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이종산 소설)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이종산 소설)

$14.50
Description
서늘하고 날카롭게 벼려진,
우리 도처에 스며 있는 진정한 ‘공포’에 대하여

《붉은 칼》 《저주토끼》 작가 정보라 추천

“여성주의 공포소설이라는 장르가 존재한다면
이 작품이 바로 그 대표작일 것이다”
‘전혀 새로운 감각의 출현’이라는 찬사와 함께 제1회 문학동네대학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종산의 첫 번째 소설집이 출간됐다. ‘공포’를 키워드로 한 일곱 편의 소설이 실린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은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으로 선정되어 지난 도서전 기간 동안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신작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주로 사회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관계와 공간, 그리고 외부의 자극(타인)으로부터 발화된 공포를 그리고 있다. 가장 가깝고 긴밀한 관계이지만 때로는 그 누구보다 멀게 느껴지는 존재인 가족과 친구(〈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언니〉 〈커튼 아래 발〉), 일생을 살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집과 일터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흔들리는 거울〉 〈청소 아주머니〉), 타인의 목소리로부터 발화한 불안(〈혼잣말〉 〈은갈치 신사〉)이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커다란 줄기일 뿐, 공포를 토양 삼아 깊게 뿌리내린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심연에서 얽히고설키며 공포가 왜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적 감정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아주 깊게 스며들어 언제든 불시에 찾아올 수 있는 일상의 공포가 지금에 이르러 유독 서늘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러한 일들이 결코 우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종산은 이번 소설을 통해 삶을 둘러싼 폭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문학적으로 서사화하고, 나아가 우리가 분명하게 목격하고 경험한 것을 스스로 의심하게 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비이성적인 불안과 혐오가 만연한 시기. 주변에 산재한 공포를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내딛을 수 있는 한걸음은 무엇일까?

“진아는 민재의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의 얼굴이 보였을 때 진아는 흠칫 놀라 눈을 부릅떴다. 남편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 남자의 얼굴이었다. 창백한 얼굴에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 남자.” _〈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중에서
저자

이종산

이종산은소설가이다.관만드는여자와드라큘라가동물원에서연애하는이야기《코끼리는안녕,》으로2012년제1회문학동네대학소설상을받으며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게으른삶》《커스터머》《머드》,에세이《식물을기르기엔난너무게을러》가있다.

목차

빈쇼핑백에들어있는것
흔들리는거울
혼잣말
언니
커튼아래발
은갈치신사
청소아주머니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넌날배신했어.
사람의진심을짓밟으면어떻게되는지
내가똑똑히보여줄게.”

책의문을여는첫번째작품이자표제작이기도한〈빈쇼핑백에들어있는것〉은버스에서일어난한사건을바로옆에서목격한진아의이야기를그리고있다.술취한승객이손에들고있던쇼핑백으로삼십대청년의머리를여러차례내리친다.자리를비켜주지않았다는이유에서였다.청년은그자리에서심장마비로사망하고,해당사건은다음날언론에도배가된다.진아는남편에게목격자진술때했던이야기를들려주지만돌아오는반응은냉정하기만하다.밖에서뿐만아니라집에서도군인처럼행동하는남편.진아는사건이후죽은청년의얼굴이수시로떠오르고,권위적인남편이조금씩거슬리기시작한다.귀가하자마자생활관체크하듯집구석구석청소상태를살피는눈빛,학생을가르치는듯한말투,네가뭐잘하는게있느냐며한심해하는태도.진아는어느순간부터죽은남자에게서자신의모습이보이기시작한다.

한편〈커튼아래발〉은오랜시간쌓인모녀의애증에집중하며한쪽으로치우친사랑과증오가어떤파국을가져오는지를잘보여주는소설이다.스스로목숨을끊은남편,끔찍이도사랑했지만그사랑이결국집착이되어집을떠나버린아들.나이가들어스스로거동이어려워진지금,그녀곁에남아있는건아이러니하게도아주어린시절부터차갑게내쳐온딸뿐이다.휠체어로다니기어렵다며집안의모든문을떼어버리고커튼을쳐둔엄마는수시로벌컥벌컥커튼을열어젖힌다.내내미움을받으면서도엄마의곁을떠나지못하는딸에게언젠가부터커튼아래발이보이기시작한다.차갑지도,따뜻하지도않은하얀발.커튼을걷어보면어느새홀연히사라지고없다.발의주인은도대체누구일까.그때,오빠에게서불쑥연락이온다.엄마가그렇게사랑해마지않는오빠에게서.

〈언니〉는인스타그램을통해만나게된‘희수’와‘모란’의이야기이다.SNS상의누군가를오프라인에서만나는일이처음인희수는신기하리만큼대화도잘통하고취향도맞는모란에게호감이생긴다.누가봐도연예인처럼아름답고화려한모란에게필연적으로끌려희수는그녀를만나보기로하지만,가까워지면가까워질수록모란의집착적인태도가불편하게느껴진다.두사람은결국크게다툰뒤이별하게되지만,모란은희수의곁에맴돌며그녀가그누구와도친하게지내지못하도록방해를한다.희수의주변사람들을협박하고,회유하고,이간질하면서.그러던어느날,친구가희수에게연락을해온다.모란에게서이상한인스타디엠을받았다고.

