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오여필吳與弼은자가자부子傅이고호는강재康齋이며무주撫州의숭인崇仁사람이다.부친은국자사업國子司業오부吳溥이다.선생이태어날때조부의꿈에서선조의묘에등나무가얽혀있는데한노인이그것을가리켜반원의등나무라고하였으므로,초명은몽상夢祥이었다.8~9세에이미기개를자부하였다.19세에【영락연간기축년(1409)이다.】도성【금릉金陵이다.】에서부친을뵈었다.세마洗馬문정文定양부楊溥를따라배우며『이락연원록』을읽고는개연히도에뜻을두고말하기를“정백순程伯淳(明道程顥)도사냥하는것을보고기뻐하는마음이들었으니,곧성현도보통사람이나마찬가지임을알겠다.누가배워서이를수없다고하겠는가?”라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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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학提學이령李齡과종성鍾城이연달아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맡아달라고청하였고,제생諸生도귀계貴溪의동원서원桐源書院에서강학해달라고청하였다.회왕淮王이그의소문을듣고왕부王府에서『역易』을강의해달라고청하였다.왕이그의시문을출판하려하자선생은사양하면서“아직조금더진보할필요가있습니다”라고말하였다.
선생은근엄하고굳세고청빈하였으며,매사에법도를따랐다.매일매일반드시공부의계획을세우고잘한일과잘못한일을상세하게기록하여스스로반성하였다.아무리하찮은물건이라도자세하게구별하여죽을때까지뒤섞어놓고같이사용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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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업록
“고요한가운데에무언가가있다[靜中有物].”는것은단지언제나잡아서지키고주재하는것이있다는말이니,(이것을안다면)공허하고적막하거나어둡고막힐근심이없을것이다.
마음을잃어버렸다는사실을깨닫는것은그래도좋은일이다.곧바로일깨우고수렴하여다시도망가지않게(하면되니,이것이)바로경을위주로하여마음을보존하는[主敬存心]공부이다.만약마음을둘곳을모른다면망막하고아득할것이니,이렇다면무슨공부를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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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태景泰계유년(4년,1453)에향시鄕試에합격하였으나물러나서10여년간공부하였다.그러고나서비로소회시會試를보러상경하였으나항주杭州까지갔다가다시돌아왔다.다음해인천순天順갑신년(8년,1464)에다시상경하였는데을방乙榜에올라성도成都부학府學의훈도訓導가되었다.얼마뒤에사직하고고향에돌아와글을쓰고후학을양성하는일을업으로삼았다.
저서로는『일록日錄』40권이있는데말이질박하고리理가순수하여구차하게사람들의마음에들려고애쓰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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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박夏尙朴의자는돈부敦夫이고,별호는동암東巖이다.영풍(永豊:현재江西吉安市永縣)출신이다.일재一齋누량婁諒에게배웠다.정덕正德신미(1511)년에진사시에급제하였다.육부六部의속관,혜주부지부惠州府知府,산동제학부사山東提學副使등을역임하고,남경태복소경南京太僕少卿에이르렀다.유근劉瑾이정사를전횡하자귀향하였다.왕문성(王文成:王守仁)이전별한시에“슬瑟을내려놓고봄바람쐬는것이네.”라는구절이있었는데,하선생이“공자학단이기수沂水에서봄바람을쐬는풍경은순의조정에서공경하고삼가던정리情理에서떠나있지않다.”라고답하였다.선생은경敬을중시하는학문을전하였는데,“마음을깨어있게하면곧천리이고마음을놓아버리면곧인욕이다.”라고하였다.장거莊渠위교魏校가지극히타당한말이라고찬탄하였다.그러나“상산(象山:陸九淵)의학문은정신을수렴하는것을위주로삼는데,우리유자가정신을수렴하는것은여러도리를밝게알아응대하려는것이지,단순히수렴만하는것이아니다.”라고비판하였다.이말대로라면,결국마음을깨어있게하는것또한반드시천리인것은아니게되니,스스로자신의설과어긋나지않는가?대개선생은심心과리理를다른것으로여겨서심心은리理를궁구하는것이고,리를다행하기에는부족하다고여겼다.따라서양명이“마음이곧리이다.”라는한마디를내놓았을때,심오한말로여기지않았으니어찌이상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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