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로쿠잡지(중) (제14호~제28호 | 양장본 Hardcover)

메이로쿠잡지(중) (제14호~제28호 | 양장본 Hardcover)

$31.36
Description
『메이로쿠잡지(明六雜誌)』는 1873년 7월에 미국에서 귀국한 주미대리공사 모리 아리노리가 일본의 교육개혁을 목표로 동지들과 함께 설립한 학술결사 메이로쿠샤(明六社)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국민의 지적 수준 향상과 교육개선의 필요를 통감한 모리는 해외 학회에서 교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지식인들의 고립성과 폐쇄성을 타파하고, 지식인 간의 학문적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학술결사를 설립했다. 『메이로쿠잡지』는 메이로쿠샤 지식인들이 ‘교육의 진보’를 위해 지식을 보급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른바 ‘문명개화’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삼고자 했던 것인데, 그 ‘문명개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제시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논의의 다양성과 논쟁이 이 잡지의 특징이 되었다. 또 이 잡지에는 당대 일본뿐 아니라 서양에서 유행하던 지식이나 사상들이 다채롭게 소개되고 있어서, 우리에게 현재 ‘상식’이나 ‘교양’으로 정착해 있는 지식의 기원과 전파의 양상을 살펴보는 데 흥미로운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저자

메이로쿠샤동인

저자:메이로쿠샤동인
1873년,즉메이지6년에설립된근대일본학술단체메이로쿠샤(明六社)에서함께활동했던지식인들을가리킨다.여기에참가한서양학,유학등각분야의전문가들은이후일본에서근대적인형태의‘학술계’가성립하는데지대한영향을끼쳤는데,이전까지의학술모임은각분야안에서무리를지어교류하는것이일반적이었던만큼각분야의벽을넘어서하나의학술단체를결성한일자체가특이한현상이었다고말할수있다.

역자:김도형
세종대학교국제학부일어일문학전공조교수.성균관대학교철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교동아시아학술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근대일본의사상을중심으로연구하고있으며,특히서양사상의수용과재구축과정및양상에대해관심을가지고있다.논문으로「3·1운동이후일본언론매체의보도양상분석:의친왕탈출사건관련기사를중심으로」,「COMPETITIONANDHARMONYKatoHiroyuki’sNaturalismandEthicsforModernJapan」,「일본의로봇문화:친밀함,생명,공존의상상력」등을발표했고,공저로『메이지유신의침략성과재인식의문제』,『근현대동아시아지식장과정치변동』,『근대일본과번역의정치』등이,번역서로『입헌정체략·진정대의』,『번역된근대:문부성〈백과전서〉의번역학』(공역)등이있다.

역자:박삼헌
건국대학교일어교육과교수겸아시아콘텐츠연구소소장.고려대학교일어일문학과를졸업하고고베대학대학원에서일본사회문화사전공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근대일본의국가체제를중심으로연구하고있으며,최근에는메이지시대이후,‘메이지’를둘러싼역사인식과정치에관심이많다.저서로『근대일본형성기의국가체제:지방관회의·태정관·천황』,『천황그리고국민과신민사이』등이,공저로『한중일이함께쓴동아시아근현대사』,『동아시아도시이야기』,『일본사시민강좌』,『벌거벗은세계사:사건편2』등이,번역서로『천황의초상』,『천황아키히토와헤이세이일본사』등이있다.

역자:박은영
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술원연구교수.일본근대사,일본기독교사를전공했다.근대국가와전쟁,종교문제에관심이있으며,최근에는일본여성사의관점에서근대일본여성의사상형성문제를분석하고있다.공저로『일본사시민강좌』,『근대일본인의국가인식:메이지인물6인의삶을관통한국가』,『근현대동아시아지식장과정치변동』등이,번역서로『환경으로보는고대중국』,『서양을번역하다』,『번역된근대』(이상공역),『한중일비교통사』등이있다.

목차


해제
일러두기

제14호
1.지설①(니시아마네)
2.리버티설②(미쓰쿠리린쇼)
3.화폐의효능(스기고지)
4.덴구설(쓰다마미치)

제15호
1.처첩론③(모리아리노리)
2.서학일반④(나카무라마사나오)
3.조세의권한은상하가함께관여해야한다는설(사카타니시로시)
4.정론④(쓰다마미치)

제16호
1.정론⑤(쓰다마미치)
2.인간공공의설①(스기고지)
3.서학일반⑤(나카무라마사나오)
4.애적론(니시아마네)

제17호
1.재정변혁의설(간다다카히라)
2.지진의설(쓰다마미치)
3.지설②(니시아마네)

제18호
1.서양의개화는서행한다는설(쓰다마미치)
2.국가를가볍게여기는정부(가토히로유키)
3.인간공공의설②(스기고지)
4.화장에관한의문(사카타니시로시)
5.정실에관한설(니시아마네)
6.국악을진흥해야한다는주장(간다다카히라)

제19호
1.비밀에관한설(니시아마네)
2.민선의원의시기는아직도래하지않았음을논한다(간다다카히라)
3.존이설(사카타니시로시)
4.인간공공의설③(스기고지)

제20호
1.신문지론(쓰다마미치)
2.처첩론④(모리아리노리)
3.호설에대한의문(사카타니시로시)
4.호설의넓은뜻(사카타니시로시)
5.지설③(니시아마네)