“희수는집으로들어가서문을이중으로잠그고집안커튼도모두닫았다.(……)오늘나뭇잎서점앞에서그애와마주친이야기를해도그애가날따라다닌다는생각이망상이라고할까?희수는그런생각을하면서커튼틈사이를응시했다.창문너머에모란이서있을것같았다.”_〈언니〉중에서

〈흔들리는거울〉은집요한스토킹을당하다결국가족모두가살해당한현장을두눈으로직접목격한화자가등장한다.다정하고단란했던가족,그리고그런식구들을감싸안았던포근한집.하지만함께웃고서로사랑했던그곳에서자신을제외한모든가족들은피투성이로난도질당한다.몇년이지난후모든걸이겨냈다고생각한순간,밤10시11분만되면집안에있는거울이흔들리기시작한다.그리고거울너머엔,죽은가족들이서있다.

“나는잔뜩화가난채로경찰서에서나왔다.‘해를끼치지않는이상?누구하나죽어야만뭐라도할수있다는거야?웃으면서잘해준적이있느냐니.그럼내북토크에와서내가쓴책을내밀면서사인을해달라는독자에게무뚝뚝하게굴면서책을내던지기라도했어야한다는건가?”_〈흔들리는거울〉중에서

〈혼잣말〉과〈은갈치신사〉는누군가의한마디로부터시작되는짧은소설들이다.〈혼잣말〉은적막한밤,파리의한스튜디오에서“다너때문이야”라는말이들려오면서부터벌어지는일을그린다.나도모르게읊조리던혼잣말이실은혼잣말이아닐수있다는사실을깨닫는순간온몸으로퍼지는공포가인상적인작품이다.한편〈은갈치신사〉엔해외여행을가기위해편의점아르바이트를하며돈을모으는학생과거의매일편의점에찾아와우유를사가는남자가등장한다.어느날불쑥“아가씨는나랑사는세계가다르니까”라고말하는그를보며그녀는일순간기분이불쾌해진다.하지만불쾌함도잠시,시간이지날수록은갈치신사가했던말이어떤의미였는지알것같은기분을느끼며서늘함에잠긴다.

“이제아가씨도나랑같은세계에살고있네.그렇지?”_〈은갈치신사〉중에서

다른그어떤작품에서도찾아볼수없는,
진득하게남는삶에대한두려움

《빈쇼핑백에들어있는것》에실린소설들은다양한형태의여성-공포서사를보여주고있다.특히일반적인단편분량에비해긴호흡을보여주고있는네작품은소설가정보라의표현을빌려‘여성주의공포소설’로한데묶어도손색이없을정도다.권위적인남편과결혼하며자기자신을잃어버리게된진아는빈쇼핑백에맞아사망한남자에게서자신의삶을투영해바라보게된다(〈빈쇼핑백에들어있는것〉).지독한스토킹에시달리고있지만직접적상해가없어별다른조치를취할수없다는말은‘스토킹범죄’가얼마나허술한법망아래놓여있는지를다시한번반추하게하고(〈흔들리는거울〉),자신을보호해주리라여겼던남편의자살을끝내받아들이지못하고아들에게집착하는엄마와지독한언어폭력을감내하면서도끝내엄마곁을떠나지못하는-엄마에겐자신밖에남지않았다는생각을가진-딸사이의애증또한기존의모녀서사에서한층더깊이있는사유를하게만든다(〈커튼아래발〉).특히퀴어로맨스와함께여성안에숨겨진여성혐오에대해그리고있는〈언니〉는앞으로의여성서사가얼마나더확장되고증폭될수있는지를보여주는소설이기도하다.이네작품을포함한총일곱편의소설들을통해‘공포’라는감정이우리사회에서어떻게작동하는지,아주작은불안의씨앗이어떻게거대한공포로까지확장될수있는지추체험할수있을것이다.

“엄마의얼굴이드디어크게흔들렸다.나는엄마가상처받았으면했다.되도록크게치명상을입어서풀이죽고고분고분해졌으면했다.그래서나에게함부로뭔가를시키지도않고,도움이필요한때는조심스럽게부탁을하고,내가자기를위해뭔가를해주면고마워할줄도알기를바랐다.”_〈커튼아래발〉중에서

“당신이이책에실린이야기들을읽으며잠깐이라도섬뜩함을느꼈다면,그것이당신이살면서느끼는공포와정확히같기때문이라면,나는무척기쁠것이다.여기실린모든이야기는무엇보다당신의즐거움을위해쓴것이기때문이다.”_‘작가의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