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끝나기직전에도아름답다
여름은점점길어지고,겨울은기억속으로물러납니다.도시는여전히환하고사람들은출근하고,편의점에서음료를사고,공원을걷습니다.그러나익숙한풍경의안쪽에서세계는천천히다른모습으로변합니다.오래된아파트에는투명한이무기가살고,플라스틱을먹는오리들은인간의손을벗어나서울하늘로날아오릅니다.
《펫페페페》는기후위기와비인간생명,변형되는인간의몸을낯설고도다정하게그려온짐리원의첫소설집입니다.이책이깊이들여다보는것은기묘한기술이나생물자체보다그앞에서어떻게함께살아가야할지망설이는사람들의얼굴입니다.무엇을살리고무엇을보내야하는지,누군가의고통을끝내는일이진정한돌봄인지,살아남기위해자신의몸에서얼마나많은것을떼어내도되는지쉽게판단하지못하는평범한사람들의이야기입니다.
소설속인물들은멸망을막거나생태계를인간의뜻대로통제하려는거창한영웅들이아닙니다.이들은교통카드한장을건네고,냉동실에잘린손하나를숨기며,날아가려는오리를붙잡고있던손을놓아줍니다.
인간중심의통제를넘어,찰나의공존을향해
우리는흔히생태계의균형을지키려면인간이적극적으로개입하고생명체를통제해야한다고믿습니다.그러나표제작〈펫페페페〉는이러한믿음에균열을냅니다.영생바이오는오리의침샘물질이지닌군사적가능성에주목해제휴고등학교에서비밀실험을진행합니다.일부오리는PET,PE,PP,PS등주요플라스틱을분해할수있게됩니다.예나와보현은오리들을빼돌려환경단체나연구기관에맡기려하지만,믿었던어른과기관조차안심할수없다는사실을깨닫습니다.결국추적을피해옥상에몰린예나는오리들을하늘로날려보냅니다.오리들이쓰레기를먹다서울어딘가에서죽을가능성이크다는것을알면서도,지금까지없던생명에게인간이정한결말만을강요할수없다고판단하기때문입니다.
〈무기여안녕〉은생명을돌보고그끝을결정하는과정의딜레마를다룹니다.1980년대아파트에서식하는‘투명동네이무기’는재건축을앞두고서식지를잃을위기에놓입니다.동물구호단체소속의노아는철거과정에서이무기가겪을엄청난고통을막기위해안락사를준비합니다.소설은누군가의미래를대신결정하는행위가완전한구원일수있는지묻습니다.어느선택에도손쉬운면죄부를주지않은채,돌봄과폭력의가능성을같은자리에남겨둡니다.
〈모든코끼리가아스팔트길을건너고나서〉는이질문을우주적규모로확장합니다.8만년전지구에서매머드와털코뿔소등거대동물들을빌려간외계사절단이약속대로수십만마리를돌려주기위해돌아옵니다.민지는현생인류의문명이뒤덮은지구에는이거대동물들이살아갈자리가없다는사실을깨닫습니다.그는지구를홍적세후기의환경으로되돌리는‘리-테라포밍’을승인할지,인류의대표에게결정권을넘길지,아무것도선택하지않아동물들이달기지에서남은생을보내게할지를두고고민합니다.소설은어느종의생존을중심에놓을것인가라는불가능한질문을통해한종이세계를독점해온역사를돌아보게합니다.
기후위기,감각의붕괴,잃어버린계절을애도하는법
이소설집에서기후위기는단순한재난의배경이아니라인간의감각과기억체계를흔드는사건으로다가옵니다.겨울이오지않는다는것은평균기온이높아지는현상만을뜻하지않습니다.눈을기다리던마음,찬공기가피부에닿던감각,특정한계절에만가능했던산책과옷차림도함께사라지는일입니다.
〈기억과사회〉의세계에서는끔찍한열풍과‘폭염웨이브’로기후우울증치사율이치솟습니다.사람들은온난화된지구에몸을적응시키기위해과거의서늘한날씨와겨울의촉감후각을담은‘노이즈-기억’을희미하게만드는‘딥클렌징’을선택합니다.그러나과거의날씨를기억하지못한다면세계가무엇을잃었는지증언할감각도함께사라집니다.소설은생존을위한적응이또다른상실이될수있다는역설을짚어냅니다.
