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장례

세 번째 장례

$16.80
Description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작가 윤이안의 첫 SF 소설집
이별과 죽음에 대한 슬프도록 맑고 단단한 위로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어션 테일즈〉에 수록된 인터뷰를 통해 윤이안은 문단에서 등단한 이후 그의 빼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지면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다. 딱히 새삼스러운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했다는 것부터가 신기한 노릇이다.
윤이안의 글은 ‘문단’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의 글에서 읽히는 맑고 단단한 깊이를 보라. 어떤 이들에게 윤이안의 글은, 잡귀가 군자의 그림자를 보고 괴력난신인 스스로의 정체가 들통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꽁무니를 빼고 도망칠 때처럼, 그저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무언가지 않겠는가?

- 홍지운, 소설가
저자

윤이안

소설집『별과빛이같이』가있고안전가옥매치업프로젝트:01기후미스터리에선정되어장편소설『온난한날들』을개발하고있다.변화의가능성을믿는이야기를,조건의한계속에서그럼에도불구하고나아가는사람들의이야기를좋아한다.그리고그런이야기를쓰고싶다.

목차


파울볼_7
세번째장례_15
앨리스,스탠드업_71
어릿광대를보내주오_121
드림레플리카_163
유리수의세계_203
목없는기수_241
뱀과사다리게임_297

