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20세기,한미관계의기원과형성
“미국의대한정책은어떻게무관심에서동맹으로바뀌었는가”
일본의한국강제병합을인정했던20세기초미국의대한정책에서3·1운동과독립운동진영의대미외교,태평양전쟁과미국대한정책의전환,해방과미군정,한국전쟁,그리고1953년한미상호방위조약의체결까지.『근현대한미관계사:기원과형성1910-1953』은오늘날한국의외교와안보에서중요한위치를차지하는한미관계가어떠한역사적과정을거쳐형성되었는지를추적한다.저자는러일전쟁과두차례의세계대전,한국전쟁이라는국제정세의격변을중심으로미국의대한인식과정책이변화해온과정을사건중심의연대기적서술로정리한다.
현재의한미동맹만을놓고보면한국과미국의밀접한관계가오래전부터지속된것처럼보일수있다.그러나이책이보여주는20세기전반의한미관계는훨씬복잡하다.한국은위기때마다1882년조미수호통상조약의‘거중조정’조항과미국의선의에기대를걸었지만,미국은오랫동안한국문제를일본의내정으로취급했다.이러한무관심은1941년태평양전쟁을계기로비로소전환되었고,이후해방과점령,전쟁을거치면서미국은한반도문제에깊숙이개입하게되었다.저자는이변화의과정을따라가며1953년한미상호방위조약이어떻게현대한미관계의원형을형성했는지를살펴본다.
미국은왜일본의한국지배를인정했는가
그러나러일전쟁을거치면서미국의태도는달라졌다.시어도어루스벨트정부는일본을러시아의남하를견제할수있는동아시아의세력으로평가했고,일본의한국지배를인정했다.을사늑약체결이후미국은가장먼저서울의외교공관을철수했으며,1910년한국강제병합역시승인했다.한국이조미조약의약속과미국의선의에기대를걸었던것과달리미국은자국의태평양전략과국제정치적이해에따라움직였던것이다.이후한국문제는오랫동안미국의외교정책에서일본의국내문제로취급되었다.
그러나러일전쟁을거치면서미국의태도는달라졌다.시어도어루스벨트정부는일본을러시아의남하를견제할수있는동아시아의세력으로평가했고,일본의한국지배를인정했다.을사늑약체결이후미국은가장먼저서울의외교공관을철수했으며,1910년한국강제병합역시승인했다.한국이조미조약의약속과미국의선의에기대를걸었던것과달리미국은자국의태평양전략과국제정치적이해에따라움직였던것이다.이후한국문제는오랫동안미국의외교정책에서일본의국내문제로취급되었다.
3·1운동은미국의마음을움직였는가
2장「미국의인도주의적관심과외교적무관심」은1919년3·1운동과파리강화회의,1921~1922년워싱턴회의를중심으로한국독립운동과미국의반응을살펴본다.제1차세계대전이후윌슨대통령의민족자결주의가알려지면서한국의독립운동가들은국제정세의변화를독립의기회로인식했다.상하이의여운형과김규식,미국의이승만과재미한인사회등세계각지의독립운동세력은파리강화회의를통해한국독립의정당성을알리고미국의지원을얻으려했다.이러한국제정세의변화와국내외독립운동의움직임은서로영향을주고받으며2·8독립선언과3·1운동으로이어지는동력이되었다.
3·1운동은미국사회에한국문제를알리는데일정한영향을미쳤다.주한선교사와미국의종교계·언론·정치권에서는평화적인독립운동과일본의탄압에대한인도주의적관심이나타났다.그러나미국정부의공식적인대한정책은달라지지않았다.미국은한국문제를일본의내정으로판단했고,한국의독립을공식적으로지지하거나일본과외교적갈등을감수하면서까지개입하려하지않았다.저자는이를‘인도주의적관심과외교적무관심’이라는서로다른두태도로설명한다.
태평양전쟁은어떻게‘무관심의종언’을가져왔는가
3장「한국독립운동의대미외교와미국대한정책의전환」에서는1941년태평양전쟁을기점으로미국의한국인식이크게달라지는과정을추적한다.1910년이후한국을일본의국내문제로취급했던미국은일본과전쟁을시작하면서새로운대한정책을마련해야했다.한국을일본에서분리해독립시키는것이미국의전후구상에포함되면서한국은더이상일본의일부가아니라독립되어야할지역으로인식되기시작했다.저자는이를미국대한정책에서‘무관심의종언’이라고설명한다.
1943년카이로회담과카이로선언은이러한변화가구체적으로드러난사건이었다.카이로선언에는한국을자유롭고독립된국가로만들겠다는약속과함께‘적절한시기’에독립시킨다는내용이담겼다.미국은한국이즉시독립국가를운영할정치적자치능력을충분히갖추지못했다고판단했고,국제신탁통치를거쳐독립시키는방안을구상했다.이에한국독립운동진영은대한민국임시정부의승인과즉각적인독립을요구하면서미국을상대로활발한외교활동을전개했다.이시기부터한반도는미국의전후동아시아질서구상속에본격적으로포함되기시작했다.
