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관의 왕이 이르니

백관의 왕이 이르니

$16.80
Description
“최근 몇 년간 읽은 한국 장르 소설 중에서도,
가장 큰 만족감을 준 작품”
본격 장르소설의 우아함, 《슬기로운 문명생활》 위래의 첫 소설집
위래 작가는 독자가 장르 장 안에 한 발쯤은 들여놓았으리라 가정하고 간단히 세계를 설명하며 훌쩍 규칙을 넘는다. 작가가 익숙한 게임을 제시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 더 신이 나는 독자 부류가 있다. 이 ‘익숙한 게임’에서 독자가 기대하는 것은 하나다. ‘내가 아는 것을 보여주되, 내가 지금껏 보지 못한 이야기를 보여줄 것’. 문장 자체에 모순이 있듯이, 많은 이들이 시도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그리고 위래 작가는 이 기대를 만족스럽게 충족한다.
- 김보영, 소설가
저자

위래

단편「미궁에는괴물이」가네이버‘오늘의문학’란에게재되어첫고료를받았다.2014년3월단편소설「동전마법」이큐빅노트공모전에당선되어온우주소식지에게재되었다.2015년7월단편소설「성간행성」을크로스로드SCI-FI란에게재하였고,2017년4월단편소설「쿠소게마니아」가브릿G출판지원작으로선정되었다.2019년장편연재소설『마왕이너무많다』를11권으로문피아에서완결했으...

목차

동전마법7
르네브라운을잊었는가43
아래에서75
성간행성111
쿠소게마니아145
미궁에는괴물이161
술래잡기201
영웅은죽지않는다229
우리269
백관의왕이이르니305

작품해설_365
작가의말_373

출판사 서평

미학적인논리를펼치는
경쾌하면서도묵직한환상

위래작가의이름을언제부터들었던가,거의내데뷔연도만큼이나오래된듯하다.한번도교류하거나만난적은없건만,그이름은내가흘러다니는인터넷장어딘가에서내내어른거렸다.서평이나비평,리뷰와댓글사이에서.그이름을처음각인했을때는서울학생인권조례제정을위한주민발의운동무렵이었다.당시내가블로그에서서명이벤트를했을때,위래는가장많은서명을받아온사람이었다.

그는그후로도계속눈에어른거렸고,“상업성을생각하지않는것이순문학의기준이라면한국에서는판타지단편이야말로진정한순문학이다.”같은도발적인선언을하는사람으로기억에남아있었다.소설을쓰는줄은알았으나출간소식은들리지않아서,괜히저사람어떻게먹고사나걱정하기도했다.그러다한인디출판사에서출간한용앤솔러지에수록된〈백관의왕이이르니〉(《드래곤에게가는길》,미씽아카이브)를읽은날,나는그간이름만알던이사람이어느덧큰작가로훌쩍자라났음을깨달았다.이중편은최근몇년간읽은한국장르소설중에서도,가장큰만족감을준작품중하나다.

인터넷이생겨난이후제도권출판의검열없이작가와독자가직접소통하게되면서한국장르시장은크게꽃을피웠지만,인터넷이라는무한한지면이대하장편을선호하는경향이있어단편과짧은경장편장르소설은지면이없는시절을더감내해야했다.내가속한곳이SF장이었기에늘SF지면에만몰두해왔고,어느덧그럭저럭좋은시절이찾아와안심하던차였는데,〈백관의왕이이르니〉를보자마자그간판타지단편이소외되고있음을깨닫고혼자애가닳았다.

미국의휴고상,네뷸러상도국내에서는SF상으로만알려져있으나,명백히판타지인《해리포터》도휴고상을수상하듯이SF와판타지를엄밀하게나누지않는다.하지만지금한국에서는새로생겨난공모전도과학기술에천착하는편이고,과학기술에천착하지않으면현실에천착하는바람에,정통판타지단편은어째설자리가없어보인다.SF와판타지의경계가SF와일반소설의경계보다도좁건만!마치예전에,‘SF는장르에서받아주겠지’,‘단편은일반소설의영역이지’,하며양쪽에서무관심한바람에‘SF단편’이갈곳이없었던것처럼…….위래작가의말마따나,현대한국에서판타지단편을쓰는일이야말로돈과명예는커녕출간조차고려하지않는,가장순수한창작행위가되고만듯하다.

