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해파리

토끼와 해파리

$16.80
Description
청소년 SF의 기수 전삼혜 작가, 8년 만의 SF 소설집
세상을 이루는 작고 반짝이는 것들

전삼혜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별일 아닌 작은 일들을 다루고 있다. 이런 것을 문단문학에서는 ‘소품(小品)’이라고 부르는데, 소품이라는 말 속에는 ‘별거 아닌 내용’이라는 뉘앙스가 은연중에 끼어들어 있다. 작고 평범한 사람들의 작고 평범한 얘기는 별거 아니라는 소리다. 소품이 아닌 대작, 뭐… 《태백산맥》이나 《토지》 같은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통시적으로 세상을 가로지르는 작품을 써야 대작이라는 얘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제인 오스틴과 같은 여성작가들이 항상 마주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이름이었다. 여성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은 작고 일상적이기 때문에 별거 아니고 쓸모없다는 식의 폄하.
전삼혜의 소설은 그런 폄하에 정면으로 들이댈 수 있을 놀라운 ‘소품’이다.

전삼혜의 소설이 이토록 크면서도 작을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인간이 사실은 작고 소박하다는 사실을 작가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삼혜의 소설 속에서는 악당도 거대하지 않고, 선인도 거대하지 않다. 심지어 커다란 문제를 일으킨 악당조차도 그 욕망은 어이가 없을 만큼 소박하다. 우리는 모두 일상을 살아간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작고 사소한 실수를 회복하기 위해서, 작고 사소한 일들을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전삼혜 작가가 청소년 소설을 오래 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빛나는 사소함에 있을 것이다. 청소년 시기가 가장 빛나는 이유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축적해서 빛나는 자기 세상을 구축해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 이서영, 소설가
저자

전삼혜

1987년서울에서태어나명지대학교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다.걷다가보니어른이되었다.고등학교2학년인2004년에덜컥[마비노기]를깔았다가많은게변한사람.게임팬픽을공식카페에연재하다지망대학을정했다.2016년부터게임시나리오작가로활동하고있다.또청소년SF의길을힘차게달리고있다.목표는‘한국청소년들이한국SF를더많이접하게하는것’.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W...

목차

안드로이드고양이소동7
토끼와해파리23
“울면안돼”에대한실패한연구51
고래고래통신59
성심당사거리메타버스결투에관하여107
마스크에관한학교괴담137
퍼펙트페이스147
당신이나의히어로177
너와함께밤나들이205
미래에게가르치다217
지정석크리티컬슈퍼스타239
모두에게복권당첨311
모르는이야기335

