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적 동물들 (폐허 위에서 다시 인간을 불러낸 네 철학자의 기록)

형이상학적 동물들 (폐허 위에서 다시 인간을 불러낸 네 철학자의 기록)

$27.80
Description
“인간은 어떤 동물인가?”

이 물음 앞에서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20세기 중반,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잿더미가 된 순간 철학은 침묵했다.
형이상학의 종말을 선언한 논리실증주의는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도덕적 혼란 앞에서는 무력했다. 이성의 이름으로 문명을 구축해 온 인간은 세계대전으로 인한 학살과 파괴 앞에서 스스로의 정의를 잃었고, 언어와 논리로는 인간의 파괴를 설명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옥스퍼드의 네 젊은 여성 철학자, 엘리자베스 앤스콤, 필라파 풋, 메리 미즐리, 아이리스 머독은 무너진 세계 앞에서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인간은 어떤 동물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개념을 정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학을 삶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곧 삶의 가장 깊은 자리로 뻗어나갔다. “인간의 행위는 어떻게 의미를 얻는가?” “책임은 무엇으로 성립되는가?” “악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이 네 사람은 이러한 질문들을 폭격으로 부서진 거리, 배급표를 들고 줄을 서는 일상 위에서 그리고 우정과 사랑, 상실이 겹쳐지는 관계 속에서 붙들었다.
그들의 질문은 철학을 다시 인간의 삶으로 끌어오며, 인간의 실존과 연결시켰다. 인간은 세계를 해석하고, 의미를 만들며, 스스로의 삶을 그려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장 비인간적인 시대에 그 누구보다 분명하게 직시했기에 이룬 성취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그 물음 앞에 서 있다. 전쟁이 반복되고, 기술이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며, AI와 알고리즘이 ‘의미’를 산출해 내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은 무엇을 기준으로 행동하고, 어떻게 타인을 바라보며,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가?
네 철학자의 사유는 지금의 세계가 잃어버린 윤리적 감각을 되살리는 첫 불씨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과거를 되짚는 기록이 아니라, 인간성이 위협받는 시대에 우리가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증언하는 가장 절박한 선언이다.
선정 및 수상내역
《뉴요커》 올해의 책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작
영국 역사작가협회 논픽션 크라운상
저자

클레어맥쿠얼

ClareMacCumhaill
아일랜드출신의철학자이자철학사연구자이다.에든버러대학교에서철학으로박사학위를취득했으며,현재더럼대학교에서철학을가르치고있다.2022년《형이상학적동물들》로영국역사작가협회논픽션크라운상(HWANon-FictionCrownAward)을공동수상했다.전통적으로남성중심으로서술되어온서양철학사를여성철학자들의시각에서새롭게조명하는연구를이어가고있다.
전후옥스퍼드에서철학의윤리적·형이상학적전환을이끈여성철학자들의사유와연대를복원하기위해인문학프로젝트“괄호속의여성들(WomeninParenthesis)”을공동설립했다.

