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안착하기(큰글자책)

허공에 안착하기(큰글자책)

$38.00
Description
‘예술은 언제나 삶 그 자체였고,
나의 노동은 예술이 되었다’

연약하고 흐릿한 존재를 오래 바라보는
노동-예술가 이예은의 시선
예술은 노동과 얼마나 다른가? 예술과 삶은 얼마나 다른가? 사진가 이예은은 예술과 노동, 삶은 구분되지 않는다고 자신의 몸과 사진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그는 노동 현장을 떠나지 않은 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에게 냉동창고와 공장은 생계를 위한 일터인 동시에 예술이 피어나는 현장이다. 그의 카메라는 위대한 서사를 찾지 않는다. 가족과 동료의 땀과 침묵, 일상의 반복 속에 녹아든 존엄의 순간을 찾아내고, 이들의 삶이 그 모습 그대로 인정받기를 바라며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멈춰 세워 세상과 공유될 시간을 마련한다.
이 책에서 그가 고백하는 것은 예술가나 노동자라는 한 가지 정체성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존재 방식이다. 이예은은 개인이면서 여럿의 목소리를 품고, 삶 자체와 예술 실천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이 책에 온전히 담아냈다.
저자

이예은

사진가.경기도이천을기반으로활동한다.노동,가난,재난의현장에서보고듣고겪은것을사진으로찍고,제도밖사람들의이야기가남을자리를모색한다.
상명대학교와중앙대학교대학원에서사진을전공했다.대구사진비엔날레,동강국제사진제,코리아나미술관,토탈미술관,민주화운동기념관등전시에참여했고,개인전〈227명의사람들〉(2022),〈산을옮기는겨자씨〉(2023)를열었다.

목차

주름의문장9
크림치즈의맛19
마늘옮기기28
허공에안착하기40
모-시다56
저여자76
그눈물을감춰85
물에서원그리기94
직전의숨112
생계형예술가121
실내온도높이기130
더가까이139
비행153
희161
풀의자리172

감사의글182

출판사 서평

“사진을찍는일은결국
내가견디는방식에대한고백이다”

사진에담은가족의역사,
연대,버티고매달린순간들

사진가이예은은경기도이천을기반으로활동한다.이천은3세대일곱식구가뿌리를내린곳이며,대규모공장단지와크고작은물류창고는생계의근거지였다.어려서부터자신을비롯한학교친구들과가족구성원들에게‘단순업무초보가능’노동은일상적활동이었으며,현장에서세대를넘어관계를맺은이들과는삶의태도와방식,기억을공유했다.무엇보다평생육체노동자로살아온부모님에게가난을물려받았을지언정삶에대한강한의지를자신의유산으로삼았고,공장의이모,언니,삼촌에게몸을쓰는법,몸을보호하는법,서로의작업방식을존중하는법을배웠다.즉이천에서이루어진크고작은관계와사건들은저자가수많은풍경가운데무엇을바라볼것인지,어디에서서바라볼것인지를결정하는계기가되었다.
그래서저자는주로컨테이너지붕,공장뒤편,마을의교량위에서고,이는사진작품속배경이된다.이곳에서뛰어내리고,건물외벽을껴안고,교량에매달려손을놓치고추락하는위험을감수하거나,머리에불을붙이고흙속에몸을묻는등‘실제적인행위’를통해사진을완성한다.이배경들속에는오직이예은본인만등장하는데,이는다른사람들을대상화하지않으려는노력이면서동시에,자신의몸을빌려윗세대의흐릿한기억,사소한감정,살아있다는감각을이어가려는시도이다.
저자가이토록삶을견디는태도에집중하는이유는사라지려는목소리를붙잡아살아있음으로존재하는방식을증명하기위함이다.저자는냉동창고에서한번도맛보지못한크림치즈의맛을묻는엉뚱한질문으로시스템을멈춰세우거나,실내온도를높이겠다며차가운건물외벽을온몸으로끌어안는불가능한행위를통해고통과정면으로마주한다.그래서사진을찍는행위는곧“자신이견디는방식에대한고백”이다.저자는비극을전시하는대신스스로추락의직전에매달려있기를택하며,고단한하루를살아내는이름없는이들에게끈질긴연대의안부를건넨다.

