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무늬 상자 - 특서 청소년문학 27

붉은 무늬 상자 - 특서 청소년 문학 27

$12.50
저자

김선영

1966년충청북도청원에서태어났다.아홉살까지산으로들로뛰어다니며자연속에서사는행운을누렸다.그후청주에서지금껏살고있다.학창시절소설읽기를가장재미있는문화활동으로여겼다.막연히소설쓰기와같은재미난일을직업으로삼으면좋겠다고생각하며십대와이십대를보냈다.경계에서고군분투하는청소년들에게힘이되고힘을받는소설을쓰고싶다.

2004년[대전일보]신춘문예...

목차

나무가삼켜버린집
개학
붉은무늬상자
용기
무릎을펴는집

『붉은무늬상자』창작노트


본문발췌

출판사 서평

“진정한용기란무엇인가?”
폭력을멈추는것은두려움을무릅쓰고나설수있는용기다

‘학폭미투’라는단어가익숙해진지금,많은이들이피해자들의폭로에공감하고함께분노하고있다.학교폭력을그저‘해프닝’으로여기던과거의시각에서벗어나,폭력의상처는시간이흘러도쉽게옅어지지않는다는것을모두가느끼고있다.조금이나마피해자의고통에귀를기울이는시대가된건지도모른다.
베스트셀러작가김선영이『시간을파는상점』으로부터10년의시간을뛰어넘어엄마의소망이담긴전원주택을배경으로우리사회의뜨거운감자인학폭미투이야기를수려한문장에담아청소년소설을출간했다.작가는단순히‘나쁜이는벌을받는다’는권선징악의메시지에서벗어나,‘용기’에관해말한다.학교에떠도는헛소문을듣고도전학생이라는불안한위치때문에함부로나서지못했던벼리,괴롭힘당하는태규를도와주었다가겉돌게되어졸업하기만을기다리던세나,두사람이서로에게서타인을위한용기를배우고과거속에묻혀있던상처를치유하는과정을지켜보며독자들은‘나는누군가를위해진정한용기를내본적이있는가?’라는질문과마주하게된다.

수많은눈이외면하고침묵할때폭력은더욱거세지고지속될수밖에없다.그럴때작은목소리일지라도누군가용기를낸다면그용기가다른사람에게옮겨가고,그것이또다른누군가에게닿는다면폭력은조금이라도줄어들지않을까생각한다.-창작노트에서

열일곱강여울이스스로세상을등진곳이자엄마가마음속깊은곳에숨겨두었던상처가투영된은사리폐가.다소어둡고아픈이야기를흰꽃이가득한집이포근하게감싸안아준다.극복하지못한상처가잠든공간이또다른누군가를위한힐링의공간으로변하는모습에서김선영작가특유의따뜻한시선을느낄수있다.이미지옥과같은시간을버티고있거나버텨온누군가에게,또는타인을위해나서지못했다는부채감을가진이에게『붉은무늬상자』는위로와같은시간을선사한다.

줄거리

아토피를앓고있는벼리는치료를위해산골학교‘이다학교’로전학을가고,그곳에서따돌림을당하는태규를도와줬다가나쁜소문에시달리고있는세나와친해지게된다.벼리는엄마의눈에띄어산은사리폐가,지붕이내려앉은작은방을정리하다가붉은무늬상자를발견한다.
세나와함께상자를열어본벼리는다이어리와시화집,인형을발견하고상자의주인이이곳에살았던죽은열일곱살‘강여울’이라는사실을깨닫는다.한장씩다이어리를읽어내려간벼리는여울이죽기전세나와비슷한일을겪었음을알게된다.걷잡을수없이퍼진소문,친구들의외면,아버지에게까지외면당한여울,‘살고싶지않다’는말로끝나버린일기장.그런데우연히여울을괴롭힌소문의진원이라이징스타‘고현’임을알게된다.벼리와세나는홀로외로움속에삶을끝낸여울을위해행동에나선다.

책속에서

목덜미와얼굴에생긴붉은반점과하얀거스러미,건조함으로피부가온통발작처럼일어날때아이들은내물건조차스치는것을싫어했다.마치병을옮기는고약한바이러스취급당하는기분이었다.
“옮기는거아니거든.”
내가단호하게말해도아이들은슬금슬금피했다.
그렇다고그렇게슬퍼하지는않았다.책을보거나게임을하는등혼자놀수있는일로상처받지않기위해애썼기때문이다.실은끊임없는자기세뇌를한결과이다.아이들의그런반응을되도록모른척하려고애쓴결과물이기도하다.아이가참밝다는말을엄마도나도많이들었다.그속뜻에는‘그런몹쓸병을가지고있는데어떻게그렇게밝을수가있어요?’라는반문이들어있는말이라는것을안다.엄마는내가과장되게밝은척하려는것도알고있다.때론척이라는것도나름노력의하나라고생각한다.그노력이먹힌건지모르겠지만시간이지나자아이들도크게신경쓰지않았다.
엄마가가장우려한것은그런분위기속에내가집중적으로시선을받으며대인기피증내지우울감을앓는아이가되지않을까하는거였다.(본문17쪽)

