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정의 2 : 권3·권4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902

논어정의 2 : 권3·권4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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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중국에서 『논어』의 제 주석(注釋)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안의 『논어집해』와 주희의 『논어집주』, 유보남의 『논어정의』인데, 세 가지는 각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저작으로서 각각의 특징을 최고(最古: 『논어집해』), 최정(最精: 『논어집주』), 최박(最博: 『논어정의』)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중 『논어정의』를 보면 문자훈고(文字訓詁)나 선진사사(先秦史事), 고대의 전적을 박람(博覽)하면서도 요령이 있다. 광범하게 인용하고 좋은 것을 골라서 따랐으며, 사실의 고정(考訂)에 주의하였고 책 속에서 충분히 앞사람의 『논어』를 연구한 성과를 흡수하였다. 예컨대 청인(淸人)이 집록한 정현의 남아 있는 주석을 모두 소 안에 수록하고 『집해』를 사용하여 한·위의 옛 모습을 간직했다. 경의 해석은 주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또 경에 의거해 소를 보충하였고, 소에 잘못이 있으면 경의 뜻에 근거해 변론하였다. 그러면서도 책 속에 채택된 여러 사람들의 학설에 구애되지 않았으므로 중류(衆流)를 절단(截斷)하였으나 대의가 남김없이 모두 개괄되었다. 또한 내용이 박흡(博洽)하고 고석(考釋)이 자세하게 갖추어져 있으며 정밀하다.
이제 완역된 본 『논어정의』는 논어학의 체계적 정립에 기여하고, 한편으로는 『논어』가 담고 있는 광범위한 영역과 주제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할 것이다. 또한 현대적인 문맥에서 접근 가능한 표준적인 번역 작업을 수행하는 동시에 표점과 주해를 더하여 한국 유학에 있어 『논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유보남

1791년강소성보응현에서아버지이순(履恂)과어머니교씨(喬氏)사이에서태어났으며,다섯살에아버지를여의고,어머니의가르침속에성장하였다.종부태공(台拱)의학문이깊고정밀하였으므로그에게전수받기를청하여학행으로향리에서명성이자자하였다.제생(諸生)이되었을때의징(儀徵)의유문기(劉文淇)와명성을나란히하여사람들이“양주이유(揚州二劉)”라고칭송하였다.도광20년(1840)진사가되어직례성문안현의지현(知縣)을제수받았다.문안현은지형이웅덩이에비해낮았는데도둑이나제방이닦이지않아장마가내리거나가을홍수가나면번번이백성들의해가되곤하였다.이에유보남은제방을두루걸어다니면서병폐와고통을묻고옛서적들을검토하여일군의주둔병과백성이함께정비하도록독촉하였다.16년동안관직에있었는데,항상의관이소박하여마치제생때와같았다.송사를처리함에삼갔고,문안에서관직생활을하는동안쌓인현안1,400여건을자세하게살펴결론을내렸으며,새벽닭이처음울때면당청에앉아,원고와피고가모두법정에나오고증거가구비되면때에맞춰상세히국문하였다.큰사건이건작은사건이건할것없이균등하게자기의뜻대로안건을판결했고,패도한자는법의판례에비추어죄를다스렸다.무릇소송에연루된친척이나오랜친족은내외척간의친목(睦婣)으로깨우쳐,대체로화해하고풀도록하였다.송사와옥사가한가해지고나면아전들은자리를떠나돌아가농사를짓게하였으니,멀고가까이에있는자들이화합하여순량(循良)이라는칭호를붙여주었다.『논어정의』는그가38세에뜻을두고착수하여평생을바친저작으로,청대『논어』연구의결정판으로널리알려져있다.24권까지지었으나완성하지못하고아들공면에게이를이을것을맡긴후함풍5년(1855)에죽으니,향년65세이다.

목차

해제
1.『논어정의』번역의가치
2.원저자소개
3.『논어정의』소개
4.『논어정의』번역의필요성
5.선행연구
일러두기
범례
논어정의권3
팔일제1
논어정의권4
팔일제2
색인

출판사 서평

“배우고때에맞게익히니,또한기쁘지아니한가?”

모르긴몰라도,대한민국에서이구절을한번도들어보지못한사람은아주적을것이다.이구절의의미를탐독해보지는못했더라도말이다.설혹이구절을들어보지못한사람이라손치더라도,이구절에서유래한‘학습(學習)’이라는단어를모르는사람은아마없을것이다.논어는이외에도수많은구절과단어를우리사회에남겼다.‘견리사의’,‘과유불급’,‘살신성인’,‘온고지신’,‘절차탁마’등의고사성어를비롯해,‘이단’,‘숙맥’과같은일상적표현도남기고있다.그러나현시대를살아가는사람들에게『논어』를읽어본적이있느냐고묻는다면그렇다고답할수있는사람역시적을것이다.한때식자라면누구나읽어야하는필독서였던『논어』는어쩌다이렇게몰락하게됐을까?누군가는지학이라는말보다중2병이라는말이특정나이대를대표하는시대에수천년전을살아간공자라는사람의지혜가무슨쓸모가있겠냐고물을수도있을것이다.그런데만약여러사람이말하는대로,한국사회의병폐중하나가유교문화에근간을두고있다면,그유교가당최무엇인지는갈피를잡아야할것이아닌가?그리고오랜세월동안동아시아가유교의가르침을따른데에는이유가있을것이아닌가?물론당연히우리가공자의말을곧이곧대로받아들일필요는없다.그렇기에고전은언제나해석의문제를남긴다.그리고이처럼그저받아들이는것이아니라우리의실정에맞게해석하여마땅한점을취하는것이야말로배움이라고말할수있을것이다.수천년전의사람에게서도배움이있으니,또한기쁘지아니한가?

