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정의 [七] : 권14·권15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907

논어정의 [七] : 권14·권15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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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중국에서 『논어』의 제 주석(注釋)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안의 『논어집해』와 주희의 『논어집주』, 유보남의 『논어정의』인데, 세 가지는 각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저작으로서 각각의 특징을 최고(最古: 『논어집해』), 최정(最精: 『논어집주』), 최박(最博: 『논어정의』)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중 『논어정의』를 보면 문자훈고(文字訓詁)나 선진사사(先秦史事), 고대의 전적을 박람(博覽)하면서도 요령이 있다. 광범하게 인용하고 좋은 것을 골라서 따랐으며, 사실의 고정(考訂)에 주의하였고 책 속에서 충분히 앞사람의 『논어』를 연구한 성과를 흡수하였다. 예컨대 청인(淸人)이 집록한 정현의 남아 있는 주석을 모두 소 안에 수록하고 『집해』를 사용하여 한·위의 옛 모습을 간직했다. 경의 해석은 주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또 경에 의거해 소를 보충하였고, 소에 잘못이 있으면 경의 뜻에 근거해 변론하였다. 그러면서도 책 속에 채택된 여러 사람들의 학설에 구애되지 않았으므로 중류(衆流)를 절단(截斷)하였으나 대의가 남김없이 모두 개괄되었다. 또한 내용이 박흡(博洽)하고 고석(考釋)이 자세하게 갖추어져 있으며 정밀하다.
이제 완역된 본 『논어정의』는 논어학의 체계적 정립에 기여하고, 한편으로는 『논어』가 담고 있는 광범위한 영역과 주제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할 것이다. 또한 현대적인 문맥에서 접근 가능한 표준적인 번역 작업을 수행하는 동시에 표점과 주해를 더하여 한국 유학에 있어 『논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유보남

저자:유보남

1791년강소성보응현에서아버지이순(履恂)과어머니교씨(喬氏)사이에서태어났으며,다섯살에아버지를여의고,어머니의가르침속에성장하였다.종부태공(台拱)의학문이깊고정밀하였으므로그에게전수받기를청하여학행으로향리에서명성이자자하였다.제생(諸生)이되었을때의징(儀徵)의유문기(劉文淇)와명성을나란히하여사람들이“양주이유(揚州二劉)”라고칭송하였다.도광20년(1840)진사가되어직례성문안현의지현(知縣)을제수받았다.문안현은지형이웅덩이에비해낮았는데도둑이나제방이닦이지않아장마가내리거나가을홍수가나면번번이백성들의해가되곤하였다.이에유보남은제방을두루걸어다니면서병폐와고통을묻고옛서적들을검토하여일군의주둔병과백성이함께정비하도록독촉하였다.16년동안관직에있었는데,항상의관이소박하여마치제생때와같았다.송사를처리함에삼갔고,문안에서관직생활을하는동안쌓인현안1,400여건을자세하게살펴결론을내렸으며,새벽닭이처음울때면당청에앉아,원고와피고가모두법정에나오고증거가구비되면때에맞춰상세히국문하였다.큰사건이건작은사건이건할것없이균등하게자기의뜻대로안건을판결했고,패도한자는법의판례에비추어죄를다스렸다.무릇소송에연루된친척이나오랜친족은내외척간의친목으로깨우쳐,대체로화해하고풀도록하였다.송사와옥사가한가해지고나면아전들은자리를떠나돌아가농사를짓게하였으니,멀고가까이에있는자들이화합하여순량(循良)이라는칭호를붙여주었다.『논어정의』는그가38세에뜻을두고착수하여평생을바친저작으로,청대『논어』연구의결정판으로널리알려져있다.24권까지지었으나완성하지못하고아들공면에게이를이을것을맡긴후함풍5년(1855)에죽으니,향년65세이다.



