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지구인들이,계절마다만들어내는경이로운이야기,
SF전문계간문학잡지〈TheEarthianTales〉,그두번째이야기
“창간호가마지막호가되는것아니냐.”<어션테일즈>가각종우여곡절을겪으며창간될때주변에서가장많이들었던말입니다.그런말에애정어린우려가,특히그간척박한땅에서도어떻게든SF라는장르의꽃을피우기위해노력해왔던수많은창작자와애호가들의땀과눈물이섞인것을알기에,<어션테일즈>는창간호에서걸음을멈추지않도록최선을다했습니다.
2호의주제는‘시간여행’입니다.
오늘의우리가밤하늘에서보는것은아주먼옛날의별들입니다.
우리는그별을보고삶의방향을가늠합니다.
어떤외계인들이지금의우리지구를멀고먼훗날하늘에서목격하고,
그빛을보며새로운신화를꿈꾸게될까요?
일년에네번,계절이올때마다찾아오는어션테일즈의두번째이야기를소개합니다.
우리는모두시간여행자
1분에1분씩,1초에1초씩
까마득히오래된일같지만불과몇해전도널드트럼프가미국의대통령이던시절,많은미국인들이트럼프를가리켜“하인라인의악몽이현실화되었다”라며한탄했다.이는미국의SF작가로버트H.하인라인이1940년대에주로쓴일련의중단편소설들,즉미래사(FutureHistory)시리즈를염두에둔것인데,배타적이민자정책이나소수자차별은물론그간미국이나름대로자랑스럽게쌓아올린민주주의의가치들을부정하는트럼프의행보가하인라인이70년전에그린21세기초미국의독재자와놀랍도록유사했기때문이었다.19세기부터무려43세기까지의미국역사를그린하인라인의미래사시리즈에서,21세기미국은과학기술과문화가폭발하듯발전하는‘광란의시기’를거쳐전체주의종교독재국가로넘어간다(<이대로간다면>,1940).독재국가로넘어가기전미국은달을탐사해개발까지할만큼충분히발달한문명을이룩했는데도불구하고말이다(<달을판사나이>,1950).
모든작품이그런것은아니지만,SF의특성상많은작품들이‘미래에있을법한’이야기를다루는까닭에SF작가들은흔히미래학자로오인을받는다.작품에서묘사한기술이나사건들이훗날실제로등장했을때,SF작가들은‘시간여행자’가아니냐며새삼주목을받기도한다.하인라인역시인류사에핵폭탄이등장하기이미5년전에미래사시리즈에서나가사키와히로시마의원폭투하사건을다뤘다(<폭발은일어난다>,1940).하지만하인라인은작품을쓰면서줄곧미래사시리즈는미래에대한예언이결코아니라고했다.이시리즈는그자체로완결되는역사이지미래가아니라고.또한우리의실제역사는진행중인과정이지미라로만들어책에넣어놓는물건이아니라고.
그런가하면,한국의SF작가김보영은일찍이단편<0과1사이>(2009)에서이렇게말했다.
우리는지금도시간여행을하고있어.
1분에1분씩,1초에1초씩미래로흘러가지.
<0과1사이>는김보영의걸작중에서도유독오랜기간동안꾸준한사랑을많이받는작품이다.오죽하면최근복간한구간소설집《다섯번째감각》(2022)에수록하지않고김보영작가의신작을모아서낸《얼마나닮았는가》(2020)에먼저수록을했겠는가.작품성과별개로,작품이쓰인때로부터그다지변하지않은한국사회의교육현실때문이아닐까하는합리적인추측도많지만,나로서는‘우리는모두시간여행자’라는작가의저한마디가두고두고남기도했다.
