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의 시대 : 상하이 문혁 운동사 5-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995

조반의 시대 : 상하이 문혁 운동사 5-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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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리쉰

저자:리쉰
여성,1948년생,상하이성인야간학교중문과졸업.1968년고등학교를졸업하지못한상태에서상하이전기기계공장에배치되어근무했으며,약10년동안도장공으로일했다.1978년말부터1992년까지상하이시총공회생산부와상하이시총공회노동운동연구소에서차례로근무했다.주요저서로는미국엘리자베스페리(ElizabethJ.Perry)와함께『무산계급의역량:상하이문화대혁명』(ProletarianPower:ShanghaiintheCulturalRevolution,WestviewPress,1997)을집필하였고,『혁명조반연대:상하이문혁운동사고(革命造反年代:上海文革運動史稿)』(OxfordUniversityPress,Hongkong,2015)를간행하였다.

역자:손승회
1961년생,서울대학교동양사학과학사·석사·박사졸업.공주대학교,서울대학교,국민대학교등에서시간강사,성균관대학교에서연구교수로근무한뒤현재영남대학교역사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전공은중국근현대사.주요저서로『근대중국의토비세계』(창비,2008),『문화대혁명과극좌파:마오쩌둥을비판한홍위병』(한울,2019)등이있고,역서로는『인물로본근대중국』(영남대출판부,2008),『덩잉차오평전1·2·3』(소명출판사,2012),『중국근현대사:혁명과내셔널리즘1925-1945』(삼천리,2013),『동아시아의사형』(영남대출판부,2014),『문화대혁명』(영남대출판부,2017)등이있다.

목차

제27장전제(專題)사작조에서시위사작조로:비서화된지식분자
전제사작조와대비판사작조
궈런제(郭仁傑)의자살
왕청룽(王承龍)과‘11·10사건’
‘난징루(南京路)포격’사건
홍기상하이원고제작소조(조고소조,組稿小組)
‘작은대포(소강포,小鋼)’천지더(陳冀德)
노동자작가샤오무
왕청룽의시혁위회축출
소결

제28장공검법(公檢法)전복:‘대중독재’의실천
공안·사법계통에대한탈권
문보회(文保會)로부터정법지휘부(政法指揮部)로
임의적체포의시작
조반조직의공안·검찰·법원직무대행으로인한혼란
상하이공·검·법계통에대한군관(軍管)
‘풍기문란자(유맹아비,流氓阿飛)’에대한상체사(上體司)치안조의단속
문공무위지휘부의‘홍색태풍’동원
유쉐타오(游雪濤)의제2정보기구
소결

제29장10만공선대원(工宣隊員)의‘상부구조’진주(進駐):노동자계급의전면적지도
128명의‘노동자대표’
최초의상하이공선대
10만공선대원을파견한시혁위회
공선대와시혁위회관련부서의통합
사범학원에서시작된대대적수사
‘3공(三工)’의모순
궁지에몰린공선대
소결

제30장‘청대(淸隊)’,‘1타3반(一打三反)’과‘5·16분자’청산:다시상향식운동으로의회귀
문예계로부터시작된청대(淸隊)
후서우쥔(胡守鈞)소집단사건과1타3반운동
5·16분자색출조사
세차례운동의심각한후유증
정리되는조반파
소결

제31장시총공회(市總工會):상하이노동자조반파의특수한거점
시총공회의간담회와겸임제도
“노동조합의지도권은조반파가장악해야한다”
“투쟁가운데신간부를양성하고활용한다”
“노동조합이큰역할을맡아야한다”
회비(會費),회적(會籍),노동조합재산
전통적활동으로의노동조합복귀
노동자이론대오
소결

제32장시위사작조:
상하이여론에대한장춘차오(張春橋)와야오원위안(姚文元)의총괄관리(상)
시위사작조의성립
업무성격에따른조(組)설치구조
장춘차오와야오원위안의충실한추종자
사작조의기본임무:명령에따른문건제작
대사기편찬과자료집편집
마오문혁을위한근거제공
‘대자본(大字本)’주석
시위상임위원에대한정치학습지도
대중노래대회및지식청년통신교육