제21호
1.정대화의에대한연설(후쿠자와유키치)
2.삼성론(쓰다마미치)
3.인간공공의설④(스기고지)
4.여성의치장에대한의문(사카타니시로시)

제22호
1.지설④(니시아마네)
2.부부유별론(쓰다마미치)
3.정교에대한의문(사카타니시로시)
4.화학개혁의대략(시미즈우사부로)
5.지폐인체간원록(화폐론첫번째)(간다다카히라)

제23호
1.내지여행(니시아마네)
2.정금외출탄식록(화폐론두번째)(간다다카히라)
3.서학일반⑥(나카무라마사나오)

제24호
1.내지여행론(쓰다마미치)
2.무역개정론(스기고지)

제25호
1.지설⑤(니시아마네)
2.정교에대한나머지의문(사카타니시로시)
3.괴설(쓰다마미치)

제26호
1.내지여행에관한니시선생의설을반박한다(후쿠자와유키치)
2.무역균형론(쓰다마미치)
3.지폐성행망상록(화폐론세번째)(간다다카히라)

제27호
1.처첩론⑤(모리아리노리)
2.민선의원변칙론(사카타니시로시)

제28호
1.민선의원변칙론(사카타니시로시)
2.정체삼종설(상)(니시무라시게키)
3.정체삼종설(하)(니시무라시게키)

『메이로쿠잡지』의기고자들
역자후기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메이로쿠잡지(明六雜誌)』는1874년(메이지7)4월2일창간호를시작으로1875년(메이지8)11월14일정간시까지모두43호가발행된잡지다.이잡지는1873년(메이지6)7월에미국에서귀국한주미대리공사모리아리노리가유럽과미국에서의체험을기초로,일본의교육개혁을목표로하여같은해8월에동지들과함께설립한학술결사메이로쿠샤가만들어지면서시작되었다고말할수있다.메이지유신이후근대국가건설을위해국민전체의지적수준향상과그것을위한교육개선의필요를통감한모리는해외의학회에서학자및지식인들과교류한경험을바탕으로일본지식인들의고립성과폐쇄성을타파하고,지식인간의학문적교류를촉진하기위해학술결사를설립하려고했던것이다.

이렇게결성된모임은매월1-2차례정도의정기집회를가졌고,이모임이1873년에발족했기때문에메이지6년(메이지로쿠넨)에서따메이로쿠샤라는이름을붙이게되었다.이들대부분은자신들이학습한내용을널리세상에알리고지식을보급하는것으로세상의진보를가져올수있다고믿는낙관론자들이었다.이시대서양에는자연과학적지식을확대하고그것을사회에적용하여‘문명’을‘진보’시킬수있다고믿는낙관주의적목적론이유행하였고,그것이서양의문명을표준으로하는것이었던만큼,그것을일본에서가능케하는데필요한지식과방법은무엇인지가이들지식인의최대관심사였다.그것은흔히‘문명개화’라는단어로표현되었으며,이단어자체가메이로쿠샤의지식인들이공통적으로공유하고추진하는목표가되어있었다고말해도좋을것이다.

메이로쿠샤지식인들이그‘교육의진보’를위해지식을보급한다는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으로서추진했던것은크게두가지였는데,그중하나는‘연설회개최’였고,다른하나는‘잡지의발행’이었다.『메이로쿠잡지』는이런동일한목적을공유한성원들이스스로획득한지식을사람들에게소개하고보급함으로써이른바‘문명개화’를촉진하는수단으로삼고자했던것인데,그러나목적과수단은공유되었을지언정,그‘문명개화’의내용에대해서는다양한이견이제시될수밖에없었고,이런논의의다양성과논쟁이분출되었던것이이잡지의특징이되었다.그렇기때문에이잡지는어떤단일한논의나의도를가진것으로읽어내기보다는,그안에어떤종류의,얼마나다양한‘문명’의궁리들이존재했는지를읽어내는방식으로접근하는것이보다유효한독해법이될것이다.

또이잡지에는당대일본뿐아니라서양에서유행하던지식이나사상들이다채롭게소개되고있어서,우리에게현재‘상식’이나‘교양’으로정착해있는지식의기원과전파의양상을살펴보는데흥미로운단서들을제공해준다.

이잡지에는다양한사람들이참여했다.지적배경으로보자면서양학자부터한학자까지,연령대로보아도당시27세의모리아리노리부터52세의사카타니시로시까지,‘남성’이라는공통점이외에는모두다른환경과입장에처한이들이었다.그러나이들은모두새로운시대에적합한‘지식’에대한왕성한욕구를지니고있었고,당면한과제로서‘문명개화’라는목표를공유했다.메이로쿠샤라는모임과그결과물로서의잡지는오래지속되지못했지만,그경험과시행착오가이후근대일본의지식계,학술계를구축하는데중요한자양분이되었던것은분명하다.

이러한지식인들의활동에대해이후철학자오니시하지메는“우리나라유신이후로십수년간은오직계몽적사조의정신으로돌진”하였다고평가했다.이것이일본에서‘계몽’이라는단어의첫사용사례이자번역사례임을생각하면,앞에서살펴본일련의움직임들이근대일본에서전개되었던초기‘계몽’의양상들이며,『메이로쿠잡지』는이런양상들을생생하게담아전해주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