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조북맹회편 제2책 (권7~권14 | 양장본 Hardcover)

삼조북맹회편 제2책 (권7~권14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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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거란의 지배를 받던 일개 변방 부족인 여진은 아골타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역량을 모아 가공할 전투력을 갖춘 집단으로 거듭나게 된다. 거란의 천경 4년인 1114년 겨우 2천의 기병으로 처음 궐기한 여진은 단 14년 만에 거란과 송이라고 하는 당시 세계 최강의 두 강대국을 연이어 멸망시키기에 이른다. 왜 빼어난 군사력을 갖춘 거란과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에 1억 2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강대국 송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었을까? 서몽신은 휘종과 흠종, 그리고 고종 등 세 황제가 북쪽의 금조와 추진한 맹약과 그로 말미암은 송의 멸망이란 처참한 결과를 복원하기 위해 현장 기록으로부터 첩문, 조서, 국서와 같은 공문서까지 다양한 문서를 수집하여 모두 150만 자에 달하는 망국의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이 처절한 기록을 통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역서는 중국과 일본 학자들도 손대지 못한 난해한 판본을 꼼꼼하게 교열한 뒤 치밀한 번역과 상세한 각주를 통해 12세기 전후의 역사상을 복원한 연구서로 한국의 중국학 수준을 과시할 수 있는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서몽신

찬자:서몽신(徐夢莘,1126∼1207)
남송때의사람으로자(字)가상로(商老)이며강남서로(江南西路)임강군(臨江軍)청강현[淸江縣,현강서성의춘시(宜春市)장수시(樟樹市)]출신이다.평범한집안출신으로어려서부터경전과사서,소설에이르기까지탐독하였는데,탁월한암기력을자랑하였다고한다.지방관을역임하면서현지실정에맞는정책을소신에따라추진하였으며그로인한불이익을기꺼이감수한인물이었다.
서몽신은『삼조북맹회편』외에도『북맹집보(北盟集補)』,『회록(會錄)』,『독서기망(讀書記忘)』등의저작이있다고하나모두실전(失傳)되고현재는『삼조북맹회편』만전해지고있다.

