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로쿠잡지(상) (제1호~제13호 | 양장본 Hardcover)

메이로쿠잡지(상) (제1호~제13호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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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메이로쿠잡지(明六雜誌)』는 1873년 7월에 미국에서 귀국한 주미대리공사 모리 아리노리가 일본의 교육개혁을 목표로 동지들과 함께 설립한 학술결사 메이로쿠샤(明六社)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국민의 지적 수준 향상과 교육개선의 필요를 통감한 모리는 해외 학회에서 교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지식인들의 고립성과 폐쇄성을 타파하고, 지식인 간의 학문적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학술결사를 설립했다. 『메이로쿠잡지』는 메이로쿠샤 지식인들이 ‘교육의 진보’를 위해 지식을 보급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른바 ‘문명개화’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삼고자 했던 것인데, 그 ‘문명개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제시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논의의 다양성과 논쟁이 이 잡지의 특징이 되었다. 또 이 잡지에는 당대 일본뿐 아니라 서양에서 유행하던 지식이나 사상들이 다채롭게 소개되고 있어서, 우리에게 현재 ‘상식’이나 ‘교양’으로 정착해 있는 지식의 기원과 전파의 양상을 살펴보는 데 흥미로운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저자

메이로쿠샤동인

저자:메이로쿠샤동인
1873년,즉메이지6년에설립된근대일본학술단체메이로쿠샤(明六社)에서함께활동했던지식인들을가리킨다.여기에참가한서양학,유학등각분야의전문가들은이후일본에서근대적인형태의‘학술계’가성립하는데지대한영향을끼쳤는데,이전까지의학술모임은각분야안에서무리를지어교류하는것이일반적이었던만큼각분야의벽을넘어서하나의학술단체를결성한일자체가특이한현상이었다고말할수있다.

역자:김도형
세종대학교국제학부일어일문학전공조교수.성균관대학교철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교동아시아학술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근대일본의사상을중심으로연구하고있으며,특히서양사상의수용과재구축과정및양상에대해관심을가지고있다.논문으로「3·1운동이후일본언론매체의보도양상분석:의친왕탈출사건관련기사를중심으로」,「COMPETITIONANDHARMONYKatoHiroyuki’sNaturalismandEthicsforModernJapan」,「일본의로봇문화:친밀함,생명,공존의상상력」등을발표했고,공저로『메이지유신의침략성과재인식의문제』,『근현대동아시아지식장과정치변동』,『근대일본과번역의정치』등이,번역서로『입헌정체략·진정대의』,『번역된근대:문부성〈백과전서〉의번역학』(공역)등이있다.

역자:박삼헌
건국대학교일어교육과교수겸아시아콘텐츠연구소소장.고려대학교일어일문학과를졸업하고고베대학대학원에서일본사회문화사전공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근대일본의국가체제를중심으로연구하고있으며,최근에는메이지시대이후,‘메이지’를둘러싼역사인식과정치에관심이많다.저서로『근대일본형성기의국가체제:지방관회의·태정관·천황』,『천황그리고국민과신민사이』등이,공저로『한중일이함께쓴동아시아근현대사』,『동아시아도시이야기』,『일본사시민강좌』,『벌거벗은세계사:사건편2』등이,번역서로『천황의초상』,『천황아키히토와헤이세이일본사』등이있다.

역자:박은영
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술원연구교수.일본근대사,일본기독교사를전공했다.근대국가와전쟁,종교문제에관심이있으며,최근에는일본여성사의관점에서근대일본여성의사상형성문제를분석하고있다.공저로『일본사시민강좌』,『근대일본인의국가인식:메이지인물6인의삶을관통한국가』,『근현대동아시아지식장과정치변동』등이,번역서로『환경으로보는고대중국』,『서양을번역하다』,『번역된근대』(이상공역),『한중일비교통사』등이있다.

목차


해제
일러두기

제1호
1.서양글자로국어를표기하자(니시아마네)
2.개화의정도에따라문자를개량해야한다(니시무라시게키)

제2호
1.후쿠자와선생의논의에답하다(가토히로유키)
2.학자직분론에대하여(모리아리노리)
3.학자직분론에대한평(쓰다마미치)
4.비학자직분론(니시아마네)

제3호
1.개화제1화(모리아리노리)
2.진언일칙(니시무라시게키)
3.민선의원설립건언서에대한평(모리아리노리)
4.러시아표트르대제의유훈(스기고지)
5.개화를진전시킬방법에대해논하다(쓰다마미치)
6.옛상공들의주장을반박한다(니시아마네)

제4호
1.인민의자유와토지의기후는서로관련이있다①(미쓰쿠리린쇼)
2.블룬칠리씨『국법범론』발췌번역민선의원불가립의설(가토히로유키)
3.프랑스인‘쉴리’씨의국가가쇠미하게되는징후를든조목은다음과같다(스기고지)
4.종교론①(니시아마네)
5.벽돌건물에관한설(니시아마네)

제5호
1.보호세가잘못이라는주장(쓰다마미치)
2.종교론②(니시아마네)
3.‘북아메리카합중국의자립’(스기고지)
4.인민의자유와토지의기후는서로관련이있다②(미쓰쿠리린쇼)
5.미국의정치와종교①(가토히로유키)

제6호
1.출판의자유가이루어지기를바란다(쓰다마미치)
2.종교론③(니시아마네)
3.미국의정치와종교②(가토히로유키)
4.종교(모리아리노리)
5.필리모어『만국공법』중종교를논하는장(발췌요약)(시바타씨)

