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1천 권의 조선 (타인의 시선으로 기록한 조선, 그 너머의 이야기 | 양장본 Hardcover)

1만 1천 권의 조선 (타인의 시선으로 기록한 조선, 그 너머의 이야기 | 양장본 Hardcover)

$23.88
Description
“책은 몸으로 온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전설로 남은 이방인의 책들을 유랑하며
소설가 김인숙이 마주한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
소설가 김인숙이 한국에 관한 서양 고서 마흔여섯 권에 대해 쓴 산문이다. ‘Korea’, ‘Corea’, ‘조선’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나라와 관련된 한 글자만 들어 있어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 명지-LG한국학자료관.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1만 1천여 권의 한국학 자료들이 소장된 이 도서관에 초대되어 수많은 서양 고서들을 만났고 약 3년간 이곳의 다양한 고서들을 연구하며 이 책을 준비했다. 키르허의 《중국도설》, 하멜의 《하멜 표류기》, 샬의 《중국포교사》, 키스의 《오래된 조선》, 카를레티의 《항해록》, 프로이스의 《일본사》, 쿠랑의 《한국서지》 등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와 같이 다양한 서구의 언어들로 기록된 이 고서들은 17~19세기 한국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료들로 손꼽히지만 정작 대중들에게는 낯설다.
그런데 이 고서들 속 조선에 대한 기록은 정작 허점투성이에 오류가 난무한다. 우리나라가 등장하는 부분이 단 한 줄 혹은 몇 문장에 그치는 경우도 많고, 그마저도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이해관계가 덧씌워진 채 왜곡되기 일쑤다. 막연한 동경이나 미화 혹은 무의식적인 혐오와 폄하의 틀을 벗어던지지 못해 마주하기 불편한 기록들도 적지 않다. 저자는 이 모든 구부러지고 빗겨나간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당시 서구인들의 시선에 비친 우리의 모습, 그 책을 만들어낸 인물들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주변부의 이야기까지 역사 속 사실들을 섬세하고 명민한 시선과 작가적 상상력으로 포착해낸다.

또 한 가지 저자가 공을 들여 소개하는 부분은 이 서양 고서들이 가진 물성 그 자체다. 실제로 이 책에는 120여 장에 가까운 고서 사진들을 직접 촬영하여 수록함으로써 쉽게 접하기 힘든 고서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채 낡아가는 표지, 펼치기만 해도 바스러져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책장들, 종이 위 번진 세월의 얼룩과 멋스럽게 기울여 쓴 활자체와 정성껏 박을 입히고 공들여 엮은 장정,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면지에 적어둔 손글씨와 책장 사이에 끼워진 명함과 사진…. 저자는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몸이라고 찬탄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담고자 했던 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기에 있으나 거기에 없는 책들, 희귀한데도 희귀본이지 않고, 고서가 아닌데도 몇백 년씩이나 오래되었고, 외국어 책인데 우리나라 얘기를 담고 있는, 그런 책들 중 어떤 책이 아니라 그런 책들 모두에 대해서. 그 책들이 담고 있는 공간과 공간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의 ‘이야기’에 대해서.”
저자

김인숙

소설가.
서울에서태어나연세대신문방송학과를졸업했다.
1983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상실의계절〉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단편소설〈개교기념일〉로현대문학상을,단편소설〈바다와나비〉로이상문학상을,
단편소설〈감옥의뜰〉로이수문학상을,소설집《그여자의자서전》으로대산문학상을,
소설집《안녕,엘레나》로동인문학상을,단편소설〈빈집〉으로황순원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들어가는말/타인의시선이담긴몸

1장오해와편견의역사
오래된책,유명한책,한줄의책-키르허의《중국도설》
오해와편견의역사-마르티니의《타르타르의전쟁》
생생하게실재하는야만의나라-하멜의《하멜표류기》
시선의방향-로티의《자두부인》,뒤크로의《가련하고정다운나라조선》
거짓말쟁이와허풍꾼의책-핀투의《핀투여행기》,폴로의《동방견문록》
희한하고씁쓸한,좀이상한책들-맥레오드의《조선과사라진열지파》,미케위치의《한국인은백인이다》
한번보아서는보이지않는것-비숍의《조선과그이웃나라들》,그렙스트의《스웨덴기자아손,100년전한국을걷다》