목차

차례

머리말
해제
범례:요약

제7권
선화4년(1122)5월18일을해일~6월3일경인일
제8권
선화4년(1122)6월3일경인일~6월12일기해일
제9권
선화4년(1122)6월24일신해일~9월23일기묘일
제10권
선화4년(1122)9월27일계미일~10월20일을사일
제11권
선화4년(1122)10월23일무신일~11월27일임오일
제12권
선화4년(1122)12월2일정해일~12월15일경자일
제13권
선화5년(1123)1월1일을묘일~1월27일신사일
제14권
선화5년(1123)2월1일을유일~2월28일임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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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동아시아를하나로아우르는방대한문화권을이룩하는데크게기여한당조(唐朝)는안사安史의난이후번진(藩鎭)의난립으로약해지다가황소(黃巢)의난으로치명타를입고주전충(朱全忠)의후량(後梁)에게망하게되면서,대륙은오대십국의분열기를맞게된다.그가운데오대의세번째왕조인후진(後晉)의석경당(石敬瑭)은제위에오르기위해거란의도움을받고자현북경(北京)과대동(大同)을중심으로하는연운16주(燕雲十六州)를거란에할양하였다.그리고이렇게할양해준연운16주는이후송조에게가장아픈손가락이되었다.
오대십국의분열상은송조의통일로표면상종결되었지만,송의국세는당조만못하였다.북방의거란이막강한군사력으로압박하는상황에더해서북부에서하(西夏)가,티베트에토번(吐蕃)이,운남에대리(大理)가새로들어서면서10세기동아시아는거란과송의남북관계가중심축으로작동하고동쪽의고려와서쪽의서하가횡축을형성하며,토번(吐蕃)과대리(大理)가또다른보조축을형성한보기드문다자간각축전의무대가되
었다.
이런복잡한상황은1005년거란과송이전연(澶淵)의맹약을체결하면서일단락되어110여년에걸친장기평화라는새로운국면에진입하였다.전연의맹약은거란에게는물론송조에게도매우긍정적인외교적성과물이었다.장기적인군사외교적안정이송조경제발전의기반이되었고,논란의중심에있던세폐부담도국방비의규모에비하면결코과중한것이아니었기때문이다.하지만어떤합리적인논증에도불구하고‘전연체제’는중화사상에매몰된송조사대부에게늘굴욕적인것으로인식되었다.세폐가곧조공일수밖에없다는인식과통일제국으로서의영토적불완전성을공인했다는점이바로그핵심이었다.
송의통치자는자기왕조가한과당처럼명실상부한통일제국으로인정받기위해서는장성이남의영토를온전히장악하고,북방유목민에대한최소한의군사적균형을유지해야한다는것을잘알고있었다.그리고자신들의군사적열세가현장성일대에해당하는연운지역의지리적이점을상실한데있고,세폐는그지역을포기한데에따른결과물이라고여겼다.따라서연운지역포기를공식화한전연체제의극복이야말로송조가달성해야할최대의과제라고생각하였다.
하지만이를달성하려면중문경무(重文輕武)를표방한‘조종지법(祖宗之法)’을손봐야했고,왕안석의신법이바로그러한도전이었다.그러나많은논란끝에추진한신법은서하와의전쟁에서대패함으로써무위로돌아갔고,신종(神宗)이급서하자이런일련의상황에대한책임을둘러싼내부갈등은커져만갔다.이런상태에서송조는예상치못한금의갑작스러운흥기와거란의급속한쇠퇴라는상황을맞이하면서여진과의동맹에대한논란이벌어졌다.이때송조가채택할수있는방안은다음과같은세가지가있었다.
첫째는거란을도와여진을평정하고우호를굳건히유지하면서반대급부로연운16주할양을요구하는것이다.
둘째는여진을도와거란을멸하고연운16주를취하는등거란의옛영토를여진과나누는것이다.
셋째는거란과여진을공존시켜북방세력을양분하여송조가상대적우위를유지하는것이다.
물론이세가지선택지는송조가상황을주도할수있는군사력이없었기에실현성이떨어지는이론에불과하나,결과적으로송조는새로운강적을도와주는최악의선택지를고르는우를범하였다.이런선택에는송의황제독재체제가지닌약점이결정적으로작용하였다.자신을도교의신으로자처하는등현실감각이결여된채근거없는공명심과자신에대한과대평가에매몰되었던휘종(徽宗)은금과동맹을체결하여연운지역을회복함으로써불세출의대업적을이루길소망하였다.부패에물든집권층역시휘종의욕망에부응하여아전인수적인정세분석을제시하며무리한정책을추진하였다.물론송의집권층은자체군사력이취약하므로연운한인(漢人)의내응이필수이나그들을신뢰하기힘들다는것을잘알고있었다.그럼에도급변하는거란과금의관계를방치할경우,연운회복의기회를상실할지도모른다는조바심과대신들의이기적인공명심이더해져결국송금동맹이체결되었다.
자체역량이부족한상태에서제3자에의지하여거란을멸망시키고연운지역을점령한다는송조의전략은사실상국운을건한판의도박과다름없는일이었다.게다가휘종을비롯한집권층은거란과금의역량과상황을정확하게판단하지못했고,개인적안위와이익에만연연하던기회주의자들을자신의우호세력이라고간주하는우를범하였다.이처럼요행을바라는정책결정자들과기회주의자와의결합에더해문제를악화시킨것은송군의전투역량이상상을초월할정도로형편없었다는점이다.송군은멸망을눈앞에둔거란의잔여세력조차제압하지못하였다.군사적무기력은송의협상카드를전면무력화하였으며,힘의불균형을밑바탕에깔고맺어진금과의동맹은송군의거듭된패배로더욱균형을상실하였다.
흠종(欽宗)은전례없는국난을맞아시종좌고우면하였으며,보좌진역시상황을반전시킬역량을갖추지못한채상황이악화될수록고식책(姑息策)에집착,문제를더욱더악화시켰다.원래송의관료는과거를통해서선발된가장우수한엘리트집단이었으나,휘종대에이르러환관세력과결탁하며보여준모습은이해하기힘들정도로형편없었다.뛰어난지적수준과극도로저열한인격의부조화는결국송조를절망적인상황으로이끌고말았다.