제33장시위사작조:상하이여론에대한장춘차오와야오원위안의총괄관리(하)
사작조에의해편집,출판된서적
사작조의간행물
적역과교육실천
자연변증법(自然辨證法)
학습과비판
조하(朝霞)월간과총간(叢刊)
소결

제34장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신분전환의불안함
지속적인저항에직면한문혁
시총공회가앞장서비판한‘두개의부정’
비판받은1월혁명에대한쉬징셴의해석
다시군위(軍威)를떨친조반파
상하이비림비공운동의급속한중지
소결

제35장신간부:신분이전환된조반파들(상)
신간부의각급지도기구진입
노동자조반파의지도자,왕훙원
왕훙원에대한마오의관심
명령에따라베이징으로학습을위해가다
왕훙원,중공중앙부주석에오르다
왕웨이궈(王維國)특별사건(전안,專案)수사를명령받다
마오로부터버림받은왕훙원
신간부들:왕슈전(王秀珍)
신간부들:진쭈민(金祖敏)
신간부들:황진하이(黃金海)
신간부들:예창밍(葉昌明)
새로운간부들:천아다(陳阿大)
신간부들:다이리칭(戴立淸)

출판사 서평

이책은상하이(上海)에서벌어진10년간의문혁역사를연구대상으로삼았다.상하이문혁은중국전체10년문혁에서중요한부분을차지했으며,특히상층정치투쟁을제외한대중운동에서문혁의특징을가장뚜렷하게보여주었다.문혁대중운동은크게두가지로나뉜다.하나는베이징(北京)을중심으로한홍위병(紅衛兵)운동이며,다른하나는상하이를중심으로하는노동자조반파(造反派)운동이었다.홍위병운동은1968년의상산하향(上山下鄕)운동에이르러기본적으로마무리되었다.노동자조반파운동은1968년‘대연합(大聯合)’때사실상종료되었다.그러나왕훙원(王洪文)이이끌던노동자조반파만은조직체계를확립하면서핵심세력을유지하였고,문혁이지속된10년동안중요한역할을담당했다.

홍위병과노동자조반파외에,상하이에는다른성(省)이나도시에는없는독특한문혁세력이존재했다.그것이장춘차오(張春橋)와야오원위안(姚文元)을핵심으로하는공산당상하이시위사작조(寫作組)였다.이들은상하이여론을좌우했을뿐만아니라,전국여론에대해서도중대한영향을미쳤다.상하이문혁은중앙문혁파와긴밀하게연결되어있었다.1965년『해서파관(海瑞罷官)』비판을시작으로,1966년안팅(安亭)사건,1967년1월탈권(一月奪權),1976년무장저항미수사건에이르기까지,상하이문혁세력은마오의문혁노선을위한돌파구를마련하며그의정치적구상을충실히따랐다.

저자는이책의전체적서사를통해“왜?”라는질문을지속적으로던지며,역사적동기와논리를추적하고자했다.각장(章)과절(節)의서술에는모두이러한문제의식이내재되어있다.수많은사건과역사적상황이처음어떻게발생하게되었는지를면밀히검토함으로써,그역사적배경과맥락을찾고자하였다.또한역사란개별적세부사실들의축적으로이루어진다고생각하며,만약이러한세부요소가결여된다면역사는거대한블랙홀처럼공백을가질수밖에없다고보았다.또한문혁참여자의운동과정과그들의모습을최대한재현하고자했다.그들역시역사의일부이기때문이다.

상하이문혁연구에대한저자의관심은단지안팅(安亭)사건,『해방일보(解放日報)』사건,캉핑루(康平路)사건,1월탈권등과같은중대한정치사건에만국한되지않았다.또다른연구관심사는노보(老保)조직,대연합,관료제정비,변화된대중조직,후기조반파,사작조,제2무장등과같은다양한영역에미쳤다.이들은모두문혁의중요구성요소로연구되어야마땅하다.비록사료의한계로인해연구를더욱심화시키는데에는어려움이있었지만,이러한논의가실마리가되어다른연구자들의견해를이끌어내고,이들영역에대한학계의관심을환기시킬수있기를바란다.나아가,후속연구자들에게도움이될수있기를희망한다.또한문혁을직접경험하지못한젊은세대가역사적기억을되새기며,문혁의실제현장을재현할수있도록돕고자한다.

