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 음모

하얀색 음모

$16.80
Description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단편 환상문학, 그 빛나는 성취!
20년 동안 거울이 지켜온 신비하고 경이롭고 으스스하고 돌아버린 이야기들!
김보영, 배명훈, 정세랑, 정보라, 곽재식 등 한국 장르소설의 대표 작가들을 배출한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대표중단편선 그 열여덟 번째 이야기!
며칠 째인지, 몇 달 째인지, 몇 년 째인지 알 수 없지만 ‘하루’를 반복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흔한 얘기죠. 주인공은 그 반복을 견디기 위해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좀 쓸모 있는 일들을 위해 노력합니다. 열심히 노력은 하지만, 그 숱한 타임루프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아주 절실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쓰던 소설을 마저 쓰고, 한 끼의 식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남는 시간에 세상을 위해 조금, 아주 조금, 할 수 있는 만큼만 애씁니다. 아무리 무한의 시간이 주어져서 끝없이 하루를 반복한다 한들 거창하게 세상을 구하겠다고 설쳐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 일상에서 어쩌면 가장 놀라운 사건은 화장실에서 하얀색 음모를 발견하게 되는 일 따위입니다. 어제와 똑같은 반복되는 시간인데, 음모만 하얗게 쇠다니 이건 또 무슨 일이랍니까.

환상문학웹진 ‘거울’이 창립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20년쯤 한 가지 일을 계속하다 보면, (사실 그와도 상관없이) 그 시간이 선형으로 흐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20주년을 맞이한 대표중단편선의 표제작이 타임루프물 〈하얀색 음모〉라는 점은 문득 피할 수 없는 운명 같기도 합니다. 떠난 이도 남은 이도 새로 합류한 이도 많지만, 20년간 어느 하루 빠짐 없이 거울의 작가 중 누군가는 시지프스처럼 글을 써 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얀색 음모》는 아작에서 출간하는 다섯 번째 (책으로는 여섯 번째) 거울 대표중단편선이기도 합니다. 지난해와 또 무엇이 달라진 거울의 모습일지 꼼꼼히 헤집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올해도 환상문학웹진 거울 대표중단편선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

김청귤외

아주오랫동안,즐겁고행복하게글을쓰고싶은사람.
《재와물거품》,《해저도시타코야키》를썼다.

목차

01_서문_구한나리_7
02_남쪽눈때기_진정현_17
03_파고들다_지현상_55
04_하얀색음모_김청귤_75
05_고양이를좋아하세요_남세오_107
06_커튼콜_김산하_121
07_피루엣_구한나리_149
08_제주문어는바다처럼운다_빗물_173
09_미정아파트_고타래_209
10_천국의벌레들_클레이븐_255
11_이기적이다_유이립_285
12_영애_곽재식_301
13_코로나호캉스의추억_엄길윤_315

출판사 서평

2023년거울20주년,거울은지금여기에와있습니다

[내년이거울20주년이랍니다]

《그리고문어가나타났다》에실을원고를한창마무리하던2022년6월,필진게시판에올라온글의제목을보고놀란필진이나만은아니었을것이다.12주년기념으로12지신특집호가올라온게2015년,거울창간호가발간된게2003년이니2023년이20주년이맞았다.하지만7080에태어난(혹은그이전)사람들이2000년이후의시간에대한감각이라는게대부분그렇듯이,숫자로야2023−2003=20계산이되더라도,2003년이벌써20년전이라는건그렇게잘실감이나지않았다.위키백과를켜고2003년을검색해봤다.2003년늦겨울초봄그사이무렵에우리나라는대구지하철사고로수많은생명을떠나보냈다.9월에는지금도태풍규모를설명할때종종언급되는태풍매미가상륙해큰피해를안겼다.〈대장금〉이첫방송을시작했다.2003년에일어난일을읽어보다보면,2023년의지금과20년전이그렇게많이바뀐건아니라는생각도들고,새삼스럽게이일이벌써20년이나됐다니,그게겨우2003년의일이라니,낯선감각이들곤한다.