2호기획회의가한창이던지난해11월,테이블위에쏟아진여러가지아이디어들이풍성했지만,2022년도달력을보고이번호의느슨한주제는무조건‘시간여행’으로하자고제안했다.당시로선멀게만느껴지는4월1일자발행이었지만,3월대선직후에우리의마음은시간을되돌리고싶거나,시간을내다보고싶거나둘중하나가아닐까싶었다.혹은둘다이거나.게다가,지난해아작SF100종을맞이해SF작가와평론가들을상대로한설문에서아작도서중으뜸으로꼽힌책《돌이킬수있는》을비롯해코니윌리스의옥스퍼드시리즈등시간여행만큼작가와독자들에게사랑받는소재도드물기때문이기도했다.오죽하면한국최초의장편SF(《완전사회》,1966)역시시간여행이야기일까.또한출판사로오는투고원고다섯편중최소한편은시간여행SF이기도해서,작가들에게쓰시고싶은시간여행이야기어디한번맘껏써보시죠,자리를깔아드리고싶었다.
1호와마찬가지로,글의수록은형식별로묶지않고독자들이편하게읽을수있도록편집자의의식의흐름을따랐다.여기글소개는형식별로묶어서다룬다.
좀오래되긴했지만,한국어로쓰인시간여행소설중에서가장좋아하는작품중하나는듀나의<시간여행자의허무한종말>(1994)이다.원고지로10매가좀넘을이작품은세상에공개된작가의극초기작품이기도한데,이짧은글에서듀나는과거로회귀하는시간여행소설이갖추어야할바를모두품었다.이런저런시간여행규칙뿐만아니라잘쓰인초단편이갖추어야할위트와정갈함까지.이번호에소개하는다섯작가의초단편역시그장점을두루갖췄다.2021SF어워드중단편부문대상수상작가이서영의<나는우주의환타지>,우수상을받은연여름의<솔티브라운캐러멜>은물론이고,김청귤(<시간여행사우나>)과정지돈(<시간여행살인자>),그리고해도연의봄날처럼다정한<라일락햇빛>까지.단언컨대다섯편의초단편만읽고책을덮어도후회가없을만큼좋았다.
그렇다고정말책을덮는다면현재한국SF의기둥이라해도과언이아닐남유하(<내가죽기전날>)와전삼혜(<성심당사거리메타버스결투에관하여>),그리고황모과작가의신작단편<타고난시절>을놓치는우를범하게될터다.그뿐인가.이제아작의신인작가양성프로그램폴라리스워크숍출신의신인작가이규락(<그들은은색쫄쫄이를입고온다>)과이민섭???이현섭형제의단편<오서로씨의회고록>은이잡지의존재가치를되새기게한다.그래,이렇게다양하고재밌는소설을읽으려고내가정기구독신청을한거지.
천선란의장편《지도에없는행성》연재는창간호부터시작하고싶었으나한호를미루어이제시작한다.함께실린작가의인터뷰를보시면알겠으나,작가의데뷔작《무너진다리》(2019)의출간보다도먼저쓰인이작품은2022년현재한국에서가장촉망받고기대되는SF작가로성장한천선란의씨앗과도같은소설이다.천선란을보면뜬금없게코니윌리스가생각나는데,1990년대전세계를휩쓴코니윌리스를두고‘비극을쓰는코니윌리스’와‘희극을쓰는코니윌리스’두사람이존재한다는음모론이항간에떠돌았다는이야기때문이다.천선란역시단편과장편뿐만아니라비극과희극모두능한데,나는천선란의희극에걸고싶다.
이번호인터뷰는천선란작가와함께,2021SF어워드중단편부문대상수상작가이서영과웹소설부문대상을받은시아란작가를모셨다.설재인에디터의인터뷰기사가너무좋아서매달인터뷰기사를읽고싶지만이잡지가계간지라는점이한스러울뿐이다.
OOO작가의카툰은이번호에도이잡지를대표하는한페이지를고른다면주저없이선택할만큼좋다.4회연재중두번째를맞이하는루토작가(<중력의눈밭에너와>)와진규(<시간여행에대한구패러다임)>작가의그래픽노블은이제본격적인스토리를펼쳐보이기시작했다.이두그래픽노블때문에잡지를구독하는독자가생길날이머지않았다.
