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해야우리는SF에젠더해방의책임을지울수있을까.
그리고그렇게해야만하는걸까?
당대중국SF에서젠더는다른문학장르에서도그러하듯아주까다로운문제이다.중국현대문학은20세기이후로비슷한문제를마주했었다.무엇이여성혹은논바이너리(non-binary)작가의작품을다르게보이도록만드는가.이런차이점이작품독해에어떠한영향을미치는가.주변화된젠더를위해다른기준을만드는것이오히려제약으로작용하는건아닐까.여성작가의작품이다르게분류되면서더는시스젠더(cisgender)남성작가가쓴작품과비견할수없게된건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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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문제들은다른장르소설에서도여전히발견된다.이번단편집이획기적인건이러한문제뒤에숨겨진의의를함께탐색했다는점에있다.각각의이야기는삶의종결이나타자돌봄,기술제약으로유기자아와내면의감정을강화할수없게된우리,혹은자원이고갈된세계속에서의공존등특정한방식을상상으로그려내면서유한성을사유했다.영원한약속은때로사랑,세상에대한애착,시간,사랑하는이를향한그리움으로표현되었고우리의생존능력을시험하는리트머스지가되었다.반면영생과사망그리고영성을향한갈망은테크네(Techne)뒤에있는“진정한사람”을나타냈다.이번단편집에참여한작가들은보편성을지닌화제를다루면서도보편주의에얽매이지않았다.자녀부양과양육시뮬레이션을논의하고우주로이주한인류를이야기하면서도그들은거대서사를거부하였다.대신각각의이야기에정체성을다루는질문을담으면서도이데올로기적인의제를뛰어넘는배려와사려를택했으며무거운역사를솜씨좋게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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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진실과환상을,현재와미래를자유롭게오간다.이책은중국어외의언어들로출간되는중국SF중여성작가와논바이너리작가의작품만을수록한최초의단편집으로다음의질문들을피할수없을것이다.이단편집을특별하게만드는것은무엇인가.혹은이단편집의목적은무엇인가.현실을담고있지는않지만,생각해본적이없는미래를상상하고자하는장르에젠더이야기를어떻게담을수있을까.어떻게해야우리는SF에젠더해방의책임을지울수있을까.그리고그렇게해야만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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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중국SF는우주탐험과식민,우주의수수께끼,인류운명등큰주제를다루면서전세계적인인기를얻게되었다.그러나여성과다른주변화된집단이가지고있었던사회적관심과급진적인사고는별다른호응을얻지못했다.세계적으로큰반향을일으킨류츠신의《삼체》삼부작도여성캐릭터가지나치게평면적이라는평론가의지적을받았으나이러한목소리는대거파묻혔다.디스토피아세계관을기반으로사회를비판했던단편〈접는도시〉로류츠신에이어휴고상을수상한하오징팡은주변화된젠더집단에속하는작가들이급증하는가운데주변화된작가가주류의인정을얻은흔치않은사례이다.이번단편집의주요특징중하나가이들의목소리를실은것이듯이들은이제야작품을발표할지면을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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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단순히장르로만횡단하는게아니다.SF의공동체와독자층은항상세계적이었고,현실과상상의공간을오갔다.20세기초중국에서일어났던첫번째SF붐을돌이켜보면,그시절의작품은장르와작가의성별이모두변동적이었으며사람들의기대에부합하지않았다.반면오늘날의SF는젠더뿐만아니라우리시대의과학기술현황등더폭넓은범위의문제를생각해보도록요구하고있다.지금우리가있는이곳은,우리가마주한사회환경에서는더는다양성과다원성이선택으로존재하지않는다.이것은이미현실이다.
젠더는장르가그러하듯매번새로운문제를마주하게될것이다.이제껏그러하였듯앞으로도그러할것이다.중국SF는여전히새로운장르지만,온갖새로운방식으로독자를사로잡을것이며세상의미래를끊임없이생각해보도록만들것이다.
―스징위안
<역자후기>
2019년베이징국제도서전에서번역살롱행사에참여한적이있다.중국문학번역가들을대상으로진행했던행사였는데,하루는중국SF작가인천추판의출간행사가열렸다.정확히는개정판출간행사였다.천추판작가의대표작이자2013년에출간되었던『황조(荒潮,WasteTide)』가영문판출간과함께중문개정판으로나왔기때문이었다.천추판작가는자리에앉은번역가들에게이번개정판을출간하게된계기를가장먼저이야기해주었다.
천추판작가가총98곳에달하는부분을수정하게된계기는놀랍게도켄리우였다(한국에서는켄리우가작가로유명하지만,중국에서는번역가이자중화권SF작품을영미권에소개해주는에이전트로도유명하다).그렇다면켄리우는왜천추판에게작품을수정하라고권했을까.그건천추판작가의작품속에,소설을이루는언어에여성혐오가담겨있기때문이었다.그날천추판작가는이제껏당연하게써왔던모국어인중국어에여성혐오적인부분이그렇게많을줄은몰랐다고,무지했던자신의과거를반성하면서작품을수정했다고했다.
확실히중국어에는,한문에는여성혐오적인부분이많다.여성을뜻하는‘女’가두개가되면‘송사할난’이되고,셋이되면‘간음할간(姦)’이된다.요(妖)는한끗차이로‘요사할요’가되거나‘아리따울교’가된다.글을쓰는작가라면언어속에담긴혐오를예민하게포착해야할것이다.작가가구축한세계는결국언어로이루어졌기때문이다.
그때문에혐오가담긴언어를수정하는것은작가로서도번역가로서도독자로서도당연히환영할만한일이었다.그런데나는어쩐지아쉬운마음이들었다.그자리에여성이없었기때문이었다.심지어여성혐오를논하는자리였는데도말이다.그날의‘여성’은스징위안의표현대로‘남성의정신을담는그릇’으로만언급되었다.그날사람들은천추판을이야기했고,류츠신을이야기했으며켄리우를이야기했다.그들의작품속에담긴‘여성’을이야기했다.하지만여성SF작가는누구도논하지않았다.나또한아무말도할수없었다.내가알고있는여성SF작가와작품이없었기때문이었다.
―김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