몇번이나소개된적이있지만,웹진거울이처음만들어질무렵은,소위말하는‘장르’단편을쓰고발표할곳을찾기어렵던때였다.2003년최대베스트셀러는베르나르베르베르의《나무》였고,활발히신간이나오는해리포터시리즈를읽지않는10대가드물었지만,여전히우리나라에서SF,판타지를쓰는사람들은글을공개할곳도,읽을곳도찾기어렵던때였다.한국작가의장르작품을외국작가의작품보다먼저읽었고,그런글을쓰고싶어서작가가되기로마음먹었다는사람들도보이는,2023년에서보면그런시절이있었냐고되물을지도모르겠다.그러나한국의조앤롤링을,한국의스티븐킹을찾는다는공모전이생겨나고또사라지던시기를지나장르공모전은더이상외국베스트셀러작가의이름을인용하지않게되었으며우리나라장르작품이베스트셀러가되고,이제는장르단편집,앤솔로지만으로서가를채울수있는시대가됐다.

이런시기에웹진거울의존재를처음알게되는사람들은,매년나오는거울단편선을처음읽게되는사람들은,조금의아하게생각할지도모르겠다.요즘나오는단편집에비해서는두껍고,SF를읽다가갑자기판타지세계에던져지고,호러가있고,처음보는스타일의글도있는이책이,매년책을묶어왔던웹진의역사속의한페이지라는걸느끼지않으면,어떻게이런작품들이한권으로묶인건지이상하게느껴질수도있겠다.그리고어쩌면그런의문을가지고웹진거울사이트를찾아와서,‘이작가작품이여기있네?’라고놀랄일도있을지모른다.환상문학웹진거울의‘환상문학’이무엇인지궁금해질지도모른다.거울에오시면마침20주년기념칼럼〈거울리뷰작품을중심으로살펴본환상문학의역사 (pilza2)〉가올라와있다.거울이다루는작품이어떤것인지잘설명해주는글이다.

이번단편선의12개작품역시,다른단편집에서볼수없는다양한범주의작품이실려있다.그리고특히이번거울단편선은,거울‘창작게시판’을통해처음거울과만난작가가12명중8명이나된다.필자는이작가들의첫작품을기억한다.더많은사람이읽었으면좋겠다고바라던작품이책으로묶여나올때의기쁨,낯선자리에서내가좋아하는작가의이름을들으며설레는마음을알게해준작품들이다.

첫작품인〈남쪽눈때기〉는,2021년창작게시판에게시되어분기우수작으로선정된작품으로진정현작가는이단편집의작가중가장최근거울첫글을공개한사람이다.한사람의수다로구성되어마치누군가의수다를옆에서듣고있는것같은기분으로즐겁게읽을수있다.주인공이갑자기갖게된힘이무엇때문인지이유를알지못하더라도,자신의시간과능력을할애해서타인을위한일을하는것이얼마나아름다운일인가.화자가투덜대고가끔거친말이섞이더라도,이런사람이실제있으면좋겠다고바라게된다.누군가가아무관계도없는사람을위해서시간과능력을할애한다는것은무엇이든아름답지않은가.이글에서그려지는환상적인힘이아니더라도,타인을위한선의의아름다움이비틀리지도나쁜결말로도치닫지않는이야기는마음을따뜻하게만들어준다.

〈파고들다〉의지현상작가는2013년창작게시판에〈완벽한죽음을팝니다〉,〈내겐너무나아름다운〉을게시하며거울에작품을공개했다.2018년에필진으로합류했고,2023년에는거울의첫공개작〈완벽한죽음을팝니다〉를표제작으로하는단편집을펴냈다.거울의환상문학중한축을차지하는호러의중심작가이기도하다.〈파고들다〉는고대유적탐사를제안받은연구자에게일어난일을다룬다.그시대에있을수없는‘오파츠’가주는신비로움과공포가강렬하다.뒷골이서늘해지는호러특유의여운이압권이다.

