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색,계〉의원작을쓴중국의대표현대문학작가장아이링(張愛玲,1920∼1995)은자신의에세이「동언무기(童言無忌)」에서“말못하는사람에게옷은언어”라고했다.불우한어린시절을보냈던그녀는홍콩유학시절패션에관심을갖게되면서자신의목소리를적극적으로내는수단으로옷을활용했다.패션에의도를담는행위는오늘날일상생활에서도빈번하게나타난다.투표시지지하는당을표현하기위해관련색상으로코디하거나특정행사에참여할때드레스코드에맞게옷을입는것도이에속한다.
일반적으로결혼식에서신랑·신부와양가아버지도서양식예복을입지만양가어머니는한복을입는데,이러한관례는어떻게생긴것일까?근대한국에서는서양복식을받아들인시기와수용태도에남녀간차이가존재했다.그이유는옷과액세서리를비롯한패션이사람들에게그저몸을치장하는행위가아닌어떤의미가내포된것으로이해되었기때문이다.이처럼사람들이의복한벌,액세서리하나로백마디말을대신했다면,패션을탐구하면어느면에서정치사보다더실제적으로특정시기를파악하고가늠하는데도움을받을수있다.
『패션,근대를만나다』는바로이점에착안해패션을깊이있게분석함으로써당시역사와국가권력,사회경제상과대중문화를상세하게풀어낸책이다.지금까지시각자료를활용한다양한연구가진행되었으나,일국적관점에서벗어나한중일을함께조망한책은없었다.특히이책은서구열강과만나면서전통복식에서서구식복식으로급격하게변화를맞이한근대동아시아를대상으로한다.
아시아의여러나라,특히한중일은서양의침략과근대화요구를맞닥뜨린상황에서나라의주권을지키고자생적근대화를이루기위해고군분투했다.그험난한여정은복식에그대로반영되었다.서양열강과조우한근대동아시아국가에서는자의반타의반으로서양식제복을도입하면서동시다발적으로복식개혁이일어났는데,여기에는새로운복식으로국가의지향점을표출하고자했던의도가내재되어있었다.한중일3국이서양의복식을수용하는과정은비슷하면서도각국의사정에따라다르게전개되었는데,이책은그과정을세밀하게들려준다.
제복이외에액세서리와직물을통해서도당시의시대상을읽어낼수있다.중화민국시기유행하던여성용부채에는당시새롭게등장한여성유형인사교계여성의정체성고민이녹아있으며,근대시기서양에서수입되어사랑받은모직물을통해서는각국도시인의생활과소비문화를엿볼수있다.일본의종교지도자와문화계인물들,타이완과홍콩여성들이선택한의복양식은격변하는시기의사회상을들려준다.
제복에서부채까지,당시유행하던패션의구체적인모습을200여개의도판과함께생생하게들려주는이책은독자들로하여금근대동아시아의패션문화를시각적으로체험할수있게할뿐아니라지금까지우리가알고있었던근대동아시아의역사를새롭게해석하게한다.거대한정치사이면에펼쳐진패션의역사를통해근대동아시아의역사가더욱촘촘하게이해되는경험을하게될것이다.겉으로보이는복식에숨겨진정치적·사회문화적맥락을읽어내기위해각장의필자들이활용한독창적인방법론은연구자들에게이시기를조망하는데필요한새로운영감을제공할것이다.
개인차원에서부터사회와국가에이르기까지,패션에투영된중층적의미를깊게들여다본이책은우리가입는것이권력이자욕망이요,정체성이자사회의단면임을분명하게알려준다.
글로벌한집필진의패션을읽는다양한시선과방법
-일국사의시각을넘어동아시아전체를조망하다
동아시아의근대패션을한권으로집대성하는작업을위해세계각국의전문가14인이뭉쳤다.한국인3명,중국인5명,일본인4명을비롯해영국인과인도인각1명으로구성된집필진은이책이다루는주제만큼이나매우복잡하고다양하다.
편저자변경희(미국패션인스티튜트오브테크놀로지미술사학과,1장·12장집필)는중세미술을전공하고뉴욕에서유럽과북미아시아계미국인의시각문화와동아시아미술수용에관해연구하고있는데,이책에서는동아시아엘리트남성들의‘하이브리드댄디즘’에대해논했으며,공동편저자아이다유엔웡(미국브랜다이스대학미술학과,1장·4장집필)은아시아미술사학자로서국제적모더니즘에관한저술이풍부하며,이책에서위안스카이와『제사관복도』를다루었다.
이책에는이경미,주경미,오사카베요시노리,난바도모코,게리왕,메이메이라도,스기모토세이코,쑨춘메이,센디응처럼자국의패션사를다룬연구자의글뿐아니라국적을넘어선연구자들의글이함께실려있다.일제강점기한국의인류학·민속학을전공한노무라미치요(한국장안대학교관광경영학과,6장집필)는이책에서근대한국과일본의경찰복을분석했으며,영국에서수학하고미국에서활동중인레이철실버스타인(미국워싱턴대학잭슨국제학부,10장집필)은청대인기있던모직으로만든휘장과여성복식을소개하고있으며,인도인브리지탄카(인도델리대학동아시아학과,13장집필)는일본의종교계·문화계인물들이특정의복양식을선택한함의가무엇인지논하고있다.
한중일연구자를넘어근대동아시아의패션을연구한다양한국적의저자들은글로벌한시선으로근대동아시아의패션을조망한다.이처럼근대패션에대한최신연구를담아낸이책은패션에관심있는독자는물론,역사학,문화학,인류학,국제관계학과경영학을공부하는이들에게동아시아를바라보는새롭고도유용한관점을제시하는안내서로서손색이없다.
