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사상사 권1하 : 주·진·한 정치사회구조 연구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62 (양장)

양한사상사 권1하 : 주·진·한 정치사회구조 연구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62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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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양한사상사』는 서복관의 나이 63세에 발분하여 77세까지 약 15년에 걸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으로서 학문의 내공이 쌓일 만큼 쌓인 만년의 나이에 무르익은 사상의 정수를 쏟아부어 빚어낸 일생일대의 역작이다. 그는 중국 고대사상 분야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지만 그간의 자료 분석과 저술 활동은 모두 본서의 기초 작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본서는 그의 학문과 사상을 농축한 저술이자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양한사상사』의 저변을 관류하는 중심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반전제(反專制) 정신이다. 서복관이 특히 심혈을 기울인 사상가는 동중서와 사마천이다. 두 사람의 주요 공통점 중 하나는 중국의 “전형적 전제정치”를 출범시킨 한 무제를 내심 극력 반대하고 비판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과는 달리 후한의 반고 부자는 전제군주의 지고무상한 지위를 확립하는 것을 지식인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서복관은 사마천과 반고의 우열을 비교하는 글에서 반고의 역사 서술을 역사에 대한 모욕이자 왜곡으로까지 폄하하고 있다. 그의 칼날은 『법언』과 『태현경』을 저술한 전한 말의 지식인 양웅, 『논형』을 저술한 후한의 왕충에게까지 뻗친다.

전제정치에 대한 찬성과 반대, 전제정치에 감연히 맞서 그 폐단을 지적하는 비판정신의 유무를 사상의 장단 및 우열을 비교 평가하는 제일의 기준으로 삼은 점은 『양한사상사』의 일대 특징이다.
저자

서복관

저자:서복관
1903년1월31일중국호북성희수현서가요마을가난한농촌에서태어났다.아버지에게기초교육을받았고,무창제일고등사범학교(1918-1923)와국학관(1923-1926)에서엄격한국학훈련을받았다.1928년일본으로건너가경제학을공부하고사회주의사상을대량흡수하였으며,경제적지원부족으로1929년일본사관학교중국팀23기에입학하였다.1931년9·18사건으로귀국하여군직을맡았다.1937년낭자관(娘子關)전투와1938년무한(武漢)보위전실전에참여하였다.
1943년5월에서10월사이군령부소장(少將)연락참모로연안(延安)에파견되어그곳에서모택동(毛澤東),주은래(周恩來)와여러차례개인적인접촉을가졌다.중경(重慶)으로돌아간후,「중공최신동태」보고서로장개석(蔣介石)에게알려지면서그의막료로발탁되어점차최고의사결정에참여하게되었다.1948년3월소작농이소작료를토지매입비로하여토지를취득할수있도록하는내용의토지개혁방안을제출하였고이방안은1953년대만에서시행되었다.1951년이념이맞지않아국민당을탈당하고대학에부임하면서학문을시작하였다.그는100여년동안중국에서유일하게군사·정치의실무경험을갖춘유교학자였다.
서복관은공자와맹자및『논어』를종지로삼고‘수신(修身)’과‘치국(治國)’의도는반드시보편적인실천가능성을가져야한다고믿었다.그러므로20세기이래중국의학자들이다투어서양을모방하고사변(思辨)적방법으로중국전통사상을‘철학화(哲學化)’하는데만전념해온학문적성과는‘관념의유희’일뿐공자·맹자의도와는아무관련이없다고보았다.서복관은이렇게말한다.“공자의가르침에의해개척된세계는현실생활속의‘정상인(正常人)’의세계이다.사람과사람이들어가야하고,들어갈수있는평안한세계이다.사람이플라톤의이상형세계에들어갈수있겠는가?헤겔의절대정신의세계로들어갈수있겠는가?”서복관의연구는사상사를중심으로예술과문학도함께다루고있다.그는선진(先秦)사상이전제(專制)통치를거치면서왜곡되었다고보았다.그래서그는이렇게말한다.“나는중국문화가원래가지고있는민주정신을다시활짝터놓아흐르게하고싶다.이것은‘옛성인을위하여끊어진학문을잇는[爲往聖繼學]’일이다.그것은일부정신으로하여금민주정치를지지하도록만든다.이것은‘만세를위하여태평을여는[爲萬世開太平]’일이다[역주:“爲往聖繼學,爲萬世開太平”은장재(張載)의『근사록(近思錄)』에나오는말이다].정치가민주적이지않으면태평도있을수없다.”
저서로는『중국사상사논집』(1959),『중국인성론사―선진편』(1963),『중국예술정신』(1966),『중국문학논집』(1966),『공손룡자강소(公孫龍子講疏)』(1966),『석도지일연구』(1969),『양한사상사』권1(1972),『양한사상사』권2(1976),『황대치양산수장권적진위문제(黃大癡兩山水長卷的眞僞問題)』(1977),『양한사상사』권3(1979),『유가정치사상여민주자유인권(儒家政治思想與民主自由人權)』(문집,1979),『주관성립지시대급기사상성격(周官成立之時代及其思想性格)』(1980),『중국문학논집속편』(1981),『중국사상사논집속편』(1982),『중국경학사적기초』(1982)등이있다.1982년4월1일별세하였다.
중국의고난시대를겪으며서복관은강한‘서민적줄거리’[곽제용(郭齊勇)교수의말]를가진300여만자의시사평론을썼으며,1949년부터1982년까지대만과홍콩에서가장권위있는평론가였다.[출처:서복관선생아들서무군(徐武軍)제공]