해방이후미국의대한정책은왜표류했는가
4장「미군정의실시와표류하는미국의대한정책」에서는해방직후38선분할과미군정,모스크바3상회의와미소공동위원회,대한민국정부수립과주한미군철수에이르는과정을살펴본다.1945년일본이패망하면서한반도는북위38도선을기준으로미국과소련에의해분할점령되었다.남한에진주한미군은직접군정을실시했지만,한국의정치·사회상황에대한이해와충분한준비없이점령정책을추진해야했다.현지미군정의국가주의적정책과미국국무부가추구했던국제협력적대한정책사이에도차이가존재했다.미국과소련은모스크바3상회의를통해임시정부수립과신탁통치에합의했지만,이를둘러싼국내정치세력의대립과미소간갈등으로미소공동위원회는결국성과를거두지못했다.
저자는이과정에서남한에미국식제도와가치가빠르게자리잡는과정에도주목한다.개항이후교회·학교·병원등으로축적되어온미국기독교와한국사회의관계는해방이후미군정과결합하면서친미적정치·사회세력이성장하는기반이되었다.미소공동위원회가결렬된뒤미국은한국문제를유엔으로이관했고,1948년대한민국정부가수립되었다.그러나미국은별도의안보공약이나동맹조약을제공하지않은채1949년주한미군의철수를완료했다.
한국전쟁은한미관계를어떻게바꾸었는가
5장「한국전쟁과한미동맹의성립」에서는1950년북한의남침에서미국의참전,38선북진과중국의개입,휴전회담과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까지의과정을다룬다.1948년대한민국정부가수립된뒤에도미국은한국과동맹관계를맺지않았다.그러나1950년6월25일북한이남침하자미국은즉각전쟁에개입했고,유엔안전보장이사회역시유엔군파견을결정했다.전쟁은북한과남한의내전적성격을넘어미국과유엔,중국이개입하는국제전으로확대되었다.인천상륙작전이후38선북진과북한지역의통치권을둘러싸고한국과미국사이에갈등이나타났고,중국군의참전이후전선이교착되면서1951년부터휴전협상이시작되었다.
휴전을둘러싼한미간의입장차이는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과정에서도그대로드러났다.이승만정부는휴전에반대하며북진통일을주장했고,미국에확실한안보공약을요구했다.특히반공포로석방을계기로미국은한국과의방위조약협상을본격화했다.한국은휴전을방해하지않는대신한미상호방위조약,한국군증강과군사지원등을확보했고,1953년한미상호방위조약이체결되면서양국관계는새로운단계에들어섰다.
‘처음부터동맹’이었던한미관계라는익숙한인식을다시묻다
『근현대한미관계사』가보여주는한미관계의핵심은‘변화’이다.20세기초일본의한국지배를인정했던미국은3·1운동에도외교적무관심을유지했지만,태평양전쟁을계기로대한정책을전환하고해방과한국전쟁을거치며한반도에깊숙이개입했다.한국역시대한제국의거중조정요구에서독립운동진영의대미외교,한국전쟁기안보공약요구에이르기까지지속적으로미국의지원과개입을요청했다.이러한양국의이해와선택이맞물리면서한미관계는새로운단계로나아갔다.
그전환점이1953년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다.저자는이를한국이오랫동안기대해온미국의방위공약이현실화된것이자현대한미관계의토대가마련된사건으로평가한다.이책은오늘날의한미동맹을당연한결과로바라보지않고,무관심에서관심으로,개입에서동맹으로이어진역사적과정을추적함으로써현재의한미관계가어떻게형성되었는지를새롭게살펴보게한다.
“실패한근대라는통념을넘어,
대한민국의형성과성장을새롭게읽는다”
[근현대한국사새로읽기]7권8책은한국근대와현대를하나의연속된역사적흐름으로읽어내며,오늘의대한민국이형성된과정을다각도로조명하는교양·학술총서이다.우리역사에서근대는종종식민지화와국권상실로귀결된‘실패한역사’로이해되어왔다.이때문에근대와현대를함께조망하는시도는많지않았다.이시리즈는이러한통념을넘어대한제국과독립운동,분단과전쟁,산업화와민주화는물론,시민사회와과학기술,음악과미술에이르기까지한국사회를움직여온다양한역사적동력들을하나의시야안에서살펴본다.
각분야의권위있는연구자들은한국근현대사를정치사중심의서술에머물지않고외교,사상,문화,예술,과학기술,시민사회의성장과정까지확장하여해석한다.이를통해식민주의역사관과냉전적인식을넘어한국사회가축적해온역량과창조성,그리고세계속에서형성해온문화적정체성을새롭게조명한다.『근현대한국사새로읽기』시리즈는격동의역사속에서한국인이만들어온변화와성취의과정을입체적으로탐구함으로써,대한민국의현재를이해하고미래를전망하기위한새로운역사읽기의길을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