작품해설?365
작가의말?373

출판사 서평

세상을이루는작고반짝이는것들

어릴적‘소설’이라는글자에관해처음썰을풀어줬던선생님은소설(小說)이작은이야기라고했었다.사회적이고정치적인,혹은과학적이고물리적인큰이야기가아니라작고사소한사람들이살아가는별것아닌이야기를소설이라고한다며.그말을들은나는궁금했다.세상은소설가가굉장한사람인것처럼대하고,선생님,선생님,하며칭하는데왜소설은그토록작은이야기인지.
인간이란무릇큰이야기보단작은이야기를좋아하는법이다.사람을제일들뜨게만드는건보통가십이고,거대하고장구한역사의흐름보다는그뒷면에있다는사실인지아닌지도잘모를야사들이재미있다.작은이야기들이이토록흥미로운이유는,삶의특수성이나핍진성이란죄다작은이야기안에모여있기때문이다.제아무리대단한역사라고해도조그마한이야기들의군집이고,제아무리굉장한행성이라고해도자잘한원자들의집합체다.허구한날인용되는그놈의칼세이건은여하간위안이되는구석이있다.우리라는지질한인간들조차별을구성하는물질들로구성되어있다는거.
물론작은걸모아놓은게죄다큰이야기를내포하고있는건아니다.작은이야기속에는눈뜨고못봐줄꼴도허다하다.하지만이눈뜨고못봐줄꼴들이야말로말하자면‘찐’이다.인간의삼라만상과불쾌혹은유쾌는모두이작은이야기들속에자리잡고있다.
전삼혜가꼭작은이야기만잘쓰는작가는아니다.2021년출간되었던전삼혜의옴니버스장편소설《궤도의밖에서,나의룸메이트에게》는꼭작은이야기라고만은할수없다.소설은섬처럼떨어져있는룸메이트들로구성된광막한세계관을가지고있다.하지만여기서중요한점은바로‘섬’이다.아무리거대하고광활한이야기를쓴다고하더라도,결국우주에외따로떨어진작은섬의이야기가된다.전삼혜의시선은소설가의것이고,소설가는작은섬들이촘촘히모여서만들어지는우주를지켜보는‘작은이야기의사람’이기때문이다.전삼혜의소설은바로그점에서사랑스럽다.
전삼혜의소설들은하나같이별일아닌(아니,때때로큰일일때도있지만,이점은뒤에서설명하도록하자)작은일들을다루고있다.이런것을전삼혜와내가전공한문단문학에서는‘소품(小品)’이라고부르는데,소품이라는말속에는‘별거아닌내용’이라는뉘앙스가은연중에끼어들어있다.작고평범한사람들의작고평범한얘기는별거아니라는소리다.소품이아닌대작,뭐…《태백산맥》이나《토지》같은역사적의의를가지고통시적으로세상을가로지르는작품을써야대작이라는얘기의다른말이기도하다.그리고이는제인오스틴과같은여성작가들이항상마주해야했던고통스러운이름이었다.여성들이자신의주변에서볼수있는이야기들은작고일상적이기때문에별거아니고쓸모없다는식의폄하.
전삼혜의소설은그런폄하에정면으로들이댈수있을놀라운‘소품’이다.
〈안드로이드고양이소동〉은전형적으로소품이라고불릴법한귀여운이야기다.내가알지못하는누군가의안드로이드에죽은고양이가등장한다는꿈과같은설정은,모르는이들을한자리에모아각자가사랑했던고양이의이름을애타게부르게만든다.다른이야기들중에서도엄청나게거대한이야기는많지않다.표제작인〈토끼와해파리〉는사람들이애를하도안낳아서말도안되게줄어든세대에태어난청소년들의귀여운우정을다루고있다.장소조차경기도정도의지방소도시로추정되는어느공간을벗어나지않는다.
더욱재미있는점은장편소설《궤도의끝에서,나의룸메이트에게》와같이거대한이야기들도작은이야기로놀라울정도로신기하게수렴한다는것이다.작은이야기가모여서큰이야기를구성하기도하지만,전삼혜의소설은우리가모르는거대한이야기의이면을작고재미있는에피소드안에신기하게욱여넣는다.
제7회SF어워드중·단편소설부문우수상에빛나는〈고래고래통신〉은자기가외계인이라고우기는시각장애인청소년이야기(근데,이제그게진짜인)다.하늘을날아다니고초음파로안전걸쇠를잘라버릴수있는외계인이우리주변에있다면그야말로사회문제가될법한데전삼혜의소설속에서이외계인은그굉장한능력을이제막생긴자신의청소년친구를구하는데사용한다.〈성심당사거리메타버스결투에관하여〉는어떤가.‘고대로부터이어져온천사와악마가펼치는세기의대결!’은대전이라는지방소도시의빵을사기위해서,심지어는메타버스속에서벌어진다.아무도이세기의대결이벌어졌다는사실을알지못할뿐더러,매번발생하는굉장한능력들(성경구절을그대로재현하고,시간을뒤로돌리는등)은서로의것끼리맞부딪혀서상쇄되어버린다.결국이들은마치아무일도없었던것처럼서로의연대감만확인하며흩어지고만다.그나마타자라는거대공동체에세계적으로영향을미치는소설이〈퍼펙트페이스〉일텐데,모든한국인들이위인의얼굴을따라성형을하게만든이들의작은욕망은그냥회사에서잘리지않는것이었다.
