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아름답게쓰지않는다.아름다움이얼마나잔혹한지끝까지쓴다
《환상청》의첫문턱에서독자는곧바로질문을받는다.사랑한다는것은상대를지키는일인가,아니면끝내내안에넣어없애는일인가.〈손〉의연인은사랑하는사람에게“마지막한입까지”자신을먹어달라고청하고,〈온실에서얼어죽은남자〉의나무는정원사의시체를뿌리로끌어안아꽃을피운다.애무는살해로,돌봄은포식으로,사랑은소멸로미끄러진다.그런데이상하게도이장면들은추악함보다아름다움에가깝다.바로그불편함이이소설집의출발점이다.
차일린은기괴한사건을보여주는데서멈추지않는다.몸을하나의사유공간으로삼아사랑과폭력,쾌락과고통,보호와통제가얼마나가까이붙어있는지를끝까지밀어붙인다.먹고,핥고,듣고,그리고,휘감는행위가반복될수록인물의욕망은설명이아니라감각으로드러난다.독자는인물의욕망을이해하기보다먼저몸으로통과하게된다.
표제작〈환상청〉은이소설집의미학을가장선명하게보여준다.청력을잃은피아니스트에게‘듣는다’는것은귀의기능이아니라타인을향한의지다.소리에대한기억이사라질수록“너를듣고싶어”라는욕망은더날카로워지고,마침내“우리는우리가원하는것그자체야”라는문장에닿는다.결핍때문에욕망하는것이아니라,한계가있기때문에욕망은비로소자기형태를얻는다.
이때환상은현실의반대편에있지않다.오히려현실의압력을더정확하게드러내는장치다.〈레즈비언섹스와부동산의상관관계〉에서두여성에게사랑을나눌방은곧주거권이고,반지하와전세사기,셰어하우스와공동명의는성적자유의조건이된다.〈셋의의미〉의중년여성은결혼과모성,남편의‘개방성’뒤에숨어있던욕망의성별격차를깨닫고“내가하고싶을때”를선언한다.섹슈얼리티는사적인취향이아니라돈과집,노동과가족이얽힌사회적현실이다.
그사회적몸은역사로도확장된다.〈회색바다〉에서는바다에버린밀항자들의시체가몇번이고마을로돌아오고,〈옥과해골〉의식민지조선인은‘자유’를‘지유’라고발음하며가난과제국이빼앗은삶을폭발적인독백으로토해낸다.〈물감을먹는화가〉에서는부검실에서마주한백서른여덟명의죽음이살아있는연인의몸위에되살아난다.개인의상처와역사적폭력은다른층위가아니라같은몸에겹쳐쓰인다.
그래서《환상청》은‘퀴어’,‘고딕’,‘환상’같은장르의명칭으로만묶기어렵다.작가자신이대부분의작품을순문학이라고생각하며썼다고밝히듯,이책이겨누는것은사건의기이함보다욕망을바라보는시선과문장의밀도다.장르문학이넓힌자유를빌려순문학이좀처럼허락하지않았던개인의세계를끝까지밀고나간다.
문장은촉감과냄새,색과소리를집요하게불러낸다.차가운손,썩는몸의열기,회색바다와연분홍진달래,푸른옥과하얀해골,들리지않는음악과피부의진동.감각은장식이아니라기억과욕망을저장하는방식이다.이감각의과잉때문에죽음은생생해지고,현실은환상보다더낯설어진다.
작가가상상하는독자는윌리엄버로스의《퀴어》를주문하고아니에르노를한꺼번에빌려읽는사람들이다.《환상청》역시그런독자에게가닿는책이다.욕망을도덕적으로해명하지도,상처를다정하게봉합하지도않는다.대신“왜이런욕망을품는가”보다더불편한질문을남긴다.욕망을빼고도한사람을설명할수있는가.
이책은욕망을해명하지않는다.독자가자기욕망을피할수없게만든다.
저자의말
순문학의경계에서욕망과환상을끝까지밀어붙이다
글을쓰는여러가지이유중하나는나자신을받아들이기위해서다.이해와수용은좀다르다.나자신을이해할수록스스로가싫어질수도있다.그래서수용이따로필요하다고생각한다.나는이런인간이고이러한욕망과환상을지녔다는.이책을쓰면서가장마음에든문장중하나는‘우리는우리가원하는것그자체야’이다.설명조문장이지만그이상표현할재주가없어서그대로두었다.
작품중적어도일곱작품은섹슈얼리티와관련되어있다.대한성학회(http://sexology.or.kr)는섹슈얼리티를‘인간의몸과인격,태도를아우르는개념’이라고설명한다.섹슈얼리티에는개인과사회의관계가필수적으로포함된다.그렇기에성적욕망은사회적욕망이기도하다.2022년12월대통령소속국가교육위원회는개정교육과정에서성평등,재생산권,성소수자,그리고섹슈얼리티라는용어까지없애기로결정했다.뭐가중요한지는아는것같다.원래금서목록은필독서목록이된다.
―차일린
책속에서
“사랑은쉽지않아.때론목숨을걸어야해…….그렇지만그것과다른사랑도있어.삶이아니라죽음을함께할사랑.”(34쪽)
“나는너만영원히사랑해.그증거를보여줄게.내꽃이너를덮을거야.한겨울에내가피워내는기적을바라봐줘.”(60쪽)
“장사될걸.누구나자기집은필요해.우린운이좋았던거고.”(96쪽)
“의지란근본적으로욕망이야.우리는우리가원하는것그자체야.”(118~119쪽)
“그와내가미처예상하지못한것이있었다.두사람만모여도사회가된다는것을.”(154쪽)
“그래,진달래.많이심자.온통회색뿐인이마을에색깔을주는거다.”(178~179쪽)
“지금은아니야.하지만할거야.내가하고싶을때.”(215쪽)
“그대의목숨이나의자유요.그대의만세일계(萬世一系)를끊는것이나의푸르른자유요.”(240쪽)
“물이모든것을기억해준다면그걸로족했다.언젠가소년도물속으로돌아갈테니까.”(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