『논어』,공자와제자들의대화록

『논어』라고하면,경전이라는것이널리알려져있기에,아주고리타분하고딱딱한이야기들로가득차있으리라고지레겁을먹는사람들도많을것이다.반면에소크라테스의『대화편』은아직도찾아읽는사람들이많다.그런데사실은『논어』역시결국은대화록이다.『논어』는공자의제자들이스승의가르침을전하기위해엮은책이며,그특성상공자와제자,그리고공자의제자들간의대화로꾸려져있다.때로는제자나주변인물들이공자에게묻기도하고,때로는공자가역으로묻기도한다.그리고그대화중에는우리와상관없어보이는이야기도있지만,시대를불문하고여전히큰울림을주는이야기도있다.우리는무엇보다도『논어』를통해‘인간’공자의모습을들여다볼수있다.도대체동북아가그렇게오랫동안떠받든스승공자는어떤사람이었을까?공자는배우고자자신을찾아오는이라면누구든가르치고자했으며,스스로더배우고자하지않으면더이상을가르치고자하지않았다.같은질문에도제자에따라다른가르침을주고자했으며,때로는권면하기도하고때로는꾸짖기도했다.그리고때로는제자들의행동을보며자신을반성하기도했다.제자들역시자신이모르는부분은공자에게물어보고열심히따르면서도,스승인공자의행동이이해가가지않을때는따져묻기도했다.이처럼공자와제자들의관계는일방적이지않았다.이러한스승과제자의모습은갈수록교권이무너져가고교사와학생간의관계가형식화해가는요즘의우리사회에도시사하는바가있다.『논어』뿐아니라많은자료를통해『논어』를주해한유보남의『논어정의』,그리고그『논어정의』를번역한이책은우리에게공자의가르침뿐만아니라공자와제자들의관계등공자의인간적면모를잘보여줄것이다.

책속에서

살펴보니,“말하면서실천함”과“행하면서즐김”,이것이인자(仁者)가행하는바이다.맹자(孟子)는예와악을논하면서어버이를섬기고형을따르는데서근본을추론해서인의(仁義)의실제로삼았으니,인은사덕(四德:仁義禮智)을총괄하고있기때문에여기에서인하지않은사람은예와악을행할수없다고말한것이다.『전한서』「적방진전(翟方進傳)」에는이문장을인용하여설명하면서“인하지않은사람은베풀어쓸곳이없으니,인하지않은데도재주가많은것이나라의근심이라는말이다.”라고했다.베풀어쓸곳이없으면예와악을행할수없으니,비록재주가많더라도다만불선(不善)이될따름이다.공자당시에는예와악이대부로부터나와참절(僭竊)함이한꺼번에밀어닥치고[相仍],그릇됨이옳음을이기는데익숙해져예와악이무너지지않기를바랐지만그럴수가없었다.
---p.53

살펴보니,김방의설명이매우자세하다.『시경』「국풍(國風)·제풍(齊風)·의차」에“종일토록과녁[侯]에활을쏘아도정곡[正]을벗어나지않네.”라고했으니,정(正)과후(侯)가똑같이하나의과녁임이분명하다.『시경』「소아(小雅)·보전지십(甫田之什)·빈지초연(貧之初筵)」의「소」에『주례』의정중(鄭衆)과마융의「주」를인용했는데,모두정(正)이곡(鵠)안에있다고했다.정이곡안에있기때문에『시경』「국풍·제풍·의차」에서활을쏘아도정을벗어나지않는다고하여과녁을맞히는기술을자랑한것이다.그렇다면김방이인용한가경백의정이곡밖에있다는말은잘못이다.천자와제후는향사례가없으니,「향사례·기」에서말한웅후(熊侯)니미후니운운한것은모두연례(燕禮)를가리킨다.그러므로김방이인용해서연사임을증명한것이다.
---p.178-179

살펴보니,주나라시대사람들의병(屛)의제도에는,마땅히흙을사용하기때문에또한소장(蕭牆)이라고도한다.그당시종묘의병풍은나무를사용했기때문에『예기』「명당위」에서는그것을소병(疏屛)이라고했다.소(疏)는새긴다[刻]는뜻이다.지금인가의조벽(照壁)이,바로그모양을본뜬것이다.『순자(荀子)』「대략편(大略篇)」에“천자는외병(外屛)을세우고,제후는내병(內屛)을세우는것이예이다.노문(路門)밖에외병을세우는것은밖을보지않으려는것이고,노문안에내병을세우는것은안을보지않으려는것이다.”라고했다.『회남자』「주술훈(主術訓)」에는“천자가노문밖에외병을세우는것은스스로를가리기위함이다.”라고했으니,병은안과밖을구별하기위한것이다.「주」에서“임금[人君]”이라고한것은천자와제후를겸해서한말이다.
---p.285-286

살펴보니,『춘추번로』「초장왕(楚莊王)」에“문왕의시대는백성들이그가군사를일으켜정벌하는것을즐거워했기때문에「무」음악이라고한것이다.무(武)란정벌한다[伐]는뜻이다.이런까닭에순임금이「소」를만들고우왕이「하(夏)」를만들었으며,탕(湯)왕이「호(頀)」를만들고문왕이「무」를만든것이다.네가지음악이이름을달리하는것은각각그백성들이비로소자기에게서즐거워하는것을따랐기때문이다.”라고했다.또,“주(紂)왕이무도하고제후들이크게어지러워지자백성들은문왕이노여워함을즐거워하면서그를읊조리며노래한것이다.주나라사람의덕이이미천하를윤택하게해서근본으로돌아가는것을즐거움으로삼아그것을「대무」라하니,백성들이처음으로좋아한것이무라고그렇게들얘기한다는말이다.”라고했다.
---p.323-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