목차

들어가며ㆍ7
등장인물ㆍ20

프롤로그철학,권력앞에서다ㆍ23
1956년5월옥스퍼드

1장억눌린목소리ㆍ37
1938년10월-1939년9월옥스퍼드

2장전쟁의소용돌이속에서ㆍ105
1939년9월-1942년6월옥스퍼드

3장절망과저항사이ㆍ167
1942년6월-1945년8월케임브리지와런던

4장철학의불꽃을되살리다ㆍ231
1945년9월-1947년8월옥스퍼드,브뤼셀,그라츠,케임브리지와치즈윅

5장한목소리로“아니”라고외치다ㆍ297
1947년10월-1948년7월옥스퍼드와케임브리지

6장다시삶으로ㆍ343
1948년10월-1951년1월옥스퍼드,케임브리지,더블린&빈

7장우리는형이상학적동물이다ㆍ391
1950년5월-1955년2월뉴캐슬&옥스퍼드

에필로그끝내인간을향하다ㆍ455
1956년5월옥스퍼드

그후이야기ㆍ468
옮긴이의말ㆍ475
주ㆍ478
참고문헌ㆍ550
그림출처ㆍ564

출판사 서평

형이상학이종말을맞은시대,
전쟁과학살의폐허위에서피어난네여성철학자들

근대과학이세계를설명하는거의유일한언어가되고,20세기초논리실증주의와분석철학(analyticphilosophy)이철학의무대를장악하면서,한때형이상학은‘끝난학문’으로선언되었다.신과영혼,선과악,인간과세계의궁극적구조를묻던질문은‘경험으로증명할수없는공허한말장난’으로밀려났고,도덕과윤리의문제는심리학과사회과학,정책논의속으로흩어졌다.
‘자연학다음에오는것’이라는뜻의형이상학(形而上學)의기원은아리스토텔레스의시대로거슬러올라간다.형이상학은흔히‘눈에보이지않는것에대한철학’으로이해되지만,사실세계가어떻게이루어져있고인간이어떤존재인지,무엇을믿고무엇에책임져야하는지를묻는,철학의가장오래된질문들의이름이다.이오래된질문은20세기중반2차세계대전의폐허속에서다시모습을드러냈다.전쟁은인간을이해하는기존의모든기준을붕괴시켰고,논리실증주의,분석철학에의해공고했던언어의명료성만으로는아우슈비츠,히로시마와나가사키폭격으로드러난인간의악과책임을설명할수없었다.바로그때,형이상학은추상적논의가아니라인간이어떻게다시살아가야하는지묻는가장현실적인사유가되었다.
1939년전쟁이한창이던시기,옥스퍼드대학교는거대한빈공간이되었다.남성교수와학생대부분이징집되면서비워진강의실과도서관에는뜻밖의얼굴들이들어섰다.여성들,양심적병역거부자,노교수와유럽곳곳에서흘러들어온망명학자들이다.이들은곧자신들이마주한철학의현실(언어분석과검증가능성만을좇으며인간의삶을외면하던철학)에깊은불만을느꼈다.선과악,책임과같은개념은“의미가없다”라는이유로삭제되었고,도덕적인판단은개인적기호로치부되었다.그러나바로그틈에서네명의여성,엘리자베스앤스콤,필리파풋,메리미즐리,아이리스머독은전혀다른방향의사유를열기시작했다.
앤스콤은인간행위의근본구조를파고들며“의도”와“도덕적실재”를복원했고,갑작스러운직관주의붕괴앞에서윤리학이다시서야할자리를제시했다.풋은전쟁사진앞에서“우리는왜이것이틀렸다고말하고싶은가?”라는물음을붙잡으며덕·품성·책임의윤리를되살렸다.풋이제안한‘트롤리문제’는도덕적판단의구조를다시묻는전환점이되었다.
미즐리는인간을단순한본능적기계로축소하는과학주의에맞서,인간을동물·생물·사회적존재로통합해이해해야한다고보았다.윤리학은생물학·철학·심리학이만나는생생한학문이어야한다는것이그녀의사유였다.머독은도덕의중심을‘주의(attention)’와‘상상력’에두며,우리가타인을어떻게바라보는지가곧우리가어떤존재가되어가는가를결정한다고보았다.
이네사람은서로의사유와삶에깊이스며들며,논리실증주의가‘의미가없다’라며쫓아낸영역을다시철학의중심으로가져왔다.악,폭력,책임,사랑,관심,주의같은개념은그들의토론속에서다시숨을얻었고,도덕철학과형이상학은인간이라는동물이세계를이해하는가장근본적인방식으로복권되었다.이책이포착하는것은바로그폐허의한가운데서네여성이새로운윤리학의지형을세워올린순간들이다.


“우리는형이상학적동물이다”
철학에숨을불어넣은사유의연대기

네여성철학자의사유는결코고립된것이아니었다.그들이걸어들어간전시옥스퍼드는다양한지성이부딪히고얽히는거대한직조물과같았다.그중심에서엘리자베스앤스콤은비트겐슈타인의신뢰를받으며그의가장중요한유산인《철학적탐구》를번역하고정리했다.신의예지,정의로운전쟁,몸의동일성같은문제에집요하게매달리던엘리자베스는‘정말로고민하는학생’을원했던비트겐슈타인에게거의유일한진짜대화상대였고,비트겐슈타인은유언으로미출간저작의저작권과재산의상당부분을그녀에게남기며,자신의철학적유산을맡겼다.이긴밀한교류속에서엘리자베스는비트겐슈타인의사유를번역하는데그치지않고,자신의철학적입지를단단히세워나갔다.
그철학이어떻게현실로이어지는지는1956년장면에서극적으로드러난다.그해,앤스콤은옥스퍼드교원들앞에서히로시마·나가사키폭격을명령한미국전대통령해리S.트루먼(HarryS.Truman)에게명예학위를수여해서는안된다고공개적으로반대한다.죄없는수만명을이르게한행위가어떻게‘명예’와양립할수있는가?그녀에게는너무나자명한이판단을왜다른교수들은보지못하는가?앤스콤은자신의관점을관철시키기위해거의홀로분투했고,이것은인간의행위,의도,도덕적실재를끝까지놓지않으려했던그녀의철학이현실속에서발화된순간이었다.
이네철학자의주변에는더욱풍성한사유의연대가있었다.영국최초의여성철학교수수전스테빙(SusanStebbing)은명료한사고의중요성을일깨워후배여성철학자들의지적기반을다졌다.도로시에밋(DorothyEmmet)은도덕판단이단순한직관이아니라우리가선하다고믿는관계,삶의방식에서비롯된다고보며윤리학의현실적토대를제시했다.역사·상상·실천의문제를함께사유한R.G.콜링우드(Collingwood)는세계의질서와경험자체가형이상학의주제임을보여주었고,도널드맥키넌(DonaldMacKinnon)은A.J.에이어(Ayer)식논리실증주의가형이상학을지우는순간인간이라는동물의영혼이위협받는다고경고했다.이모든흐름은J.L.오스틴(Austin),A.J.에이어가주도하던분석철학의엄격함과긴장감을이루며당시옥스퍼드의철학구조를형성했다.이밖에도당시형이상학의불씨를잃지않고지켜낸철학자들이있다.H.H.프라이스(Price),H.W.B.조지프(Joseph),로테라보프스키(CarlottaLabowsky),메리글로버(MaryGlover).우리에게는낯설지만,이시대의철학적지형을떠받친중요한이름들이다.
이렇게다져진토대위에서네사람의대화는넓고도깊었다.엘리자베스의집과필리파의부엌,서머빌과세인트앤칼리지의강의실,크라이스트처치의공원,술집이나찻집을오가며이들은기억과진리,의미를두고끝없이토론했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아퀴나스에서데카르트,칸트,키르케고르그리고비트겐슈타인까지,고전과현대를가로지르는이름들이네사람의대화속에서다시인간의삶과맞닿은질문으로되살아났다.《형이상학적동물들》은바로이방대한관계망을촘촘히복원하며,철학이책상위가아니라사람들사이에서,우정과논쟁한가운데서태어난다는사실을생생하게드러낸다.


