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루비 : 박연준 장편소설 (양장)

여름과 루비 : 박연준 장편소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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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와 당신을 루비처럼 빛나게 해준 여름,
‘첫 순간’이 유성우처럼 쏟아지던 우리들의 유년에 대하여
박연준 시인의 첫 장편소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 산문집 《소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쓰는 기분》 등으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박연준 시인의 첫 장편소설 《여름과 루비》가 출간되었다. 소설 《여름과 루비》는 세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첫 순간’, 유성우처럼 황홀하게 쏟아지는 유년 시절의 그 순간들을 그녀만의 깊고 섬세한 통찰로 그려내고 있다.

독자들에게 박연준은 시인과 에세이스트다. 대개 그녀의 글에서 일상을 감각적으로 대하는 마음과, 시로 세상을 해독하는 방법에 대해 그녀는 친밀하게 문학을 전했고 다정하게 산문으로 말해왔다. 시의 언어 속에 가려진 삶의 쉬운 이해에 대해, 산문에서 그렸던 다채롭게 다각화된 일상에 대해.

소설. 그 중에서도 장편소설. 박연준에겐 소설이란 아무래도 낯선 장르일 것이다. 어쩌면 시와 산문의 길에서 괜하게 슬쩍 소설의 짓궂은 방향으로 선회해본 것일 수도 있겠으나, 출간된 소설 《여름과 루비》의 정밀하고 구조적인 면과 ‘유년’의 그 위태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이야기성으로 풀어내는 힘은, 자기 삶의 ‘찢어진 페이지’를 소설이란 장르로 복원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당위에 천착한, 꼭 써야만 했던 필연적인 작품이 되었다. 문학잡지 《악스트》에서 연재를 마치고 1년여 동안 수정과 탈고를 거쳐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박연준 시인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저자

박연준

파주에살며시와산문을쓴다.시,사랑,발레,건강한‘여자어른’이되는일에관심이많다.2019년5월『아무튼,비건』을읽은후비건을지향하는인간이되었다.일단시작하면꾸준히한다.사랑하면믿는다.분방하고충동적이지만(이상하게도)수련과수양을좋아하는타입이다.무지몽매해서늘실연에실패한다.무언가를사랑해서까맣게타는것이좋다.

1980년서울에서태어나동덕여대문예...

목차

1부

어린이의정경_1986/피아노/신호등/바탕색/계절/46색/따귀/가정교육/밤의기도/붉은것/비행/쥐잡기/단테와침대/어른들은진실을수정한다/어떤거짓말은솔직하다/아이들은현실을수정한다/가구사용법/내수영복이아니야/할수있는이야기/할수없는이야기

2부

우리들의실패/찌그러진풀처럼사람을눕게하는감각/작은배우/그건잡으라고난털이아니다/큰배우/부스러기들/찢어진페이지/지나간미래/미래에도하지못할이야기/학자와나/난삽/언덕에서내려오기/얼굴사용하기/회상하기/전화돌리기/오해하기/언덕에서멀어지기/두사람

해설|전승민(문학평론가)
어린오르페우스의여름밤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우리들의처음과그모든것의실패에대하여

소설은일곱살여름으로시작한다.소녀의이름은여름.고모손에맡겨진채마당한귀퉁이에앉아아무것도하지않아도,누구도뭐라하지않는.어른들은죄다나갔고,아이만혼자덩그러니.여름을돌봐줄사람은없다.괜히마당에나앉아줄을긋거나,소리내책을읽어도봐주는사람도,들어주는사람도없다.그렇다고세상구경을하기위해밖에홀로나갈수도없다.점처럼깜빡이는일곱살여름.이유없이자주울고,웃고침묵하다떠들고.엄마가있는아이가아니라서.엄마를대신하는게고모라서사람들은여름을고장난신호등처럼바라본다.그런그때,갑자기훅치고들어오는젊은여자와아빠.‘쟤는수줍음이많아.’아빠의말에대항하려다멈춰버린다.일곱살여름은아빠에게유일한약점이자무기.최대한도도하게아무렇지않게행동하기.동정이필요없다는듯.반응하기를멈춘다.‘오늘부터엄마라고불러.’아빠가데리고온여자가말한다.고모말에따르면교양이라곤눈을뜨고찾을래야찾을수없었던여자.새엄마.그렇게시작되었다.새엄마와아빠의여름.

우리집에갈래?마음속에친구라고다짐할때나오는첫마디.공식적으로학교에서만난첫친구.루비가말했고여름은승낙했다.그때두아이삶의궤도에정확히일치하며떨어질수없는관계가되어버렸다.우리는기억하지못하지만어느누구나처음‘친구’와의강한결속력과유대감이란.나의세상과기꺼이맞바꿀수있는또다른세상과의만남같은것.여름을지배하는루비.루비를스며들게하는여름.‘넌좀특별한것같아.’특별하게지켜주어야할그무엇과혹지켜주지못했던그무엇을혼동한채결속되어버린둘.여름은종이에쓸때가많았고루비는종이를읽는때가많았다.둘은바닥에앉아무언가를읽거나썼고말하거나들었다.세상이그들에게내어준그처음에대하여.세상이모르게끔감추어둔그처음들에대하여.슬픔.죽음.기억.과거.나쁜것.야한것.좋은것.착한것.믿음.배신.타인.사랑같은것들.

유년에게도시간은흐른다.아이면서더이상아이가아닌.상상이펼쳐지고펄럭이는열살.이불먼지를뒤집어쓴채재채기를하며기어나온열한살.세상의처음이이제는익숙한것으로느껴지는.어른들이현실이수정하는것에도.어른들이거짓말로현실을버텨내는것에도.과거가슬프다는사실도.현재를생각하면침묵해야한다는사실도.미래를생각하면씩씩함과눈물이서로교차한다는것도알게되는,그리고루비를잃어버리게된열두살.불안과질투로루비를잃어버린게아니다.루비의견고해진거짓말때문도아니다.여름에게는친구가많았고루비에게친구는여름뿐이라서.오래도록비밀로만친했던.늘혼자였고외로웠고침울했던루비를모른척했던그여름때문일까.그래서결국,루비는떠나간다.여름은그게나의‘첫’사랑이란걸뒤늦게야알게되었다.또한‘첫’이별을처음으로깨닫게해준것또한루비라는것도.루비도여름과같았을까.루비에게도여름이그‘처음’이라는걸.

실패하는사랑은영원히사랑해야할수밖에없는사랑

유년의상처가오래도록어른의삶에관여하는이유는,아마유년의상처와슬픔이당시에각인되지않고영원히휘발되었기때문이다.사라져버린상처가흔적으로남아어른의밑거름이되고그때의슬픔의흔적이지금우리들의얼굴이된다.유년의상처와슬픔은서서히어른으로의시간이채워지며찾아온다.어른이된후,유년의그어떤시절의기억과냄새와풍경이불현듯묻어온다.여름이루비를잃었다는것을어른이되어깨닫는것처럼.잃어버린루비를다시되찾아야되겠다는다짐처럼.우리들의첫실패를분명히상기하고있는그유년의상실에대해,박연준의소설은막바지에다다라서공명한다.실패하는사랑은영원히사랑할수밖에없는사랑인것처럼.실패해버렸기에영원히사랑은계속된다는것처럼.