제7호
1.독립국권의(모리아리노리)
2.무관의공순(가토히로유키)
3.개화를앞당기는것은정부가아니라인민의중론이다(버클의『영국개화사』에서초역)(미쓰쿠리린쇼)
4.남북아메리카연방론(스기고지)
5.고문론①(쓰다마미치)
6.히라가나의설(시미즈우사부로)

제8호
1.복장론(쓰다마미치)
2.처첩론①(모리아리노리)
3.교육담(미쓰쿠리슈헤이)
4.공상에관해서기록하다(스기고지)
5.종교론④(니시아마네)
6.근본은하나가아니다(쓰다마미치)

제9호
1.운송론(쓰다마미치)
2.리버티설(미쓰쿠리린쇼)
3.종교론⑤(니시아마네)
4.정론①(쓰다마미치)

제10호
1.고문론②(쓰다마미치)
2.참된위정자에관한설(스기고지)
3.서학일반①(나카무라마사나오)
4.질의일칙①(사카타니시로시)

제11호
1.정론②(쓰다마미치)
2.처첩론②(모리아리노리)
3.서학일반②(나카무라마사나오)
4.질의일칙②(사카타니시로시)

제12호
1.종교론⑥(니시아마네)
2.정론③(쓰다마미치)
3.서학일반③(나카무라마사나오)

제13호
1.미국의정치와종교③(가토히로유키)
2.상상론(쓰다마미치)
3.민선의원을세우는데먼저정체를정해야한다는것에대한의문(사카타니시로시)

『메이로쿠잡지』의기고자들
역자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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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메이로쿠잡지(明六雜誌)』는1874년(메이지7)4월2일창간호를시작으로1875년(메이지8)11월14일정간시까지모두43호가발행된잡지다.이잡지는1873년(메이지6)7월에미국에서귀국한주미대리공사모리아리노리가유럽과미국에서의체험을기초로,일본의교육개혁을목표로하여같은해8월에동지들과함께설립한학술결사메이로쿠샤가만들어지면서시작되었다고말할수있다.메이지유신이후근대국가건설을위해국민전체의지적수준향상과그것을위한교육개선의필요를통감한모리는해외의학회에서학자및지식인들과교류한경험을바탕으로일본지식인들의고립성과폐쇄성을타파하고,지식인간의학문적교류를촉진하기위해학술결사를설립하려고했던것이다.

이렇게결성된모임은매월1-2차례정도의정기집회를가졌고,이모임이1873년에발족했기때문에메이지6년(메이지로쿠넨)에서따메이로쿠샤라는이름을붙이게되었다.이들대부분은자신들이학습한내용을널리세상에알리고지식을보급하는것으로세상의진보를가져올수있다고믿는낙관론자들이었다.이시대서양에는자연과학적지식을확대하고그것을사회에적용하여‘문명’을‘진보’시킬수있다고믿는낙관주의적목적론이유행하였고,그것이서양의문명을표준으로하는것이었던만큼,그것을일본에서가능케하는데필요한지식과방법은무엇인지가이들지식인의최대관심사였다.그것은흔히‘문명개화’라는단어로표현되었으며,이단어자체가메이로쿠샤의지식인들이공통적으로공유하고추진하는목표가되어있었다고말해도좋을것이다.

메이로쿠샤지식인들이그‘교육의진보’를위해지식을보급한다는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으로서추진했던것은크게두가지였는데,그중하나는‘연설회개최’였고,다른하나는‘잡지의발행’이었다.『메이로쿠잡지』는이런동일한목적을공유한성원들이스스로획득한지식을사람들에게소개하고보급함으로써이른바‘문명개화’를촉진하는수단으로삼고자했던것인데,그러나목적과수단은공유되었을지언정,그‘문명개화’의내용에대해서는다양한이견이제시될수밖에없었고,이런논의의다양성과논쟁이분출되었던것이이잡지의특징이되었다.그렇기때문에이잡지는어떤단일한논의나의도를가진것으로읽어내기보다는,그안에어떤종류의,얼마나다양한‘문명’의궁리들이존재했는지를읽어내는방식으로접근하는것이보다유효한독해법이될것이다.

또이잡지에는당대일본뿐아니라서양에서유행하던지식이나사상들이다채롭게소개되고있어서,우리에게현재‘상식’이나‘교양’으로정착해있는지식의기원과전파의양상을살펴보는데흥미로운단서들을제공해준다.

이잡지에는다양한사람들이참여했다.지적배경으로보자면서양학자부터한학자까지,연령대로보아도당시27세의모리아리노리부터52세의사카타니시로시까지,‘남성’이라는공통점이외에는모두다른환경과입장에처한이들이었다.그러나이들은모두새로운시대에적합한‘지식’에대한왕성한욕구를지니고있었고,당면한과제로서‘문명개화’라는목표를공유했다.메이로쿠샤라는모임과그결과물로서의잡지는오래지속되지못했지만,그경험과시행착오가이후근대일본의지식계,학술계를구축하는데중요한자양분이되었던것은분명하다.

이러한지식인들의활동에대해이후철학자오니시하지메는“우리나라유신이후로십수년간은오직계몽적사조의정신으로돌진”하였다고평가했다.이것이일본에서‘계몽’이라는단어의첫사용사례이자번역사례임을생각하면,앞에서살펴본일련의움직임들이근대일본에서전개되었던초기‘계몽’의양상들이며,『메이로쿠잡지』는이런양상들을생생하게담아전해주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