역자:김선민
연세대학교사학과,동대학원석·박사를졸업하고,연세대학교연구교수등을지냈다.역서로《양한사상사(兩漢思想史)》1(2022),《황제사경역주(黃帝四經譯註)》(2011),《古代中國》(1995)등이있고,논문으로〈魏晉시기관리의三年喪“解官”법제화과정〉(2022),〈위진남북조상례(喪禮)에서의윤월(閏月)의문제와법제화과정〉(2013),〈兩漢이후皇帝短喪制의확립과官人三年服喪의入律〉(2007)등이있다.

역자:문정희
연세대학교사학과졸업,동대학원석·박사취득.연세대학교중국연구원연구교수.역서로『역주중국정사외국전1:사기외국전역주』(2009),『역주중국정사외국전2:한서외국전역주상』(2009),『역주중국정사외국전6:남제서·양서·남사외국전역주』(2010),『역주중국정사외국전7:위서외국전역주』(2010),『天空의玉座―중국고대제국의조정과의례』(2002)(이상공역),논문으로「고대중국의출행의식과여행금기」(2008),「일서(日書)를통해본고대중국의질병관념과제사습속」(2017)등이있다.

목차

양한사상사권1하

역자서문/5
일러두기/25

제5장전한지식인이전제정치로부터받는압박감

원주/58

제6장중국성씨의변천과사회형식의형성

1.머리말/63
2.씨(氏)의유래탐구/66
3.성(姓)의유래탐구/77
4.주초성씨(姓氏)내용의변화/86
5.춘추시대씨(氏)의변화/103
6.고대평민의성씨문제/109
7.평민사회로의성씨의보급/116
8.성씨보급후사회구조의변화/124
9.효(孝)를중심으로한윤리관념의보급과종족의기능/138
10.전제정치의종족세력에대한박해/147
11.성씨가지닌이민족동화(同化)역량/159
12.결어/168

원주/173

부록
【부록1】서주초몇가지사실(史實)에관한문제/179
【부록2】‘판본(版本)’의‘본(本)’해석과사례거본(士禮居本)[국어(國語)]의해명/289
【부록3】주공단(周公旦)이즉위,칭왕(稱王)을했는지의문제에대한진몽가(陳夢家),굴만리(屈萬里)두선생과의토론/313
【부록4】주공(周公)의즉위,칭왕(稱王)문제에관한굴만리의답글에재답변하다/391