“벼리야,사실은말이야.”
엄마는상자로부터눈을떼지않고말했다.
나는카메라를내리고말없이엄마의다음말을기다렸다.엄마입에서어떤말이나오려고저렇게뜸을들이나싶어서긴장되었다.
“이집에살던열일곱살난딸이죽었단다.”
숨이턱막혔다.심장이드세게쿵덕거렸다.
“헉.”
“오래전일이야.”
엄마는시효가지난일이니그렇게놀랄것없다는뜻으로덧붙였다.그런뒤말없이연신상자를쓰다듬었다.
“허얼,정말?그걸알고도이집을?누구한테들었어?”
“이장님이.”
“왜?왜죽었대?”
그순간왜심장이툭내려앉았는지모르겠다.그리고그늘속에있던세나의얼굴이훅겹쳐왔다.갑자기세나의안부가걱정되었다.이집에서죽은열일곱살난딸과세나가왜동일시되는지모르겠다.상자옆에가지런히놓여있는구두가더욱유난하게보였다.
“그런것까지는자세히얘기안하고.이장님이이집을결정하는데문제가되면하지말라고하는데,솔직히얘기해주는게외려문제가안될것같았어.”
“엄마는그런게문제가안돼?”
이집에처음들어섰을때의선득함을잊을수가없다.
“삶과죽음이따로있는게아니야.”
“아이,그거하고는다르잖아.”
“그게뭐가문제삼을일이야?엄마는그래서더결정하기쉬웠어.”(본문39~40쪽)

너,잠자리시집보내기놀이라는거알아?태규를보면서그놀이가생각났어.잠자리꼬리를자르고그곳에보릿대나풀대를넣어날려보내는놀이야.그게잠자리에게는얼마나잔인한일인지,놀이삼는사람은잠자리의고통에대해생각하지않아.그런모습을보고오히려희열을느끼거든.메뚜기를잡아강아지풀대에꿸때도목에서노란진물이흐르는데그게피라는것을생각하지않아.그래도되는줄알고,어떤판단도하지않고하던대로하는거지.어렸을때그런놀이를싫어한나를아이들은이상한눈으로봤어.
태규를볼때꼭그걸보는느낌이었어.그간못봐서그렇지실은더심하게태규를놀잇감삼았을수도있겠다는생각이들었어.
내가그러지말라고,태규가싫어하지않겠냐고소리질렀어.그후부터야.쓸데없이아는체했다고,태규가네애인이냐고하며나를타깃삼았어.내가학교나동네어른들에게고자질할까봐미리단속하는건지도몰라,일종의으름장같은거지.그러기만해봐라,뭐이런식이지.(본문68쪽)

블로그에‘붉은상자’코너를만들어상자를여는장면부터그속의물건들을하나하나찍어올리며사진설명을덧붙였다.
여기저기푸른곰팡이가핀노란표지의다이어리를올렸다.그표지위에는검정색글씨로강여울이라는이름이흐릿하게쓰여있지만번짐처리했다.그다음엔피노키오인형을올렸다.코가몸에비해길게솟아나온피노키오인형이다.양다리를쭉뻗고주저앉은채낙망한듯머리가한쪽으로기운피노키오인형.다른물건에눌린탓인지목이기울어져있어서더욱그런느낌이들었다.팔다리가제멋대로움직이는마디인형이다.사진아래,‘지금은주인잃은피노키오인형’이라고썼다.
업로드하자마자댓글이올라왔다.
나무야나무야:이거고현첫사랑얘기랑분위기가너무비슷한데요.우연이겠죠ㅎㅎ(본문109쪽)

마당으로들어서자어느정도가지치기가되어있어길이보였다.더이상몸을작게만들어나뭇가지사이를지나가지않아도될만큼아빠가길을내놓았다.
별목련나무의꽃눈은조금더부풀어올랐고,더욱붉어진단풍나무의줄기끝에는이슬방울이말갛게맺혀있다.모과나무둥치는푸르스름한빛을더해가고마당수돗가배나무도어제와다르게꽃눈이부풀었다.나무와나무사이,하늘과지붕사이는누르면쑥들어갈것같은안개로자욱했다.나무들이숨을쉬며뿜어내는기운이하얗게피어오르는것같았다.
상자안에서다이어리를꺼내려다가통째로들고뒤꼍너럭바위로향했다.그런나를엄마아빠가지긋한눈길로바라보았다.그런뒤베어낸나뭇가지를정리하고두텁게쌓인낙엽을긁어내었다.엄마가뒤꼍너럭바위에파라솔을펴놓고의자를놓았다.거기서점심을먹기도,엄마가허리를펴며차를마시기도할것이다.엄마,아빠가새삼고마웠다.나의안락한의자와파라솔이되어준것같아서.(본문129~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