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정치사술논고

당대정치사술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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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중국사 개설서의 대부분에는 당 황실과 그 지배층의 성격과 관련하여 ‘관롱집단설’이 소개되어 있다. 북조北朝 말 이래 서위西魏·북주北周·수隋·당唐 네 왕조의 황실과 지배층은 관중關中 지역과 농서隴西 지역 출신으로 호한胡漢 혼혈이거나 호한 문화에 익숙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 주장을 담은 책이 바로 1943년에 출간된 진인각陳寅恪의 『당대정치사술논고唐代政治史述論稿』이다.
이 책은 유목 문화의 영향 속에서 성장한 당 황실 및 지배층의 출신과 그 세력 확대 과정, 당 멸망까지 지배층의 역학 관계 및 정치 정세의 변화, 당조의 멸망과 이민족 정세 사이의 관계를, 저자의 박람한 사료 섭렵, 치밀한 논증 그리고 역사에 대한 거시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정치 측면에서 당조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특히 당조의 역사를 정주 지역과 유목 지역의 연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여 당조가 한족漢族 중심의 왕조라는 시각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그 관점은 이후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현재 유라시아 대륙 속에서 중국사를 이해하려는 시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대정치사술논고』는 여전히 명저名著로서 일독할 만하다.
저자

진인각

저자:진인각
1890년중국장사(長沙)출생으로일본도쿄의고분가쿠인(弘文學院),중국상해의복단공학(復旦公學),구미의베를린대학,취리히대학,파리정치대학,하버드대학등에서수학하였다.유학후귀국하여,1925년청화대학(淸華大學)에교수로부임한이후향항대학(香港大學),광서대학(廣西大學),연경대학(燕京大學),영남대학(嶺南大學),중산대학(中山大學)교수를역임하였다.전목(錢穆),진원(陳垣),여사면(呂思勉)등과더불어‘현대사대사학가(現代四代史學家)’중한명으로칭해진다.
대표적저서로는『당대정치사술논고』외에『수당제도연원략논고(隋唐制度淵源略論稿)』,『금명관총고초편(金明館叢稿初編)』,『금명관총고이편(金明館叢稿二編)』,『유여시별전(柳如是別傳)』등이있다.

역자:최재영
서울대학교동양사학과에서학문적수련을받은뒤,한림대학교인문학부사학전공에서연구와교육을하였으며,현재는서울대학교역사교육과부교수로재직중이다.저서로는『새로쓰는지역사와세계사』(공저,선인,2023),『넓고깊게보는중국미술唐』(공저,민속원,2020)등이있으며,역서로는『중국고대도성제도사』상·하(세창출판사,2019,2021),『장안은어떻게세계의수도가되었나』(황금가지,2006)등이있다.주요논문으로는「당후기장안성의변화와도성」(『한국고대사연구』116,2024),「당대문서행정법령의체계와그의미」(『중국학보』91,2020)등이있다.

목차

옮긴이의말/5
자서(自序)/15

상편통치계급의씨족및그부침17

중편정치혁명및당파분립135

하편이민족성쇠의연동성및외환과내정의관계339

인명색인/425

출판사 서평

진인각은수당의통치제도를분석한『수당제도연원략논고』와당대정치사를다룬『당대정치사술논고』를통해당조(唐朝)의성립과통치구조의성격을밝히고자하였던것이다.
1943년중경(重慶)의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처음으로출간된『당대정치사술논고』는모두세편의글로구성되어있다.「상편통치계급의씨족및그부침」,「중편정치혁명및당파분립」,「하편이민족성쇠의연동성및외환(外患)과내정(內政)의관계」등이다.상편에서는당의초대황제이연(李淵)및당의건국세력은서위우문태(宇文泰)의관중본위정책으로결속된관롱집단의일원으로서권세를가지고있었지만무측천(武則天)이관중본위정책을거부하고산동(山東)과강남(江南)출신의과거합격자를중용함으로써관롱집단이결국현종(玄宗)대에이르러서는와해되었다는것을기술하고있다.중편에서는현무문(玄武門)의변(變)의성격,안사(安史)의난(亂)이후환관의권력장악,황위계승의불안정,우이당쟁(牛李黨爭)의성격등당초(唐初)부터당말(唐末)까지벌어진주요정치사건및권력투쟁의역사적의미를설명하고있다.하편에서는주변민족의흥망과당조와의관계에대해당과돌궐,위구르,토번,고구려,남조(南詔)등사이의관계변천및이민족세력사이의연동성과그위협이당조의정치에미친영향을기술하며당의멸망이단지황소(黃巢)의난(亂)때문이아니라계림(桂林)등서남지역의혼란때문이라고하여당의성쇠가주변민족과의관계와연동되어있다는점을지적하고있다.