청탁할때만해도사면대상이아니었는데지난해연말박근혜전대통령과함께사면대상에오르면서,“박근혜사면을위한들러리냐”라는분노를토한송경동시인의시를수록했다.시인과는아작의첫책《리틀브라더》추천평을받은연이있었다.지난세월을지로OB맥주에서서로등을돌리고각자맥주와노가리를먹은날들이무척많았을것이다.
창간호에이은주제에세이는고호관의시간여행SF에대한글이고,정보라작가와듀나작가역시같은소재로각각다른관점의글을실었다.고호관작가가시간여행SF자체에충실했다면정보라작가는‘유토피아와시간여행’,듀나작가는‘호러와시간여행’을주제로깊이있는글을주셨다.비슷해보이지만전혀다른세작가의글은모아서읽어도좋을것이다.김보영작가는지난호개론에이어본격적인창작에세이를시작하셨다.창작자뿐아니라편집자,독자들의뼈를때리는글을써주셨는데본인은“내가뭘때렸냐”라며태연하셔서약이좀오른다.
연재코너‘SFTMI’,이번호는현직‘핵융합에너지’연구원으로일하는남세오작가의TMI다.처음읽을때는어렵게더듬더듬따라갔는데사흘쯤지나다시읽으니슬쩍웃게되는매력이있었다.여전히최고인한승태작가의에세이<어떤자부심의소멸>은송경동시인의글과연결되는맛이있다.
이번호에도가장힘을준리뷰코너는한작품이늘어서열편의리뷰가실렸다.구한나리,박문영,전혜진,정명섭,정이담,홍지운작가께서지난호에이어최근1년내로발간된한국SF작품을골라주셨고,지난3월10일부커상후보에오른정보라작가의《저주토끼》영문판을번역한안톤허선생께서《그녀를만나다》리뷰를통해정보라작가가세계시장에소구하는이유를분석해주셨다.안톤허번역가와함께김주영,이주혜,박해울작가가새로합류했다.작가들이애정을갖고직접선정한작품들이니만큼독자들도그마음을헤아리시리라믿는다.
이수현작가는‘MementoSF’에서한국SF소개에치중하느라놓쳤을지모를근래번역SF작품들을꼼꼼하게챙겨주셨고,‘서바이벌SF키트’는따로부록페이지를내어드리는게낫지않을까싶을만큼새소식을알차게준비해주셨지만지면한계상줄일수밖에없어서안타까웠다.부디팟캐스트구독으로나머지소식들을접하시길바란다.
SF전문계간잡지<어션테일즈>2호의마지막두기사꼭지는지난수년간한국에서SF부흥을위해함께애써온동료출판사‘구픽’과‘안전가옥’의이야기를담았다.아작과비슷한시기에번역SF로시작한출판사구픽이나,SF를포함해장르소설에집중해왕성한활동을벌이고있는안전가옥둘다창작자와독자들뿐아니라동업자에게도든든한이웃이다.동업자들의고충이우리의고충이기도하고,동업자들의비전이곧우리의것이기도하다.시장의성장을함께이끌어나갈수있길바란다.
한국SF를읽으며가장좋은점중의하나는동시대의현장성을느낄수있다는것이라는말을많이듣는다.그렇지만과연그런가싶은생각을근래자주한다.우리는과연같은시간대를살고있는가.그리니치천문대를기준으로하는시간의편차와는다르게,저마다의삶이다른만큼저마다살고있는시간대도같지않음을많이느낀다.어떤이는여전히80년대를살면서다른이들에게호통을치는가하면,어떤이는다른사람들보다훌쩍앞선시대를홀로걸으며어서따라오라고다정하게손짓하기도한다.결국모든걸음이0과1사이에있을진대,그모든시간여행자들과함께걷는걸음이부디아주늦은걸음은아니길바란다.부디멈추지않고나아갈수있길바란다.다시김보영을인용하여,<가다,서다,돌아가다>를통해다시한번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