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큰글자책)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과 정치 철학)

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큰글자책)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과 정치 철학)

$37.00
Description
조선유학 500년,
퇴계·율곡·고봉·우계
그들은 무엇을 묻고 어떻게 답했는가
율곡은 퇴계에게 공부의 목표와 실천적 행위,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성인들의 권위에 대해 직설적으로 물었고, 퇴계는 편파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며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며 율곡의 격려했다. 두 사람은 상대의 이해 수준과 처한 상황에 따라 진리를 향해 나아가도록 방향을 조정해 주는 유학의 가르침을 13년 동안 질문과 답변을 통해 재정립하였다.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논쟁은 도덕본성과 도덕감정의 관계를 증명하는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졌고, 이후 조선유학의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율곡과 우계는 사단칠정논쟁을 발전시켜 도덕감정이 도덕본성으로부터 어떻게 발현하며, 그 발현과정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위해서 마음·본성·감정의 구조와 작용과정 및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논의하였다.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논쟁이 사단과 칠정이라는 도적감정의 구조와 작용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었다면, 율곡과 우계의 논의는 그러한 도덕잠정을 마음으로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가
하는 인심과 도심의 논의로 발전되었다. 유학과 성리학이라는 공통의 학문 기반과 가치관은 가진 네 사람은 오랜 세월에 걸친 문답과 토론을 통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선유학의 가치를 드높였다.
저자

김형찬

고려대철학과교수.고려대국어국문학과와철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理氣論의一元論化연구〉로철학박사학위를받았다.지곡서당芝谷書堂(태동고전연구소)에서한학을공부했으며,〈동아일보〉학술전문기자를지냈다.저서로《조선유학의자연철학》(공저),《논쟁으로보는한국철학》(공저),《오래된꿈》등이있다.

목차

머리말|조선유학의근간,퇴계와율곡

1.만남
나아감과물러남|지나친시어(詩語)|기대와다짐

2.율곡이묻고퇴계가답하다1
공부의목표|경건한집중|실천|이해와체득
인식과실천의단계|성인의권위

3.사단과칠정:퇴계와고봉의8년논쟁
천명도|도덕감정과도덕본성|리와기|결과의관점과원인의관점
성현의뜻|도덕감정의원인|리의‘작용’이라는은유|논쟁의마무리
이치가닿는말|리가스스로이르다|형이상학적충동

4.율곡이묻고퇴계가답하다2
글읽는법|공부|지각|마음의수양|성인과현인
합쳐보기와나누어보기|도(道)와사람

5.율곡이묻고퇴계가답하다3
〈서명〉|〈심학도〉|《성학십도》의순서

6.사단칠정과인심도심:율곡과우계의논쟁
인심과도심|본연지성과기질지성|리통기국(理通氣局)
인간의의지|논쟁의마무리|사단칠정논쟁의이해와평가

7.군왕의정치와신하의정치
군왕과신하|군왕의한마음|왕통과도통

맺음말:군왕의마음과신하의도통
부록|한국유학의쟁점과퇴계·율곡의위상

출판사 서평

퇴계와율곡,
논쟁과우정의13년대기록

인간의본성은무엇이고,어떻게발현되는가?
참된삶을위한공부란무엇인가?
올바른지도자가갖추어야할덕목은무엇인가?

율곡이퇴계에게물은첫질문은‘출처’(出處)였다.출(出)이란‘세상에나아감’을뜻하고,처(處)란‘세상으로부터물러나있음’을의미한다.이는곧“어떤경우에조정에나아가국가의공적인일에참여하고어떤경우에관직에서물러나조용히은거할것인가를결정하는처신의문제”였다.퇴계는율곡과첫만남(1558년)이있기훨씬전인1549년,49세의나이에현실정치를떠나경상도예안에은거했다.그곳에서서원을세우고이미10년째학문을탐구하며후학을키우고있었다.군왕의부름을다사양하지못해잠시관직에나갔지만이내고향으로돌아와은거하며,뭇선비들의존경을받고있던터였다.
당시율곡은스물세살젊은나이였고,과거를통해관직에진출하려는마음을먹고있었다.학문과수양을통해익힌가치와이상을구현하기위해세상에나아가기로마음먹은율곡에게‘출처’는가장중요한물음이아닐수없었다.유학공부의중요한목적이바로내성외왕(內聖外王,안으로는성인이되고밖으로는통치자가되는것)이기에‘출처’의문제는유학자들에게일생일대의가치이자물음일수밖에없었다.퇴계는“출세를목적으로공부를해서는안된다”고경계하면서“도를구현할만한시대를만난다면세상에나아가그뜻을펼쳐야한다”는가르침을율곡에게주었다.퇴계와율곡은공부와수양의성과가인정되어주어지는관직진출의기회라면오히려당연하게받아들일수있다고동의한것이다.
율곡은다시공부의목표에대해물었다.유학공부의목표는“하늘로부터받은밝고깨끗한마음을회복하는데있고,유학의가르침을따라백성을계몽하는데있으며,궁극적으로지극한선의가치를실현하는삶을구현”하는것이다.이에대해주자는“나아갈지향점을정하고마음의평정을이루어편안해지는단계”는누구나가능하지만,“깊이생각하고지극한선을이루는단계”는안자정도의사람이아니면불가능하다고말했다.안자는공자의제자안연으로요절하지않았다면공자를능가했으리라평가되는인물이었다.
율곡은이에대해퇴계에게물었다.성리학의이론을따르자면모든사람이성인이될수있는데도,안자정도되어야성인이될수있다는말은결국아무리공부와수양을쌓아도누구도성인이될수없다는말과같았기때문이다.이에대해퇴계는“성인의말씀은위아래로모두통하며,정밀한것과개략적인것이모두갖추어져있으므로,그사람의학문의얕고깊은정도에따라모두활용할수있다”면서주자의말을편파적인관점에서해석하는것을경계하면서,이해의지평을넓혀주며젊은학자율곡을격려했다.
율곡은퇴계의제왕학교과서였던《성학십도》의순서를바꾸어야한다는,어찌보면당돌한문제제기를하기도했다.퇴계는완숙한경지에이른학자답게젊은유학자의문제제기를받아들였고,때론내용을수정하며자신만의학문적완성을이뤄갔다.애초에는율곡이질문을통해학문적가르침을청했지만,13년동안이어진두사람의문답은퇴계의학문적성숙을이뤄가는계기가되기도했다.