문윤성SF문학상우수상수상작〈올림픽공원산책지침〉은잃어버린계절을향한그리움을아름답고도서늘하게포착합니다.미래의시간여행자들은기후대격변이후의세계에서15~20도의가을날씨와부드러운바람을느끼기위해2020년대의올림픽공원을찾아옵니다.여행규칙을어기고공원을탈출하면미래로돌아갈수없고즉시사살될수있다는사실을알면서도,여행자에이(A)는현재의서울에남으려합니다.그를돕기위해교통카드와아이패드,현금을건네는산책아르바이트생지수의선택은평범한날씨와도시풍경이지닌아름다움을선명하게드러냅니다.
〈수면예찬〉은인류의활동을줄여지구생태계의파괴를멈추겠다는명분으로,10년수면과각성기를반복한뒤인류를‘무기한수면’에들게하려는집단수면계획을다룹니다.팬문화와게임,학술기록과미래의문답이겹쳐지는과정에서잠은휴식과도피,자발성과강제가뒤섞인구원론으로변합니다.작품은기후대격변시대의극심한피로와문명의팽창을멈추고싶다는욕망을낯설게비춥니다.
효율의명령앞에놓인손과날개
〈손〉과〈날개주의보〉는몸을사회가요구하는형태로바꾸려는세계를그립니다.두작품은생산성과‘정상적인인간’이라는기준이개인의몸과감각을어떻게압박하는지보여줍니다.이소설집의몸이야기는손의움직임과날개의무게,절단과통증같은구체적인감각에서출발합니다.
〈손〉에서케이크가게를운영하는선오는손목치료를받으러간병원에서동의없이왼손을절단당하고고성능의수를이식받습니다.‘손코퍼레이션’은자연손보다생산성이높은인공손을보급하고,절단한손에도칩을심어일하게하는‘자동수작업’의시대를꿈꿉니다.주이는선오의잘린손을숨기고그와함께자전거로도망칩니다.이는단순히효율적인도구를거부하는일이아니라,한사람이몸으로쌓아온기술과삶을지키려는선택입니다.
〈날개주의보〉에서는원인을알수없는‘날개병’으로사람들의등에날개가돋습니다.사회는평범하게일하고살아가려면날개를떼어내야한다고압박하고,영이와이삭은집안에서서로의날개를잘라냅니다.그러나시간이흐른뒤날개는패션과이미지로소비되기시작합니다.소설은같은날개가누군가에게는질병이고누군가에게는아름다움이되는모순을통해,몸을한가지기준으로판단하는사회를바라봅니다.
무너지는세계에남겨진빛,잊히지않는인연
그럼에도《펫페페페》는멸망의절망으로만닫히지않습니다.이기이한세계에는이상할만큼많은빛과바람,구름과물이가득합니다.오염때문에오히려눈물나게아름다워진저녁의빛,폐허가된도시위로우뚝솟은거대한여름구름을바라보며인물들은세계가망가졌다는사실을알면서도그풍경을사랑합니다.사랑하기때문에더아파하고,언젠가사라질것을알기때문에그길을한번더걷습니다.
〈목도리와우주적불행의이야기>는반지하대형마트화재로목숨을잃은청소년유령견우의시선으로전개됩니다.환생의순환을미룬채자신이살던낡은아파트단지를맴도는견우는,같은화재로죽었을친구재현의흔적을기다립니다.이우주는한번있었던것들은쉽사리사라지지않고,한번만났던것들은서로를좀처럼잊지못하는곳입니다.유령이되어서도인연의끝을매듭지으려는인물들의모습은뭉클한여운을남깁니다.
〈연우의레시피>는가을밤대기중에반투명하게떠다니는‘영혼’을소재로삼습니다.어른들은영혼을미세먼지나병균처럼여기며문을닫아걸지만,십대인연우와해진은영혼을주워씻고얼려아이스크림이나팥빙수에얹어먹습니다.시원하고쌉싸름한영혼의맛은사라질것들을붙잡아두기보다잠시온몸으로감각하는두아이만의방식입니다.어른들은두사람이동반자살을꾀했다고오해하지만,이들은그저눈앞의기쁨을함께누리고싶었을뿐입니다.
세계는끝나기직전에도아름답다
《펫페페페》의인물들은무너지는세계를완전히구원하지못합니다.그러나한생명,한존재가맞이할다음장면만큼은바꿀수있으리라는희망을놓지않습니다.생태계를제뜻대로통제하거나파괴된환경을단숨에되돌리기보다,눈앞의생명을살피고때로는붙잡고있던손을놓으며오래기억하는길을택합니다.
오리를날려보내고,미래인을서울로보내며,유령이된친구를기다리는이들의다정한연대와돌봄은독자에게무거운질문과깊은위로를함께건넵니다.세계는끝나기직전에도아름답습니다.그리고그쓸쓸하고눈부신아름다움은우리가이세계를쉽게포기하지못하게하는아주오래된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