전삼혜의소설속인물들은잘안쓰이는학술적용어로말하자면,‘핍진’하다.찐이라는소리다.그들의욕망은세상을바꾸거나거대악같은외형을띠고있거나진영에귀속되어있지않다.작고소박하며일상적이다.그렇기에이작은이야기들속에서우리는우리삶에나타나는‘진실한감정들’을모두찾아낼수있다.그중에서도가장두드러지는건바로연대감이다.평범한사람들이일상에서만날수있는가장아름다우며본질적인,그러나만나기가그리쉽지는않은귀한것.전삼혜의소설속에등장하는이들은각자의세계속에서고군분투하다가,타인과의연대감을통해세상과자신의삶을아주조금,정말아주조금바꾼다.어떤사람들에게는눈에도잘띄지않을만큼자그마한한걸음이다.
〈고래고래통신〉,〈토끼와해파리〉,〈지정석크리티컬슈퍼스타〉에는전삼혜의전매특허라고할만한플롯과인물들이등장한다.내가유명한문학평론가라면이런주인공과플롯을피카레스크식구성처럼‘전삼혜식’구성이라고이름지어서다른소설을평하는데에도써먹을것이다.소설속의청소년들은각자의작은욕망에솔직하고,타인의작은욕망에예민하다.그들이꿈꾸는건세계에서서로를온전하게지켜내는것이며,사소하고우스운연대의힘으로그들은서로를단단하게묶어서거친세상에서연대감을확인하고서로를지켜내는데에성공한다.상대는사회적시선(〈토끼와해파리〉)일때도있고,못된또래집단(〈고래고래통신〉,〈지정석크리티컬슈퍼스타〉)일때도있지만악도그렇게강력하고끔찍하진않다.악에도악이될만한안쓰러운이유가있다.전삼혜의연대감은〈고래고래통신〉속강솔의한마디로묶어낼수있을것이다.“왜불쌍하다는감정이역겹게느껴질까.”이들은모두어딘가나사가좀빠져버린사람들이지만서로를가엾게여기지않는다.누구도위에서부터타인을내려다보지않고,정면으로서로를바라보는힘을가지고있다.
한편,SF작가로서의전삼혜의장점은자신이그리는인물들의성향과퍽닮아있다.〈성심당사거리메타버스결투에관하여〉가보여주는SF적상상력이전형적이다.
“상상가능한것은뭐든지.단,이곳은논리의세계예요.논리가불완전하면뭔가를만들수없어요.제가아까바늘을만들어낸이유를설명했듯이.”
전삼혜의SF는일종의코드짜기게임같은것이다.일정한논리가적용되는세계를구축하고,그안에서그세계의규칙에한계점들을부여한다.그한계점안에서인물들은싸워야한다.일정한중력이부여된격투게임전장과도같다.슈퍼히어로지만높은데올라갔다가떨어지면다리몽둥이가분질러지는〈지정석크리티컬슈퍼스타〉의주인공지정석처럼,외계인이지만허언증환자취급이나받고사는〈고래고래통신〉의이원처럼.거대한이야기건자그마한이야기건하나의논리를구축해서그안에서이야기를쌓아나가는건마치어느프로그램의코드를성심성의껏짜고있는개발자의뒷모습을보는느낌이다.전삼혜가만들어낸텍스트게임속에는숨어있는아기자기한이스트에그도많고,에피소드의뒷얘기를볼수있는소스들도많다.무엇보다그는,형식과내용은분리되지않는다는걸여실히보여준다.
전삼혜의소설이이토록크면서도작을수있는이유는,모든인간이사실은작고소박하다는사실을작가가잘이해하고있기때문이다.전삼혜의소설속에서는악당도거대하지않고,선인도거대하지않다.심지어커다란문제를일으킨악당조차도그욕망은어이가없을만큼소박하다(〈퍼펙트페이스〉).우리는모두일상을살아간다.일상속에서우리는모두작고사소한실수를회복하기위해서,작고사소한일들을벌이는평범한사람들이다.전삼혜작가가청소년소설을오래쓸수있었던가장큰이유는이빛나는사소함에있을것이다.청소년시기가가장빛나는이유는사소한이야기들을축적해서빛나는자기세상을구축해나가는시기이기때문이다.
그래봤자인간의마음은열여섯살에서성장하지않는다.더자랐건덜자랐건간에매일의일상과격투해서세상에돌하나더얹는게평범한인간의삶이다.우리의작은일상이세상을구축해낸다면,그게세상이돌아가는원리라면,전삼혜의소설은칼세이건이말한그인간의본질과가장닮아있는서사가아닐까.우리는모두별을이루는물질로구성되어있다.전삼혜의소설이작고반짝이는이야기로구성되어있듯이.

―이서영,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