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루메가 있는 방 (김상현 단편소설)

살루메가 있는 방 (김상현 단편소설)

$15.80
Description
이야기꾼이 따로 있겠는가.
천 명의 사람이 걸어 다니면 천 명 의 이야기꾼이 걸어 다니는 것이며,
사람들이 걸어간 길 위에 내 발자국 하나를 더하듯 무수한 이 야기들
내가 설정한 작품속의 인물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끝없이 이야기 속으로 필자를 끌고 가는가 하면, 빛나는 이빨을 가진 생쥐가 거대한 기둥을 밤새 싸악싸악 쏠고 있는 것 마냥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무의식세계에서 담아다 의식세계에 부려놓길 반복했다.
이 소설에 수록된 이야기는 사람들과의 갈등과 구조적 세계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인간의 심리를 여러 측면에서 다룬 작품으로 생뚱맞거나 이질감을 주는 것이 아닌 누구나 일상에서 추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서사화한 것이다.
소설이란 작가가 쓰는 것이지만 실상은 작품마다 설정해 놓은 인물이 저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사로서 어쩜 작가는 이를 관조하며 차분하게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소설을 쓰는 즐거움 못지않게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심적 아픔과 상처를 작품으로 어루만져 위로와 평화를 드리길 소망하며 감히 독자 앞에 소설집을 내놓는다.

내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법당에 눕혀진 상태였다. 온몸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촘촘하게 누벼진 비구니의 잿빛승복에 덮여 져 있었다. 나는 꿈인가 해서 잿빛승복 속의 몸을 만져보았다. 꿈 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눈앞에는 비로자나불이 실눈을 지그시 감 고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목탁소리와 경을 외 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돌렸다. 여승이 불상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랑이 깊은 음색’으로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일어날 수 있었지만 한참동안을 그대로 누 워 염불하는 여승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싯 구에 있던 ‘설움에 진 눈동자와 창백한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어디에선가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가 느껴졌다. 덮고 있는 잿빛승복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염불을 하고 있는 여승에게 서 나는 냄새 같기도 했지만 그 ‘포름한 향내’를 좀 더 느끼고 싶 어서 콧구멍을 크게 열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어느덧 여승이 내게 다가와 합장하며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했다.
나는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을 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이제 정신이 드셨는지요.”
내가 잿빛승복으로 벗은 웃통을 가리고 윗몸을 일으켜 앉으 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서 보니 머리맡에는 노인이 준 목도리 가 곱게 접혀 있었다.
“젖은 옷은 법당에 걸어 말리고 있으니 불편하시겠지만 잠시 만 승복을 걸치고 계시지요.”
_ 「포름한 향내」 일부
저자

김상현

ㆍ베트남전쟁논픽션장편『미완의휴식』출간(2001)
ㆍ방송칼럼집『하늘에떠있는섬』(1993)『사람에게도향기가있다』(1997)출간
ㆍ에세이집『누가예수를괴롭히는가』(2018)출간
ㆍ묵상집『생수의강에서물한그릇』(2019)출간
ㆍ시집『바람의등뼈』(2023)등13집출간
ㆍ단편소설「시내산옥탑방」으로기독교타임즈문학상수상,
시로『평화신문·평화방송』신춘문예수상편운문학상수상
ㆍ현재한국문인협회회원,한국시인협회회원,대전소설가협회회원,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명예연구원

목차

1포름한향내…009
2살루메가있는방…041
3당숙…073
4칠복이…103
5시내산옥탑방…127
6사슬…159
7박여사승천기…195
8데드포인트…223
작가의말…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