로빛난다.전혜진의작품중에서도이미래상엔애상이더감돈다.잘잊히지않을문구도있다.이를테면이런말.“그럼에도불구하고이곳에는우아한다정함이있었어.그래서나는다시마음을먹었지.너를닮은이곳을결코아포칼립스이야기의배경으로는만들지않겠다고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