공중에뜬달걀,반쯤녹은얼음,
교량에매달린몸…
“자꾸만사진이후를상상하게된다”

민들레로피아노연주하기,티백으로바다우리기,건물을껴안아실내온도높이기,새의도움을받아비행하기….이예은의사진속에서는불가능한일들이또렷하게상으로남아있다.사진가이예은은삶을은유적으로표현하지만,그가바라본삶은꽤나진실하다.저자가포착한우리사회에는수많은선이있다.정규직과비정규직,서울과비수도권,혹은노동과예술,생계와생활.어디에든선을그을수있으며,누구나선을그을수있는사회이다.그러면서도사회는이선을넘는자들을경계한다.저자는그많은선과불가능을부정하지않는다.불가능의주체자로서그선앞에서새로운가능성을모색한다.살아있음그자체로삶에는수많은가능성이존재한다는믿음이이예은의생각에뿌리를깊게내렸고,이는그의사진에자연스럽게드러난다.
이예은의사진세계에서‘안착’은중력을이기고허공에머무는기적같은순간을의미한다.프레임속달걀은깨지지않은채공중에떠있으며,이는추락이아닌고요한기다림과가능성을상징한다.저자에게사진은다음순간이면사라질존재들의목소리를선명하게붙잡아세우는일이다.빛의한가운데가아닌그림자속에서움직이는이름없는존재들을응시하는저자의시선은한없이다정하다.
그래서저자에게카메라는‘노동의연장’이자‘생존의도구’이다.저자의사진은사회가그어놓은선을지우지않는다.대신,그선을딛고서서그너머를바라보는시선을고정시킨다.추락할것만같았던달걀이공중에안착하듯,그의작업은불가능속에잠든가능성의순간을포착한다.이책을통해우리는한개인이어떻게고된현실을예술적행위로전환하며,어떻게억압의공간을저항과아름다움의장으로재창조하는지생생하게목도하게된다.결국이예은이보여주는것은예술의형식이아닌,예술과삶의경계를넘나드는주체자의용기다.그의사진한장한장은우리에게묻는다.당신의현장은어디이며,그곳에서무엇을상상할것인가.

“내가기억하지않으면사라진다”
호명되지않은이름들에대한
다음세대의부채감,그리고의지

냉동창고에서수천개의크림치즈를검수하고라벨을붙이면서도정작그맛은한번도본적없는기묘한소외를겪으며,이예은은시스템이가리는노동의진실에질문을던진다.햄선물세트를만드는공장에서기계처럼반복되는움직임과“앉아서작업하면일이느려진다”는강요와침묵속에서도,호명되지않는이름들의실체를포착한다.백반집에서2년남짓일하며손목에보호대를감고묵묵히하루를버티던이모들의모습은그녀에게노동의감각이신체에어떻게기억으로각인되는지를보여주었다.
사진작품〈모-시다:지용의이야기〉의주인공이자저자의아버지‘지용’은가난으로인해어린나이부터삶의최전선에내몰렸다.그는용산역에서신문지를덮고잠을자며구두를닦았고,가리봉동의간판가게에서는밤낮없이일하며공업용재봉틀작업대밑에몸을웅크리고잠을청했다.머리위로천막을꿰매는재봉틀의날카로운소음이들렸지만,그는서울한복판에몸누일자리가있다는안도감에그소리가자장가같았다고회상한다.
〈모-시다:희의이야기〉의주인공희는완도에서태어나태풍으로가세가기울자중학교진학을포기하고양말공장으로향해야했다.그녀는12시간씩이어지는고된노동이외시간에는영어학원으로향했고,팝송을흥얼거리며더넓은세상을꿈꾸었다.특히그녀는자신을아름답게꾸미는것을멈추지않았는데,이는‘공순이’라는납작한호칭으로불리기를거부하고자신의존엄을지키려는단단한저항이었다.저자는희의웃음뒤에숨겨진끈질긴생명력을포착하며,타인의연민섞인시선이아닌그녀가스스로일궈낸빛나는삶의태도를자신이그대로잇고자한다.
이예은에게‘모-시다’는‘박모씨’처럼익명성뒤로사라진존재들을다시호명하고,그들의고통과기쁨을정성껏떠받드는행위이다.지용과희의사례처럼,척박한땅에서도기어이뿌리를내리고서로를지탱하는삶들을기록한다.이러한작업을이어가는이유는자신의아버지나일터에서만난이모,언니들처럼묵묵히제자리를지키며살아온이들의이야기가아무런의미없이사라지는것을원치않기때문이다.저자는“딸인내가기억하지않으면이이야기는사라진다”는부채감과미약하나마사명감을안고,이름없이살아간이들의이야기를‘모시다’라는태도로정성껏기록한다.그에게사진은단순히장면을기록하는도구가아니라,“멈추지않는우주의시간속에서다음순간이면잊힐존재들을선명하게불러내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