찾아보기/437

출판사 서평

서복관(徐復觀)은1903년호북성희수현에서출생하였다.본명은병상(秉常)이고,자는처음에불관(佛觀)이었다가나중에웅십력(熊十力)의권유로복관(復觀)으로바꾸었다.어려서아버지를따라글을익힌후현의고등학당,무창(武昌)의성립(省立)제일사범(무한대학전신)을거쳐국학관(國學館)에서전통경전에대한훈련을받았다.1928년일본에유학하여사회주의를비롯한정치·경제·철학등새로운사조를접하였고일본육군사관학교에입교하였으나1931년9·18사변(만주사변)발발로귀국하여군에투신한후1937년산서성낭자관(娘子關)전투및호북성무한(武漢)전투를지휘하였다.1943년항일전쟁기에는연안(延安)에머물면서국민당의연락임무를맡았으며6개월후중경(重慶)으로돌아가장개석의14명핵심막료의하나로기밀에참여하였다.1946년육군소장을끝으로15년간의군생활을마감하였다.
1944년서복관은웅십력과의만남을계기로생애에서중요한전환기를맞이한다.“나라를잃는자는항상그문화를먼저잃는다”라는스승의말이그로하여금불혹을넘긴나이에학문연구를시작하도록만들었다.1949년홍콩에서창간한정치학술이론잡지『민주평론』은1950-60년대대만과홍콩을무대로한유학의현대화운동의주요토론장이되었고여기서함께활동한당군의(唐君毅),모종삼(牟宗三)등과함께'현대신유학(新儒學)'의대표인물로서명성을얻게된다.그는중국의전통문화,특히유가사상과중국지식인의성격및역사문제에관심을갖고많은글을발표하였다.
1949년대만으로이주하여대중(臺中)에정착한서복관은성립농학원(農學院)을거쳐동해대학(東海大學)교수로재직하다가1968년동료교수와의필전(筆戰)사건후대학측의강요로학교를퇴직하고1969년다시홍콩으로거처를옮기게된다.이때문에『양한사상사』집필에도큰타격을입었다고『양한사상사』제1권서문에쓰고있다.1982년4월위암투병끝에대만에서서거하였고,유언에따라1987년고향인호북성에유골이안장되었다.

사상은그시대를떠나서는이해할수없다.한대사상의연구는당연히그사상이배태되고성장할수있는토양,즉한대의정치사회구조를규명하는작업으로부터시작한다.본서의제1권전체가중국고대의정치사회구조연구에할애되고있는이유는그때문이다.한(漢)이라는사회가탄생하기까지의전사(前史)로서서주종법제도의역사적기능,그에기초한봉건제도의형성과붕괴,진(秦)통일의기반과전형적전제정치의출현,진을계승한한의변질된전제정치,전제정치와사회종족세력간의갈등관계등1권전체가고대사회특히한대전제정치의본질과구조에관한연구로채워져있다.제1권의초판제목이『주·진·한정치사회구조연구』인이유도여기에있다.
한대정치사회구조에대한이해를바탕으로제2권과제3권에서는본격적인사상해부에들어간다.진·한을대표하는다양한사상들의종합과조화를시도한『여씨춘추』,『회남자』등의대규모편찬서는물론이고,『사기』,『한서』등당대의역사를서술한역사서,심지어『좌씨전』,『공양전』,『곡량전』과같이전승과정의불분명속에한대인의가탁이의심되는부분까지도사상연구의좋은재료가되었다.구체적사실과현상을객관적언어로표현한문헌뿐만아니라상징화된언어로사람들에게영감을불러일으키는문학작품또한당대인의정서와관념이투영된귀중한사상사재료이다.그들이남긴수많은시부와산문은물론이고한영(의『한시외전』이나유향(劉向)의『설원』에반영된현실인식도놓치지않았다.이와함께육가(陸賈),가의(賈誼),동중서(董仲舒),양웅(揚雄),왕충(王充)등주요인물들의행적과저작을면밀히분석하여각사상의본질을드러내고사상사적통찰을제시한다.(역자서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