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국도지 海國圖志 6 : 권14~권18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09 (양장)

해국도지 海國圖志 6 : 권14~권18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09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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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전근대 중국의 세계관은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는 중국(華)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변에 아직 문명이 미치지 않은 오랑캐(夷)가 존재한다고 하는 일원적인 세계관을 전제로 했다. 이러한 화이사상에 근거한 중화 세계 질서는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되면서 서서히 무너져 가기 시작한다.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질서에 편입하게 됨에 따라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많은 나라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세계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각 나라가 서로 경합하는 다원적인 공간이라고 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당시 중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에게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미증유의 세계였다. 위원은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먼저 서양 오랑캐의 실정을 자세하게 파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라는 인식하에 1842년 마침내 『해국도지』 50권본을 편찬하게 되었다. 그 후 1847년에는 60권본으로 증보 개정했고, 1852년에는 방대한 분량의 100권 완간본을 출간했다. 『해국도지』는 그 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륙 중심의 중국이 처음으로 해양을 통한 세계 여러 나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기념비적인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해국도지』는 당시 중국 지식인들이 ‘천하’에서 ‘세계’로 세계상을 전환하면서 중화사상이라는 자기중심적 세계상에서 탈출하는 힘들고 어려운 여행길에 나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저자

위원

(魏源,1794~1857)
청대정치가,계몽사상가이다.호남성(湖南省)소양(邵陽)사람으로도광2년(1822)향시(鄕試)에합격했다.1830년임칙서등과함께선남시사(宣南詩社)를결성해서황작자(黃爵滋),공자진(龔自珍)등개혁적성향을지닌인사들과교류했다.1840년임칙서의추천으로양절총독유겸(裕謙)의막료로들어가면서서양에관심을갖게되었다.같은해임칙서에게서『사주지』를비롯해서양관련자료를전해받고『해국도지』를편찬했다.주요저작으로는『공양고미(公羊古微)』,『춘추번로주(春秋繁露注)』,『성무기(聖武記)』등이있다.

목차

옮긴이의말
일러두기
해국도지원서
해국도지후서

해국도지권14

동남양
순다열도부속도서
구랑카수카순다열도연혁
구사파국자와·순다열도연혁

해국도지권15

동남양
영국·네덜란드령아체및스리비자야
구파리국아체및팔렘방연혁고
네덜란드·포르투갈령말루쿠
영국령피낭섬

해국도지권16

동남양
영국령뉴홀랜드
부록부속도서

해국도지권17

동남양
일본
부록동남양각섬형세상

해국도지권18

동남양
동남양각섬형세하
부록남양각섬
부록동남양가는경로
동양항로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대륙에서해양으로,중심에서여럿중하나로

위원이『해국도지』를저술하던시기,중국아니아시아와세계는새롭게등장한질서로요동치고있었다.대항해시대이후,세계의진출로가대륙에서해양으로변화하면서세계의판도가바뀐결과였다.대항해시대의막대한부와산업혁명은서방국가에강력한힘을선물하였고,그들은그부와힘을통해세계질서를재편하였다.자신이세계의중심이라고믿어오던중국과,중국이세계의질서라고믿어오던아시아의여러나라의세계는그렇게몰락을맞이해야했다.그리고서방제국주의중심의새로운질서가동트고있었다.갑작스러운질서의변화에지식계는혼란에빠졌다.“과연갑자기다가온새로운세계에어떻게대응해야한단말인가.”이것은당대지식인이라면답해야할의무가있는질문이었다.위원역시지식인으로서답할의무가있었다.그리고그의대답이『해국도지』였던셈이다.위원은임칙서로부터『사주지』와서양관련자료들을전해받고『해국도지』를편찬하였다.『해국도지』는당대지식인들을그때껏알지못했던새로운세계로인도해주었다.위원은『해국도지』를저술한목적에대하여이렇게말했다.

“이책을저술한이유는무엇인가?
서양의힘을빌려서양을공격하고(以夷攻夷),
서양의힘을빌려서양과화친하며(以夷款夷),
서양의뛰어난기술을배워(爲師夷長技)
서양을제압하기위해서저술한것이다(以制夷而作).”