2장오래된책,아름다운몸
세월이흐르면서더욱아름다워지는책-피카르의《종교에관하여》
책속에남겨진손글씨의온기-알렌의《조선견문기》
보는것만으로도황홀한책-크랜의《조선의꽃들과민담》
애정으로포착해낸표정-키스의《오래된조선》,메이의《계피나무정원에서온풀잎》
가장비싼책의조건-지볼트의《일본》
낭만과절망을담은지도-미국성서공회의《선교안내목록》
다즐레섬,판링타오그리고찬찬타오-라페루즈의《항해기》

3장역사의지문
소현세자,비운의코레아왕-샬의《중국포교사》
기울어진역사를관통한소년,안토니오코레아-카를레티의《항해록》
민간인의눈으로기록한전쟁의참상-앨런의《영국선원앨런의청일전쟁비망록》
한줄의문장이엮어내는역사의지문-팀콥스키의《몽골을거쳐베이징까지의여행》
1890년대조선의일상저장고-올링거의〈코리언리포지터리〉,헐버트의〈코리아리뷰〉
유럽최초로한국문학작품을소개한암살범-홍종우의《다시꽃핀마른나무》
조선의오징어게임-컬린의《조선의게임》

4장미지의땅,최초의기억
흰옷,이상한모자,일하지않는남자-앤드루스의《세계의끝》
세계의변방에관한최초의기록-카르피니의《몽골의역사》,루브룩의《몽골제국기행》
막내왕자의울음을멈춘움직이는요술상자-홈스의《트래블로그》
조선의지식사회를뒤흔든서구문물-로드리게스의《일본교회사》
이양선을타고온탐사자들-브로튼의《북태평양발견항해기》
미지의땅,세계의끝과시작-볼테르의《중국고아》
섬세하지만겁많고유약한조선인-런던의《신이웃을때》

5장기록하는책,기록하는사람
쓰지않은책의저자가되어버린저자-트리고·리치의《중국선교사》
포르투갈선교사의기록으로남은임진왜란-프로이스의《일본사》,《감바쿠도노의죽음》
시대를앞서간책,말모이의시대를연학자-언더우드의《한영자전》
황실을지킨서양인들-크뢰벨의《나는어떻게조선황실에오게되었나》
모든것이반대인나라를사랑했던선교사-홀의《닥터홀의조선회상》,노블의《노블일지》
침략의기록,문제적인물-쥐베르의《조선원정기》,오페르트의《금단의나라조선탐험기》
조선의책,책속의조선을발견한남자-쿠랑의《한국서지》

나가는말/〈함녕전시첩〉속동감지의

참고문헌
미주

출판사 서평

희한하고희귀한,이황홀한책들!
전설이되어남은1만1천권고서들의세계를탐닉하다
우리나라에대해서구인들이남긴기록,특히개항기전후의조선을소개하는책들은국내에도상당수번역·출간되었다.그러나‘페이지수가너무많아서’,‘우리나라에대한이야기는단몇줄에불과해서’등등다양한이유로소개되지못한책들도여전히많다.명지-LG한국학자료관은바로그러한서양의고서들과관련자료들을차곡차곡그러모은곳으로장서와자료의수가약1만1천종에달한다.소설가김인숙은대중에게공개되지않은이숨은자료관의서가구석구석을탐색하며오랜책들에관한이야기,책을집필한인물과그시대의이야기그리고책과책사이에숨겨진,미처알려지지않았던역사속이야기와그들의눈에비친우리들의모습을독자들에게전한다.

오해와편견,무지와미지가교차하는서구인들의시선속
우리도미처알지못했던역사속조선의모습
‘솔랑가’,‘칼렘플루이’,‘코레’등다양한이름으로불렸던우리나라(신라,고려,조선)는한마디로세계의끝이자,일체알려진바가없는미지의나라였다.모른다는것은곧판타지.알수없는이막연한나라에대한환상은‘금과은이풍부한나라’(핀투의《핀투여행기》),‘자유연애를하고부모의허락없이결혼할수있는나라’(마르티니의《타르타르의전쟁》),‘모세의후손으로이스라엘의사라진열지파중하나’(맥레오드의《조선과사라진열지파》),‘칭기즈칸이침공한베이징의황손을보호해준나라’(볼테르의《중국고아》),‘들어가기만하면몇살이되었든나이를먹지않는나라’(루브룩의《몽골제국기행》)와같이허무맹랑한내용들로구체화되었다.이후19세기말서구의문물이물밀듯들어오기시작하는개항기에이르러서는‘겁많고게으르며비능률적인민족’(런던의《신이웃을때》),‘달콤하고정겹지만결코서구인을넘어서지는못할착한미개인’(뒤크로의《가련하고정다운나라조선》)와같이서구중심주의에물든시선혹은‘묘지같은집에사는야만인’(피에르로티)과같은혐오로기록되기도한다.