〈하얀색음모〉의김청귤작가는2019년처음창작게시판에〈찌찌레이저〉를게시하고이후에도다양하고개성적인작품을올렸으며2021년에필진으로합류했다.같은날을반복해서살아가면서,후회로남을수있는일을하나씩다마무리하는이야기가마지막까지깔끔하다.끝없이리셋되는시간이주어질때,사람이선택하는길은최대한더좋은내일이될수있도록준비하는것과,어차피리셋될시간이라고일탈하며허비하는일,둘중무엇이될까.주인공의따뜻함을따라가다보면마지막순간빙긋웃게될것이다.

〈고양이를좋아하세요〉의남세오작가는2018년창작게시판에처음게시한〈살을섞다〉가분기별우수작이되면서거울단편선의표제작이됐다.2019년〈만우절의초광속성간여행〉이2019년최우수작으로선정되어2020년필진으로합류했다.남세오작가는한마디로요약하기어려울정도로작품의폭이넓다.〈살을섞다〉의서늘한우화,〈만우절의초광속성간여행〉의유쾌한즐거움처럼독창적인설정을바탕으로다양함을선보여,새작품이올라올때마다이번작품은어떤느낌일지기대하게되는작가다.〈고양이를좋아하세요〉는사람이사람을사랑하는감정을잊어버린뒤사람을사랑하기위해서동물의방식을배워야하는세계를배경으로한다.강아지,토끼,고양이를전공한사람을만나는방식에서사람이사람을사랑하는것이무엇인지생각하게만든다.

〈커튼콜〉의김산하작가는2020년창작게시판에게시판〈아웃백〉과〈샌드위치맨〉이모두분기우수작으로선정되었고,〈샌드위치맨〉이연간최우수작으로선정되며필진으로합류했다.두작품은현대사회의문제점이극대화된세계를배경으로,사회적재난이나모순에휘말리는사람들을생생하게그려냈다.이번작품은현대를배경으로하면서장르적인특징은거의보이지않지만,사회의흐름에휘청이는,실제인물을모델로한것처럼생생한사람들을그려낸다는점에서는같은맥락을보인다.숏폼과사이다서사가소비자의욕구에즉각적으로부응하는현대에서,클라이막스와롱괴르가은은하게이어져하나의서사를이루는균형을추구하겠다는웹진편집자의주관은이상론일뿐일까.누군가는편집자의시점에동조하면서한숨을쉬게될,또누군가는편집자를향해한숨을쉬게될,인물과배경설정이치밀한작품이다.

〈피루엣〉은2004년9월필진으로합류한필자본인의글이다.가수안예은님의곡〈피루엣〉을모티브로쓴단편이다.여러번드라마나영화에서다룬조선왕조의이야기도살짝섞여있으나,시간과배경을생각하지않고읽어도괜찮은글이었으면한다.

〈제주문어는바다처럼운다〉의빗물작가는2021년창작게시판에〈델릭타그라위오라〉를게시하는것을시작으로사람들의관계와정서를세밀하게그려내는단편을공개했다.〈제주문어는바다처럼운다〉가게시되었던해연간최우수작으로선정되면서빗물작가는이단편집에참가한작가중가장최근에필진으로합류했다.상처를안고,사람들사이에서너무나큰상처를받으며살아온이들이서로를이해하고기대며치유하는과정이눈물겹게아름답다.어떤작품은마치등장인물이실존하는사람인것처럼응원하게되는데,이작품이그렇다.평생함께살사람으로는꼭사랑받고자란사람이어야한다는말이SNS에서공감을얻곤하지만,마치이전세기의일인것처럼사람들이말하곤하는,그러나분명현재도존재하는삶의무게를겪으며살아온두사람의연대가눈부시다.