답은언제나이미준비된것으로서존재한다.

“상대를알고자신을알면백번싸워도위태롭지않다(知彼知己者,百戰不殆).
상대는알지못하고자신은알면한번은이기고한번은진다(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
상대를알지못하고자신도알지못하면싸울때마다위태롭다(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

이는동양사회에서는아주익숙한말이다.『순자』는동양에서전법의경전과도같기때문이다.그러나당시의중국은서양의문물을받아들이려하지않았기에“상대를알”수없었다.중화사상에갇혀자신의병폐를돌아보지않았기에“자신을알”수조차없었다.반면서양은선교사와상인들을통해중국에대해많은것을알고있었다.그러니중국이아편전쟁에서패배했던것은어떻게보면당연한귀결이었다.따라서위원의답은어떻게보면이미정해져있었다.서양을극복하기위해선무엇보다도먼저서양을알아야했다.그런데,서양을아는것만으로는충분치않았다.중국은결국서양이아니기때문이다.따라서그대처법을알기위해서는한가지질문에더답해야했다.그질문은도대체왜“필리핀과자와는일본과같은섬나라이지만,한쪽(필리핀과자와)은병합되고한쪽(일본)은강성함을자랑”할수있는지에대한것이었다.그래서위원은단순서양에관해서만서술한것이아니라,동남아시아의여러나라와일본에관해서도서술하였다.결국,답은언제나이미정해져있었다.중요한것은무엇을알고자하는가였다.

제대로알기위해서는그자취를살펴야한다.

“즐거운저동산에는(樂彼之園)
박달나무심어져있고(爰有樹檀)
그밑에는닥나무있네(其下維穀).
다른산의돌이라도(他山之石)
이로써옥을갈수있네(可以攻玉).”

이시는『시경』「소아·학명」의부분이다.이시를들어보지못한사람은있겠지만,이시는우리에게아주익숙한성어를남겼다.바로“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이는남의하찮은행동에서도배울점이있다,또는군자도소인에게배울점이있다는뜻으로쓰인다.이구절이도대체『해국도지』와무슨상관인지의아할수도있을것이다.그러나실은,이타산지석이야말로,위원이『해국도지』를집필한정신중하나였다.중화사상에물들어있던중국에게,중국은군자요,주변국은소인과도같았다.그런데,위원은(물론중국이볼때)그‘소인에불과한’주변국으로부터도배울점이있다는사실을깨달았다.그래서위원은먼저동남양의국가들,대체적으로현재동남아시아라고부르는국가들에관해서논하기시작한다.왜위원은하필동남양의국가들에대해서먼저논하기시작했을까?앞서말했듯이,서양을알고나를알아서양을이기기위해서라면,당연히먼저논해야할것은서양의국가들이아닌가?해국도지4권의「동남양서설」에서그이유를짐작해볼수있다.

“서양인들이동쪽으로상선을몰고온것은왜인가?연안에이르면연안을빼앗고,
섬을만나면그섬을점령하여도시와항구를만들고군대를배치하여방비하니,
무릇동남아시아의중요항구가모두유럽의도시로변해버렸다.
…베트남,태국,미얀마,일본은서양에포함되지는않지만,
바다로부터의침입을막은,즉해방사실이있어이편에기록한다.
반면조선과류큐는해방사실과무관하여언급하지않는다.”

즉,위원은중국에도서양제국주의의마수가손길을뻗치고있는상황에서,왜서양인들은동남아시아를점령하였으며,그것이언제부터시작되었는지,동남양의국가들은어떻게대응했는지를통해중국은어떻게해야할지를살펴보고자한것이다.“은감불원(殷鑑不遠)”이라는말이있지만,위원이볼때당시중국의상황에는그보다더가까운거울이있었던것이다.특히『해국도지』6권에서는일본과남태평양에대해서주로서술하고있다.물론오류도적지않으나,가까운바다의정보까지포함하고있다는점은특기할만하다.우리나라도최근에는대양해군의필요성을점점자각하고있다.해상무역이발달한요즘세상에서바다의정보는곧국가의안보와직결되기때문이다.위원의이러한탐구자세는앞으로의우리에게도본받을만한자세가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