금의예상치못한거병부터거란의멸망을거쳐송의멸망까지소요된시간은채14년이걸리지않았다(1114~1127).북아시아를제패하고있던막강한유목제국거란과1억2천만의인구를지녔고경제적으로승승장구하던강대국송이국가형태조차갖추지못한일개부족에게동시에멸망당한것은세계사에서유례를찾을수없는일대사건이다.이에혹자는금의굴기를논리적으로설명할수없는일종의‘영적팽창’같은것이라고말하기도한다.
역사의미스터리라고할정도로예상밖의사건이었던거란과북송의멸망,금의흥기를총체적으로살펴볼수있는키가바로서몽신(徐夢莘)의『삼조북맹회편』이다.서몽신은250권에달하는방대한분량을통해여진과의동맹체결에대한논란,전쟁의진행과정,당시인물에대한평가등을총체적으로담아냈고,여진관련초기사료도잘보존하였다.서몽신은북벌론에대하여부정적인관점을지니고있었지만,자신의견해와판단을직접적으로피력하는대신제3자의말을그대로수록하여독자에게판단과평가를위임하는춘추필법(春秋筆法)의전통을견지하였다.그결과『삼조북맹회편』에는상반된사료가다량수록되어다소혼란스럽기도하지만그만큼사료의신뢰성은높이평가받는다.한편『삼조북맹회편』은많은화자의말과글을그대로인용하였으므로그안에당시의언어적특성을담은어휘와초기백화(白話)의형태가고스란히담겨있기도하다.그래서『삼조북맹회편』은역사서임과동시에한어사(漢語史)연구의보고로주목받기도한다.이런점은아래「해제」에서좀더자세히다루기로한다.
사가에게있어망국의역사를기록하는것만큼고통스러운작업은없을것이다.서몽신은자존심상하는교섭의과정과망국의참담한상황을통해당시송조가처했던상황이선택의여지가없었던불가항력적인것이아니었음을증언하고있다.서몽신은제아무리뛰어난지식이있더라도정직성과결단력이결여되면,그리고이기심에사로잡히면얼마나어리석은결정을내릴수있는지말해준다.아무리많은군대와무기를가지고있더라도용기와희생이란품성이없이는모든것이무용하다는사실도말해준다.특히권력자가유의해야할것이바로허위의식과공명심에매몰되는것임도거듭강조한다.
『삼조북맹회편』의판각과인쇄에앞장선허함도(許涵度)와원조안(袁祖安)등청말의학자들이보여준지식인으로서의태도역시서몽신에못지않게감동을안겨준다.청말의국난속에서오히려굴욕의역사를반추함으로써서구열강의침략에맞설수있는방략을모색하였던역사학자들의치열함과그용기가각별하기때문이다.
『삼조북맹회편』이이처럼중요한문헌임에도불구하고지금까지판본조차본격적으로정리되지못한것은한마디로말해너무방대하고난해하기때문이다.
난해한이유는크게네가지이다.첫째는책이완성된이래600년이상필사본으로전해지면서여러종류의필사본이출현하였다.여러필사본을비교하면더욱합리적인기록을찾을수도있지만,문장의완결성이떨어지거나불완전한묘사등이적지않다.둘째는너무나다양한문체의문서를다루고있다.극도로현학적이며전고를찾기어려운조서(詔書)류의문장부터당시북방에서통용된이른바한아언어(漢兒言語)의문장까지다양한문체의문서가혼용되어있다.셋째는여타문헌에서흔히보이지않는지명·인명·관명을비롯해천문·지리·역법은물론이고,전투방법에이르기까지다양한사건과사안이포함되어있다.넷째는수록된사건이여타문헌에등장하지않거나서로다른각도에서기술되어방증자료를찾기어렵다는점이다.
우리연구팀이『삼조북맹회편』연구를시작한것은지금으로부터19년전이다.2005년,한어사(漢語史)연구에서『삼조북맹회편』이지닌중요성에착안하여박영록교수가국내외한어사연구자와소규모팀을조직하여“『삼조북맹회편』의송대언어특징에대한기초연구”라는제목으로한국연구재단의소규모공동연구지원사업에선정된것이지난19년간의항해를시작하게된출발점이었다.2005년12월6일에시작된윤독회는2021년4월17일까지모두155회가진행되었고,2021년한국연구재단의명저번역사업에선정된뒤로는3년동안매주줌회의방식을통해번역물을공유하고검토하고수정하는과정을거쳤다.그사이에송금원시대사연구자,중국어사연구자,중국문학연구자등3개영역에서다양한연구자들이이연구모임을거쳐갔는데,1년이상참여한연구자만도
23명에이른다.
19년에걸친긴항해에도불구하고우리가지치지않고꾸준히노를저을수있었던것은중국과일본학자들도이루지못한『삼조북맹회편』의판본교열과번역을최초로달성하려는학문적열정과각별한우정이우리연구팀에게있기때문이며,한편으로는우리에게도움과격려,배려를아끼지않고어려울때마다징검다리를놓아준많은동학(同學),그리고가족들의배려덕분이다.250권가운데70권의번역을마친지금,우리가가야할길이아직멀다는것을잘알고있기에‘역자후기’를쓸수있는감격스러운날을꿈꾸며감사의말씀을뒤로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