위래작가가《슬기로운문명생활》을비롯한웹소설을활발하게쓰고있음은알고있었으나,그래서이우아한작품은어디서출간되어야하나괜히혼자걱정이었다.이렇게책이나오고또내언어로소개하게되어기쁘다.내가처음접했던위래의소설이〈동전마법〉이기도해서나는이소설집이근래보기힘들었던,검과마법이등장하는정통판타지단편선이되리라지레짐작했었다.하지만소설집에는특이점이후를다룬하드한SF까지포함하여다양한장르의작품이수록되어있다.

추리소설을본격과사회파로나누는흐름이있다고안다.본격추리는트릭과추리그자체에집중하며,작가가짜놓은무대에서독자에게게임을제안하고,독자는그게임의규칙에맞추어두뇌싸움을한다.사회파는추리자체보다도소설의현실성과현실과의접목에더초점을맞춘다.물론모든소설을그렇게정확히딱나눌수없을테니,그저느슨한경향성에대한용어다.언젠가이수현번역가께서SF도그렇게본격과사회파로나눌수있지않겠느냐고말씀하신이후로저분류가인상에남았다.그분은팬덤에서흔히말하는‘하드SF’는실상진짜‘어려운SF’가아니라,‘본격SF’를말하는것이아니겠느냐고하셨다.물론‘본격’이라는단어가주는인상과달리,소설의방점이어디에있는가로나누는단순한분류상의용어라하겠다.

위래작가의소설은‘본격’이라는이름을붙여도좋을계열에있다.작가가소설초반에무대를꾸미고,TRPG마스터처럼세계의규칙을선언한다.그리고제시된규칙하에서3단,다단논법을연쇄적으로펼치듯이소설을전개한다.A가가능하다고전제했으면B도가능하며,A와B가가능하다고가정하면이제껏상상하지못했던C가가능하며,A와B와C가가능하다면놀랍게도……하며뛰어넘는다.소설은현실의적합성이아니라논법의적합성에따라펼쳐지며,현실에서있을법하지않은일도제시된세계의구조안에서는명확하고분명하며예측가능하다.독자는체험이아니라작가의규칙에맞추어,더해서장르의규범에맞추어전개를기대한다.소설의미학은물론논리그자체에있다.이런소설은순수하게장르적인쾌감을준다.고백하자면이것이원래내게익숙한장르소설의한갈래다.지금현재의한국장르단편시장에서흔치않은기법이기도하다.지금의장르단편시장흐름의가치와는별개로,이렇게꿋꿋이자기색을지키는작가를발견하는것도또내심반가운것이다.

독자는작가가초반에제시하는한두문장,단서로빠르게세상의구조를파악하게된다.장르에익숙할수록이단서들은손쉽게파악된다.위래작가는독자가장르장안에한발쯤은들여놓았으리라가정하고간단히세계를설명하며훌쩍규칙을넘는다.작가가익숙한게임을제시하는것을깨달았을때더신이나는독자부류가있다.이‘익숙한게임’에서독자가기대하는것은하나다.‘내가아는것을보여주되,내가지금껏보지못한이야기를보여줄것’.문장자체에모순이있듯이,많은이들이시도하지만쉽지않은길이다.그리고위래작가는이기대를만족스럽게충족한다.

〈동전마법〉은이런작가의기법을보여주는친절한도입부다.‘고작동전을뒤집는마법으로무엇을할수있는가?’하는질문은‘동전을뒤집을수있다면또무엇을뒤집을수있는가?’하는질문으로변한다.독자는작가가그답을훌쩍도약하는모습을멍하니지켜보다가감탄과웃음을같이터트리게된다.

〈르네브라운을잊었는가〉에서작가는의체기술이상용화된특이점이후의시대에발생할법한가장끔찍하면서도충분히있을법한사건을제시한다.속도감넘치는모험담이흘러가는가운데서도제목그대로의질문이독자의뇌리를직격한다.이기술로인한가장심각한피해자를잊고어디로가겠다는건가?