곧이책은유목문화의영향속에서성장한당황실및지배층의출신과그세력확대과정등당건국의지배층의성격을분석하고이어서당멸망까지지배층의역학관계및정치정세의변화를추적하여정치측면에서당조의역사를기술하고있다.마지막으로당황실및지배층이이민족의영향을받아등장하고성장한것처럼당조의멸망도이민족의관계가주요요인이라는것을지적하여당조내내당조의정치에서는이민족과의관계가중요하다는점을강조하였다.이를통해당조의역사를정주지역과유목지역의연동으로이해할수있는관점을제시하였던것이다.그논증을위해『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등정사만이아니라『태평광기(太平廣記)』등필기소설,비명(碑銘),돈황출토문서등다양한사료를박람하게인용하고신중하게분석하고있다.

이책의내용은이후당대사연구및중국사에대한시각에큰영향을끼쳤다.우선당조가한족(漢族)중심의왕조라는시각에서벗어나게하였다.이것은중국학계만이아니라우리나라학계,일본학계,그리고구미학계모두에영향을끼쳤다.그의연구는이후당조가광대한영토를지배한이유를설명하는연구나당조를이른바‘세계제국’으로성격규정하는연구등에서주요한논거로여전히인용되고있다.
더욱이오늘날중국사에대한새로운연구경향중하나인유라시아대륙속에서중국사를이해하는연구경향에서도그의영향을확인할수있다.종래중국과그인근지역과의관계를설명할때주된관점이었던‘동아시아세계론’혹은‘동아시아문화권’은중국중심적시각이었으나근래에는유목지역의역사적위상을강조하면서유라시아대륙속에서중국사를파악하여중국을상대화하는연구성과가많은관심을끌고있다.정주지역과유목지역의연동으로당조의역사를파악하려는그의관점이더욱긍정적으로재평가되고있는이유이다.이처럼『당대정치사술논고』는이제까지진행된당대사연구뿐만아니라오늘날주목받고있는유라시아대륙속에서중국사를이해하려는시각에도영향을지속적으로끼치고있다는점에서여전히명저(名著)로서손색이없다고할것이다._옮긴이의말中에서

책속에서

“무릇투항한번이(蕃夷)에대해서은혜를베풀어대접하였으며…(중략)…안녹산은오랑캐의말에능통하여몸소스스로그들을위로하고어루만지고,포로로사로잡은자들을모두석방하여전사로삼았으니그수하들은기꺼이사력을다하였으므로싸우는대상가운데앞에서맞서는이가없었다.”고하였다.이것이곧안녹산이중앙아시아호인으로서지닌상업과언어방면의특출나고뛰어난장점을이용하였다는것을증명하는사례이다._90면

장헌성과설숭이비록모두높은신하의자손이었고또한하삭지역의토착인이아니었을지라도그의부친이범양에서관직을맡았기때문에어릴때부터그지역에서살면서점차물들어호화되었고마침내전승사의무리와다를것이없게되었다.풍속이사람을바꾼것이이처럼너무지나쳤으니하삭지역의당시사회문화의정황역시미루어알수있다._117면

“영호초는건국초기십팔학사(十八學士)가운데한명인영호덕분의후손이라고스스로말하였다.”고하였다.
『신당서』영호초전에서는비록‘스스로말하였다[자언(自言)]’두글자를삭제하기는하였지만그책권75하재상세계표영호씨(令狐氏)조에따르면영호초는실제영호덕분으로부터나온것이아니다.그리하여『구당서』열전의‘스스로말하였다[자언(自言)]’라는말은굳이삭제하여서는안되는것이었다.무릇영호초·영호도부자는대대로재상을이었고더욱이우당의중견인물이되었으나그가계의보첩(譜牒)이의탁하고있는바역시백민중의사례와같았다.바로우당혹은신흥계급이스스로칭한문벌은신뢰할만하지않다는것은이를살펴보면알수있는것이다._242-243면

북돌궐또는동돌궐의패망은당에게적이된것이외에그주된원인은,첫째영역내에서일어난자연재해및정치혼란이며둘째는인접한다른부족인회흘(위구르)과설연타의흥기라는두가지인데그것은중국에게이용할만한틈을주었다.그렇지않다면비록당태종의영민하고용맹스러움으로도역시이같은기적에결코이를수없었을것이다.이것이이민족성쇠의연동성을보여주는한예증이다._350면

당중앙정부가방훈·황소와싸워이긴것은실제는사타부락의도움에힘입은것인데무릇부병제도가무너진지이미오래된후에는호인(胡人)병사를제외하면아마달리활용할만한무력을얻기쉽지않았던것이다.황두군(黃頭軍)의경우회흘에서나왔으니사타와똑같이호족인것은아닐까?지금은이문제가복잡하고사료가매우적어여기에서상세히논할수는없다.총괄하면당말조정이치욕을참고견디며사타를너그럽게용서하여마침내황소를격파하는효과를거둔것을살펴보면이민족이내정과밀접한관계를맺고있었다는점을미루어알수있다._4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