패션의눈으로읽는순간,근대동아시아의역사가다르게읽힌다-이책의구성과주요내용
『패션,근대를만나다』는전체책의내용을소개한1장「패션,근대를외치다」에이어총4개의부로구성되어있다.‘의복과제복’,‘장신구’,‘직물’,‘의복양식’을다룬각부의주요내용을소개하면다음과같다.
1부의복과제복:우리는권력을입는다
1부(2∼6장)에서는이책의시작점인19세기후반동아시아각국에서이루어진서양문명과의만남을‘복제개혁’의시각으로접근한다.새로운의복과국가권력과의관계는무엇이고,의복에투영된근대성은어떻게읽을수있을까?2장「옷차림으로보는메이지유신」은일본의복제개혁을포함한일련의급진적인개혁이계층간평등을도모하기위한메이지정부의야심찬기획이었음을당시의기록을통해생생하게들려준다.3장「한국의근대복식정책과서구식대례복의도입」에서는일본을비롯한외세의압력에직면한이시기대한제국의의복에관한정치·문화적선택이가진중대함과불안감을전한다.특히주목할점은궁정과정부의공식복장이외국의모델이아닌정부내의공론을통해개혁되었다는점이다.반면,4장「위안스카이의『제사관복도』에나타난제례복,그리고제국에대한야망」에서는‘민국혁명’을수용하는대가로대총통의지위에올랐던위안스카이의야심을그가새로창안해낸‘황제풍’의제례복을통해밝혀내고있다.5장「교복의탄생」에서는일본에서근대교육의도입과함께제국의신민을육성하기위한기본조건으로서채택된교복의발전과정에대해살폈을뿐아니라서양식교복의확대와함께대량생산을위한지역의산업기반에대해서도함께소개하고있다.20세기초일본과한국의경찰복을다룬6장「거리에노출된권력의표상」에서는한국과일본의경찰복이서양식복장으로바뀌면서,‘전통의복을입은민중-서양식제복을입은경찰’이라는대비구도가나타났던거리의모습을미셸푸코의‘규율화된신체’개념을통해풀어내고있다.
2부장신구:정체성과자아실현을고민하다
복식의서구화는종종성별에따라다른기준을가지고적용되었는데,특히2부(7∼9장)에서다루는장신구영역에서더욱뚜렷하게구분되었다.7장「근대한국의서양사치품수용에나타난성차」에서는일제강점기한국의상류층여성들이전통적인장신구착용을고수했던행위가일제에대한무언의저항과당당한자기표현이었음을밝힌다.8장「머리모양에서머리장식으로」에서는일반적으로알려진만주족여성의‘전통’복장이시대를초월한특색을갖춘것이아니라계속해서변화해왔다고본다.특히과장된머리모양인량바터우는만주족의정체성을시각적으로연출하는데사용되었을뿐아니라청황실의쇠퇴한권력을되살리고자하는바람도깃들어있었음을들려준다.9장「여성의장신구,부채」에서는중화민국시기크게유행한접이부채와깃털부채를소개한다.유명사교계여성이사용했던부채,그리고부채를소재로한인기연극이야기를들려줌으로써중화민국시기새로이등장한여성유형의정체성을탐색한다.
3부직물:아시아,모직물을접하다
대항해시대동양의실크와면직물이서양에서대대적인환영을받았다면,반대로동양에는서양의모직물이수입되어복식의근대화를촉발했다.3부(10∼12장)에서는일본과중국에서모직물이유행하면서복식문화에어떤영향을끼쳤는지그양상을추적하였다.10장「외국풍의유행」에서는난징조약체결이후개항과함께양모를포함한서양직물이중국전역으로빠르게퍼져나가면서중국남성과여성의의복원단유형이전반적으로확장되었을뿐아니라,복식제도의위계질서가흔들리기도했음을밝히고있다.특히중국의소설과죽지사(민가)에등장하는모직관련용어들을세밀하게분석하여,청나라가해외문물에배타적이었다는흔한통념을반박한다.11장「양모기모노와‘가와이이’문화」는20세기초일본을휩쓸었던모직기모노열풍이염색기술의발전과기모노상점의판매전략,그리고도시의중산층확대등의현상과얽혀있음을들려준다.그리고이현상들이어떻게기모노원단디자인의새로운장르인아동용문양을형성하는데기여하였는지를처음으로고찰하였다.12장「하이브리드댄디즘」은1920~1940년대까지일본과한국의모직물제조산업에대한검토를바탕으로식민통치아래외국에서들여온사치품이필수품으로변모하여‘하이브리드댄디즘’을형성하는과정을자세히살핀다.신문광고,근대풍경사진등다양한근대이미지로엿볼수있는아시아엘리트남성들의‘하이브리드댄디즘’을이장에서확인할수있다.
4부의복양식:변해가는사회상을표현하다
4부(13∼15장)는동아시아근대복식이정체성정치와민족주의와밀접한관련이있음을알수있는세편의글로구성되어있다.13장「근대식복장의승려들」에서는일본종교인들과문화계인사들이동서양의문화요소를차용한새로운디자인의의복을입음으로써‘국가적’으로통일된의복양식이아닌새로운자기표현과근대적인비전을표방했음을들려준다.14장「시각문화로읽는20세기타이완의패션」은당시유행하던잡지와화가의그림,사진작가의작품을분석함으로써일본의식민지배를받았던타이완에서상하이의유행을따르는근대화된중국식복장과도쿄를통해들여온유럽식복장이공존하는다양한복식문화를들려준다.15장「의복,여성의완성」은중국의대표적인여류작가장아이링의글과할리우드의렌즈를통해홍콩여성들이즐겨입던‘청삼(치파오)’에담긴다층적인의미를탐색한다.청삼은오리엔탈리즘을자극하는소재이기도하지만홍콩문화에서전통적인가치의표본으로서영향력또한지속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