역주:함현찬

1963년강원도영월에서태어나고등학교까지마쳤다.1987년성균관대학교동양철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교대학원유학과에서석사와박사과정을마쳤으며,2000년중국송대철학전공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성균관한림원에서한문을공부하였으며,현재성균관대학교유학·동양학과및대학원초빙교수로재직하고있고,아울러성균관한림원교수로재직하고있다.저서로는『장재:송대기철학의완성자』,『주돈이:성리학의비조』,『(교수용지도서)사자소학』,『(교수용지도서)추구·계몽편』,『(교수용지도서)격몽요결』등이있고,함께번역한책으로는『논어징』전3권,『성리논변』,『증보동유학안』전6권,『주자대전』전13권,『주자대전차의집보』전4권,『역주예기집설대전2』,『왕부지중용을논하다』등이있다.이외에연구논문으로는「《논어징》에나타난오규소라이의성인관」,「《논어징》에나타난오규소라이의도인식」,「성리학의태동과정체성에대한일고찰」등이있다.

목차

해제
1.『논어정의』번역의가치
2.원저자소개
3.『논어정의』소개
4.『논어정의』번역의필요성
5.선행연구

일러두기

범례

논어정의권14
선진제11

논어정의권15
안연제12

색인

출판사 서평

“배우고때에맞게익히니,또한기쁘지아니한가?”

모르긴몰라도,대한민국에서이구절을한번도들어보지못한사람은아주적을것이다.이구절의의미를탐독해보지는못했더라도말이다.설혹이구절을들어보지못한사람이라손치더라도,이구절에서유래한‘학습(學習)’이라는단어를모르는사람은아마없을것이다.『논어』는이외에도수많은구절과단어를우리사회에남겼다.‘견리사의’,‘과유불급’,‘살신성인’,‘온고지신’,‘절차탁마’등의고사성어를비롯해,‘이단’,‘숙맥’과같은일상적표현도남기고있다.그러나현시대를살아가는사람들에게『논어』를읽어본적이있느냐고묻는다면그렇다고답할수있는사람역시적을것이다.한때식자라면누구나읽어야하는필독서였던『논어』는어쩌다이렇게몰락하게됐을까?누군가는지학이라는말보다중2병이라는말이특정나이대를대표하는시대에수천년전을살아간공자라는사람의지혜가무슨쓸모가있겠냐고물을수도있을것이다.그런데만약여러사람이말하는대로,한국사회의병폐중하나가유교문화에근간을두고있다면,그유교가당최무엇인지는갈피를잡아야할것이아닌가?그리고오랜세월동안동아시아가유교의가르침을따른데에는이유가있을것이아닌가?물론당연히우리가공자의말을곧이곧대로받아들일필요는없다.그렇기에고전은언제나해석의문제를남긴다.그리고이처럼그저받아들이는것이아니라우리의실정에맞게해석하여마땅한점을취하는것이야말로배움이라고말할수있을것이다.수천년전의사람에게서도배움이있으니,또한기쁘지아니한가?

『논어』,공자와제자들의대화록

『논어』라고하면,경전이라는것이널리알려져있기에,아주고리타분하고딱딱한이야기들로가득차있으리라고지레겁을먹는사람들도많을것이다.반면에소크라테스의『대화편』은아직도찾아읽는사람들이많다.그런데사실은『논어』역시결국은대화록이다.『논어』는공자의제자들이스승의가르침을전하기위해엮은책이며,그특성상공자와제자,그리고공자의제자들간의대화로꾸려져있다.때로는제자나주변인물들이공자에게묻기도하고,때로는공자가역으로묻기도한다.그리고그대화중에는우리와상관없어보이는이야기도있지만,시대를불문하고여전히큰울림을주는이야기도있다.우리는무엇보다도『논어』를통해‘인간’공자의모습을들여다볼수있다.도대체동북아가그렇게오랫동안떠받든스승공자는어떤사람이었을까?공자는배우고자자신을찾아오는이라면누구든가르치고자했으며,스스로더배우고자하지않으면더이상을가르치고자하지않았다.같은질문에도제자에따라다른가르침을주고자했으며,때로는권면하기도하고때로는꾸짖기도했다.그리고때로는제자들의행동을보며자신을반성하기도했다.제자들역시자신이모르는부분은공자에게물어보고열심히따르면서도,스승인공자의행동이이해가가지않을때는따져묻기도했다.이처럼공자와제자들의관계는일방적이지않았다.이러한스승과제자의모습은갈수록교권이무너져가고교사와학생간의관계가형식화해가는요즘의우리사회에도시사하는바가있다.『논어』뿐아니라많은자료를통해『논어』를주해한유보남의『논어정의』,그리고그『논어정의』를번역한이책은우리에게공자의가르침뿐만아니라공자와제자들의관계등공자의인간적면모를잘보여줄것이다.