책과책사이,기록되지못한채사라진역사의숨결
소설가적창조력으로건져올린생생한이야기
저자는역사책에는잘소개되지않는,책과책사이의이야기,책속기록이면의이야기들도소개한다.최초로유럽땅을밟은조선인으로알려진안토니오코레아의실체,고종의초청으로조선을방문한루스벨트대통령의천덕꾸러기딸앨리스루스벨트와그녀를대접하기위한화려한연회메뉴,도포와갓차림으로당당하게파리거리를활보하며《심청전》과《춘향전》을프랑스어로번역·출간한조선최초의서양유학생홍종우가왜김옥균의암살범이되었는지에대한이야기도흥미롭다.조선의개항을돕겠다는명분으로남연군묘를도굴하고,자신의행동을합리화하고자조선에관한책까지집필한문제적인물오페르트,이양선을타고강화도를침략하는와중에더할나위없이평화롭고아름다운강화도의풍경을찬탄했던프랑스군인쥐베르의기록에관한이야기등도담겨있다.

읽는것이아니라보는책이기도한서양고서들
낡고바랜종이와장정,그안에담긴역사
저자의시선은이러한책의내용뿐만아니라,이를담고있는책의외형에도머무른다.오랜세월을거치면서습기를머금어얼룩이생기고울룩불룩해진종이,기울여씀으로써종이의여백을최대한아름답게살리고자한글씨체인이탤릭체,책의인쇄를주문하는출판사나단체혹은가문에따라다양한판형과표지를가진책들,그림하나하나마다기름종이를덧댄정성스러운가공,금박과가죽으로고급스럽게엮어낸장정은오늘날의책들에서는쉬느끼기힘든기품그리고귀중품으로서의책의가치를느끼게해준다.이뿐만아니라한때이책을소유했던누군가의흔적,선물하면서남긴편지와사진,명함,도서관장서임을증명하는표식들과도장에이르기까지고서는자신의몸을스쳐지나간갖가지세월의흔적을고스란히품고그자체로아름다운몸이자역사가된다.

〈함녕전시첩〉속고종의글씨
망국의한,아픈시대의기록속우리가바라본우리의모습
이책에서가장마지막으로소개되는작품은〈함녕전시첩〉이다.이완용과이토히로부미등이1909년덕수궁함녕전에서고종의운에맞춰지은칠언절구를긴두루마리형태로만든것으로,이시첩에는후에고종의낙관이찍힌친필이들어있는것으로밝혀져그가치가재평가되기도했다.저자는〈함녕전시첩〉으로책을마무리하는이유를다음과같이밝힌다.

18세기,19세기서구인들이우리나라에대해남긴기록은그관점이어떠하든간에결국은망해가는한나라에대한기록이다.그러므로그기록의끝에이르러‘우리는우리눈으로우리를’한번은들여다봐야한다.

외세의격랑속조선의운명이풍전등화와같던그시기에이완용은〈함녕전시첩〉에서“두땅(조선과일본)이한집을이루어천하에봄이왔네”라고했다.그리고고종은여기에‘동감지의(同感之意)’라는말을남겼다.대체무엇을동감한다는것인가.왜고종은그런말을남긴것인가.이를이해하기위해알아야할다른이야기가있다.〈함녕전시첩〉의칠언절구에서고종이띄운운,‘인(人),신(新),춘(春)’자는춘추전국시대,적왕초나라문왕에게애첩으로끌려가아들셋을나을때까지일체아무말도하지않았던것으로유명한식나라왕비도화부인을기린두목의시에서가져온것이라는사실이다.망해가는나라의왕이었고,침략자를위한연회에서도침묵을지킬수밖에없었던고종은‘인,신춘’석자로도화부인을떠올렸고,이에씁쓸하고도쓸쓸하게‘동감지의(同感之意)’라는글자로무언의저항을한것이다.
어린아이가호기심가득한눈으로할아버지의책장을들여다보듯시작했던이책은이처럼한시대의쓸쓸함을담은시첩으로끝을맺는다.조선사람을바라보았던서구인들의시선은결국스스로바라본우리의모습으로수렴될수밖에없다.저자는보다많은사람들이이서양의고서를통해우리의뿌리를되돌아보고이를바탕으로지금우리의모습도비추어보기를바라는마음에서이책을썼다고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