책속에서

장춘차오는여러차례시혁위회부주임을맡고있던쉬징셴에게“공을들여시혁위회의문건과결의문작성을맡겨잘쓰게하라”고지시했다.야오원위안역시“문건을전문적으로작성할일부인력을조직할필요가있다”고강조하였다.(21쪽)

1967년4월1일,‘시혁위회전제(專題)사작조’가공식적으로성립되었으며,그근무지는룽창루(榮昌路)60번지였다.이장소는문혁이전,시위정책연구실판공처가위치했던곳이기도했다.사작조조장은우루이우(吳瑞武),당소조의장은왕사오시(王紹璽)였으며,구성원으로는왕즈창,우루이우,주융자,천지더등이전사작반의핵심인물들이포함되었다.또한이전시위당간(黨刊)편집실의샤오무,재무계통기관간부주후이민(朱惠民),공업계통간부우원후(吳文虎),사회과학원철학연구소서기지수리(紀樹立)등도사작조에참여하였다.이후에도적지않은인원이지속적으로추가되었다.주융자는“출신성분이좋지않다”는이유로사작조에참가한지얼마되지않아푸단대학의비판을받았고,그로인해단순조원신분에머물렀다.우루이우는주융자와같은시기푸단대학역사과강사였고문혁이전에시위사작반역사조에서활동했다.그는신중한성격에조심스럽게일을처리했으며,왕즈창(王知常)처럼요란하게떠들지도,주융자처럼큰포부를드러내지도않았다.전제사작조는실질적으로시혁위회의문서작성과정책연구기능을수행하였다.(21-22쪽)

“자본주의길을걷는당권파를타도하고,자산계급반동학술권위를비판하며,자산계급과모든수탈계급의의식형태를비판해야한다.교육을개혁하고,문예를개혁하며,사회주의경제기초에적응되지않는모든상층건축물을개혁해야한다.”(35쪽)

“노동자,청년,여성가운데성장가능성이높은인재를적극적으로발굴하고체계적으로육성해야합니다.이러한노력을철저히실행함으로써무산계급독재를더욱굳건히해야할것입니다.”(417쪽)

마오는여러차례장칭,장춘차오,왕훙원그리고야오원위안을묶어‘사인방’,‘상하이방’이라고비판하였다.하지만1974년10월18일,왕훙원은장칭의뜻에따라창사에있던마오를찾아덩샤오핑이국무원제1부총리가되는것에반대하였다.마오는이때정치적욕망이너무강해여기저기에적을만들고있던장칭에대해불만을지녔고,부주석이면서항상장칭의꽁무니만따라다니던왕훙원에대해실망하였다.(445쪽)

공총사가대중조직에서노동조합으로전환되는과정에서구체적인제도화작업대부분은예창밍의손을거쳤다.그는총부각조(組)의활동규정을제정했고,각조의직권범위를정비했으며,제4기와제5기상하이공대회준비작업을주도했다.동시에그는상하이시총공회부주임으로서일상활동을총괄하며,공총사가상하이노동자조반파를결집하는중심이되는데중요한역할을했다.(482쪽)

그러나문혁후기로갈수록그는노동조합이항상“큰일에만매달려”노동운동을전개할수는없다는점을절실히깨달았다.오히려노동자들과밀접한이해관계가있는실질적인일에주력해야한다는자각이점점뚜렷해졌다.그는훗날회고하기를,공총사가공대회로전환된이후노동조합활동에큰공백이생겼으며,정치운동이벌어질때마다각급노동조합은“대중을동원해적극적으로호응했지만”,정작노동조합본연의일상활동은거의수행하지못했다고밝혔다.(4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