〈아래에서〉는어느평범한아침,학교에가려고아파트엘리베이터를타고1층으로내려가는일상에서시작한다.그런데엘리베이터가1층에서멈추지않고더하강한다.‘왜하강하는가’하는질문은‘만약엘리베이터가하강한다면어디까지하강할수있겠는가?’로변한다.하강의경로는상식과상상을넘어서지만주어진규칙안에서는문제가없다.

〈성간여행〉은‘도시’의시점에서세계를바라보는우아한작품이다.독자는도시의한정된정보와시야와기계의논리를따라차츰세계의구조를파악하며시야를넓혀나간다.그세계는익숙하나익숙하지않고,낯설지만낯설지않은영역에있어장르적인쾌감을준다.

‘익숙한듯한데도지금껏보지못한전개’가펼쳐지는것은,위래작가의소설이주어진논리안에서아름답게비약하기때문이기도하지만,인물들의선택이늘초인간적이리만큼인간적이기도해서다.큰고난을인내심있게감내한이들은무심하리만치고결한선택을한다.작가가그려내는세상이현실을벗어나명쾌하듯이,인물들마저도현실의인간이속물적인기질없이명쾌하다.이들은마치어느이상적인판타지세계에서다른가치를두고살아온사람들처럼순수한길을선택한다.

〈쿠소게마니아〉는여객기가학교에충돌하는대재난직전시간회귀에빠진소년의이야기다.시간회귀로문제를해결하는소설은장르독자에게익숙하건만,주인공에게주어진시간은하루나,한시간,몇분도아니고단17초다.17초.이경악스러운찰나의시간속에서소년은미궁같은학교에서벗어나려고안간힘을쓰지만,도저히시간을맞추지못하고무한한죽음의굴레에잡힌다.상상을넘는고난끝에경이로운성공을앞둔순간,소년은한번더독자의상상을훌쩍넘는인간적인결정을한다.

〈미궁에는괴물이〉는독자를미궁한복판에던져넣고시작하는유쾌한소설이다.단하나의길을벗어나면죽음에이르는미궁에서,주인공은고난을감내하면서도무심하리만치인간적인선택을한다.
〈우리〉는수업이끝난어느평범한날,어째서인지계속친구들이사라지는교실에서시작한다.‘왜사라지는가?’하는질문은‘어떻게하면사라지지않을까?’하는질문으로변하고,독자는주인공들과함께머리를맞대고소멸을피하기위한두뇌게임에돌입한다.

위래작가의소설은경쾌하다.작가는냉소와농담으로무거운장면을물흐르듯이가볍게흘려넘긴다.하지만가벼움은그저전달방식에만있으며,편마다밀도가크고각편에담긴이야기의결이풍성하다.

이책에서가장큰분량을차지하는〈백관의왕이이르니〉는이런작가의장점이집결된작품이다.고아한논리전개의절정이다.
용은인간의소원을들어준다고약속하고그약속에속박된다.여기까지는여러민담과설화에서익숙한풍경이다.더해서,‘그런경우에는어떤소원을빌겠는가?’하는질문에,‘세가지소원을들어주세요…….’같은,다중의소원을비는상상도오래되었다.여기까지도장르에한발을담근사람이라면익숙하다.하지만이소설속의왕은두꺼운법전을턱하고내민다.

이제‘약속’은다면적이고다층적인법령해석의문제가되었고학문탐구의영역이되었다.그리고학문은정치의영역이된다.용은법해석의각축장이자정치의각축장이된복잡한약속을벗어날방법을2천년에걸쳐탐구한다.그리고주인공들은그끝에고결한선택을한다.용의선택은인간사를초월해있어고결하며,학자의선택은인간적이어서고결하다.그들의선택이작가가그려내는논리의우아한직조끝에고귀함을한겹더한다.작가가말하듯이,‘출간조차장담할수없고독자를만날지어떨지도모를’작품을이처럼진중하게,마음을담아쓰기가과연쉽겠는가.순수하게이장르를사랑하는마음이없고서야.그꿋꿋한태도가다시금소설에사랑스러움을더한다.
―김보영,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