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유학안 역주 1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918

명유학안 역주 1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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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황종희가 명대 리학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지은 책이 바로 『명유학안』이다. 전체 유학의 역사에서 명대 리학이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그 명대 리학의 정통이 왕수인, 유종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그러한 명대 유학의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유종주의 후계자인 자신이야말로 가장 적임자라는 자부심이 황종희로 하여금 이 책을 저술하게 하였다.
명대 리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은 이전에도 있었는데, 주여등(周汝登)의 『성학종전(聖學宗傳)과 손기봉(孫奇逢)의 『리학종전(理學宗傳)』을 들 수 있다. 황종희는 이 두 책과는 달리 『명유학안』에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각 학자의 종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요령 있게 비평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황종희의 자신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명유학안』이 ‘중국 최초의 본격적인 학술사’로 불리거나 ‘명대의 유학을 연구하기 위한 필독서’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저자

황종희

출간작으로『명유학안역주1』등이있다.

목차

간행사_5
범례_16
해제(윤상수)_17

서序·윤상수

정성의서鄭性序51
황천추의발黃千秋跋54
풍전해의발馮全垓跋56
우준의서于準序59
구조오의서仇兆鰲序63
명유학안서明儒學案序68
명유학안서(원서)明儒學案序(原序)74
가윤의서賈潤序80
가박의발賈樸跋84
가념조의발賈念祖跋87
막진의서莫晉序89
명유학안발범明儒學案發凡95

사설師說·윤상수

정학방효유方正學孝孺103
월천조단曹月川端107
경헌설선薛敬軒瑄110
강재오여필吳康齋與弼112
잉부진진성陳剩夫眞晟116
소천주혜周小泉蕙117
백사진헌장陳白沙獻章119
극암진선陳克菴選122
일봉나륜羅一峯倫123
허재채청蔡虛齋淸126
양명왕수인王陽明守仁128
동곽추수익鄒東廓守益133
용계왕기王龍溪畿135
정암나흠순羅整菴欽順139
경야여남呂涇野147
운포맹화리·아강맹추·양화장원변孟雲浦化鯉·孟我疆秋·張陽和元149
염암나홍선·대주조정길·당남왕시괴·정우등이찬羅念菴洪先·趙大洲貞吉·王塘南時槐·鄧定宇以讚152
근계나여방羅近溪汝芳155
견라이재李見羅材157
경암허부원許敬菴孚遠159

명유학안권1,숭인학안1明儒學案卷一,崇仁學案一·강경현

빙군강재오여필선생聘君吳康齋先生與弼163

명유학안권2,숭인학안2明儒學案卷二,崇仁學案二·윤상수

문경경재호거인선생文敬胡敬齋先生居仁217
교유일재누량선생敎諭婁一齋先生諒274
서산사복선생謝西山先生復282
공명정항선생鄭孔明先生伉284
봉의호구소선생胡鳳儀先生九韶286

명유학안권3,숭인학안3明儒學案卷三,崇仁學案三·이봉규

공간장거위교선생恭簡魏莊渠先生校291
시랑인재여우선생侍郞余齋先生祐347

명유학안권4,숭인학안4明儒學案卷四,崇仁學案四·이봉규

태복동암하상박선생太僕夏東巖先生尙朴355
광문옥재반윤선생廣文潘玉齋先生潤395

인명·개념어·서명/편명색인_397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오여필吳與弼은자가자부子傅이고호는강재康齋이며무주撫州의숭인崇仁사람이다.부친은국자사업國子司業오부吳溥이다.선생이태어날때조부의꿈에서선조의묘에등나무가얽혀있는데한노인이그것을가리켜반원의등나무라고하였으므로,초명은몽상夢祥이었다.8~9세에이미기개를자부하였다.19세에【영락연간기축년(1409)이다.】도성【금릉金陵이다.】에서부친을뵈었다.세마洗馬문정文定양부楊溥를따라배우며『이락연원록』을읽고는개연히도에뜻을두고말하기를“정백순程伯淳(明道程顥)도사냥하는것을보고기뻐하는마음이들었으니,곧성현도보통사람이나마찬가지임을알겠다.누가배워서이를수없다고하겠는가?”라고하였다.
---p.164