〈미정아파트〉의고타래작가는2004년필진으로참여했다.첫작품〈진화하는장난감〉이래고타래작가의작품에서는인물의개성에주목할필요가있다.평범하고정상적인사람들이보이는비정상적인면이극대화된시점이그려진다.오래지내던지역을떠나온뒤에도지금지내고있는지역의풍습이여전히낯설때,예전에살던집이그리울수는있다.그동네에한번쯤가보고,옛집을바라보는것정도는할수있다.하지만고타래작가는여기서술기운을빌려옛집에들어가자고나오는상황을만들어낸다.이집의새주인은이상황에서명백한피해자지만,상황은다시비틀린다.완전한결말을보여주지않는리들스토리가주는여운도강력하다.

〈천국의벌레들〉의클레이븐작가는2019년창작게시판에〈마지막러다이트〉,〈포비아〉〈컴플레인〉을게시하며거울에작품을발표했고,〈마지막러다이트〉와〈컴플레인〉이분기우수작으로선정되며필진으로합류했다.우주식민지에서광산에서자원채굴이한창인미래세계는SF독자라면낯선장면은아니다.작가는독자가충분히상상할수있는세계위에서일어난사건이점차발전하면서극단으로치닫는위기상황을생생하게그려낸다.압도될만큼강력한사건이야말로이글의주역이라할수있겠다.이야기가끝나고나면전혀다른느낌으로읽히는제목역시,여운을더한다.

〈이기적이다〉의유이립작가는2015년필진으로합류했다.실험적인시도를많이하는작가는이번에는타인에전적으로무심하면서도온라인과오프라인상황을분리해서살아가는‘프라이빗타운’을배경으로기묘한커플의모습을그려냈다.등장인물모두와거리를유지하면서이야기를풀어나가는방식이독특하다.배경이나인물심리묘사가모두절제되어있는데이야기속의장면이독립영화를보고있는것같은점도특이하다.작가의작품을아직만난적이없다면,다양한엔솔로지에참여한개성가득한작품을함께읽어보기를권한다.

TV에서도활발하게활동하며괴물전문가로,대중을위한과학교양서로다양하게독자들과만나고있는곽재식작가는2005년거울필진으로합류했다.곽재식작가는그외에도은하행성서비스센터시리즈,회사원또는연구원의고충이야기등등다양한시리즈를오가며왕성한작품을창작하고있지만,괴물전문가인작가의소설작품중한축은분명〈영애〉와같은동양배경환상소설이다.고조선을배경으로펼쳐지는장당강의이야기는우리나라설화의구조를재현하면서새로운이야기를만들어낸다.

마지막작품인〈코로나호캉스의추억〉의엄길윤작가는2009년창작게시판에〈살인마〉등록,이후활발하게작품을올리고,2016년필진으로합류했다.익숙한상황에서일어나는공포를멋지게그려내는작가는2023년지금도생생히사람들기억에남아있는코로나방역상황을공포의무대로삼았다.호캉스를즐기려했을뿐인데사람들의방역수칙위반에민감하게반응하는주인공은방역수칙위반으로계속해서경고가적힌메모지를받고,낯선인물의낯선반응을만나는등,서서히공포감이거리를좁혀온다.버스,카페,미술관등현실감있는배경속의현실감있는인물들이속도감있게잘배치되어공포영화를보고있는느낌을준다.

20년간웹진거울의사람들도당연히많이바뀌었다.2003년부터줄곧거울에있는필진도있지만20년이라는기간동안거울에새로들어온사람도,떠난사람도있다.필자처럼몇년운영진을맡았다가,필진으로만있다가,다시운영진이된사람도있다.2023년에도독자우수단편을통해새필진이들어왔다.그리고아마도,조만간,거울보다나이가적은필진이들어올것이다.
지금까지그랬던것처럼앞으로도다양한필진들이,거울이라는공간에서‘환상문학’안의다양한바리에이션을보여줄것이다.그런작가의첫작품을만나는기쁨을,거울에서함께해보시길바란다.거울이쌓아온작품은아직많다.

─구한나리,환상문학웹진‘거울’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