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지옥 (김인정 소설집)

다정한 지옥 (김인정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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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는 왜 실패가 예정된 사랑에 매혹되는가!
아비의 원수에게 검을 배우는 소녀와 목숨을 내어주는 스승의 핏빛 연정,
오직 파국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망한 사랑’의 압도적 절경
한국 장르문학계의 선인(仙人), 김인정 작가가 그려내는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동양 환상담
실패할 것이 자명한 사랑, 온 존재를 내던져 결국 산화해 버리고 마는 관계. 우리는 왜 이토록 기꺼이 파멸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매혹되는가. 한국 장르문학계에서 독보적인 동양적 서정성을 뽐내온 ‘선인(仙人)’ 김인정 작가의 소설집 《다정한 지옥》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집의 백미이자 뼈대를 이루는 수록작 〈그리고 낙원까지〉는 무협의 외피를 두르고 ‘망한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도 매혹적인 절경을 펼쳐 보인다. 당대 최고의 고수이자 이검귀(二劍鬼)라 불리는 살수 ‘연교’는 단숨에 유가장의 가주 유한채를 참살한다. 눈보라를 헤치고 아비의 원수인 연교를 찾아온 어린 딸 ‘아설’. 그러나 그녀는 복수를 행하는 대신 원수에게 검을 가르쳐 달라고 청한다.
아비의 원수에게 검을 배우는 소녀와, 언젠가 제자가 자신의 목을 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스승. 이들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그 자체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잉태하고 있다. 연교는 “지옥에서 태어나 지옥을 거닐며 살았으니 죽어서라도 낙원을 밟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체념하듯 웃는 서늘한 인물이지만, 제자 아설을 향한 기이한 연민과 맹목적인 애착에 스스로를 결박한다. 하산할 때는 반드시 내 목을 베고 가라는 연교의 당부는,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잔혹한 사랑의 고백과도 같다.
《다정한 지옥》의 인물들은 현명하게 계산하고 안전하게 머무는 대신, 기꺼이 서로의 심장을 겨누고 영혼의 밑바닥까지 산화시킨다. 타협이나 섣불린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흉터로 남을 것을 알면서도 맹렬하게 서로를 베어내는 이 참혹한 연정은, 철저하게 망해버렸기에 역설적으로 숨이 막히도록 눈부시다. 파국인 줄 알면서도 기어이 한 발을 들이밀고야 마는 인간 연정의 본질, 그 매혹적인 지옥이 지금 열린다.
저자

김인정

서강대에서국문학을,방송대에서일본학을전공했습니다.
《화조풍월》로제3회황금드래곤문학상장편부문본심상을수상했습니다.환상문학웹진거울의필진으로활동하며,동양적이고서정적인세계관을바탕으로한환상소설과로맨스를사랑합니다.
소설집《그때는귤이없었단다》,단편집《홀연》을비롯해‘호노라’라는필명으로여러권의전자책을출간했으며,《엔딩보게해주세요》등다양한앤솔로지와게임서사작업에참가해왔습니다.

목차

선화ㆍ7
화선ㆍ21
권커니,그대여종일토록취하시라ㆍ59
누마의여름ㆍ79
화적ㆍ153
연화검,혹은흩날리는티끌ㆍ169
동백ㆍ205
그리고낙원까지ㆍ241
작가의말ㆍ343
수록지면ㆍ345

출판사 서평

오직파멸을통해서만도달할수있는핏빛낙원
먼지와진흙으로가득한세계속,찰나의다정함을발명해내는약점투성이들의이야기

우리는왜실패가예정된사랑에매혹되는가.결코이루어질수없음을,끝내서로를난도질하고영혼마저잿더미로만들것을뻔히알면서도기어이불나방처럼뛰어들고야마는관계.일상의안전하고밋밋한사랑에서는결코맛볼수없는날것그대로의감정,이른바‘망한사랑’의서사안에는역설적이게도인간이지닌가장치열하고맹렬한생명력이담겨있다.
한국장르문학계에서독보적인동양적서정성을다져온김인정작가의소설집《다정한지옥》은바로이‘망한사랑’이빚어내는잔혹하고도매혹적인미학의결정체다.그리고그참혹한아름다움이가장완벽하게피어나는절경은,단연소설집의중심을묵직하게받치고있는단편〈그리고낙원까지〉에서펼쳐진다.
무협의외피를두른〈그리고낙원까지〉는시작부터돌이킬수없는파국을잉태하고있다.당대최고의고수이자이검귀(二劍鬼)라불리는살수연교는유가장의가주를단숨에참살한다.억겁의업보처럼눈이쏟아지던겨울,가주의어린딸아설(설련)은험한눈보라를헤치고아비의원수인연교를찾아온다.놀랍게도그녀의목적은당장의얄팍한복수가아니라,원수에게직접검을가르쳐달라는서늘한청원이다.
아비의원수에게검을배우는소녀와,언젠가자신보다강해진제자가제목을칠것을알면서도기꺼이곁을내어주는스승.두사람의관계는섣부른타협이나용서가끼어들틈조차없이,오직죽음을향해서만직진하도록설계되어있다.
작품속연교의조소섞인독백은이기이한관계의본질을관통한다.

“가게두게나.지옥에서태어나지옥을거닐며살았으니죽어서라도낙원을밟아봐야할것아닌가.”

피와살점이비산하는살육의현장에서도입가에미소를지우지않는연교는,세상의무도함을경멸하면서도스스로그지옥의일부가되어살아온인물이다.그런그가세속을등지고산에든이유는역설적이게도‘낙원’을밟아보기위함이었다.하지만그가선택한낙원은평온한안식이아니라,아설이라는거부할수없는파멸을기꺼이껴안는것이었다.
시간이흐르고두사람사이에는원한을뛰어넘는,세상누구도이해할수없는지독한유대감이자리잡는다.하지만이들의사랑은다정한밀어나온기로표현되지않는다.권력자의자객이되어떠나려는아설을향해연교가건넨마지막당부는,차라리가장잔인한형태의청혼과도같다.

“아설,하산할때는내목을베고가라.”
“내목을가져가라,아설.곧장떠나면네주인의의심을더받지않아도되리라.”

의심받을제자의앞길을닦아주기위해기꺼이자신의목숨을내어놓겠다는이형벌같은선언은,오직서로의파멸을통해서만완성될수있는‘망한사랑’의극치를보여준다.“나는무도한놈이지만무정하지는않거든.”이라며죽음의사지로뛰어드는연교의선택은,사랑이라는감정이어디까지맹목적이고파괴적일수있는지를여실히증명한다.
〈그리고낙원까지〉가보여주는핏빛연정은소설집에수록된다른단편들-거짓된낙원을부수기위해스스로육신을파괴하는기생의이야기〈선화〉나,인간사내에게영적징표를모두내어주고기꺼이파멸을택한정령의이야기〈화선〉-과맞물리며거대한지옥도를완성한다.《다정한지옥》의인물들은현명하게계산하고안전하게머무는법이없다.이들은영원한흉터로남을것을알면서도맹렬하게서로를베어내고,영혼의밑바닥까지스스로를산화시킨다.
안전한거리두기와가벼운관계맺기가미덕이된시대,김인정작가가그려낸이지독하게망해버린사랑의기록은그래서더욱눈부시다.섣부른해피엔딩이나얄팍한위로대신,파국인줄알면서도기어이한발을들이밀고야마는인간연정의맨얼굴을마주하고싶다면이책을펼쳐야한다.기꺼이그안에서영원히길을잃어도좋을,압도적으로매혹적인지옥이당신을기다리고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