제학提學이령李齡과종성鍾城이연달아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맡아달라고청하였고,제생諸生도귀계貴溪의동원서원桐源書院에서강학해달라고청하였다.회왕淮王이그의소문을듣고왕부王府에서『역易』을강의해달라고청하였다.왕이그의시문을출판하려하자선생은사양하면서“아직조금더진보할필요가있습니다”라고말하였다.
선생은근엄하고굳세고청빈하였으며,매사에법도를따랐다.매일매일반드시공부의계획을세우고잘한일과잘못한일을상세하게기록하여스스로반성하였다.아무리하찮은물건이라도자세하게구별하여죽을때까지뒤섞어놓고같이사용하지않았다.
---p.218

거업록
“고요한가운데에무언가가있다[靜中有物].”는것은단지언제나잡아서지키고주재하는것이있다는말이니,(이것을안다면)공허하고적막하거나어둡고막힐근심이없을것이다.
마음을잃어버렸다는사실을깨닫는것은그래도좋은일이다.곧바로일깨우고수렴하여다시도망가지않게(하면되니,이것이)바로경을위주로하여마음을보존하는[主敬存心]공부이다.만약마음을둘곳을모른다면망막하고아득할것이니,이렇다면무슨공부를하겠는가!
---p.216

경태景泰계유년(4년,1453)에향시鄕試에합격하였으나물러나서10여년간공부하였다.그러고나서비로소회시會試를보러상경하였으나항주杭州까지갔다가다시돌아왔다.다음해인천순天順갑신년(8년,1464)에다시상경하였는데을방乙榜에올라성도成都부학府學의훈도訓導가되었다.얼마뒤에사직하고고향에돌아와글을쓰고후학을양성하는일을업으로삼았다.
저서로는『일록日錄』40권이있는데말이질박하고리理가순수하여구차하게사람들의마음에들려고애쓰지않았다.
---p.276

하상박夏尙朴의자는돈부敦夫이고,별호는동암東巖이다.영풍(永豊:현재江西吉安市永縣)출신이다.일재一齋누량婁諒에게배웠다.정덕正德신미(1511)년에진사시에급제하였다.육부六部의속관,혜주부지부惠州府知府,산동제학부사山東提學副使등을역임하고,남경태복소경南京太僕少卿에이르렀다.유근劉瑾이정사를전횡하자귀향하였다.왕문성(王文成:王守仁)이전별한시에“슬瑟을내려놓고봄바람쐬는것이네.”라는구절이있었는데,하선생이“공자학단이기수沂水에서봄바람을쐬는풍경은순의조정에서공경하고삼가던정리情理에서떠나있지않다.”라고답하였다.선생은경敬을중시하는학문을전하였는데,“마음을깨어있게하면곧천리이고마음을놓아버리면곧인욕이다.”라고하였다.장거莊渠위교魏校가지극히타당한말이라고찬탄하였다.그러나“상산(象山:陸九淵)의학문은정신을수렴하는것을위주로삼는데,우리유자가정신을수렴하는것은여러도리를밝게알아응대하려는것이지,단순히수렴만하는것이아니다.”라고비판하였다.이말대로라면,결국마음을깨어있게하는것또한반드시천리인것은아니게되니,스스로자신의설과어긋나지않는가?대개선생은심心과리理를다른것으로여겨서심心은리理를궁구하는것이고,리를다행하기에는부족하다고여겼다.따라서양명이“마음이곧리이다.”라는한마디를내놓았을때,심오한말로여기지않았으니어찌이상하겠는가?
---p.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