“우리는어떻게다시인간이되는가?”
AI와전쟁의시대,인간을다시묻는질문들

오늘우리가사는세계에서전쟁은더이상먼과거의사건이아니다.이스라엘-팔레스타인분쟁,우크라이나전쟁,미얀마내전,아프리카지역의소리없는분쟁들까지,전쟁과파괴는현재에도곳곳에서계속되고있다.
과학과기술이가져다주는효율을통해인간은편리함을얻는대신점점더위기에처했다.AI시대가장큰문제점은인간이더이상책임과숙고의과정자체를경험하지않는다는데있다.AI와알고리즘은세계를‘측정가능한정보’로축소시킨다.하지만“무엇이옳은가?”“타인을어떻게바라봐야하는가?”“고통은어떻게이해되어야하는가?”는애초에측정할수없는인간의복잡한영역이다.그럼에도AI와알고리즘이인간의숙고와판단을처리하고‘의미’마저산출해낸다.그결과‘인간다움’은점점흐려지고,그기준조차모호해지고있다.그여파는관계와책임,타인의마음을이해하는일의중요성을희미하게만든다.바로이지점에서이책의질문들은놀랍도록현재와맞닿아있다.
이책이보여주는핵심은단하나다.인간의도덕적사유는고요하고정돈된탁상에서가아니라,세계의균열과삶의복잡성속에서시작된다는것.
네여성철학자가전쟁의폐허속에서인간의행위와의미책임을다시붙들었듯전쟁중에그사유를했던남성들도있었다.그대표적인물이리처드헤어(RichardHare)다.“전쟁이없었다면철학자가되지않았을것”이라는그의고백은,할복하는일본군포로들,죽음으로몰려가는포로들을아무렇지않게대하는감독관의장면을마주한뒤였다.그는그순간깨달았다.‘옳음’과‘그름’은직관이나감정의문제가아니며,기존의윤리이론은이현실앞에서아무말도하지못한다는것을.리처드헤어는“도덕적직관이객관적인도덕현실에조응한다면,그런극명하고극복할수없는직관의충돌은가능하지않아야한다(p.303)”라고생각했다.이깨달음은네여성철학자가당도한물음과정교하게맞물린다.
전쟁은도덕적직관을무너뜨렸고,기술은판단의구조를흔들었으며,효율과공정성이라는이름아래인간의복잡성을삭제하는사회적기조는돌봄과관계의감각마저약하게만들고있다.엘리자베스앤스콤은당시에도이지점을분명하게짚는다.엘리자베스앤스콤은전후복지체계가“형이상학적설명을바탕으로하는‘정의’와‘관용’의목표는사라지고(p.427)”‘효율’‘공정성’‘공공복지’라는이름으로돌봄의감각을지워버리는당시를비판했다.홀로사는노인이기준에맞지않는다는이유로집에서살지못하게하는것이야말로형이상학이제거된윤리라고주장했다.“악한이들의온정은잔인하다(p.427)”라는엘리자베스의말은오늘의사회에도고스란히적용된다.효율성,생산성,편리성,공정성같은가치가인간의삶과관계를판단하는기준이되는순간,돌봄과책임의윤리는삭제된다.
“위대한유럽철학자들은거의모두미혼남성이었다.(p.431)”메리미즐리의이지적은철학이어떤경험들을배제한채구축되었는지를드러낸다.아기가옆방에서잠드는동안글을쓰는철학자,젖먹이아이의건강을걱정하는엄마,다채로운공동체속에서시간을보내는사람들이철학을했다면,철학이지금과같은얼굴을하고있었을까?메리미즐리의물음도돌봄과관계성,상처와책임,타인의마음을읽는능력이철학적사유의조건임을보여준다.이는오늘의세계가완전히잃어버린감각이기도하다.AI가판단을대신하고기술이욕망을설계하며,전쟁과폭력이일상을뒤흔드는시대에우리는다시묻게된다.
“우리는무엇을보고,어떻게느끼며,어떤존재가되어갈것인가?”
네철학자의사유는이처럼이시대에필요한윤리적감각을되묻는출발점이다.그런의미에서이책은과거의철학사를복원한연대기가아니라,인간성이위기에처한상황에서철학이어디서부터다시시작되어야하는지알려주는가장동시대적인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