작품해설_357
작가의말_363

출판사 서평



슬프도록맑고단단한위로

동료작가의단편집에들어갈작품해설로적절한도입은아니라고생각하지만,이글에는약간의짜증이담길예정임을밝힌다.〈어션테일즈〉에수록된인터뷰를통해윤이안은문단에서등단한이후그의빼어난재능에도불구하고오래도록지면을찾지못했다고한다.당연한결과다.딱히새삼스러운일도,놀랄일도아니다.오히려이런글을쓰는사람이신춘문예를통해‘등단’을했다는것부터가신기한노릇이다.윤이안의글은‘문단’에서소화할수있는수준이아니다.그의글에서읽히는맑고단단한깊이를보라.어떤이들에게윤이안의글은,잡귀가군자의그림자를보고괴력난신인스스로의정체가들통이날까두려운나머지꽁무니를빼고도망칠때처럼,그저경외감을불러일으킬무언가지않겠는가?
농담이나비아냥이아니다.문단의몇몇이들은그들의지향점을장르적인우회로를통해달성하고자했다.그리고나는그들중어떤이들의글을볼때마다상당히짜증이났다.왜삼십대가한참전에지난사람들이살부(殺父)의식에서벗어나지못하고누군가를작품안에서SF와판타지그리고미스터리의도구를빌려대리살해를저지르고있단말인가?하여간참,피비린내인지지린내인지불쾌할따름이다만,어쨌든이런걸너무좋아하는사람들에게윤이안은정말이지설명불가능한괴물처럼보였을것이다.그러니윤이안의오랜방황도필연적인결과였을것이고.
물론서브컬쳐에서살부의식을담지않은작품이없다는이야기는아니다.오히려주류라면모를까.애초에〈스타워즈〉클래식시리즈부터그렇지않은가?다만단순명쾌한활극을거쳐비장한영웅서사를지나최종적으로타락한아버지를용서하고구원하는것으로이주제에대한명징한답을제시했다는결정적인차이가있을뿐이다.뭐,〈스타워즈〉클래식시리즈와같은답을내리지않은경우도많지만내가제기하고싶은문제의식이지워지진않는다.나는의식적으로퇴행에빠진경우라면모를까,살부의식에서벗어나지못한스스로가너무자랑스러운사람들이너무나도버겁다.왜이렇게멸망을좋아하세요….왜이렇게다죽여다죽이세요….좀비영화의B급감성조차못되는걸뭐대단한이야기라도된다는듯이….
맞다.나는지금너무나도납작하게해당신을분석하고있다.하지만윤이안같은작가가이렇게오래도록자신이머물지면을찾아헤매어야만했다는살아있는증거가있으니,나의분석은납작하기는해도부당하지만은않은것같다.어쨌든우리는살부의식에도취되지않고다음으로넘어가야만한다.프로이트가〈토템과터부〉에서이야기했던것처럼,애도의영역으로건너가야만하는것이다.
이애도는윤이안의글에있어핵심이기도하다.이별과죽음말이다.(단편집의여덟편이나되는수록작중에죽음의이미지와동떨어진작품이단한작품도없으니이분석은조금손쉬운결론이겠다.)살부의식을넘어서애도로이어지는과정은결국계승과수용을위한과정이다.이승인은곧타인의죽음을받아들이고일상으로돌아와나의죽음을향하기로다짐하는시간이기도하다.윤이안에게는현실의비극을똑바로바라볼힘이있다.기를쓰며노려보거나무의식적으로흘겨보거나하는것이아니라그저차분하게,담담하게받아들이고바라볼힘말이다.이단단한힘은누군가에게는슬플정도의위로가된다.보다많은사람들이윤이안의글을읽었으면하는이유도,윤이안의글에서많은가치를발견했으면하는이유도여기에있다.
〈파울볼〉과〈앨리스,스탠드업〉은윤이안식으로풀어낸아포칼립스다.운석과충돌하여지구가멸망할위기를앞두고서뜬금없이야구를보러가기로하는두사람이나,화장실에갇혔다가그바깥세상은지옥으로바뀌었음을알게된사람처럼그가그리는멸망은거창하지않고소박하다.이렇게세상이바스러지는모습은재난의손을빌어서현실을박살내고자하는자신의욕망을감추고자하는음습한현실부정과는한참멀다.무언가를향한증오도,그증오를이기지못해스스로를무너뜨리는좌절도없는것이다.윤이안은잔잔하게파멸을음미할줄아는작가다.
〈세번째장례〉는모든사람들이더미신체로기억을이전하며죽음을지연하는,죽음에대한관념이바뀐세계에서딸과어머니가또한번의죽음을앞에두고바다로여행을떠나는이야기며,〈어릿광대를보내주오〉는큰이모의장례식장에유언을따라큰이모와가까웠을누군가의목소리를가진인공지능스피커를들고가게된‘나’의이야기다.모두장례식을무대로하는,이단편집의성격을잘보여주며또가장빛나는작품들이다.두작품모두서늘한죽음의속에서짙은온기가담겨있으며,장르라는우회로를통해보다직관적으로죽음의본질에대해고민한다.
그외에〈드림레플리카〉와〈유리수의세계〉는윤이안의SF적인세계관을설계하는솜씨를,〈목없는기수〉와〈뱀과사다리게임〉은그가SF만이아니라미스터리와호러의문법에도재능이있다는사실을증명한다.이작품들역시죽음이나사후세계에대해다루고있으며,죽음을납득하고받아들이는과정을차분하게묘사하고있다.
너무나도멋진단편집에식상한수식어를붙여민망하지만,윤이안의글은서릿발에서추위를이기고피어난꽃을닮았다.서늘하고아름다우면서고고하다.겉으로는덧없어보이지만사실은무엇보다도강인하고단단하게뿌리를내리고있다.어떤면에서보면윤이안은오래헤맨것처럼보일지모르겠다.하지만내가짐작하기에이사람은단한순간도헤매지않은것만같다.그저묵묵히,주변의냉소와무관심에도불구하고자신이믿는길을따라가며이렇게나멋진결과물을내놓았으니말이다.그의글에는오랜시련속에서도퇴색되지않은,놀라울정도의굳건함이담겨있다.그리고어쩌면작가스스로도그사실이의아한것이아닐까의심이든다.
동료작가의단편집에들어갈작품해설로적절한마무리는아니라고생각하지만,여기에서도약간의투정으로문단을마치는점을양해해주시길부탁드린다.윤이안은글을진짜잘쓴다.그러니까부디주변의호응이적었다거나그의장점을부정하는지적이있다고하더라도휘둘리지않고자신의길을걸어갔으면좋겠다.하지만어차피윤이안이라는사람은그렇게해온사람이고그렇게해나갈사람이니나의이러한요청은애초에별의미가없는일이며,이작품해설역시아무런의미없는혼잣말과별차이가없는셈이다.
-홍지운,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