책속에서

이제살펴보니,강영의설이매우자세하기는하지만,『사기』도본래따를만하다.돌아가신종숙단도군(丹徒君)의『경전소기』에“『이아』에‘『회남자』에주여구(州黎丘)가있다.’라고했는데,「주」에‘지금의수춘현(壽春縣)에있다.’라고했다.『염철론』을살펴보니‘공자는방정하기만했지원만하지못했기때문에여구(黎丘)에서굶주렸던것이다.’라고했는데,애공2년에채나라는주래로천도했고,4년에공자가진나라와채나라로갔으며,채나라로옮긴지3년뒤(애공6년)에오나라가진나라를토벌하자초나라가진나라를구원하러나서성보에군대를주둔시키고사람을시켜공자를초빙했는데,이때진나라와채나라사이에서양식이떨어졌던것이다.
---p.41

살펴보니,『춘추좌씨전』?「애공」11년「전」에“계씨가전묘(田畝)의다소에따라부세(賦稅)를징수하고자해서염유를시켜중니를방문하게하고의견을묻자,공자가말했다.‘나는모르겠다.’계씨가연달아염유를세차례보내어물었으나대답하지않자,염유를마지막으로보내어말하기를‘그대는국가의원로라서그대의대답을기다려일을처리하려하는데,어찌하여그대는말을하지않는가?’라고했다.중니는대답하지않고염유에게사적으로말하기를‘군자가일을처리함에는예를헤아려은택을베푸는경우에는후한쪽을취하고,일은중도를거행하고,세금을거두는것은박한쪽을따라야한다.
---p.108

살펴보니,『의례』「사관례」에“주인은현단복을입고검붉은색슬갑을하며,안내자[?者]는현단복을입고,손님은주인과똑같은옷을입고손님을돕는자는현단복을입고따른다.”라고했는데,가공언의「소」에“안내자[?者]에대해서‘주인과똑같은옷을입는다’라고말하지않고,별도로‘현단’이라고했으니,그렇다면주인과같지않음을알수있다.”라고했다.그렇다면주인의현단복은사의정복(正服)이되고,안내자의현단복은조복이된다.『논어』의이글과합해서보면,조빙과회동이있을경우무릇사로서안내자가된자는제사를도울때부터그외에는모두조복을착용하고피변을착용하는것이아님을알수있다.그러나조복이라면당연히“위모관[委貌]”이라고해야하는데,지금“장보관[章甫]”이라고한것은장보관이나위모관이나똑같이현관이되기때문이다.
---p.182

『문선』「동경부」에“말학(末學)을피부로받는다[膚受].”라고했는데,「주」에“피부로받는다[膚受]는것은살갗에만닿고마음속을거치지않는다는말이다.”라고했으니,바로마융이말한뜻이다.진전(陳?)의『논어고훈』에“『후한서』「대빙전」의「주」에‘『논어』에서공자가″피부로받는하소연″이라고했는데,「주」에″남이하소연하는말을받아들일때피부로받아들여그뜻의핵심을깊이알지못한다는말이다.″라고했다.’라고했다.상고해보건대,이것과마융의설이조금다른데,정현의「주」인듯싶다.”라고했다.지금살펴보니,황간의「소」에도“마융의이「주」와정현의「주」는유사하지않다”라고하면서정현「주」의문장을인용하지않았다.
---p.263

정현의「주」에“고요가사사(士師)가되었는데,정견(庭堅)이라불렀다.”라고했다.살펴보니,『서경』「순전」에“고요에게명하였다.‘너를사로삼는다.’”라고했고,『맹자』「진심상」에도“고요가사가되었다면.”이라고했는데,사사라고하지않았으니,아마도“사(師)”자는잘못불어난글자인듯하다.『주례』「추관사구상」에“사사(土師)”가있는데,대사구(大司寇)에소속되고,이하는대부가맡는다.『춘추좌씨전』「문공」5년의「전」에“고요정견(皐陶庭堅)”이라고했고,또18년의「전」에고양씨(高陽氏)에게재덕(才德)이있는아들여덟이있었는데,그중에정견이있고,두예의「주」에“정견은고요의자(字)이다.”라고했으니,고요는정견을부르는말이다.
---p.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