퇴계와고봉,
사단과칠정을묻고답하다

퇴계와율곡이서신을통해유학의의미를논하기시작할즈음,고봉기대승은퇴계에게편지를보내사단(四端)과칠정(七情)에대한문제를제기한다.조선유학의대표적논쟁중하나인‘사단칠정논쟁’이시작된것이다.퇴계와고봉은26년이나이차이를넘어서로예의를갖추면서도치열하게논박하며무려8년간논쟁을거듭했는데,이논쟁은오랜세월을두고지식인들에게모범이되고있다.
사단칠정논쟁은인간의도덕감정이도덕본성으로어떻게발현되며,그발현과정을효과적으로조절하기위해서마음,본성,감정의구조와작용과정및그것들사이의관계를어떻게이해하는가에관한논의였다.사단칠정논쟁은심성론에관한논의가조선유학의주된주제로발전하는계기가되었으며,나아가도덕적소양을갖춘인재를양성하고이를바탕으로사회와국가를운영하는성리학적이상국가의구축을위한이론적기반이되었다.
사실사단칠정논쟁은율곡과퇴계가주고받은문답에서퇴계가얻은중요한학문적성과를담고있다.이는다시율곡에게보낸질문과답변에도반영되었다.율곡은퇴계의입장을비판적으로바라보면서자신의입장을세워갔고,이를바탕으로훗날퇴계와우계성혼의인심도심논쟁으로이어진다.사단칠정논쟁은중국성리학의수용단계를넘어조선유학이독자적인심화,발전하고있음을보여주는중요한논쟁이었다.


율곡과우계,
인심과도심을묻고답하다

1572년,퇴계사후2년이지난시점에율곡은평생친구이자정치적동지였던우계성혼과학문적논쟁을벌인다.우계가퇴계의사단칠정설에동의를표하고율곡에게의견을물으면서시작된논쟁이었다.율곡은이논쟁에서퇴계의학설을비판적으로검토하며자신의학설을체계적으로제시한다.율곡은퇴계와고봉의8년논쟁,즉사단칠정논쟁의전과정을지켜보면서자신만의입장을정리하고있던터였다.
퇴계와고봉의사단칠정논쟁이도덕감정의구조와작용에대한논의에집중되었다면,율곡과우계의논의는그러한도덕감정을마음으로어떻게조절할수있는가,즉인심(人心)과도심(道心)의논의로발전했다.
율곡은인심과도심은본래하나의마음이기때문에근원이다를수없다고본반면,우계는이상적인도덕감정(사단)과일반적인도덕감정(칠정)을나누는구분법이기본적으로인심과도심을나누는방법과다르지않다고생각했다.율곡과우계는무려12차례왕복서한을통해논쟁을진행했지만,주목할만한의견접근을보지는못했다.그럼에도율곡과우계의논쟁역시지식인들의논쟁이어떤모습이어야하는가보여주는하나의지표로자리매김했다.

퇴계·율곡·고봉·우계
조선유학의이론적기반을세우다

퇴계,율곡,고봉,우계와같은조선유학자들이이기심성의존재론적구조를밝히려고논쟁한것이아니었다.그들은도덕감정의조절방법을찾아서도덕적인삶을구현하기위해논의한것이었다.퇴계,율곡,고봉,우계는조선을성리학의이념위에서기획하고만들고운영해온지식인들의후예였다.어린시절부터성리학을배우고익히며자신들이나라를이끄는주체라고여긴지식인이었다.이기론·심성론같은형이상학부터수양론·정치철학같은응용이론에이르기까지학술적논의를선도한학자였다.아울러일상에서시를읊었던시인이었고,현실정치에직접참여한관료이자정치가였다.
율곡과퇴계가13년동안집요하게묻고답한정치와사상,인간됨에대한논의는조선유학의수준을드높인빼어난결과물이다.아울러퇴계와고봉의사단칠정논쟁,연이은율곡과우계의인심과도심에대한논의는사회와국가를운영하는성리학적이상국가의구축을위한이론적기반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